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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

정공 8년

제 8 편

8년, 봄, 주력 정월, 노 정공이 제나라를 공격하고, 노 정공이 제나라를 공격한 곳에서 돌아왔다.

2월, 노 정공이 제나라를 공격하고, 3월, 노 정공이 제나라를 공격한 곳에서 돌아왔다.

조백 로가 죽었다.

여름, 제나라의 국하가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나라 서부 국경을 공격했다.

노 정공이 와(瓦) 땅에서 진나라 군대와 회합하고, 노 정공이 와 땅에서 돌아왔다.

가을, 7월, 무진일, 진후 유(柳)가 죽었다.

진나라의 사앙이 군대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침략하고, 이어서 위나라를 침략했다.

조정공을 장사지냈다.

9월, 진회공을 장사지냈다.

계손사, 중손하기가 군대를 거느리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겨울, 위후와 정백이 곡복(曲濮)에서 맹약을 맺었다.

제사를 지내고, 순서대로 선공에게 제사 지냈다.

도둑이 보옥과 큰 활을 훔쳐갔다.

8년, 봄, 주력 정월, 노 정공이 제나라를 공격하여 양주(陽州) 성문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병사들이 모두 앉아서 늘어서며 말했다. “안고(顏高)의 활은 여섯 균(鈞) 무게다.” 모두가 가져다가 돌려보았다. 양주 사람들이 나오자, 안고가 남의 무른 활을 빼앗았고, 적구자추(籍丘子鉏)가 그를 공격했다. 안고가 한 사람과 함께 쓰러졌다. 안고는 땅에 엎드린 채로 자추를 쏘아 그의 뺨을 맞추었고, 자추는 죽었다. 안식(顏息)이 한 사람의 눈썹을 맞추고 물러나서 말했다. “내게 용기가 없어, 본래 그의 눈을 겨냥했었다.” 군대가 퇴각할 때, 염맹(冉猛)이 발을 다친 척하며 앞서 갔고, 그의 형 염회(冉會)가 이에 외쳤다. “맹아, 너는 후미를 맡아라!”

3월, 기축일, 단자(單子)가 곡성(穀城)을 공격하고, 유자(劉子)가 의율(儀栗)을 공격했다. 신묘일, 단자가 간성(簡城)을 공격하고, 유자가 맹(盂) 땅을 공격하여 왕실을 안정시켰다.

조앙(趙鞅)이 진후(晉侯)에게 말했다. “제후 중에 오직 송나라만이 진나라를 섬기는데, 그 사자를 잘 맞이하여도 오히려 오기를 두려워하는데, 지금 또 그들을 억류하는 것은 제후를 끊는 것입니다. 악기(樂祁)를 돌려보내야 합니다.” 사앙(士鞅)이 말했다. “그를 3년 동안 억류했다가 까닭 없이 돌려보내면, 송나라는 반드시 진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범헌자(范獻子)가 사사로이 악기에게 말했다. “우리 임금께서 송군을 섬기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그대를 억류하셨소. 그대는 잠시 혼(溷)으로 하여금 그대를 대신하게 하시오.” 악기가 이 말을 진인(陳寅)에게 알렸다. 진인이 말했다. “송나라는 장차 진나라를 배반할 터인데, 이는 혼을 버리는 것이니, 차라리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악기가 돌아가다가 대항산(大行山)에서 죽었다. 사앙이 말했다. “송나라는 반드시 배반할 것이니, 차라리 그의 시체를 억류하여 화해를 구하는 것이 낫습니다.” 마침내 시체를 주(州) 땅에 억류했다.

노 정공이 제나라를 공격하여 늠구(廩丘)의 외성을 공격했다. 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공격용 전차에 불을 질렀고, 어떤 사람이 물을 적신 베옷으로 불을 껐다. 이에 외성이 무너졌다. 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나오자, 노군이 도망쳤다. 양호(陽虎)가 염맹을 보지 못한 척하며 말했다. “맹이 여기 있었다면, 반드시 패했을 것이다.” 염맹이 제군을 쫓다가 뒤따르는 이가 없음을 돌아보고, 넘어지는 척했다. 양호가 말했다. “모두 허장성세일 뿐이다.”

고월(苫越)이 아들을 낳아, 일이 있을 때 이름을 지으려고 기다렸다. 양주 전역에서 포로를 잡자, 그에게 이름을 양주라고 지었다.

여름, 제나라의 국하(國夏)와 고장(高張)이 우리나라 서부 국경을 공격했다. 진나라의 사앙, 조앙, 순인(荀寅)이 구원하러 왔다. 노 정공이 와 땅에서 진군과 회합했다. 범헌자가 새끼 양을 잡았고, 조간자(趙簡子)와 중항문자(中行文子)는 모두 큰 기러기를 잡았다. 노나라는 이로부터 새끼 양을 귀한 예물로 여기기 시작했다.

진군이 견택(𫑘澤)에서 위후(衛侯)와 맹약을 맺으려 했다. 조간자가 말했다. “여러 신하 중에 누가 감히 위군과 맹약을 맺겠는가?” 섭타(涉佗)와 성하(成何)가 말했다. “우리가 그와 맹약할 수 있습니다.” 위나라 사람이 소의 귀를 잡으려 하자, 성하가 말했다. “위나라는 우리 진나라의 온원(溫原)에 불과할 뿐인데, 어찌 제후로 볼 수 있겠는가?” 장차 피를 마시려 할 때, 섭타가 위후의 손을 밀쳐 손목까지 닿게 했다. 위후가 노했다. 왕손가(王孫賈)가 빨리 나아가 말했다. “맹약은 예의를 펴는 데 쓰이는 것인데, 위군과 같다면 감히 예에 따라 행하지 않고 이러한 맹약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위후가 진나라를 배반하려 했으나, 대부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왕손가가 위후를 교외에 머물게 했다. 대부들이 이유를 묻자, 위후가 진나라가 자신을 모욕한 일을 그들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내가 국가를 욕되게 하였으니, 다른 후계자를 세우는 것이 낫겠소. 나는 여러분의 뜻을 따르겠소.” 대부들이 말했다. “이는 위나라의 화근이지, 어찌 임금의 허물이겠습니까?” 위후가 말했다. “또한 근심이 있소. 그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그대의 아들과 대부의 아들을 인질로 보내라’ 하였소.” 대부들이 말했다. “국가에 이익이 된다면 공자가 가고, 저희 신하의 아들들이 어찌 감히 말고삐와 재갈을 메고 따르지 않겠습니까?” 장차 떠나려 할 때, 왕손가가 말했다. “만약 위나라에 재난이 있으면, 장인과 상인이 일찍이 화근이 되지 않은 적이 없으니, 그들 모두 가게 해야 합니다.” 위후가 이 말을 대부들에게 알렸고, 이에 모두 가도록 준비했다. 출발 기일이 정해졌을 때, 위후가 도성에서 백성을 접견하고, 왕손가로 하여금 그들에게 물어보게 했다. “만약 위나라가 진나라를 배반하면, 진나라가 다섯 번 우리를 공격할 터인데, 상황이 어떻게 되겠소?” 모두가 말했다. “다섯 번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오히려 싸울 수 있습니다.” 왕손가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배반하고, 재앙이 생긴 뒤에 인질을 보내는 것이, 무엇이 늦겠습니까?” 이에 진나라를 배반했다. 진나라 사람이 다시 맹약을 맺자고 요청했으나, 위후가 허락하지 않았다.

가을, 진나라의 사앙이 성환공(成桓公)을 만나 정나라를 침략하여 충뢰(蟲牢)를 포위했으니, 이는 이궐(伊闕) 그 전역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어서 위나라를 침략했다.

9월, 군대가 위나라를 침략했으니, 이는 진나라 때문이었다.

계관(季寤), 공추극(公鉏極), 공산불뉴(公山不狃)가 계씨(季氏)에게서 모두 뜻을 얻지 못했고, 숙손첩(叔孫輒)이 숙손씨(叔孫氏)에게서 총애를 받지 못했으며, 숙중지(叔仲志)가 노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했으므로, 이 다섯 사람이 양호(陽虎)에게 의지했다. 양호가 삼환(三桓)을 제거하고, 계관으로 계씨를 대신하게 하고, 숙손첩으로 숙손씨를 대신하게 하며, 자신이 맹씨(孟氏)를 대신하려 했다. 겨울, 10월, 순서대로 선공에게 제사 지내며 기도했다. 신묘일, 희공(僖公)의 묘에서 체제(禘祭)를 지냈다. 임진일, 포포(蒲圃)에서 계씨(季氏)를 연회할 것을 준비하고 그를 죽이려 했다. 양호가 도성의 전차에 명령하여 말했다. “계사일(癸巳日)에 집결하라.” 성읍(成邑)의 재신(宰臣) 공렴처보(公斂處父)가 맹손(孟孫)에게 말했다. “계씨가 도성의 전차에 명령을 내렸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맹손이 말했다. “내가 듣지 못했소.” 처보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는 장차 난을 일으키려는 것이니, 반드시 공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먼저 대비하십시오.” 이에 맹손과 임진일을 기일로 약속했다. 양호가 앞에서 수레를 몰았고, 임초(林楚)가 환자(桓子)의 수레를 몰았으며, 우인(虞人)이 비(鈹)와 순(盾)으로 좌우를 호위했고, 양월(陽越)이 후미를 맡아 장차 포포로 가려 했다. 환자가 갑자기 임초에게 말했다. “네 선조들은 모두 계씨의 충성스러운 신하였으니, 너는 그들을 이어야 한다.” 임초가 대답했다. “제가 명령을 들은 것이 이미 늦었습니다. 양호가 집권하여 노나라가 모두 그에게 따르는데, 그를 거스르는 것은 죽음을 찾는 것입니다. 죽어도 주인에게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환자가 말했다. “늦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네가 나를 맹씨에게로 데려갈 수 있겠느냐?” 임초가 대답했다. “감히 죽음을 아끼지 않으나, 주인이 화를 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환자가 말했다. “가거라!” 맹씨가 건장한 마부 삼백 명을 뽑아, 문 밖에 공기(公期)를 위해 집을 짓고 있었다. 임초가 화가 나서, 말이 큰길에 이르자 미친 듯이 달렸다. 양월이 그를 쏘았으나 맞히지 못했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대문을 닫았고, 어떤 사람이 문틈으로 양월을 쏘아 죽였다. 양호가 정공과 무숙(武叔)을 협박하여 맹씨를 공격하게 했다. 공렴처보가 성읍 사람들을 거느리고 상동문(上東門)으로 들어와, 양씨(陽氏)와 남문(南門) 안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다. 다시 극하(棘下)에서 싸워 양씨가 패했다. 양호가 갑옷을 벗고 공궁(公宮)으로 들어가, 보옥과 큰 활을 가지고 나와 오부지구(五父之衢)에 머물렀다. 그는 누워서 사람에게 음식을 준비하게 하자, 그의 수행원이 말했다. “추격병이 아마도 곧 올 것입니다.” 양호가 말했다. “노나라 사람들은 내가 나갔다는 말을 듣고, 죽음을 면할 수 있음을 기뻐하여, 어찌 나를 쫓을 겨를이 있겠느냐?” 수행원이 말했다. “허! 어서 수레를 매라! 공렴처보가 저기에 있다.” 공렴처보가 양호를 추격하기를 청했으나, 맹손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렴처보가 환자를 죽이려 하자, 맹손이 두려워하여 환자를 돌려보냈다. 자언(子言)이 계씨의 사당에 술잔과 제물을 갖추어 놓고 도망쳤다. 양호가 환(讙) 땅과 양관(陽關)으로 들어가 반란을 일으켰다.

정나라의 사천(駟歂)이 자대숙(子大叔)을 이어 집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