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침해
이른바 ‘역진(易陳)’의 의미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난입(難入)’은, 사람들이 그것을 명확히 깨닫고 마음에 새겨 기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추수형(粗守形)’은, 단지 침 놓는 기법(鍼刺의 技法)에만 얽매인다는 뜻이다. ‘상수신(上守神)’은, 인체의 혈기(血氣)가 허(虛)한지 실(盛)한지를 진찰하여 보법(補法)을 쓸지 사법(瀉法)을 쓸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객(神客)’은, 정기(正氣)와 사기(邪氣)가 서로 만나는 것을 말한다. ‘신(神)’은 정기를 가리키고, ‘객(客)’은 사기를 가리킨다. ‘재문(在門)’은, 사기가 정기가 운행하며 출입하는 통로(즉 腧穴)를 따라 침입한다는 뜻이다. ‘미도기질(未睹其疾)’은, 사기와 정기가 각각 어느 경맥(經脈)에서 병변(病變)을 일으키는지 미리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지기원(惡知其原)’은, 어느 경맥의 병변에 어떤 혈(穴)을 선택하여 치료해야 하는지 미리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지미재삭지(刺之微在數遲)’는, 침 놓는 수법의 빠르고 느림(즉 서질(徐疾)의 뜻)을 말한다. ‘추수관(粗守關)’은, 단지 사지 관절 부위의 혈(穴)만 알고 혈기와 정사(正邪)가 왕래하며 변화하는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상수기(上守機)’는, 기(氣)의 변화를 파악할 줄 아는 것을 뜻한다. ‘기지동불리기공중(機之動不離其空中)’은, 기의 허실(虛實)과 침을 쓸 때의 서질(徐疾) 리듬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중지기청정이미(空中之機, 清淨以微)’는, 침으로 기(氣)를 얻은(得氣) 후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밀하게 기(氣)를 지켜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래불가봉(其來不可逢)’은, 사기가 한창 성할 때는 보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기왕불가추(其往不可追)’는, 정기가 이미 허해졌을 때는 사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불가괘이발(不可掛以髮)’은, 기(氣)가 매우 쉽게 흩어져 털끝만큼의 차이로도 놓치게 된다는 뜻이다. ‘구지불발(扣之不發)’은, 보사(補瀉)의 뜻을 알지 못하면 마치 활시위를 당겨 놓고 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 결과) 혈기가 이미 소모되었는데도 사기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는다.
‘지기왕래(知其往來)’는, 기의 운행이 역(逆)인지 순(順)인지, 성(盛)한지 허(虛)한지를 아는 것이다. ‘요여지기(要與之期)’는, 기(氣)가 가장 알맞은 때에 침을 놓을 줄 아는 것이다. ‘추지암자(粗之暗者)’는, 조잡한 의원은 어두워서 기(氣)의 미세하고 은밀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묘재! 공독유지자(妙哉!工獨有之者)’는, 뛰어난 의원은 침의 오묘함을 완전히 통달한다는 뜻이다. ‘왕자위역(往者爲逆)’은, 기(氣)가 허(虛)하고 미약(微弱)한 것을 말하며, 미약한 것이 역(逆)이다. ‘래자위순(來者爲順)’은, 형기(形氣)가 평화(平和)한 것을 말하며, 평화로운 것이 순(順)이다. ‘명지역순정행무문(明知逆順正行無問)’은, 기의 역순(逆順)을 분명히 알면 틀림없이 혈(穴)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이탈지(迎而奪之)’는 사법(瀉法)을 말하고, ‘추이제지(追而濟之)’는 보법(補法)을 말한다.
이른바 ‘허즉실지(虛則實之)’는, 촌구맥(寸口脈)이 허(虛)한 경우에는 보법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만즉설지(滿則泄之)’는, 촌구맥이 성(盛)한 경우에는 사법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완진즉제지(宛陳則除之)’는, 혈맥(血脈) 중의 울적(鬱積)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승즉허지(邪勝則虛之)’는, 각 경맥에 사기가 성한 것이 있으면 모두 사법으로 그 사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이질즉실(徐而疾則實)’은, 침을 천천히 넣고 빨리 빼면 정기가 충실해진다는 뜻이다. ‘질이서즉허(疾而徐則虛)’는, 침을 빨리 넣고 천천히 빼면 사기가 약해진다는 뜻이다. ‘언실여허약유약무(言實與虛若有若無)’는, 실증(實證)은 기(氣)가 있기 때문이고 허증(虛證)은 기(氣)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한다. ‘찰후여선약망약존(察後與先若亡若存)’은, 기의 허실(虛實)에 따라 보사(補瀉)의 선후(先後) 차례를 결정하고 기(氣)가 이미 내려갔는지 혹은 아직 머물러 있는지를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위허위실약득약실(爲虛爲實, 若得若失)’은, 보법을 썼을 때 환자는 충실해져서 얻은 것이 있는 듯하고, 사법을 썼을 때 환자는 허해져서 잃은 것이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기(氣)가 경맥(經脈) 중에 있는 경우에 대해: ‘사기재상(邪氣在上)’은, 사기가 인체를 침범할 때 항상 위(上)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사기가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탁기재중(濁氣在中)’은, 수곡(水穀)이 모두 위(胃)로 들어가면 그 정미(精微)한 기(氣)는 위로 폐(肺)에 주입되고 탁한 부분은 장위(腸胃)에 머무른다. 만약 한온(寒溫)이 맞지 않고 음식이 절도(節度)가 없으면 질병이 장위(腸胃)에서 생기므로 ‘탁기재중(濁氣在中)’이라 부른다. ‘청기재하(淸氣在下)’는, 청량하고 습한 지기(地氣)가 인체를 침범하면 반드시 발(足)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청기재하(淸氣在下)’라 부른다. ‘침함맥즉사기출(針陷脈則邪氣出)’은, 위(頭部) 부위의 혈(穴)을 찔러 사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말한다. ‘침중맥즉탁기출(針中脈則濁氣出)’은, 양명경(陽明經)의 합혈(合穴)을 찔러 탁기(濁氣)를 배출시키는 것을 말한다. ‘침태심즉사기반침(針太深則邪氣反沉)’은, 얕게 떠 있는 병증(淺浮의 病症)에는 깊이 찔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깊이 찌르면 사기가 따라 깊이 들어가므로 ‘반침(反沉)’이라 부른다. ‘피육근맥각유소처(皮肉筋脈各有所處)’는, 경락(經絡)이 각각 주관(主管)하는 부위가 있다는 뜻이다.
‘취오맥자사(取五脈者死)’는, 병이 체내(體內)에 있고 중기(中氣)가 부족한 경우에 만약 일부러 침으로 각 음경(陰經)의 맥기(脈氣)를 많이 사(瀉)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취삼양지맥(取三陽之脈)’은, 만약 삼양경(三陽經)의 기(氣)를 완전히 다 사(瀉)해 버리면 환자의 형체(形體)가 허약해져 회복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탈음자사(奪陰者死)’는, 척택혈(尺澤穴)을 찌른 뒤에 다시 오리혈(五里穴)에서 연속 다섯 번 음기(陰氣)를 사(瀉)하여 빼앗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탈양자광(奪陽者狂)’는, 이것은 확실한 단정(斷定)이다.
‘도기색찰기목지기산복일기형청기동정(睹其色,察其目,知其散復,一其形,聽其動靜)’은, 뛰어난 의원은 눈으로 오색(五色)을 관찰하고, 또한 촌구맥(寸口脈)과 척부(尺膚)의 대소(大小), 완급(緩急), 활삽(滑澁) 등의 변화를 진찰하여 질병을 판단할 줄 안다는 뜻이다. ‘지기사정(知其邪正)’은, 허사(虛邪)와 정사(正邪)의 바람을 분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주추지좌지이어지(右主推之,左持而御之)’는, 침을 잡을 때 오른손은 밀어 넣는 역할을 하고 왼손은 잡고 인도(引導)하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기지이거지(氣至而去之)’는, 보사(補瀉)가 이루어져 기(氣)가 조화로워진 후에야 침을 뺄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기재우종시일(調氣在於終始一)’은, 기(氣)를 조절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한 마음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절지교삼백육십오회(節之交三百六十五會)’는, 낙맥(絡脈)의 기(氣)가 삼투(滲透)하여 온몸의 각 관절 부위에 관주(灌注)하는 곳을 말한다.
이른바 ‘오장지기이절어내(五臟之氣,已絶於內)’는, 촌구맥(寸口脈)의 맥기(脈氣)가 안에서 이미 끊어져 응수(應指)하지 못하는데(즉 內虛), 도리어 몸 밖의 병든 곳과 양경(陽經)의 합혈(合穴)을 찌르고 침을 머금어 양기(陽氣)를 불러들이는 것을 말한다. 양기가 도착하면 내부의 음기(陰氣)는 더욱 쇠진(衰竭)해지고, 내부가 다시 쇠진(重竭)하면 사망한다. 사망할 때는 양기가 없어 추동(推動)하지 못하므로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오장지기이절어외(五臟之氣,已絶於外)’는, 촌구맥(寸口脈)의 맥기(脈氣)가 밖에서 이미 끊어져 응수(應指)하지 못하는데(즉 外虛), 도리어 사지 말단(末端)의 정혈(井穴)과 수혈(輸穴)을 찌르고 침을 머금어 음기(陰氣)를 불러들이는 것을 말한다. 음기가 도착하면 양기(陽氣)가 도리어 함몰(陷沒)하고, 양기가 함몰하면 기(氣)가 역란(逆亂)하게 되며, 역란하면 사망한다. 사망할 때는 음기(陰氣)가 남아 있으므로 번조(煩躁)하여 안정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침을 놓기 전에 눈을 관찰하는 것은, 오장(五臟)의 정기(精氣)가 오색(五色)을 윤택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색이 윤택하면 소리(聲音)가 맑고 또렷해진다. 소리가 맑고 또렷하다는 것은, 말하는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