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출 사제(私祭)
제39출 사제(私祭)
【남려인자·소녀관자】〔늙은 단역과 젊은 역, 도복을 입고 함께 올라온다〕〔늙은 단역〕예전에는 높은 쪽머리 버리고 궁중 양식 버렸네,〔젊은 역〕옛 도관에 의지해 함께 향을 피우네.〔합창〕밤비에 꽃잎 지는 탄식하며, 마음 씻어 경전을 자세히 살피네.
〔늙은 단역〕고요한 도관에 대문 닫고,〔젊은 역〕샘물이 옥돌 씻으며 맑게 흐르네.〔늙은 단역〕춤옷은 모두 시주하고 향기만 남았네,〔젊은 역〕날마다 꽃 앞에서 경문 배우네.〔늙은 단역〕나는 천보 연간의 옛 궁녀 영신이오. 염노 아가씨와 함께, 궁중을 탈출하여 도망쳤소. 마침내 금릉에 이르러, 여정관(女貞觀)에서 여도사가 되었소. 기쁘게도 이곳은 매우 그윽하고 고요하여, 충분히 수행할 수 있소. 이곳 관주(觀主)께서, 어제 서경에서 도교 경전을 구입해 오셨소. 오늘은 날씨가 맑고 온화하니, 우리 두 사람에게 경전 상자를 검사하고 말리라고 하셨소. 자세히 넘겨보며 살펴보세.〔무대 위에 먼저 경전 책상을 놓고, 늙은 단역과 젊은 역이 함께 넘겨보는 동작을 한다〕
【쌍조과곡·효남지】【효순가】금 상자 열고, 옥안(玉案) 펼치니, 바람 맞으며 봄날 길게 살피네. 먼지 그림자 맑은 빛에 비치고, 신령한 꽃 하늘 가득 내리네.〔늙은 단역〕생각건대 옛날 궁중에서, 낭랑(娘娘)께서 흰 앵무새에게 마음경(心經)을 외우게 가르치신 것을 들었소. 일찍이 도를 배웠더라면, 마외파(馬嵬坡)의 재앙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을.〔젊은 역〕그런 번화한 때에, 누가 이런 생각을 했겠소.〔늙은 단역〕어제 관주께서 말씀하시길, 마외파의 주막에서 낭랑의 비단 버선 한 짝을 주웠는데, 놀러 온 사람들이 돈을 내고 보기를 구한다 하니, 하물며 생전이야!〔합창〕눈의(雪衣娘)의 가르침과 인도가 헛되었네. 색(色)은 공(空)이 아니니, 누가 불법의 진상을 보리오.【쇄남지】겨우 버선의 향기만 남아, 오히려 나그네의 생각을 불러일으키네.〔잡역이 도복 입고 차를 받들고 올라온다〕도경(道經)은 햇볕에 말리고, 좋은 차는 우전(雨前)에 달이네. 두 선고(仙姑)님, 경전 검사에 피곤하실 터이니, 관주께서 제게 차를 보내라 하셨습니다.〔늙은 단역, 젊은 역〕수고하셨소.〔차를 마시는 동작을 한다〕〔잡역〕아이고, 검은 구름 한 떼가 떠오르니, 비가 오려 합니다.〔늙은 단역, 젊은 역〕어서 경전 상자를收拾하세.〔收拾하는 동작을 한다〕〔잡역〕그대 보소, 꾀꼬리 어지럽게 날고, 푸른 풀 향기롭게 무성하니, 마침 청명절에 빗물 흩날리는 때에 맞았소.
〔내려간다〕〔무대 위에서 경전 책상을 치운다〕〔늙은 단역〕작은 도고(道姑)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오늘이 청명 명절인 줄 잊을 뻔했소. 이때쯤이면 집집마다 성묘 가고, 호호마다 종이돈을 태우겠지. 아가씨, 나와 그대는 함께 낭랑의 은혜를 입었으면서, 갚을 길이 없소. 한 묶음의 종이돈과 한 잔의 맑은 차를 가지고, 멀리 장안을 바라보며 곡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젊은 역〕언니, 그것이 마땅하오. 제가 위패를 써서 모실게요.〔위패를 쓰고 모시는 동작을 한다〕〔함께 무릎 꿇고 절하며 운다〕낭랑이여,
【전강】생각건대 그 은혜 다함이 없고, 원한 어찌 잊으리, 풍류가 한때 끝나고 말았네. 어찌 서시가 오나라를 망하게 했으며, 포사가 주나라를 망쳤다고 그릇 원망하리오.〔젊은 역〕아, 뜰 아래 모란이, 비 속에 한 송이 피었소. 이 꽃은 낭랑께서 가장 사랑하신 것이니, 꺾어서 위패 앞에 바치는 것이 좋겠소.〔합창〕명화는 손상되지 않았건만, 경국가색(傾國佳色)은 먼저 황토에 돌아갔네. 비록 보리밥과 아름다운 술이 있더라도, 외로운 무덤에 부어지지 못하네.〔울부짖으며〕나의 낭랑이여, 눈이 멀도록 바라보고,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어도, 눈물은 샘솟듯 흐르고, 곡성은 방자하게 터지네!〔어둠 속에서 내려간다〕
【쇄남지】〔말역이 길을 가며〕강남 길에, 우연히 봄을 밟으니, 꽃 사이 지난 비가 나그네 옷을 적시네. 늙은이 이구년이, 요행히 이막(李謩) 관인을 만나, 집에 머물게 되었네. 오늘은 청명 명절이라, 문을 나서 한가로이 거닐다가, 마침 비를 만났네. 번민스럽게도 고국은 구름과 안개에 아득하고, 흰머리 숙여 바라보기 어렵네. 기쁘게도 한 도원(道院)이 여기 있으니,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 것이 좋겠소.〔들어가는 동작을 한다〕소나무 그림자 한가롭고, 학 울음소리 길게 이어지니, 잠시 석단(石壇) 위를 거닐며 머무네.
보니 자리마다 많은 신선이 배열되어 있어, 장엄하기 그지없소.〔위패를 보고 읽는다〕황당(皇唐) 귀비 양낭랑(楊娘娘) 영위(靈位).〔울며〕아이고, 양낭랑, 이곳에서 오히려 제사를 받드는 이가 있을 줄이야!〔절한다〕
【전강】【환두】일단 몸이 죽으니, 천추에 원한 길이 안네.〔늙은 단역, 젊은 역이 한쪽에서 걸어 나오며〕누가 우는가?〔보고 놀라며〕이 사람이 이 사부(李師父)의 모습 같은데, 어찌 여기까지 왔을까?〔말역〕육군(六軍)이 횡포하여, 산 사람을 핍박해 군비(君妃)를 갈라놓고, 기이한 변고가 천지를 놀라게 하였소. 가련한 소인 이구년은,〔늙은 단역, 젊은 역〕과연 이 사부시로구나,〔말역〕명절을 만나도 한 잔 술을 올리지 못하고, 뜻밖에 선궁(仙宮)을 지나쳐, 영령께 제사드리게 되었소.
〔늙은 단역, 젊은 역이 나와서 서로 만난다〕이 사부, 제자들이 합장(稽首)하옵니다.〔말역〕고고(姑姑)들은 누구시오?〔놀라서 알아보며〕아, 아마도 영신(永新)과 염노(念奴) 두 부인이 아니시오?〔늙은 단역, 젊은 역〕바로 그렇소.〔각자 눈물을 흘린다〕〔말역〕두 분은 언제 이곳에 오셨소?〔늙은 단역, 젊은 역〕사부께서 앉으소서. 우리는 작년에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에 출가하였소. 사부께서는 무슨 연고로 이곳에 오셨소?〔말역〕나도 난을 피해 강남으로 흘러들었소. 아까 취봉사(鷲峰寺)에서 이막 관인을 만나, 그의 후대를 받아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뜻밖에 두 분을 다시 만나게 되었소.〔늙은 단역, 젊은 역〕그 이막 관인이 누구시오?〔말역〕말하자면 또한 기이하오. 그날 나와 너희들은, 조원각(朝元閣)에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연습하고 있었소. 그런데 그 이 관인이, 궁성 담장 밖에서 엿듣고, 쇠피리로 새 곡조 몇 단락을 몰래 기억해 내었소. 지금은 나에게 전체 악보를 전수해 달라고 하여, 나를 머물게 한 것이오.〔늙은 단역, 젊은 역이 슬퍼하며〕아, 《예상》 한 곡은 오히려 전해지게 되었으나, 악보를 만든 이는 이미 땅속에 돌아가시고, 우리 연주하던 이들마저 타향을 떠돌게 되었구나. 참으로 슬프도다.〔각자 슬퍼한다〕〔늙은 단역, 젊은 역〕
【공옥지】【오공양】말하자면 마음 아프고 상심되네, 기억하건대 화청궁에서 모시며, 함께 《예상》을 연주했네. 옥손(玉手)으로 비밀 악보를 베끼고, 단 입으로 새 가락을 가르쳤네.【옥교지】그분은 오늘 푸른 무덤 위에 새 풀이 자라고, 나는 나부껴 길가의 버들꽃처럼 떠도네.【오공양】〔합창〕갑자기 만난 곳에 각자 옷깃 적시며,【월해상당】백수(白首)와 홍안(紅顏)이, 함께 흥망을 이야기하네.
〔말역〕기쁘게도 날씨가 개었소, 나는 이만 가겠소.〔늙은 단역, 젊은 역〕잠시 쉬어 가소서. 청컨대 사부께서 여쭙겠소, 이원(梨園)의 옛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소?〔말역〕하로(賀老)는 나와 함께 길을 가다가, 도중에 병들어 죽었소; 황번탁(黃旛綽)은 수레를 따라갔소; 마선기(馬仙期)는 성중에 갇혀, 행방을 알 수 없소; 오직 뇌해청(雷海青)만이 적을 꾸짖고 죽었소.
【전강】추모하건대 태상황(太上皇)께서, 은택이 이원에 두루 미치셨으니, 누가 갚을 수 있으리오〔울며〕저 뇌로(雷老)여, 그의 충혼(忠魂)이 밝은 해를 비추니, 석양에 우는 이 유로(遺老)를 부끄럽게 하네.〔늙은 단역, 젊은 역〕사부께서는, 진국(秦國)과 괵국(虢國) 두 부인이 모두 난병(亂兵)에게 죽임을 당하신 것을 아시나이까?〔말역〕주문(朱門)의 미인들도 모두 가련하니, 장안의 곡수(曲水)는 누가 와서 놀리오.〔합창〕갑자기 만난 곳에 각자 옷깃 적시며, 백수와 홍안이, 함께 흥망을 이야기하네.〔늙은 단역, 젊은 역〕만세야(萬歲爺)께서는, 어느 날에 환궁하실지 모르겠소?〔말역〕이 관인은 아까 서경(西京)에 있었는데, 요사이 곽원수(郭元帥)께서 장안을 수복하여, 병란이 그치게 되었기에, 비로소 돌아올 수 있었소. 생각컨대 태상황께서도 머지않아 환궁하실 것이오.〔늙은 단역, 젊은 역〕그렇다면,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옵니다.〔말역〕날이 저물고 길이 멀기에, 이만 가겠소.〔늙은 단역, 젊은 역〕낭랑께 종이돈을 태우고, 소채 반찬으로 잠시 이야기나누소서.
〔말역〕지금에 와서는 오직 한 몸만 남았네.〈(한유(韓愈))〉 〔늙은 단역, 젊은 역〕새로 갈아입은 예상(霓裳) 달빛 치마.〈(왕건(王建))〉
〔말역〕인생 몇 번이나 지난 일을 슬퍼하리오.〈(유우석(劉禹錫))〉 〔늙은 단역, 젊은 역〕꽃 지는 때에 또 그대를 만났네.〈(두보(杜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