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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공

정공 14년

제 14 편

십사년 봄, 위(衛)나라의 공숙술(公叔戌)이 우리나라(노)로 도망쳐 왔고, 위나라의 조양(趙陽)은 송(宋)나라로 도망갔다.

2월 신사일, 초(楚)나라의 공자 결(公子結)과 진(陳)나라의 공손 타인(公孫佗人)이 군대를 이끌고 돈(頓)나라를 멸망시키고 돈자 장(頓子牂)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여름, 위나라의 북궁 결(北宮結)이 우리나라로 도망쳐 왔다.

5월, 우월(于越)이 취리(檇李)에서 오(吳)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오왕 요(吳王僚)가 세상을 떠났다.

노정공(魯定公)이 견(牽) 땅에서 제후(齊侯)와 위후(衛侯)를 만나고, 회맹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가을, 제후와 송공(宋公)이 도(洮) 땅에서 회견하였다.

주(周) 천자가 석상(石尚)을 보내 제사 고기를 보내왔다.

위나라 태자 괴외(蒯聵)가 송나라로 도망갔다.

위나라 대부 공맹 굉(公孟𫸩)이 정(鄭)나라로 도망갔다.

송공의 아우 신(辰)이 소(蕭) 땅에서 우리나라로 도망쳐 왔다.

비포(比蒲)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하였다.

주자(邾子)가 와서 노정공을 만났다.

거보(莒父)와 소(霄) 두 곳에 성을 쌓았다.

십사년 봄, 위후가 공숙술과 그 당당들을 쫓아냈으므로, 조양은 송나라로 도망가고 공숙술은 노나라로 도망쳐 왔다.

양영보(梁嬰父)가 동안우(董安于)를 미워하여 지문자(知文子)에게 말하였다. “안우를 죽이지 않으면, 그가 끝내 조씨(趙氏)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조씨가 반드시 진(晉)나라를 차지할 것이니, 어찌 그가 먼저 난을 일으킨 것을 구실로 조씨를 토벌하지 않습니까?” 지문자가 사람을 시켜 조맹(趙孟)에게 알렸다.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가 비록 난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나, 안우가 화근을 일으켰으니 이는 안우가 모반에 참여한 것입니다. 진나라에 명령이 있습니다. ‘먼저 난을 일으킨 자는 죽인다.’ 그 두 사람은 이미 죄를 받았사오니, 삼가 아룁니다.” 조맹이 이를 매우 근심하였다. 안우가 말하였다. “제가 죽으면 진나라가 편안해지고 조씨가 안정될 수 있다면,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사람이 누구나 죽지 않겠습니까만, 저는 죽는 것이 오히려 늦었습니다.” 하고는 목을 매어 죽었다. 조맹이 그의 시체를 시장에 효시하고 지씨에게 알렸다. “그대의 명령으로 죄인을 처벌하라 하셨는데, 안우가 이미 죄를 받았사오니 삼가 아룁니다.” 지백(知伯)이 조맹과 동맹을 맺고 나서야 조씨가 안정되었다. 조씨는 종묘에 안우를 제사 지냈다.

돈자 장이 진나라를 섬기려 하여 초나라를 배반하고 진나라와의 우호를 끊었다. 2월, 초나라가 돈나라를 멸망시켰다.

여름, 위나라 북궁 결이 우리나라로 도망쳐 왔으니, 이는 공숙술 때문이었다.

오나라가 월나라를 공격하자, 월왕 구천(句踐)이 오군을 막아 취리에서 진을 펼쳤다. 구천이 오군의 진영이 정비된 것을 걱정하여, 결사대를 두 번 보내 돌격하여 오군을 사로잡게 했으나 오군은 여전히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죄인들을 세 줄로 늘어서게 하고, 칼을 목에 대고 나아가 고하였다. “두 군주께서 전쟁을 일으키셨사오나, 우리들은 군령을 어기고 군주 앞에서 무능함을 보였사오니, 감히 형벌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바치나이다.” 하고는 모두 스스로 목을 베었다. 오군이 모두 이 광경을 바라보자, 월왕이 틈을 타 공격하여 오군을 크게 무찔렀다. 영고부(靈姑浮)가 창으로 오왕 합려(闔廬)를 찔러 발가락을 다치게 하고, 그의 신 한 짝을 빼앗아 돌아왔다. 합려가 형(陉) 땅에서 죽었으니, 취리에서 7리 떨어진 곳이었다. 부차(夫差)가 사람을 시켜 뜰에 서게 하여, 자기가 출입할 때마다 반드시 자신에게 말하게 하였다. “부차야, 네가 월왕이 네 아버지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 그러면 그가 대답하였다. “예, 감히 잊지 않겠나이다!” 3년 후에 월나라에 복수할 것을 다짐하였다.

진나라 사람들이 조가(朝歌)를 포위하였다. 노정공이 비상량(脾上梁) 사이에서 제후와 위후를 만나 범씨와 중항씨를 구원할 일을 의논하였다. 석성부(析成鮒)와 소왕도갑(小王桃甲)이 적(狄)나라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를 기습하여 강중(絳中)에서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사부(士鮒)는 주 땅으로 도망가고, 소왕도갑은 조가로 들어갔다.

가을, 제후와 송공이 도 땅에서 회견하였으니, 이는 범씨 때문이었다. 위후가 부인 남자(南子)를 위하여 송조(宋朝)를 불러 도 땅에서 회견하였다. 태자 괴외가 맹(盂) 땅을 제나라에 바치려고 송나라 들판을 지나가다가, 들판 사람들이 노래하였다. “이미 네 암퇘지는 정해졌으니, 어찌 우리 숫퇘지를 돌려보내지 않는가?” 태자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희양속(戲陽速)에게 말하였다. “나를 따라 소군(少君)을 알현하라. 소군이 나를 접견할 때, 내가 한 번 돌아보거든 너는 그녀를 죽여라.” 희양속이 말하였다. “예.” 그리고는 부인을 알현하러 갔다. 부인이 태자를 접견하자, 태자가 세 번 돌아보았으나 희양속이 나아가지 않았다. 부인이 태자의 안색을 보고 울며 달아나 말하였다. “괴외가 나를 죽이려 합니다!” 위후가 그녀의 손을 잡고 누대 위로 올라갔다. 태자는 송나라로 도망갔고, 위후는 그의 당당들을 모두 쫓아내었으므로, 공맹 굉은 정나라로 도망갔고, 정나라에서 다시 제나라로 도망갔다. 태자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희양속이 나를 해쳤다.” 희양속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태자가 나를 해쳤소. 태자가 무도하여 나로 하여금 그의 어머니를 죽이게 하였소. 내가 따르지 않으면 그가 나를 죽일 것이요. 만약 부인을 죽였다면 그는 나를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씌웠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는 승낙만 하고 실행하지 않아 죽음을 늦춘 것이오. 속담에 ‘백성은 신의로써 자신을 보전한다.’ 하였으니, 나는 신의로써 스스로를 보전한 것이오.”

겨울, 12월, 진나라 사람들이 로(潞) 땅에서 범씨와 중항씨의 군대를 무찌르고 적진(籍秦)과 고강(高强)을 사로잡았다. 또 백천(百泉)에서 정나라 군대와 범씨의 군대를 무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