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공 18년
열여덟 번째 해 봄, 송나라가 황원(皇瑗)을 죽였다. 애공(哀公)이 그 일의 전말을 듣고 황씨(皇氏)의 종족 지위를 회복시키고 황완(皇缓)을 우사(右师)로 임명하였다.
파인(巴人)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유(鄾) 땅을 포위하였다. 당초 우사마(右司马) 자국(子国)이 그 직책을 맡을 수 있을지 점을 쳤을 때, 관첨(观瞻)이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 부합합니다.” 이에 그를 임명하였다. 파나라 군대가 이르자 초나라 왕이 주장(主帅)을 점치려 하였다. 초나라 왕이 말하였다. “영(宁, 자국)이 이미 뜻에 부합하였으니, 어찌 다시 점을 치겠는가?” 이에 그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출발하게 하였다. 자국이 부장(副将)을 임명해 줄 것을 청하자 초나라 왕이 말하였다. “침윤(寝尹)과 공윤(工尹)은 모두 선왕을 위해 힘써 봉사한 사람들이다.” 3월에 초나라의 공손녕(公孙宁), 오유우(吴由于), 미고(䓕固)가 유 땅에서 파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이로 인해 석(析) 땅을 자국에게 봉해 주었다. 군자가 말하였다. “초혜왕(楚惠王)은 사람의 마음을 알았다. 《하서(夏书)》에 이르기를 ‘점치는 관원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판단할 수 있어야 그 결과를 큰 거북(大龟)에게 알린다.’ 하였으니, 대략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옛말에 ‘성인(圣人)은 점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초혜왕이 대체로 이것을 실천한 것이다.”
여름, 위나라의 석포(石圃)가 군주 기(起)를 쫓아내었다. 기는 제나라로 도망갔다. 위출공 첩(卫出公辄)이 제나라에서 돌아와 왕위를 회복하고, 석포를 쫓아내고 석퇴(石魋)와 태숙 유(太叔遗)의 직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