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 3년
3년 봄, 주력 정월에 노나라 정공이 진나라로 가다가 황하 가에 이르러 돌아왔다.
2월 신묘일(辛卯日)에 주나라 장공(邾莊公)이 죽었다.
여름, 4월이었다.
가을, 주나라 장공을 장사지냈다.
겨울, 중손하기(仲孫何忌)가 주자(邾子)와 발(拔) 땅에서 회맹을 열었다.
[3년 봄, 2월 신묘일, 주나라 장공이 문 위에 서서 뜰을 내려다보았는데, 문지기가 병으로 물을 떠서 뜰에 뿌리고 있었다. 주나라 장공이 이를 보고 크게 노하였다. 문지기가 말하기를 "이사고(夷射姑)가 여기서 소변을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주나라 장공이 이사고를 잡으라고 명령하였으나 잡지 못하자 더욱 노하여, 스스로 침상에서 뛰어내리다가 화로 숯불에 넘어져 살갗이 문드러져 죽었다. 먼저 다섯 수레를 따라 장사지내고 또 다섯 사람을 순장하였다. 주나라 장공은 성격이 급하고 청결을 좋아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을, 9월에 선우(鮮虞) 사람들이 평중(平中)에서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진나라의 관호(觀虎)를 사로잡았으니, 이는 관호가 자신의 용맹을 믿었기 때문이다.]
[겨울, 담(郯) 땅에서 회맹을 열었으니, 주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다시 닦기 위해서였다.]
[채나라 소후(蔡昭侯)가 두 개의 패옥과 두 벌의 가죽옷을 만들어 초나라로 가서, 초나라 소왕(楚昭王)에게 패옥 하나와 가죽옷 한 벌을 바쳤다. 초나라 소왕이 그것을 입고 채나라 소후를 위해 향례(享禮)를 베풀었는데, 채나라 소후도 다른 한 벌을 갖추어 입었다. 자상(子常)이 이 두 가지 물건을 탐내어 달라고 하였으나 채나라 소후가 주지 않자, 자상이 그를 3년 동안 억류하였다. 당나라 성공(唐成公)이 초나라로 가서 숙상마(肅爽馬) 두 필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상이 그것을 탐내어 달라고 하였으나 당나라 성공이 주지 않자, 자상 또한 그를 3년 동안 억류하였다. 당나라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여 당나라 성공을 따르던 사람들을 대신하겠다고 청하니, 당나라 성공이 이를 허락하였다. 그들이 먼저 따르던 사람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말을 훔쳐 자상에게 바쳤다. 자상이 당나라 성공을 돌려보냈다. 말을 훔친 사람이 스스로 사법관에게 가서 구금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임금께서 장난감 말 때문에 몸이 갇히고 나라를 버리게 되었습니다. 신하들이 청컨대 말을 기르는 사람을 도와 말을 배상하겠사오니,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성공이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니, 그대들은 스스로를 욕되게 하지 말라." 하고는 모두에게 상을 내렸다. 채나라 사람들이 이 일을 듣고 굳게 채나라 소후에게 청하여 패옥을 자상에게 바쳤다. 자상이 조정에 나아가 채나라 소후의 수행원들을 보고, 담당 관리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채후가 오래 머무른 것은 너희들이 예물을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일 예물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너희들을 처형하리라." 하였다. 채나라 소후가 돌아와 한수(漢水)에 이르러 옥벽을 들어 강물에 던지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다시 이 한수를 건너 남쪽으로 간다면, 이 큰 강이 증인이 되리라!" 하였다. 채나라 소후가 진나라로 가서, 자신의 아들 원(元)과 대부의 아들들을 인질로 삼아 초나라를 치기를 청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