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학의宗旨는 자기의 밝은 덕을 드러내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가까이하여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의 경지에 이르는 데 있다. 마땅히 도달해야 할 경지를 안 뒤에야 뜻이 확고해지고, 뜻이 확고해진 뒤에야 마음이 고요해지며,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야 처지가 편안해지고, 처지가 편안해진 뒤에야 생각이 주도면밀해지며, 생각이 주도면밀해진 뒤에야 얻는 바가 있게 된다. 만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만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이 근본과 말단, 시작과 끝의 순서를 아는 것이 대학의 도에 가까운 것이다.
옛날에 천하에 밝은 덕을 드러내 밝히고자 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 나라를 다스렸고, 자기 나라를 다스리고자 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 집안을 다스렸으며, 자기 집안을 다스리고자 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 몸을 닦았고, 자기 몸을 닦고자 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였으며,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한 사람들은 먼저 자기 뜻을 성실하게 하였고, 자기 뜻을 성실하게 하고자 한 사람들은 먼저 지식을 얻었으며, 지식을 얻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데 있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한 뒤에야 지식을 얻고, 지식을 얻은 뒤에야 뜻이 성실해지며, 뜻이 성실해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이 닦여지며, 몸이 닦여진 뒤에야 집안이 다스려지고, 집안이 다스려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화로워진다. 천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몸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잘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다. 그가 중하게 여기는 바가 도리어 가볍게 여겨지고, 그가 가볍게 여기는 바가 도리어 중하게 여겨지는 일은 이제까지 없었다!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하며, 이것을 지식의 지극함이라고 한다.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마치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 같고,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것 같아야 하니, 이것을 스스로 만족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반드시 삼가야 한다! 소인은 한가로이 혼자 있을 때 나쁜 일을 하여 못할 짓이 없지만, 군자를 보면 곧 숨고 숨어서 자기가 한 나쁜 일을 감추고 자기 선행을 드러낸다. 그러나 남이 자신을 보는 것은 마치 자신의 폐간을 꿰뚫어 보는 것과 같으니, 감춘들 무엇이 이로우랴! 이것을 안으로 진실하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반드시 삼가야 한다. 증자가 말했다. "열 눈이 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니, 엄숙하고 두렵지 않은가!" 재물은 집을 꾸밀 수 있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며,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안해지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저 기수 굽은 언덕을 보라,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저 문아한 군자는, 마치 뼈를 깎고 상아를 갈며, 옥을 쪼고 돌을 가는 듯하도다. 그는 엄숙하고 너그럽고, 빛나고 성대하도다. 저 문아한 군자는, 끝내 잊을 수 없도다!" 하였다. "뼈를 깎고 상아를 간다"는 것은 학문을 닦음을 말하고, "옥을 쪼고 돌을 간다"는 것은 몸을 닦음을 말하며, "엄숙하고 너그럽다"는 것은 그 마음이 경외하고 삼감을 말하고, "빛나고 성대하다"는 것은 그 위엄 있는 의관을 말하며, "저 문아한 군자는 끝내 잊을 수 없도다"는 것은 그 덕이 지극히 높아 백성들이 잊지 못함을 말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 전대의 임금님을 잊을 수 없도다!" 하였다. 군자는 어진 이를 높이고 친척을 친애하며, 소인은 안락을 누리고 이익을 얻는다. 그러므로 전대의 임금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백성들이 그들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강고》에 이르기를 "밝은 덕을 드러내 밝힐 수 있다." 하였다. 《태갑》에 이르기를 "하늘이 준 밝은 명령을 생각하라." 하였다. 《제전》에 이르기를 "위대한 덕을 드러내 밝힐 수 있다." 하였다. 이는 모두 스스로 덕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상나라 탕왕의 쟁반에 새긴 명문에 이르기를 "하루라도 새로워질 수 있으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하였다. 《강고》에 이르기를 "백성들을 새롭게 하도록 격려하라."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주나라는 비록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받은 명은 새롭도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는 한 곳도 지극히 선을 추구하지 않는 데가 없다.
《시경》에 이르기를 "서울의 땅은 사방 천 리니, 백성들이 사는 곳이라."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꾀꼬리가 지저귀며, 산기슭에 깃드네." 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깃들 곳에 대해 꾀꼬리도 그 깃들 곳을 알거든, 어찌 사람이 새만 못하랴?" 《시경》에 이르기를 "의관이 엄숙한 문왕이여, 아, 그가 밝고 공경히 제 자리에 머무르셨도다!" 하였다. 임금 된 자는 인에 머물러야 하고, 신하 된 자는 공경에 머물러야 하며, 아들 된 자는 효도에 머물러야 하고, 아버지 된 자는 자애에 머물러야 하며, 나라 사람들과 사귀는 데는 신의에 머물러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송사를 심리함에 있어 나도 남과 비슷하지만, 반드시 송사가 아예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거짓된 정황이 있는 자들이 그 교활한 변론을 다 펼 수 없게 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한다.
몸 닦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고, 두려움이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으며, 좋아함이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고, 근심이 있으면 바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몸 닦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집안을 다스리는 것이 몸 닦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가 친애하고 편애하는 사람에게는 치우치기 쉽고, 자기가 경멸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치우치기 쉬우며, 자기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치우치기 쉽고, 자기가 가엾게 여기고 동정하는 사람에게는 치우치기 쉬우며, 자기가 게을리하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치우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 단점을 알고, 한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그 장점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드물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은 자기 자식의 잘못을 모르고, 자기 논의 싹이 잘 자람을 모른다." 하였다. 이것을 몸이 닦여지지 않으면 집안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집 사람을 가르칠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도 나라 안에서 교화를 이룬다. 효도는 임금을 섬기는 데 쓰이고, 공경은 어른을 섬기는 데 쓰이며, 자애는 백성을 부리는 데 쓰인다. 《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하라" 하였으니, 마음으로 진실하게 추구하면 비록 완전히 맞지 않더라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 먼저 아이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 한 집안이 인하면 한 나라가 인함을 일으키고, 한 집안이 사양하면 한 나라가 사양함을 일으키며, 한 사람이 탐욕스럽고 포악하면 한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그 핵심이 이와 같다. 이것을 한마디 말이 일을 망칠 수 있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요와 순은 인으로써 천하를 이끌었고, 백성들은 그들을 따랐으며, 걸과 주는 포악으로써 천하를 이끌었고, 백성들도 그들을 따랐다. 임금이 내린 명령이 자기가 좋아하는 바와 반대이면 백성들은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가 먼저 선행을 한 뒤에야 남에게 선행을 요구할 수 있고, 자기가 먼저 악행이 없는 뒤에야 남의 악행을 비판할 수 있다. 자기 몸에 용서하지 않는 덕을 지니고서도 남에게 사리를 깨닫도록 가르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복숭아꽃이 무성하고, 잎이 무성하도다. 이 여인이 시집가서,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도다." 하였다.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한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형제를 화목하게 하라." 하였다. 형제를 화목하게 한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그 의관에 잘못이 없어야, 사방의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도다." 하였다.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형으로서, 아우로서의 언행이 모범이 된 뒤에야 백성들이 그것을 본받는다. 이것을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데 있다고 한다.
이른바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까닭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노인을 공경하면 백성들은 효도를 일으키고, 위에 있는 사람이 어른을 존중하면 백성들은 공경을 일으키며, 위에 있는 사람이 고아와 외로운 이를 돌보면 백성들은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혈구지도(絜矩之道)’ 곧 자기를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원칙을 지닌다. 위에서 나에게 한 일을 싫어하면 그것으로 아래를 대하지 말고, 아래에서 나에게 한 일을 싫어하면 그것으로 위를 섬기지 말며, 앞에서 나에게 한 일을 싫어하면 그것으로 뒤를 대하지 말고, 뒤에서 나에게 한 일을 싫어하면 그것으로 앞을 대하지 말며, 오른쪽에서 나에게 한 일을 싫어하면 그것으로 왼쪽을 대하지 말고, 왼쪽에서 나에게 한 일을 싫어하면 그것으로 오른쪽을 대하지 말라. 이것을 일러 ‘혈구지도’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즐거운 군자는 백성의 부모이다.” 하였다.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그가 싫어한다. 이것을 일러 백성의 부모라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저 높고 준엄한 남산은 바위가 겹겹이 쌓였도다. 드러난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너를 주시하도다.” 하였다. 나라를 가진 자는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만약 치우쳐 공정하지 않으면 천하 사람들에게 함께 주살될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은나라가 아직 민심을 잃지 않았을 때는 하늘에 맞출 수 있었도다.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아 천명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지어다.” 하였다. 이는 민심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민심을 잃으면 나라를 잃음을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먼저 덕(德)에 삼가야 한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땅이 있고, 땅이 있으면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쓰임이 있다.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다. 만약 근본을 밖으로 여기고 말단을 안으로 여기면, 백성과 이익을 다투며 약탈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재물이 모이면 백성은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은 모인다. 그러므로 말이 이치에 어긋나게 나가면 이치에 어긋나게 돌아오고, 재물이 이치에 어긋나게 들어오면 이치에 어긋나게 나간다.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천명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였다. 선한 도를 행하면 천명을 얻고, 선한 도를 행하지 않으면 천명을 잃는다. 『초서(楚書)』에 이르기를 “초나라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선(善)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구범(舅犯)이 이르기를 “유랑하는 사람은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인친(仁親)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진서(秦誓)』에 이르기를 “만약 한 신하가 있어 성실하고 전일하며 다른 재주는 없으나 마음이 너그러워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하다. 남이 재주가 있으면 자기처럼 여기고, 남이 재덕이 아름다우면 진심으로 좋아하여 단지 입으로만 칭찬하지 않는다. 진실로 어진 이를 포용할 수 있으니, 이로써 내 자손과 백성을 보호할 수 있으니 참으로 이롭도다! 남이 재주가 있으면 시기하고 미워하며, 남이 재덕이 아름다우면 막고 억눌러 통하지 못하게 한다. 진실로 어진 이를 포용하지 못하니, 이로써 내 자손과 백성을 보호할 수 없으니 참으로 위험하도다!” 오직 인(仁)한 사람만이 이러한 어진 이[賢]를 시기하는 자를 귀양 보내 먼 사방의 오랑캐 땅으로 쫓아내어 그들이 중원에 함께 살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일러 오직 인한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사랑하고 능히 사람을 미워한다고 한다. 어진 이를 보고도 천거하지 못하고, 천거하고도 우선 임용하지 못하면 이는 태만함이다. 불선한 사람을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고, 물리치고도 먼 곳으로 귀양 보내지 못하면 이는 허물이다. 남이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이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니,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내릴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큰 도는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의지하여 얻고, 교만하고 방자하면 잃는다. 재물을 창출하는 데도 큰 원칙이 있다. 재물을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재물을 소비하는 사람은 적으며, 재물을 창출하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은 느긋하면 재물이 항상 넉넉해진다. 인한 사람은 재물로써 자신의 덕을 드러내고, 인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으로써 재물을 모은다. 위에 있는 사람이 인을 좋아하면서 아래 있는 사람이 의(義)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는 없고, 의를 좋아하는 사람이 일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으며, 나라의 창고에 있는 재물이 마침내 군주에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는 없다.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네 마리 말 수레를 기르는 사대부 집에서는 닭과 돼지의 작은 이익을 따질 일이 아니고, 얼음으로 제사하는 경대부 집에서는 소와 양을 기를 일이 아니며, 백 대의 병거를 가진 제후의 집에서는 재물을 모으는 가신을 둘 일이 아니다. 재물을 모으는 가신을 두느니 차라리 도둑질하는 가신을 두는 것이 낫다.” 하였다. 이는 나라가 이익을 이익으로 삼지 말고 도리를 이익으로 삼아야 함을 이른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오직 재물에 마음을 두는 것은 반드시 소인에게서 비롯된다. 만약 소인이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여겨 소인으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천재와 인화가 함께 닥쳐올 것이다. 비록 어진 사람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게 된다! 이는 나라가 이익을 이익으로 삼지 말고 도리를 이익으로 삼아야 함을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