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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

선공 4년

제 4 편

4년, 봄, 주 왕조 정월, 노 선공과 제 혜공이 나서서 거나라와 담나라의 관계를 조정하려 했으나, 거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다. 노 선공이 거나라를 공격하여 향 땅을 빼앗았다.

진백 도가 죽었다.

여름, 6월, 을유일, 정나라의 공자 귀생이 그의 임금 이(夷)를 시해했다.

적적이 제나라를 침입했다.

가을, 노 선공이 제나라로 갔다가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다.

겨울, 초자가 정나라를 공격했다.

4년, 봄, 노 선공과 제 혜공이 나서서 거나라와 담나라의 관계를 조정하려 했으나, 거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다. 노 선공이 거나라를 공격하여 향 땅을 빼앗았는데, 이는 예법에 맞지 않았다. 나라를 평정하는 데는 예법을 써야 하지, 어지러움을 써서는 안 된다. 공격하고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어지러움이다. 어지러움으로 어지러움을 평정한다면, 무슨 다스림이 있겠는가? 다스림이 없는데, 무엇으로 예법을 시행하겠는가?

초나라 사람이 정 영공에게 큰 자라 한 마리를 바쳤다. 공자 송과 자가가 장차 나아가 뵈려고 하였다. 자공의 집게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이므로, 그는 손가락을 자가에게 내밀며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이럴 때마다 반드시 진귀한 맛을 보았다.” 들어간 후에, 주방장이 자라를 나누려 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정 영공이 그들에게 왜 웃는지 물으니, 자가가 앞서 있었던 일을 영공에게 알렸다. 영공이 대부들에게 자라를 먹일 때, 자공을 불렀으나 자라를 주지 않았다. 자공이 노하여 손가락을 솥에 찍어 맛을 보고는 나가버렸다. 정 영공이 크게 노하여 자공을 죽이려 하였다. 자공이 자가와 함께 먼저 손을 쓸 것을 의논하였다. 자가가 말했다. “가축도 늙으면 죽이기를 꺼려하는데, 하물며 임금이겠는가?” 자공이 도리어 영공 앞에서 자가를 모함하였고, 자가가 두려워하여 자공의 말을 따랐다. 여름, 그들이 정 영공을 시해했다.

《춘추》에 “정공자 귀생이 그 임금 이(夷)를 시해하였다.”라고 기록한 것은, 귀생의 권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군자가 말하기를 “어진 이가 용맹하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 하였다. 무릇 임금을 시해한 경우, 오직 임금의 이름만 기록한 것은 임금이 도리가 없음을 나타내고, 신하의 이름을 기록한 것은 신하의 죄과를 나타낸 것이다.

정나라 사람들이 자량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였다. 자량이 사양하며 말했다. “어진 이로 말하면, 거질(去疾)이 자격이 부족하고, 차례로 말하면 공자 견이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마침내 양공을 세웠다. 양공이 목씨(穆氏) 일족을 쫓아내고 자량만 남겨두려 하였다. 자량이 동의하지 않으며 말했다. “목씨 일족이 남아 있어야 하니, 이것이 본래 나의 바람입니다. 만약 그들을 쫓아낸다면 나도 함께 가겠소, 거질이 어찌 홀로 남겠소?” 이에 양공이 그들을 남겨두고 모두 대부로 임명하였다.

당초 초나라의 사마 자량이 자월초를 낳았다. 자문이 말했다.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 이 아이는 곰과 호랑이의 형상에 승냥이와 이리의 울음소리를 가졌다.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약오씨를 멸망시킬 것이다. 속담에 ‘늑대 새끼는 마음이 들짐승 같다.’ 하였다. 이 늑대를 어찌 기를 수 있겠는가?” 자량이 따르지 않았다. 자문이 이 일을 큰 근심으로 여겼다. 그가 임종할 때, 일족을 모아 말했다. “만약 초(椒)가 정권을 잡거든, 너희들은 빨리 떠나 화를 당하지 마라.” 그리고 울며 말했다. “귀신도 제사를 구하나니, 약오씨의 귀신은 굶주리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윤 자문이 죽은 후, 두반이 영윤이 되고, 자월이 사마가 되었으며, 위가가 공정이 되었다. 위가가 자양(두반)을 모함하여 죽였다. 자월이 영윤이 되고, 위가 자신이 사마가 되었다. 자월이 다시 위가를 미워하여, 약오씨의 족속을 이끌고 백영(위가)을 요양에 가두고 죽였다. 이어 자월이 증야에 머물며 초왕을 공격하려 하였다. 초왕이 세 명의 문왕의 아들들을 인질로 보냈으나 자월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왕이 장시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가을, 7월, 무술일, 초왕과 약오씨가 고호에서 싸웠다. 백분(자월)이 초왕을 쏘았는데, 화살이 수레의 멍에를 지나, 북받침을 뚫고 구리에 맞았다. 또 한 발을 쏘았는데, 수레의 멍에를 지나, 수레 덮개를 꿰뚫었다. 군대가 두려워하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초왕이 사람을 시켜 군영을 돌며 말하게 했다. “우리 선군 문왕이 식나라를 정벌하여 세 개의 화살을 얻었다. 백분이 두 개를 훔쳤는데, 이제 다 쏘아버렸다.” 북을 치며 나아가 드디어 약오씨를 멸망시켰다.

당초 약오가 원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여 두백비를 낳았다. 약오가 죽자, 두백비는 어머니를 따라 원나라에 살면서 원나라 임금의 딸과 사통하여 자문을 낳았다. 원나라 부인이 사람을 시켜 자문을 운몽택에 버렸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원나라 임금이 사냥하다가 이를 보고 놀라 돌아왔다. 부인이 사실을 알리자, 원나라 임금이 사람을 시켜 자문을 거두어 기르게 했다. 초나라 사람들이 젖먹이는 것을 ‘곡(谷)’이라 하고, 호랑이를 ‘오도(於菟)’라 하여, 이 아이에게 이름을 두곡오도(斗谷於菟)라 지었다. 원나라 임금이 딸을 두백비에게 시집보냈으니, 이가 곧 훗날의 영윤 자문이다.

자문의 손자 잠윤 극황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다가 송나라에 이르러 반란 소식을 들었다. 그의 수행원이 말했다. “초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잠윤이 말했다. “임금의 명령을 저버리고, 누가 나를 받아들이겠는가? 임금은 곧 하늘이니, 하늘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이에 돌아가 복명하고, 스스로 사패에게 가서 감금을 청했다. 초왕이 자문이 초나라를 다스린 공을 생각하며 말했다. “자문에게 후손이 없다면,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권하겠는가?” 마침내 극황으로 하여금 본래의 관직을 회복하게 하고, 이름을 ‘생(生)’으로 고쳤다.

겨울, 초자가 정나라를 공격했는데, 정나라가 아직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