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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공

희공 13년

제 13 편

십삼년 봄, 북융(狄人)이 위(衛)나라를 침략하였다.

여름, 4월, 진선공(陳宣公)을 장사지냈다.

희공(僖公)이 함(咸) 땅에서 제후(齊侯), 송공(宋公), 진후(陳侯), 위후(衛侯), 정백(鄭伯), 허남(許男), 조백(曹伯)을 만났다.

가을, 9월, 큰 기우제를 지냈다.

겨울, 공자우(公子友)가 제(齊)나라로 갔다.

십삼년 봄, 제후(齊侯)가 중손추(仲孫湫)를 주(周)나라에 보내 문안하고, 동시에 왕자대(王子帶)의 일을 언급하게 하였다. 일을 마친 후, 중손추는 주왕에게 왕자대의 일을 보고하지 않았다. 귀국하여 복명하며 말하였다. “아직 안 됩니다. 천왕의 노여움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으니, 아마 십 년쯤 기다려야 할까요? 십 년이 지나기 전에는 천왕이 왕자대를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 제후들이 함 땅에서 모인 것은 회이(淮夷)가 기(杞)나라를 위협했기 때문이며, 또한 왕실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가을, 융(戎)인이 화란을 일으켰으므로 제후들이 군대를 보내 주(周)나라를 지키게 하였다. 제나라 대부 중손추가 이 수비군을 지휘하였다.

겨울, 진(晉)나라에 여러 해 연속 흉년이 들어 사람을 진(秦)나라에 보내 곡식을 사기를 청하였다. 진백(秦伯)이 자상(子桑)에게 물었다. “줄까?” 자상이 대답하였다. “은혜를 다시 베풀어 보답을 받는다면, 군주께서 무엇을 더 바라시겠습니까? 은혜를 다시 베풀었으나 보답을 받지 못한다면, 그 백성들은 반드시 마음이 떠날 것입니다. 백성이 마음이 떠난 뒤에 그들을 토벌하면, 그들에게 백성의 지지가 없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진백이 다시 백리(百里)에게 물었다. “줄까?” 백리가 대답하였다. “천재는 유행하여 각국이 번갈아 겪는 일입니다. 기근을 구제하고 이웃 나라를 돌보는 것은 의리입니다. 의리를 행하면 복을 얻을 것입니다.” 이때 진나라에 있던 비정(邳鄭)의 아들 표(豹)가 이 기회에 진나라를 치자고 청하였다. 진백이 말하였다. “미워할 것은 그 군주일 뿐, 백성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진(秦)나라는 이내 진(晉)나라에 곡식을 실어 보냈는데, 옹(雍)성에서 강(絳)성까지 배가 끊이지 않았다. 이 행동을 ‘범주지의(泛舟之役)’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