제26출 헌반
제26출 헌반(獻飯)
【황종인자·서지금】〔당명황이 고역사의 인도를 받으며 시종들을 데리고 등장〕양귀비가 가볍게 목숨을 버린 것을 통탄하니, 밤새도록 마음속에 천 가지 슬픔이 가득하네. 아침에 일어나 느릿느릿 금채찍 들기를 싫어하고, 오후가 되어 이 옥 같은 밥을 누가 맛볼까.
나는 급히 서쪽으로 도망쳐 왔는데, 어제 마외역에서 금위군이 나아가기를 거부하였소. 어쩔 도리가 없어 부득이 귀비에게 죽음을 내렸소. 〔눈물을 닦으며〕아, 한낱 천자 노릇만 하다가, 끝내는 차마 하지 못할 사람이 되었구나. 간신히 길을 걸어와 이미 무풍(扶風) 땅에 이르렀소. 봉의궁(鳳儀宮)에 머물며 잠시 쉬려 하오. 〔늙은이 역을 한 외각(外角)이 보리밥을 받쳐 들고 등장〕등을 쬐며 따뜻해지면 천자를 뵈올 수 있고, 들미나리를 바치는 것이야 본래 촌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지요. 늙은이는 무풍의 촌로 곽종근(郭從謹)이옵니다. 듣자하니 폐하께서 서쪽으로 순행하시어 잠시 봉의궁에 머무신다 하여, 늙은이가 보리밥 한 그릇을 끓여 특별히 와서 드리오니, 조금이나마 정성을 표하고자 하나이다. 〔고역사를 보며〕상감(上監)께서, 저를 위해 아뢰어 주시옵소서. 촌사람 곽종근이 특별히 음식을 올리러 왔다고 여쭈어 주시옵소서. 〔고역사가 전한다〕〔당명황〕그를 불러들여라. 〔곽종근이 들어와 뵙는다〕초야의 백성 곽종근이 폐하께 삼가 뵈옵나이다. 〔당명황〕너는 어디 사람이냐? 〔곽종근〕소신을 말씀드리자면,
【황종과곡·강황룡】무풍에서 자라나, 머리 세도록 몸소 밭을 갈며, 함께 시대의 평안을 경축하였나이다. 문득 변고가 일어났다 들으니, 끝없는 놀라움에 사로잡혔나이다. 우선 한 그릇의 보리밥을, 엎드려 군문 앞에 바치러 왔사오니, 원하옵건대 폐하께서 이 거친 음식을 싫어하지 마시옵고, 이 촌사람의 공양을 받아 주시옵소서.
〔당명황〕수고하였도다. 고역사야, 받아 올려라. 〔고역사가 밥을 받아 당명황께 드린다〕〔당명황이 이를 살펴보며〕내가 깊은 궁중에 있으면서 일찍이 이런 맛을 보지 못하였도다.
【전강】〔환두〕평상시에는, 어선방(御膳房)에 진상하는 음식이, 앞에 한 길[丈] 너비로 가득 차려져, 산해진미와 온갖 맛있는 것들이었건만, 항상 그 조미료가 알맞지 않다며 싫어하였지. 〔눈물을 닦으며〕뜻밖에도 오늘날, 이런 것으로 배를 채우게 될 줄이야. 처량하구나, 겨 섞인 보리와 알갱이가 섞여, 이 밥을 어찌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으랴? 〔조금 먹고는 내려놓으며〕호타하(滹沱河) 가에서 궁지에 몰렸던 소왕(蕭王) 유수(劉秀)가 바로 그때와 같구나!
〔곽종근〕폐하, 오늘의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은 것인지 아시나이까? 〔당명황〕네 말로는 누구 때문이란 말이냐? 〔곽종근〕폐하께서 만약 소신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면,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겠나이다. 〔당명황〕말해 보아라, 꺼릴 것이 없느니라. 〔곽종근〕모두 저 양국충(楊國忠) 때문이옵니다.
【전강】〔환두〕방자하고 제멋대로 굴며, 외척(外戚)임을 믿고, 뇌물을 받고 권세를 모아, 천하에 독을 퍼뜨렸나이다. 그와 안록산(安祿山)은, 십 년 동안 원한을 맺어, 하루아침에 난리가 어양(漁陽)에서 일어났나이다. 〔당명황〕양국충이 단서를 열고, 안록산이 모반한 것을, 내가 어찌 알았으랴. 〔곽종근〕저 안록산은, 흉악한 마음을 품은 지 오래되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반역의 조짐을 알았나이다. 지난해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안록산의 반역 행위를 고발하였건만, 폐하께서는 도리어 그 사람을 죽이셨나이다. 누가 감히 죽음을 각오하고서, 즐거이 임금께 아뢰겠나이까.
〔당명황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며〕이것이 내가 어둡고 분별하지 못한 탓이니,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전강】〔환두〕자세히 생각해 보니, 귀 밝고 눈 밝아 사리에 통달함은, 본래 군주가 마땅히 밝게 살펴 구해야 할 바이로다. 내가 기억하건대 요숭(姚崇)과 송경(宋璟)이 재상으로 있을 때, 여러 번 직언을 드려, 만 리 밖의 민정이, 마치 같은 조정에 있는 것 같았느니라. 요숭과 송경이 죽은 후, 조정의 대신들이 한결같이 녹봉과 지위를 탐하며 임금의 비위만 맞추었으니, 곽종근아, 도리어 너와 같은 사람이, 시골에서 충성을 품고, 반역할 번장(藩將)과 간사한 재상을 직접 가리켜 지적하는 것만 못하구나. 〔곽종근〕폐하께서 이곳에 행차하지 않으셨다면, 소신이 어찌 능히 천안(天顔)을 뵈올 수 있었겠나이까. 〔당명황이 눈물을 흘리며〕헛되이 나로 하여금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게 하여, 뉘우침이 굶주린 창자에 가득하도다.
〔곽종근〕폐하께서는 잠시 용체(龍體)를 쉬시옵소서. 소신은 물러가겠나이다. 〔탄식하며〕흰 머리털 천 가닥이 눈과 같아도, 한 치의 붉은 마음이 재가 되게 하기는 어려울지라. 〔퇴장〕〔부정(副淨) 역의 사신이 두 잡역이 비단을 메고 등장〕
【태평령】산길은 험준하여 새와 양이 다니는 길 같고, 봄 비단[春綵]을 실은 역로(驛路)는 기나길어라. 이어진 산골짜기 방울 소리 자주 울리니, 해가 서울 쪽으로 가까워짐을 바라보노라.
나는 성도도(成都道)의 사신이옵니다. 절도사의 명을 받들어, 십만 필의 봄 비단을 서울로 압송해 가는 길이옵니다. 듣자하니 폐하께서 무풍에 행차하셨다 하오니, 여기에서 바치는 것이 좋겠나이다. 〔고역사에게〕상감께 아뢰어 주시옵소서. 성도 사신이 봄 비단을 진상하러 이곳에 이르렀다고 여쭈어 주시옵소서. 〔고역사가 들어가 아뢴다〕〔당명황〕봄 비단은 수량대로 받아들이고, 사신은 돌려보내라. 〔두 잡역이 비단을 끌고 들어간다〕〔부정과 두 잡역 퇴장〕〔당명황〕고역사야, 장수와 군사를 모을 수 있느냐. 내가 직접 할 말이 있노라. 〔고역사〕만세께서 용무군(龍武軍) 장수를 불러 조서(詔書)를 듣도록 명하셨습니다. 〔여러 장수 등장〕"이른 아침 일어나 금고(金鼓)를 듣고, 밤에는 안장을 베고 잠을 잔다." 용무군 장수 폐하께 삼가 뵈옵나이다. 〔당명황〕장수들아, 내 말을 들어라. 【전강】변고가 매우 갑작스럽게 일어나, 멀리 난리를 피해 타향에 이르렀도다. 너희들이 갑자기 따라와 호위하느라 수고하였으니, 오늘은, 다시 좋은 의논이 있노라.
〔여러 장수〕모르겠사오니, 폐하께서 무슨 유지(諭旨)를 내리시려 하시나이까? 〔당명황〕【황룡곤】출정한 사람은 고향을 생각하고, 출정한 사람은 고향을 생각하나니, 촉 땅의 길은 하늘에 닿은 듯 어렵도다. 내가 차마 너희들을 수고롭게 하여, 처자와 부모를 가볍게 버리게 할 수 없도다. 나는 홀로 자손과 궁중 태감(太監)과 함께, 천천히 촉 땅으로 가려 하노라. 너희들은 오늘, 각자 집으로 돌아가거라. 험한 길을 오가며 수고하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일을 면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역사야, 사신이 바친 봄 비단을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어, 노자(路費)로 삼게 하라. 군자금이 없으니, 이 비단을 나누어 주어, 우선 군량을 대신하도록 하라.
〔고역사가 응낙하고 봄 비단을 나누어 준다〕〔여러 장수들이 울며〕만세께서 성유(聖諭)를 이렇게까지 하시니, 우리들은 마치 칼로 도려내는 듯하옵니다. 예로부터 군사는 천 일을 길러서 한 때에 쓴다고 하였사옵니다. 우리들은,
【전강】능히 호랑이와 같은 반적(叛賊)을 소탕하지도 못하고, 능히 호랑이와 같은 반적을 소탕하지도 못하여, 부질없이 곰과 같은 맹장(猛將)임을 부끄러워하나이다. 죽고 사는 것을 모두 폐하를 따라 가기를 원하오며, 군대의 기세는 오직 하늘의 위엄이 웅장함에 힘입사옵니다. 이 봄 비단은, 저희들이 결코 감히 받지 못하겠나이다. 청컨대 먼저 두셨다가 후일에 공을 논하여 상을 내리시옵소서. 만약 이 마음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하늘이 굽어살피사 결코 좋은 죽음을 맞지 못할 것이옵니다.
〔당명황〕너희들의 충의(忠義)는 비록 깊으나, 내 마음이 실로 차마하지 못하겠노라. 돌아가거라. 〔여러 장수〕아, 만세께서, 어쩌면 귀비 낭자의 죽음 때문에 조금 의심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당명황〕아니다.
【미성】저 장안의 부로(父老)들은 대부분 기다리고 있으리니, 너희들이 돌아가거든, 부디 그들에게 내가 무사하다고 전하여 다오. 〔여러 장수〕만세께서 그런 말씀을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기꺼이 호가(扈駕)하기를 원하나이다. 두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을 맹세하나이다. 〔합창〕다만 난리의 요망한 기운을 쓸어버리기만 기다려, 함께 서울로 돌아가리이다.
〔당명황〕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오늘 밤은 우선 여기서 임시로 주둔하라. 내일 아침 일찍 길을 떠나면 되리라. 〔여러 장수〕성지를 받들겠나이다.
〔당명황〕만 리에 모래 날리며 북소리 목멘 듯하니, 〈(전기(錢起))〉
〔고역사〕지는 해는 깊숙이 산을 향해 내려가네. 〈(낙빈왕(駱賓王))〉
〔당명황〕이제 뉘우친들 장차 무슨 이익이 있으랴, 〈(위장(韋庄))〉
〔고역사〕차마 수레바퀴 홀로 서쪽으로 향하게 하리? 〈(주담(周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