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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편

교특생

제 11 편

교제(郊祭)에는 한 마리의 송아지를 쓰고, 사직(社稷) 제사에는 소·양·돼지 세 가지 희생을 모두 갖춘 태뢰(太牢)를 쓴다. 천자가 제후의 나라에 갈 때, 제후가 진상하는 식사는 오직 한 마리의 송아지로 한다. 제후가 천자를 알현할 때, 천자가 제후에게 하사하는 예절에는 태뢰를 쓴다. 이것은 진실하고 질박함을 중히 여기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자는 임신한 가축을 먹지 않고, 하늘에 제사할 때도 임신한 가축을 쓰지 않는다. 천자가 타는 대로(大路)라는 수레는 말 목에 단 번영(繁纓)이 오직 한 겹이고, 선로(先路)는 세 겹이며, 차로(次路)는 다섯 겹이다. 교제에는 희생의 피를 쓰고, 대향(大饗) 제사에는 생고기를 쓰며, 삼헌(三獻)의 예에는 반쯤 익힌 고기를 쓰고, 일헌(一獻)의 예에는 익힌 고기를 쓴다. 가장 높은 제사는 맛을 중히 여기지 않고 냄새를 중히 여긴다. 제후가 손님이 되어 관례(灌禮)를 행할 때는 울창주(鬱鬯酒)를 쓴다. 관례는 냄새를 쓰는 것이고, 대향의 예는 오직 포육(脯肉)만을 숭상할 뿐이다. 대향 때, 군주는 세 겹의 자리를 깔고 나서 작례(酢禮)를 행한다. 만약 삼헌지례(三獻之禮)의 개(介, 수행관)라면, 군주는 오직 한 겹의 자리만 깔고 작례를 행한다. 이것은 높은 이를 낮추어 낮은 이에게 맞추는 것이다. 향례(饗禮)와 체제(禘祭)에는 음악이 있고, 식례(食禮)와 상제(嘗祭)에는 음악이 없으니, 이것은 음양(陰陽)의 도리이다. 무릇 음주는 양기(陽氣)를 기르는 것이고, 무릇 진식(進食)은 음기(陰氣)를 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봄에는 체제를 행하고 가을에는 상제를 행하며, 봄에는 향례로 고아(孤子)를 대접하고 가을에는 식례로 노인을 대접하니, 그 뜻은 같다. 그러나 식례와 상제에는 음악이 없다. 음주는 양기를 기르므로 음악이 있고, 진식은 음기를 기르므로 소리가 없는 것이다. 무릇 소리는 모두 양(陽)에 속한다. 정(鼎)과 조(俎)는 홀수로 쓰고, 변(籩)과 두(豆)는 짝수로 쓰니, 이것은 음양의 도리이다. 변과 두에 담긴 음식은 물과 땅에서 나는 산물이다. 감히 일상적인 맛으로 신성함을 더럽히지 않고 종류가 많음을 중히 여기니, 이것은 신명(神明)과 교류하는 뜻이다. 손님이 대문에 들어서면 《사하(肆夏)》를 연주하여 화평하고 공손함을 나타낸다. 손님이 한 잔의 술을 다 마시면 음악이 그치는데, 공자(孔子)께서 이 법을 여러 번 칭찬하셨다.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올리고 답례를 받은 후, 악공이 올라가 노래를 부르니, 이것은 덕행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노래하는 사람은 당 위에 있고, 포죽(匏竹) 같은 관악기를 부는 사람은 당 아래에 있으니, 이것은 사람의 소리를 중히 여깁니까. 음악은 양(陽)에서 생겨나고, 예(禮)는 음(陰)에서 만들어지니, 음양이 조화하면 만물이 각자 제자리를 얻을 수 있다. 진헌하는 예물인 폐백(幣帛)은 정해진 종류가 없으니, 이것은 각 지방의 토산물이 알맞음을 구별하고, 먼 곳과 가까운 곳의 조공 기한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거북을 앞에 놓는 것은 길흉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고, 종을 그 다음에 놓는 것은 종소리가 화평하여 중간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은 사나운 것을 제압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묶은 비단에 옥벽(玉璧)을 더하는 것은 가서 덕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뜰에 백 개의 횃불을 켠 것은 제환공(齊桓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부가 《사하》를 연주한 것은 조문자(趙文子)로부터 시작되었다. 조근(朝覲)할 때 대부가 사사로이 빈객으로서 만나는 것은 예에 맞지 않는다. 대부가 규(圭)를 가지고 사자로서 출행하는 것은 신의를 밝히기 위함이고, 감히 사사로이 만나지 못하는 것은 공경을 나타내기 위함인데, 만약 정실(庭實)을 가지고 사사로이 만난다면, 어찌하여 제후의 뜰에 나타나는 것인가? 신하된 자는 외국과의 사사로운 교류가 없어야 감히 군주에게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 대부가 향례를 베풀어 군주를 대접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는다. 대부의 세력이 강성하여 군주가 그를 죽이는 것은 의리에 합당하니, 이것은 삼환(三桓)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천자는 손님으로서의 예가 없으니, 감히 그를 주인으로 모실 자가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신하의 집에 가면 동쪽 섬돌(阼階)로 올라가니, 이것은 감히 신하의 집을 자기 집으로 여기지 않음을 나타낸다. 근현(覲見)의 예에서 천자는 당 아래로 내려와 제후를 접견하지 않는다. 당 아래로 내려와 제후를 접견하는 것은 천자가 예를 잃은 것이니, 이왕(夷王) 이후로부터 시작되었다. 제후가 궁현(宮懸) 악기를 사용하고, 제사에 흰 소를 쓰며, 옥경(玉磬)을 치고, 주홍색 방패에 석(錫)을 장식하고, 면류관을 쓰고 《대무(大武)》 춤을 추며, 대로(大路) 수레를 타는 것은 모두 제후가 예를 넘은 행위이다. 대문을 세우고 문 안에 병풍을 두며, 반점(反坫)을 설치하고, 수놓은 붉은색 중의(中衣)를 입는 것은 모두 대부가 예를 넘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천자가 쇠약해지면 제후가 예를 넘고, 대부가 강해지면 제후가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작위로 높이고, 서로 재물로 만나며, 서로 이익으로 뇌물을 주고받아, 천하의 예제가 어지러워졌다. 제후는 감히 천자를 제사하지 못하고, 대부는 감히 제후를 제사하지 못한다. 그런데 제후의 종묘를 대부의 집에 세우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니, 이것은 삼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천자는 전대(前代) 두 왕조의 후손을 보존하나, 여전히 현자를 존숭하는 것이지만, 현자를 존숭함이 두 대를 넘지 않는다. 제후는 기거하는 제후(寄公)를 신하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날에 기거하는 제후의 작위는 후손에게 전하지 않는다. 군주가 남쪽을 향하는 것은 양(陽)에 응하는 뜻이다. 신하가 북쪽을 향하는 것은 군주에게 응하는 것이다. 대부의 가신(家臣)은 계수례(稽首禮)를 행하지 않으니, 가신을 존중하지 않음이 아니라, 군주의 예를 피하기 위함이다. 대부가 진헌할 때 직접 가지 않고, 군주가 상을 줄 때 직접 절하지 않으니, 군주가 자신에게 답례할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마을 사람들이 나례(儺禮)를 행하여 역귀를 쫓을 때, 공자께서 조복(朝服)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계셨으니, 이는 가신(家神)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례(射禮)에 음악을 맞추니, 무엇으로 음악을 듣고 무엇으로 활을 쏘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여, 그에게 활을 쏘게 하되, 만약 능히 못하면 사양하여 병이 있다고 하라. 이것이 남자가 태어나면 문 왼쪽에 활을 거는 뜻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재계(齋戒)를 사흘 동안 하고 하루 동안 일을 행하되, 오히려 공경하지 못할까 걱정하는데, 이틀 동안 북을 치는 것은 어찌 옳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역제(繹祭)를 고문(庫門) 안에서 행하고, 방제(祊祭)를 동쪽에서 행하며, 조정 시장을 서쪽에 세우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사제(社祭)는 토신(土神)을 제사하며 음(陰)에 주관한다. 군주가 남쪽을 향해 북쪽 벽 아래에 서는 것은 음에 응하는 뜻이다. 제사에 갑일(甲日)을 쓰는 것은 간지(干支)의 첫날을 쓰기 때문이다. 천자의 태사(太社)는 반드시 서리와 이슬과 바람과 비를 받아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게 한다. 그러므로 망국의 사(社)는 지붕을 덮어서, 그것이 하늘의 양기를 받지 못하게 한다. 은(殷)나라의 박사(薄社)는 북쪽 창문을 내어, 음기를 밝게 한다. 사(社)는 땅의 도를 신성하게 하는 것이다. 땅은 만물을 싣고, 하늘은 형상을 드러낸다. 땅에서 재물을 취하고, 하늘에서 법칙을 취하므로, 하늘을 높이고 땅을 가까이하여, 백성들에게 잘 보답하도록 가르친다. 한 집의 주인은 중류(中溜)를 제사하고, 한 나라의 주인은 사(社)를 제사하니, 이것은 근본을 나타냄이다. 오직 사(社)의 일을 위해서만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선다. 오직 사전(社田, 사를 위한 사냥)을 위해서만 온 나라 사람들이 참여한다. 오직 사제(社祭)만을 위해 구승(丘乘)의 사람들이 함께 제물을 공급하니, 이것은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계춘(季春) 석 달에 불을 꺼내어, 들풀을 태운다. 그런 다음 전차(戰車)와 부세(賦稅)를 점검하고 군대를 정돈하여, 군주가 친히 사(社) 앞에서 맹세하며, 군대를 훈련시킨다. 그들로 하여금 좌로 향하고 우로 향하며, 앉고 일어나게 하여, 그들이 변화에 익숙한 정도를 살피고, 금수(禽獸)를 몰아서 보여주며, 이익으로 그들을 유인하여, 명령을 어기지 않는 것을 살핀다. 그들에게 뜻에 따르도록 요구하고, 얻은 것을 탐내지 않게 하니, 이런 군대로 싸우면 이기고, 제사하면 복을 받는다.

천자가 사방을 순행할 때는 먼저 번시하여 하늘에 제사 지낸다. 교제(郊祭)는 긴 낮의 도래를 맞이하는 것이며, 하늘에 엄숙히 보답하면서 태양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 남쪽 교외에 제사 구역을 정하는 것은 양의 자리로 나아감이다. 땅을 쓸고 제사 지내는 것은 질박함을 중시함이다. 제기(祭器)는 질그릇과 박을 사용하여 하늘과 땅의 본성을 상징한다. 교외에서 거행되므로 교(郊)라 한다. 제사용 희생은 붉은색을 사용하는데, 붉은색을 숭상함이다. 작은 송아지를 사용하는 것은 진실됨을 중히 여김이다. 교제(郊祭)에 신일(辛日)을 사용하는 것은 주(周)나라가 교제를 시작할 때 동지(冬至)에正好 맞았기 때문이다. 교제의 날짜를 점칠 때는 조묘(祖廟)에서 명령을 받고, 니묘(禰廟)에서 거북점을 치는데, 이는 조상을 존중하고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의미이다. 점을 치는 날, 왕은 택궁(澤宮)에 서서 직접 맹세의 명령을 듣는데, 이는 가르침과 간언을 받아들이는 의미이다. 고문(庫門) 안에서 명령을颁布하여 백관(百官)에게 경계한다. 대묘(大廟)에서 명령을颁布하여 족중(族衆)에게 경계한다. 제사 당일, 왕은 피변(皮弁)을 쓰고 제사 보고를 듣는데, 이는 백성에게 위에 대한 외경심을 보임이다. 상사(喪事)가 있는 자는 울지 않고, 상복(喪服)을 입지 못하며, 길을普遍히 쓸고 새롭게 하며, 마을에 전촉(田燭)을 설치한다.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이 임금을 따른다. 제사 당일, 왕은 곤복(袞服)을 입어 하늘을 상징하고, 면(冕)을 쓰며, 면 앞뒤로 열두 줄의 옥술을 드리우는데, 이는 하늘의 수이다. 소거(素車)를 타고, 그 질박함을 중히 여긴다. 깃발은 열두 개의 띠를 달고, 용 무늬를 그리고 해와 달을 설치하여 하늘을 상징한다. 하늘이 하늘의 모습을 드러내니, 성인이 이를 본받는다. 교제는 하늘의 도리를 밝히는 것이다. 하느님(天帝)에게 제사 지내는 소가 길하지 않으면, 그것을 후직(后稷)에게 제사 지내는 소로 쓴다. 하느님에게 제사 지내는 소는 반드시 척궁(滌宮)에서 석 달을 길러야 하고, 후직에게 제사 지내는 소는 갖추기만 하면 된다. 이는 하늘의 신(天神)과 사람의 귀신(人鬼)을 구별하는 것이다. 만물은 하늘에 근본하고, 사람은 조상에 근본하니, 이것이 조상으로 하느님(上帝)에게 배향(配享)하는 이유이다. 교제(郊祭)는 엄숙히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천자의 대랍제(大蜡祭)는 여덟 신(神祇)에게 제사 지낸다. 이기씨(伊耆氏)가 랍제(蜡祭)를 처음 만들었는데, 랍(蜡)은 구함(求)의 뜻이다. 해마다 십이월에 만물을 모아서 제사하기를 구한다. 랍제(蜡祭)의 제사는 선색(先嗇)을 주로 하고, 사색(司嗇)을 아울러 제사한다. 백곡(百穀)을 제사하여 선색(先嗇)에 보답한다. 농관(農官)과 전준(田畯), 전사(田舍), 전간(田間)의 길, 금수(禽獸)를 제사하니, 이는 인(仁)이 지극하고 의(義)가 다함이다. 옛날 군자는 그들을 부렸으면 반드시 보답했다. 고양이를 맞이하는 것은 들쥐를 먹기 때문이고, 호랑이를 맞이하는 것은 들돼지를 먹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맞이하여 제사한다. 제방(堤防)과 수로(水路)를 제사하는 것은 그 작용에 보답함이다. 축사(祝辭)에 이르기를 "흙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물은 제 도랑으로 돌아가며, 벌레는 일어나지 말고, 풀과 나무는 제 습지로 돌아가라."고 한다. 피변(皮弁)을 쓰고 소복(素服)을 입고 제사한다. 소복(素服)은 마침을 보내는 데 쓰인다. 갈대(葛帶)와 진나무 지팡이(榛木杖)를 사용하는 것은 상례(喪禮)의 감소(減殺)이다. 랍제(蜡祭)는 인(仁)이 지극하고 의(義)가 다함이다. 황의(黃衣)를 입고 황관(黃冠)을 쓰고 제사하는 것은 농부(農夫)를 쉬게 함이다. 농부는 황관(黃冠)을 쓰는데, 황관(黃冠)은 들판의 복장이다. 대라씨(大羅氏)는 천자의 새와 짐승을 관장하는 관원이니, 제후(諸侯)가 진상하는 새와 짐승이 모두 그에게 속한다. 풀삿갓을 쓰고 오는 것은 들판의 복장을 존중함이다. 라씨(羅氏)가 사슴과 여자를 바치고, 빈객(賓客)에게 고하여 그들이 전하게 한다. 제후(諸侯)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사냥을 좋아하고 여색을 좋아하는 자는 나라를 망칠 것이다."라고 한다. 천자가 과일과 채소를 심는 것은 종자를 저장하지 않는 작물이다. 팔랍(八蜡)으로 사방의 수확을 기록한다. 사방의 풍년이 순조롭지 않으면 팔랍(八蜡)을 두루 제사하지 않는데, 이는 백성의 재물을 신중히 쓰기 위함이다. 풍년이 순조로운 곳은 그 랍제(蜡祭)를 두루 제사하는데, 이는 백성을 권장하기 위함이다. 랍제(蜡祭)가 끝나면 저장하고, 백성의 휴식이 끝난다. 그러므로 랍제(蜡祭) 후에는 군자가 노역(勞役)을 일으키지 않는다.

항상 두는 두(豆) 속의 짠 채소(菹齏)는 물의 순화(順和)한 기운의 산물이고, 그 육장(肉醬)은 육지의 산물이다. 더하여 두는 두(豆) 속의 것은 육지의 산물이고, 그 육장(肉醬)은 물의 산물이다. 변(籩)과 두(豆)가 진상하는 것은 물과 땅의 산물이니, 감히 평소의 더러운 맛을 쓰지 않고 품종의 다양함을 중히 여기니, 이는 신명(神明)과 사귀는 의미이지 맛을 구하는 방법이 아니다. 선왕(先王)이 진상하는 음식은 먹을 수 있으나 탐할 수 없다. 곤복(袞冕)과 노거(路車)는 늘어놓을 수 있으나 즐길 수 없다. 무무(武舞)는 웅장하나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없다. 종묘(宗廟)의 위엄은 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없다. 종묘의 기구는 사용할 수 있으나 편리를 탐할 수 없으니, 신명(神明)과 사귀는 데 쓰는 것은 편안하고 즐거운 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례(酒醴)는 비록 아름다우나 현주(玄酒)와 명수(明水)를 으뜸으로 삼으니, 이는 오미(五味)의 근본을 중히 여김이다. 폐불문수(黼黻文繡)가 비록 화려하나 굵은 베(麤布)를 으뜸으로 삼으니, 이는 여공(女工)의 시작으로 돌아감이다. 관석(莞席)과 죽석(竹席)이 비록 편안하나 포초(蒲草), 도초(稻草), 맥절(麥秸)을 으뜸으로 삼으니, 이는 제사의 질박함을 나타냄이다. 대갱(大羹)은 양념을 가하지 않으니, 그 질박함을 중히 여김이다. 대규(大圭)는 조각하지 않으니, 그 질박함을 아름답게 여김이다. 단칠(丹漆)과 조각한 기명(几案)이 비록 화려하나 소거(素車)를 타니, 이는 소박함을 숭상하고 오직 질박함만을 중히 여김이다. 신명(神明)과 사귀는 데 쓰는 것은 편안하고 더럽혀지는 것을 지나치게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 연후에야 마땅하다. 정(鼎)과 조(俎)는 홀수(單數)를 쓰고, 변(籩)과 두(豆)는 짝수(雙數)를 쓰니, 이는 음양(陰陽)의 이치이다. 황목(黃目)은 울기(鬱氣)를 담는 상등(上等)의 술 그릇이다. 황(黃)은 중앙(中央)의 색이고, 목(目)은 기운이 맑은 상징이다. 뜻은 중앙의 맑은 기운을 떠서 밖에 맑음을 나타냄이다. 하늘에 제사할 때, 땅을 쓸고 제사 지내는 것은 오직 질박함에 있을 뿐이다. 초장(醋醬)이 비록 맛있으나 전염(煎鹽)을 으뜸으로 삼으니, 이는 천연(天然)의 산물을 중히 여김이다. 할도(割刀)가 비록 실용적이나 난도(鸞刀)를 귀하게 여기니, 이는 그 의미를 중히 여김이다. 소리가 화합한 연후에야 자른다.

관례(冠禮)의 의미는 처음 가관(加冠)할 때 치포관(緇布冠)을 쓴다. 태고(太古) 시대에는 흰 베로 관(冠)을 만들고, 재계(齋戒)할 때 검게 물들였다. 관(冠)의 띠(帽帶)가 드리워진 부분에 대해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일을 듣지 못했다. 가관(加冠)한 후에 치포관(緇布冠)을 버려두어도 가하다."고 하셨다. 적자(嫡子)는 조계(阼階)에서 가관(加冠)하니, 이는 그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주인(主人)이 될 것을 밝힘이다. 객위(客位)에서 그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그가 성인(成人)이 되었음을 가상히 여김이다. 세 번 가관(加冠)하여 한 번 더 높아짐은 그에게 원대한 뜻을 알게 함이다. 가관(加冠)한 후에 자(字)를 지어 주는 것은 그의 명(名)을 존중함이다. 위모관(委貌冠)은 주(周)나라의 제도이다. 장보관(章甫冠)은 은(殷)나라의 제도이다. 무추관(毋追冠)은 하나라(夏后氏)의 제도이다. 주(周)나라는 변(弁)을 쓰고, 은(殷)나라는 후(冔)를 쓰고, 하나라(夏)는 수(收)를 썼다. 삼대(三代)의 제왕(帝王)은 모두 피변(皮弁)과 소적(素積)을 같이 썼다. 대부(大夫)의 관례(冠禮)는 없으나, 대부(大夫)의 혼례(婚禮)는 있다. 옛날에는 오십 세(五十歲) 이후에야 작위(爵位)를 받을 수 있었으니, 어찌 대부(大夫)의 관례(冠禮)가 있겠는가? 제후(諸侯)의 관례(冠禮)는 하나라(夏) 말년에 창시된 것이다. 천자의 적자(嫡子)는 신분이 사(士)와 같다. 천하에 태어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은 없다. 제후(諸侯)가 세대(世代)를 이어 서는 것은 현덕(賢德)을 본받기 위함이다. 관작(官爵)으로 사람을 봉하는 것은 덕행(德行)의 높낮이에 따라 차등을 둠이다. 죽은 후에 시호(諡號)를 주는 것은 지금의 행사이고, 옛날에는 살아서 작위(爵位)가 없으면 죽어서 시호(諡號)가 없었다. 예(禮)가 존중하는 것은 그 의리(義理)를 존중함이다. 만약 의리(義理)를 잃고 오직 그 예의(禮儀) 형식만을 진열한다면, 이는 축사(祝史)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 형식은 진열할 수 있으나, 그 의리(義理)는 알기 어렵다. 의리(義理)를 알고 공경히 지키는 것이 바로 천자(天子)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천지의 기운이 합한 후에야 만물이 비로소 번성한다. 혼례는 만대의 전통이 시작되는 근본이다. 다른 성씨의 여자를 취하는 것은 소원한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 남녀의 구별을 중히 여기기 위함이다. 납폐의 예물은 반드시 정성스럽고 성의가 있어야 하며, 말에는 후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여자에게 바르고 곧음을 가르쳐야 하니, 곧음은 사람을 섬기는 근본이요, 곧음은 부인의 덕이다. 한 번 더불어 먹고 더불어 살며 부부가 되면 종신토록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편이 죽으면 다시 시집가지 않는다. 남자가 친히 영접하러 가되 남자가 여자보다 앞서는 것은 강유의 의리를 드러내는 도리이다. 하늘이 땅보다 높고 임금이 신하보다 높음도 그 이치는 같다. 예물(기러기)을 가지고 와서 서로 뵘은 공경과 남녀의 구별을 밝히기 위함이다. 남녀에 구별이 있은 후에야 부자 사이가 친밀해지고, 부자가 친밀해진 후에야 도의가 생기며, 도의가 생긴 후에야 예가 일어나고, 예가 일어난 후에야 만물이 안정된다. 구별이 없고 도의가 없으면 이는 금수와 같은 행동이다. 새신랑이 친히 수레를 몰고 올라타는 끈을 신부에게 건네주는 것은 친히 하려는 뜻이다. 친히 하려 함은 그를 사랑하려 함이다. 공경하면서도 친히 하니 이가 곧 선왕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대문을 나서면 신랑이 앞서가고, 남자가 여자를 인솔하며 여자가 남자를 따르니 부부의 도의가 이로부터 시작된다. 부인이란 남을 따르는 사람이니, 어릴 때는 아버지와 형을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 이른바 ‘부(夫)’는 ‘부(扶, 붙잡아 도움)’라는 뜻이요, 이른바 ‘부’는 지혜로써 남을 인솔한다는 뜻이다. 검은 빛깔의 제복을 입고 재계함은 귀신과 음양을 대하듯 공경함이다. 그녀가 장차 사직의 보좌와 선조의 후계가 될 터이니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부가 한 소반을 함께 쓰는 것은 높낮이가 같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부인에게는 작위가 없고 남편의 작위를 따르며, 자리에서는 남편의 나이 항렬에 따라 배열한다. 제사에 쓰는 그릇은 도기(陶器)와 표주박(匏)인데, 이는 예의 본래 모양을 숭상함이다.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삼대가 소반을 만들 적에도 도기와 표주박을 사용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신부가 세수하고 양치한 후 시부모에게 음식을 올린다. 시부모가 다 드신 후 신부가 그 나머지를 먹는 것은 시부모가 그를 자기 사람으로 여김을 나타낸다. 시부모는 서쪽 섬돌로 내려가고 신부는 동쪽 섬돌로 내려가니, 이는 집안의 관리 권한을 그에게 넘겨줌이다. 혼례에 음악을 쓰지 않는 것은 혼례가 음(陰)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양(陽)에 속한다. 혼례를 축하하지 않는 것은 이가 인륜이 교체되는 차서이기 때문이다.

유우씨(有虞氏)의 제사는 냄새를 숭상하였으니, 생피, 생고기, 설익은 고기로 제사함은 냄새를 쓰기 위함이었다. 은나라는 소리를 숭상하였으니,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아직 발산되기 전에 먼저 음악을 연주하여 마음을 씻고 정화하며, 음악을 세 번 연주한 후에야 나가서 희생을 맞이하였다. 소리의 부르짖음은 하늘과 땅 사이에 고하기 위함이었다. 주나라는 향기를 숭상하였으니, 관제(灌祭) 때 울창(鬱鬯)의 향기를 쓰는데, 울금초를 합친 창주(鬯酒)이다. 향기는 음(陰)에 속하므로 깊은 샘물 속에 통할 수 있다. 관제 때는 규장(圭璋)으로 만든 술그릇을 쓰니, 이는 옥의 정기를 사용함이다. 관제를 한 후에야 희생을 맞이하니, 이는 음기를 보내기 위함이다. 쑥(蕭蒿)을 기장과 피에 합쳐 태우니, 향기는 양(陽)에 속하므로 벽과 집 사이에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물을 진설한 후에 쑥을 기장과 피에 합친 누린내 나는 향기를 태운다. 무릇 제사에 이 모든 것을 삼가 행한다. 넋과 기운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와 백(魄)은 땅으로 내려간다. 그러므로 제사에는 음과 양 양쪽에 구하는 뜻이 있다. 은나라는 먼저 양에 구하고, 주나라는 먼저 음에 구하였다. 방 안에서 고하고 축원하며, 당 위에 시(尸)의 자리를 베풀고, 뜰에서 희생을 잡으며, 짐승의 머리를 방 안으로 올린다. 정제(正祭) 때는 신주 앞에서 고하고, 색제(索祭) 때는 묘문 곁에서 고한다. 신령이 어디에 계신지 알지 못하여, 저쪽에 계신가? 이쪽에 계신가? 혹은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신가? 빙(祊)에서 제사함은 아마도 먼 곳에 구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이른바 ‘빙’은 ‘멀다’는 뜻이요, 이른바 ‘흔(肵)’은 ‘공경하다’는 뜻이다. ‘부(富)’는 ‘복(福)’이요, ‘수(首)’는 ‘곧다’는 뜻이다. ‘상(相)’은 신령이 제물을 즐기시도록 권하는 뜻이다. ‘가(嘏)’는 ‘길다’와 ‘크다’는 뜻이다. ‘시(尸)’는 신의 형상을 진열함이다. 털과 피로 제사함은 짐승의 안과 밖이 모두 온전하고 흠이 없음을 고함이다. 안팎이 온전함을 고함은 순일(純一)의 도를 숭상함이다. 피로 제사함은 피 속에 생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사에 폐, 간, 심장을 쓰는 것은 이 생기가 주재하는 장기를 중히 여김이다. 기장과 피 제사에 폐를 더하고, 오제(五齊)에 명수(明水)를 더하는 것은 이로써 음기에 보답함이다. 율료(膟菺, 창자 사이 기름)를 취하여 불에 태워 올리고 짐승의 머리를 올리는 것은 이로써 양기에 보답함이다. 명수로 오제를 조화(調和)함은 그 신선함을 중히 여김이다. 무릇 ‘세(涗, 맑게 함)’는 모두 그것을 신선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것을 ‘명수’라 부르는 것은 주인의 청결한 덕이 이 물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임금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땅에 대며, 팔을 걷어올리고 친히 고기를 자르는 것은 공경이 지극함이다. 공경이 지극함은 곧 순복(順服)이다. 절함은 순복을 나타내고, 머리를 땅에 댐은 순복이 지극함이며, 팔을 걷어올림은 순복이 극에 이름이다. 제사 때 스스로 ‘효손’, ‘효자’라 일컬음은 도의에 따라 부름이요, ‘증손 아무개’라 일컬음은 나라에 대한 칭호이다. 제사 중의 찬례자는 주인이 다만 자기의 공경을 드러내고 자기의 아름다운 뜻을 다할 뿐이니, 서로 사양할 필요가 없다. 생고기, 토막 낸 고기, 설익은 고기, 익힌 고기로 제사함이 어찌 신령이 무엇을 즐기실지 알겠는가? 다만 주인이 스스로 공경하는 뜻을 다할 뿐이다. 가(斝)와 각(角)을 들어 올려 시(尸)에게 자리에 앉기를 고하고 편안히 한다. 옛날에 시는 할 일이 없으면 서 있고, 일이 있은 후에야 앉았다. 시는 신의 상징이다. 축(祝)은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다. 술을 거를 때 띠풀(茅)을 쓰는 것은 술을 맑게 하기 위함이다. 전주(醆酒)는 청주(清酒)로 조화하고, 즙헌(汁獻, 울창주)은 전주로 조화하는데, 이는 마치 청주와 전주로 오래된 탁주(舊澤酒)를 조화하는 것과 같다. 제사에는 복을 빌고(求福), 은혜에 보답하며(報恩), 재앙을 없애고 막기를 비는(祈消災避禍) 것이 있다. 재계할 때 검은 옷을 입는 것은 음(陰)으로써 뜻을 모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사흘 동안 재계하면 반드시 자기가 제사하는 대상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