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공 6년
文公 6년
봄, 허희공을 안장하였다.
여름, 계손행보가 진나라로 갔다. 가을, 계손행보가 진나라로 갔다.
8월 을해일, 진후 환(驩)이 세상을 떠났다.
겨울, 10월, 공자수가 진나라로 가서 진양공을 안장하였다. 진나라가 자기 대부 양처보를 죽였다.
진나라의 호야호가 적인에게 도망쳤다.
윤달에 고석 의식을 거행하지 않았으나, 태묘에는 여전히 조하하러 갔다.
6년 봄, 진나라가 이 땅에서 열병을 하고 두 개의 군 편제를 폐지하며 호야호에게 중군을 지휘하게 하고 조순을 부장으로 삼았다. 양처보가 온 땅에서 돌아와 동 땅에서 다시 열병을 열고 중군 주장을 바꾸었다. 양처보는 성계의 부하였으므로 조씨를 편애하였고, 또한 조순이 유능하다고 여겨 말하기를 “유능한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 나라의 이익이다.”라고 하여 조순으로 하여금 윗자리에 있게 하였다. 조선자는 이때부터 국정을 주관하기 시작하여, 사무 규정을 제정하고, 법률 조항을 수정하고, 소송 사건을 정리하고, 도망자를 추적 감독하고, 계약 장부를 활용하고, 정치의 혼탁을 정돈하고, 등급 예의를 회복하고, 상설 관직을 수리하고, 묻혀 있는 현인들을 발탁하였다. 이러한 규정들이 완성된 후, 태부 양처보와 태사 가타에게 넘겨 진나라에서 시행하게 하여 고정된 법률로 삼았다.
장문중이 진나라와 위나라가 화목한 관계인 까닭에 진나라와 우호를 맺고자 하였다. 여름, 계문자가 진나라에 빙문하고 진나라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진백 임호가 세상을 떠나자, 자차씨의 세 아들 엄식, 중행, 침호를 순장하였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진나라의 우수한 인재였다. 도성 사람들이 그들을 슬퍼하며 《황조》 시를 지었다. 군자가 말하기를 “진목공이 맹주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가 죽으면서 백성을 버렸기 때문이다. 선왕이 세상을 떠날 때조차 법도를 남겼거늘, 하물며 백성의 좋은 사람들을 빼앗는 것이랴? 《시경》에 이르기를 ‘어진 사람이 죽으면 나라가 곤궁하고 피폐해진다.’ 하였으니, 이는 착한 사람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 어찌 그들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옛날 군왕은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았으므로, 성명하고 현철한 사람을 함께 세워 그들에게 풍모를 세워 주고, 수레와 의복, 깃발 등의 표지를 나누어 주고, 아름다운 말을 글로 만들어 주고, 그들을 위해 법도와 척도를 제정하고, 기준과 표준을 진열하며, 그들이 본보기를 따르도록 인도하고, 규칙과 제도를 주며, 선왕의 훈계와 전장을 가르쳐 주고, 이익을 탐내지 않도록 방지하며, 그들에게 고정된 관직을 맡기고, 예의로써 인도하여 그들이 지역의 적절한 조건을 잃지 않게 하였으며, 많은 백성들이 모두 그들에게 의지한 후에야 세상을 떠났다. 성왕은 모두 이렇게 하였다. 지금 비록 후세에 법도를 남기지 않았을지언정, 또 그들의 우수한 인재를 거두어 죽게 하니, 이로써 윗자리에 있기 어렵다.” 하였다. 군자는 이로써 진나라가 다시는 동쪽으로 정벌할 수 없음을 알았다.
가을, 계문자가 장차 진나라에 빙문하려 하여, 사람을 시켜 상례를 당했을 때 필요한 예절을 미리 갖추도록 청한 후 출발하였다. 그의 수하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것을 준비하여 무엇에 쓰겠습니까?” 하니, 문자가 말하기를 “뜻밖의 일을 미리 대비하는 것은 옛날의 좋은 가르침이다. 임시로 필요할 때 구할 수 없으면 곤경에 빠지게 되고, 많이 준비하는 것이 무슨 해가 되겠는가?” 하였다.
8월 을해일, 진양공이 세상을 떠났다. 진영공이 어렸으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나라에 재난이 많았던 까닭에 나이가 많은 군주를 세우고자 하였다. 조맹이 말하기를 “공자옹을 세우소서. 그는 착함을 좋아하고 나이가 많으며, 선군께서 사랑하셨고, 또한 진나라와 가까우니, 진나라는 오랜 우방입니다. 착한 사람을 세우면 안정되고, 나이가 많은 이를 섬기면 순리에 맞으며, 선군께서 사랑하신 이를 세우면 효도에 합당하고, 오랜 우방과 사귀면 안정됩니다. 나라에 화난이 있는 까닭에 나이가 많은 군주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면 화난이 반드시 완화될 것입니다.” 하였다. 가계가 말하기를 “공자락을 세우는 것만 못합니다. 신영이 두 군주에게 총애를 받았으니, 그 아들을 세우면 백성이 반드시 안정될 것입니다.” 하였다. 조맹이 말하기를 “신영은 지위가 천하고, 서열이 아홉 번째이니, 그 아들에게 무슨 위엄이 있겠습니까? 또 그가 두 군주에게 총애를 받았으니, 이는 음란함입니다. 선군의 아들로서 큰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작은 나라에 나가 사니, 이는 사특함입니다. 어머니가 음란하고 아들이 사특하면 위엄이 없고, 진나라는 약하고 멀어서 구원이 없습니다. 이러면 어찌 안정되겠습니까? 두희가 군주의 까닭으로 자리를 양보하여 필희로 하여금 위에 있게 하고, 적인의 까닭으로 계위에게 양보하여 자신은 그 뒤에 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서열이 네 번째가 되었습니다. 선군께서 이로 인해 그 아들을 사랑하시어 진나라에서 벼슬하게 하여 아경이 되게 하였습니다. 진나라는 강하고 가까워서 원조가 되기에 충분하고, 어머니는 의리가 있고 아들은 사랑을 받아 백성을 위협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를 세우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이에 선멸과 사회를 진나라에 보내 공자옹을 맞이하게 하였다. 가계 또한 사람을 진나라에 보내 공자락을 불러오게 하였다. 조맹이 사람을 보내 비 땅에서 공자락을 죽였다. 가계가 양처보가 자신의 서열을 바꾼 것을 원망하고, 그가 진나라에 지원이 없음을 알았다. 9월, 가계가 속국전을 시켜 양처보를 죽였다. 《춘추》에 “진나라가 자기 대부를 죽였다.”라고 기록한 것은, 양처보가 상급의 직권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겨울, 10월, 양중이 진나라에 가서 진양공을 안장하였다.
11월 병인일, 진나라가 속간백을 죽였다. 가계가 적인에게 도망쳤다. 선자가 여전을 보내 가계의 처자식을 적 땅으로 보냈다. 이 땅에서 열병할 때, 가계가 일찍이 여전을 모욕한 적이 있었다. 여전의 수하들이 가씨 일족을 모조리 죽여 복수하려 하였다. 여전이 말하기를 “안 된다. 내가 듣건대, 이전 시대의 지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남에 대한 은혜와 원한을 후손에게 끌어들이지 말라.’ 이것이 충성의 도리이다. 조선자가 가계에게 예를 갖추었는데, 내가 그의 총신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것은 옳지 않을 듯하다. 남의 총신을 이용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며, 원한을 없애면서도 오히려 원수를 더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며, 사사로운 일로 공무를 해치는 것은 충성이 아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리고 무엇으로 조선자를 섬기겠는가?” 하였다. 이에 가계 처자식의 재물과 그들의 기물과 재화를 모두 갖추어 주고, 친히 병사를 거느리고 호송하여 국경까지 이르렀다.
윤달에 고석 의식을 거행하지 않은 것은 예에 맞지 않는다. 윤달은 시령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고, 시령은 농사를 배치하기 위한 것이며, 농사는 백성으로 하여금 풍족하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백성을 기르는 도리가 여기에 있다. 윤달의 고석 의식을 거행하지 않음은 시령과 정사를 폐기함이니, 무엇으로 백성을 다스리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