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공 13년
十三年 봄, 2월에 노(魯) 환공(桓公)이 기(紀) 후(侯)와 정(鄭) 백(伯)과 회합하였다. 기사(己巳)일에 제(齊) 후(侯), 송(宋) 공(公), 위(衛) 후(侯) 및 연(燕) 사람들과 교전하여 제군, 송군, 위군, 연군이 크게 패하였다.
3월에 위(衛) 선공(宣公)을 장사지냈다.
여름에 큰 홍수가 났다.
가을 7월이었다.
겨울 10월이었다.
13년 봄, 초(楚)나라의 굴하(屈瑕)가 나(羅)나라를 공격하였고, 두백비(斗伯比)가 그를 전송하였다. 돌아와서 두백비가 자신의 마부에게 말하였다. “막오(莫敖, 굴하)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그가 걸을 때 발을 높이 드는 것으로 보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두백비가 초왕(楚王)을 알현하며 말하였다. “반드시 군대를 증원하소서.” 초왕이 그의 건의를 거절하였다. 초왕이 궁으로 돌아와 부인 등만(鄧曼)에게 이 일을 알렸다. 등만이 말하였다. “대부 두백비가 말한 것은 군대의 수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왕께서 신의로 백성을 안정시키고 덕행으로 관원들을 훈도하며 형벌로 막오를 위압하시기를 청한 것입니다. 막오는 포슬(蒲騷) 전투의 승리에 익숙하여 스스로 옳다고 여겨 반드시 나라를 얕볼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그를 진압하고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그가 어찌 방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두백비의 본뜻은 왕께서 백성들을 훈계하고 잘 진압하시며, 관원들을 소집하여 아름다운 덕행으로 그들을 권면하시고, 막오를 만나면 하늘이 쉽사리 허물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두백비가 어찌 초나라의 군대가 이미 전부 출동한 것을 알지 못했겠습니까?” 초왕이 뇌(賴) 땅 사람을 보내 굴하를 뒤쫓게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막오가 군중에 명을 전하게 하였다. “감히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형벌을 내리겠다.” 언(鄢) 땅에 도착했을 때 군대가 혼란하게 강을 건너 대열을 잃었고, 또한 방비를 하지 않았다. 나라에 도착하자 나라와 융(盧)나라의 군대가 양쪽에서 협공하여 초군을 크게 패배시켰다. 막오는 황곡(荒谷)에서 목을 매어 자결하였고, 다른 장수들은 야보(冶父)에 갇혀 처벌을 기다렸다. 초왕이 말하였다. “이는 나의 잘못이다.” 이에 모든 사람을 사면하였다.
송(宋)나라는 여러 차례 정(鄭)나라에 재물을 요구하였고, 정나라는 이러한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기(紀)나라, 노(魯)나라 및 제(齊)나라와 연합하여 송나라, 위(衛)나라, 연(燕)나라와 교전하였다. 경문(經文)에 교전 장소가 기록되지 않은 것은 노나라 군주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정나라가 사람을 보내 와서 우호 관계를 다시 맺기를 청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