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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공

환공 10년

제 10 편

十年 봄, 주력 정월 경진일에 조후(曹伯) 종신(終生)이 세상을 떠났다.

여름, 오월에 조환공(曹桓公)을 장사지냈다.

가을, 환공(桓公)이 도구(桃丘)에서 위후(衛侯)를 만나려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겨울, 십이월 병오일에 제후(齊侯)·위후(衛侯)·정백(鄭伯)이 낭(郎) 땅으로 와서 싸움을 벌였다.

十年 봄, 조환공이 세상을 떠났다.

괵중(虢仲)이 주천자(周天子) 앞에서 본국 대부(大夫) 첨보(詹父)를 무고했으나, 첨보가 이치가 있었으므로 주천자의 군대를 이끌고 괵(虢)나라를 공격했다.

여름, 괵공(虢公)이 우(虞)나라로 도망쳤다.

가을, 진(秦)나라 사람들이 예백만(芮伯萬)을 호송하여 예(芮)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당초, 우숙(虞叔)이 옥구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공(虞公)이 그것을 요구했다. 우숙이 바치지 않다가 얼마 후 뉘우쳐 말하기를, "주(周)나라에 속담이 있기를, '평민과 백성은 죄가 없으나, 옥구슬을 품고 있으면 죄가 된다.'고 하였다. 내가 어찌 이 옥구슬을 쓰겠는가? 이 때문에 재앙을 초래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옥구슬을 바쳤다. 우공이 또 우숙의 보검을 요구하자, 우숙이 말하기를, "이것은 탐욕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탐욕이 끝이 없으면 재앙이 내게 이르게 될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우공을 공격했다. 그리하여 우공이 공지(共池)로 도망쳤다.

겨울, 제(齊)나라·위(衛)나라·정(鄭)나라가 낭 땅으로 와서 싸움을 벌였는데, 우리 편에 이치가 있었다. 당초, 북융(北戎)이 제나라를 침범하자 제후들이 군대를 보내 구원했고, 정나라의 공자 홀(忽)이 전공을 세웠다. 제나라 사람들이 제후들에게 예물을 보내면서 노(魯)나라가 서열을 정하게 했다. 노나라는 주나라의 작위 서열에 따라 정나라를 뒤에 두었고, 정나라 사람들이 노하여 제나라에 군대를 요청했으며, 제나라 사람들이 위나라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를 도왔다. 그러므로 《춘추》에서 '침(侵)'이나 '벌(伐)'이라 하지 않고, 먼저 제나라를 기록한 것은 위나라의 작위가 왕작(王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