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 8년
8년 봄, 진 애공(陳哀公)의 동생 소(招)가 진나라의 태자 언사(偃師)를 시해하였다.
여름 4월 신축일, 진 애공이 목매어 죽었다.
숙궁(叔弓)이 진(晉)나라로 갔다.
초(楚)나라 사람들이 진나라의 사자 간정사(干征師)를 잡아 죽였다. 진나라의 공자 유(留)가 정(鄭)나라로 망명하였다.
가을, 홍(紅) 땅에서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진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대부 공자 과(過)를 죽였다.
크게 기우제를 지냈다.
겨울 10월 임오일, 초나라의 군대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의 공자 소를 잡아 월(越) 땅으로 유배 보냈으며, 진나라의 공자 환(奐)을 죽였다.
진 애공을 장사 지냈다.
8년 봄, 진(晉)나라의 위수(魏榆)에서 돌이 말을 했다. 진 평공(晉平公)이 사광(師曠)에게 물었다. "돌이 어찌하여 말을 하는가?" 사광이 대답했다. "돌은 본래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어떤 것이 그 위에 붙어서 그런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이 잘못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일을 때에 맞지 않게 하면 원망과 비방이 백성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그러면 말하지 못하는 것들도 말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 궁실이 높고 사치스러워 백성들의 재력이 다하였고, 원망과 비방이 함께 일어나 제 목숨을 온전히 보전할 사람이 없습니다. 돌이 말을 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때 진 평공이 사기궁(虒祁宮)을 짓고 있었다. 숙향(叔向)이 말했다. "자야(子野)의 말은 진실로 군자의 말입니다! 군자의 말은 성실하고 근거가 있으므로 원망이 그 몸에서 멀어집니다. 소인의 말은 허망하고 근거가 없으므로 원망과 재앙이 그 몸에 내립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슬프다, 말을 하지 못함이여, 혀가 내는 말이 아니라, 다만 자신을 수고롭게 할 뿐이다. 좋도다, 말을 잘함이여, 교묘한 말이 물 흐르듯 하여, 자신을 편안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두고 이른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 궁전이 완공되면, 제후들이 반드시 배반할 것이고, 임금께서 반드시 재앙이 있으실 것입니다. 자야가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 애공의 첫째 부인 정희(鄭姬)가 태자 언사를 낳았고, 둘째 부인이 공자 유를 낳았으며, 셋째 부인이 공자 승(勝)을 낳았다. 둘째 부인이 총애를 받았으므로 공자 유가 그 덕에 총애를 받아, 애공이 그를 사도 소와 공자 과에게 부탁하였다. 애공이 오래 낫지 않는 병을 앓았다. 3월 갑신일, 공자 소와 공자 과가 태자 언사를 죽이고 공자 유를 태자로 세웠다.
여름 4월 신해일, 애공이 목매어 죽었다. 간정사가 초나라에 가서 부고를 알리고, 아울러 진나라가 이미 임금을 세웠음을 보고하였다. 공자 승이 초나라에 고발하자, 초나라 사람들이 간정사를 잡아 죽였다. 공자 유는 정나라로 망명하였다. 《춘추》에 '진후의 제 소가 진 세자 언사를 죽였다'고 기록한 것은 죄가 공자 소에게 있음을 나타낸 것이고, '초인이 진 행인 간정사를 잡아 죽였다'고 기록한 것은 죄가 사자에게 있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숙궁이 진나라로 가서 사기궁의 완공을 축하하였다. 유길(游吉)이 정 정공(鄭定公)을 보좌하여 진나라로 갔는데, 또한 사기궁의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사조(史趙)가 자태숙(子大叔)을 보고 말했다. "심하구나, 그들이 서로 속이는 것이여! 본래 조문(弔問)해야 할 일을 축하하고 있소이다." 자태숙이 말했다. "어찌 조문하겠습니까? 우리만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 사람들이 모두 와서 축하할 것입니다."
가을, 홍 땅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근모(根牟)에서부터 상(商)과 위(衛)에 이르기까지 병거(兵車)가 천 대였다.
7월 갑술일, 제(齊)나라의 자미(子尾)가 죽었다. 자기(子旗)가 그의 집안을 다스리려 하여, 정축일, 양영(梁嬰)을 죽였다. 8월 경술일, 자성(子成), 자공(子工), 자거(子車)를 쫓아냈는데, 이 세 사람 모두 망명하여 노(魯)나라로 왔다. 자기(子旗)가 자량씨(子良氏)의 가재(家宰)를 세웠다. 자량의 가신이 말했다. "아이가 이미 장성하였는데, 우리 집안을 다스리려 하니, 이는 우리를 병합하려는 것이다." 이에 무기를 준비하여 자기를 치려고 하였다. 진 환자(陳桓子)가 자미와 사이가 좋아서, 또한 무기를 준비하여 그를 도우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알렸지만, 자기는 믿지 않았다. 또 여러 사람이 와서 곧 행동할 것이라고 보고하였고, 또 길에서 여러 사람이 보고하였다. 자기(子旗)가 이에 진씨(陳氏)의 집으로 갔다. 진 환자가 막 나가려다가 자기가 왔다는 말을 듣고 돌아와서, 평상복을 입고 그를 맞이하였다. 자기(子旗)가 그에게 물으니, 진 환자가 대답했다. "듣건대 강씨(强氏, 자량씨)가 무기를 준비하여 장군을 치려 한다고 하셨는데, 장군께서 들으셨습니까?" 자기가 말했다. "듣지 못했습니다." 진 환자가 말했다. "장군께서 어찌하여 또한 무기를 준비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청컨대 따르겠습니다." 자기가 말했다. "어찌 그리하십니까? 그는 다만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내가 그를 가르쳐도 오히려 그가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하는데, 내가 다시 그를 사랑하고 벼슬을 주었으니, 이는 선조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당신께서는 어찌 그를 권하지 않으십니까? 《주서》에 이르기를 '은혜를 모르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힘쓰지 않는 자를 권면하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강숙(康叔)이 너그럽고 컸던 까닭입니다." 진 환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경공(頃公)과 영공(靈公)께서 장군을 도우시니, 저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이에 두 사람이 처음과 같이 화목하게 되었다.
진나라의 공자 소가 죄를 공자 과에게 돌리고 그를 죽였다. 9월, 초나라의 공자 기질(棄疾)이 군대를 거느리고 손오(孫吳)를 호위하며 진나라를 포위하였다. 송(宋)나라의 대악(戴惡)이 그와 합세하였다. 겨울 11월 임오일,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진나라의 총신 원극(袁克)이 말을 죽이고 옥기를 부숴 진 애공을 장사 지냈다. 초나라 사람들이 원극을 죽이려 하자, 그는 먼저 거기에 두기를 청하였다. 잠시 후 다시 사사로이 이야기하기를 청하였다. 장막 안에서 사사로이 이야기할 때, 상복의 띠를 이마에 두르고 도망쳤다. 초나라 사람들이 천봉술(穿封戌)을 진 땅의 지방관으로 임명하며 말했다. "성麇(성군) 전투에서 너는 아첨하지 않았다. 초 영왕(楚靈王)과 술을 마실 때, 영왕이 말하기를 '성麇 전투에서 너는 과인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를 줄 알았느냐? 너는 그때 과인을 피하였느냐?' 하였다." 천봉술이 대답했다. "만약 왕께서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를 줄 알았다면, 신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초나라를 안정시켰을 것입니다."
진 평공이 사조(史趙)에게 물었다. "진나라가 대체로 이제 망하는 것입니까?" 사조가 대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진 평공이 말했다. "무슨 까닭인가?" 사조가 대답했다. "진나라는 전욱(顓頊)의 후손입니다. 세성(歲星)이 순화(鶉火)에 있을 때 전욱씨가 마침내 망하였으니, 진나라도 또한 그와 같을 것입니다. 지금 세성(歲星)이 석목(析木)의 은하(銀河)에 있으니, 진나라는 장차 다시 흥할 것입니다. 또 진씨(陳氏)가 제(齊)나라에서 정권을 잡은 후에야 진나라가 비로소 망할 것입니다. 막(幕)으로부터 고수(瞽瞍)에 이르기까지 천명을 어긴 자가 없었고, 순(舜)이 또 찬란한 덕을 더하였으며, 그 덕이 수(遂)에게까지 이르렀는데, 수는 대대로 그것을 지켰습니다. 호공(胡公)에 이르러서는 음란함이 없었으므로, 주(周)나라가 그에게 성(姓)을 주어 우제(虞帝)를 제사 지내게 하였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성대한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백대의 제사를 누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虞)의 세대가 아직 백대에 이르지 않았으니, 계속 지키는 자가 제나라에 있을 것이니, 이 징조가 이미 존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