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해
공자가 말했다: “한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 교화의 성과를 알 수 있다.” 그곳 백성들이 온화하고 돈후(敦厚)하면 이는 『시경』 교화의 결과이며, 소통하고 원대함을 알면 이는 『서경』 교화의 결과이며, 널리 박학하고 온량(易良)하면 이는 『악경』 교화의 결과이며, 청정하고 정미(精微)하면 이는 『역경』 교화의 결과이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장엄하고 공경하면 이는 『예경』 교화의 결과이며, 문사를 잘 엮고 역사적 사실에 비부(比附)하면 이는 『춘추』 교화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시경』의 부족은 사람을 우둔하게 만들고, 『서경』의 부족은 사람을 허망하게 만들고, 『악경』의 부족은 사람을 사치하게 만들고, 『역경』의 부족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도(正道)를 해치게 하고, 『예경』의 부족은 사람을 번쇄하게 만들고, 『춘추』의 부족은 사람을 혼란하게 만든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온화하고 돈후하면서도 우둔하지 않다면, 이는 그가 『시경』에 통달했음을 의미한다. 소통하고 원대함을 알면서도 허망하지 않다면, 이는 그가 『서경』에 통달했음을 의미한다. 널리 박학하고 온량하면서도 사치하지 않다면, 이는 그가 『악경』에 통달했음을 의미한다. 청정하고 정미하면서도 정도를 해치지 않는다면, 이는 그가 『역경』에 통달했음을 의미한다. 공손하고 검소하며 장엄하고 공경하면서도 번쇄하지 않다면, 이는 그가 『예경』에 통달했음을 의미한다. 문사를 잘 엮고 역사적 사실에 비부하면서도 혼란하지 않다면, 이는 그가 『춘추』에 통달했음을 의미한다.
천자는 하늘, 땅과 더불어 셋을 이루므로, 그의 덕행은 천지와 짝하고, 이익은 만물에 두루 미치며, 해와 달과 더불어 빛을 함께하고, 그 광명은 사해를 비추되 미세한 곳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에는 인(仁), 성(聖), 예(禮), 의(義)의 질서를 강구하고, 한가로이 있을 때에는 아악(雅樂)과 송가(頌歌)를 듣고, 걸을 때에는 패옥(佩玉)이 부딪치는 소리가 있으며, 수레에 오를 때에는 난령(鸞鈴)과 화령(和鈴)의 소리가 있다. 거동에는 예의가 있고, 나아가고 물러남에는 법도가 있으며, 백관(百官)은 각각 그 직분에 알맞고, 모든 일은 그 질서를 얻는다. 『시경』에 이르길 “선인 군자는 그 의태에 착오가 없도다. 그 의태에 착오가 없어야 비로소 사방의 나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러한 경우를 말한 것이다. 호령을 내리면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을 ‘화(和)’라 하고, 위아래가 서로 친애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백성들이 구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신(信)’이라 하고, 천지간의 재앙을 제거하는 것을 ‘의(義)’라 한다. 의와 신, 화와 인은 왕업(王業)과 패업(霸業)을 이루는 도구이다. 백성을 다스릴 뜻이 있으나 이러한 도구가 없다면 일을 이룰 수 없다.
예(禮)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마치 저울이 무거움과 가벼움을 재는 것과 같고, 먹줄이 곧고 굽음을 재는 것과 같고, 컴퍼스와 곱자가 모나고 둥금을 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저울이 확실히 걸려 있으면 가볍고 무거움으로 사람을 속일 수 없고, 먹줄이 확실히 펴져 있으면 곧고 굽음으로 사람을 속일 수 없고, 컴퍼스와 곱자가 확실히 설치되어 있으면 모나고 둥금으로 사람을 속일 수 없으며, 군자가 예의를 명확히 살피면 간사한 일로 그를 속일 수 없다. 그러므로 예를 숭상하고 예를 따르는 자를 ‘유도지사(有道之士)’라 하고, 예를 숭상하지 않고 예를 따르지 않는 자를 ‘무도지민(無道之民)’이라 한다. 예는 공경하고 겸양하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종묘를 받들면 공경하게 되고, 이것으로 조정의 일을 처리하면 귀천이 각자 자리를 얻게 되고, 이것으로 가정의 관계를 처리하면 부자는 친애하고 형제는 화목하게 되고, 이것으로 향리(鄕里)의 관계를 처리하면 장유(長幼)의 차례가 있게 된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예보다 나은 것은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러한 경우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근(朝覲)의 예는 군신(君臣) 간의 의리를 밝히기 위한 것이며, 빙문(聘問)의 예는 제후들로 하여금 서로 존경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상제(喪祭)의 예는 신하의 은의(恩義)를 밝히기 위한 것이며, 향음주(鄕飲酒)의 예는 장유의 차례를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며, 혼인(婚姻)의 예는 남녀의 구별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이다. 예는 난이 발생하는 근원을 막는 것이니, 마치 둑이 물의 흐름을 막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옛 둑이 쓸모없다고 여겨 헐어버리는 자는 반드시 수재를 당하고, 옛 예가 쓸모없다고 여겨 폐지하는 자는 반드시 화란을 당한다. 따라서 혼인의 예가 폐지되면 부부의 도리가 곤궁해지고 음란하고 사악한 죄행이 늘어난다. 향음주의 예가 폐지되면 장유의 차례가 상실되고 다툼과 송사가 빈번히 발생한다. 상제의 예가 폐지되면 신하의 은의가 엷어지고 죽은 이를 저버리고 산 이를 잊는 자가 늘어난다. 빙문과 조근의 예가 폐지되면 군신의 지위가 상실되고 제후들의 행실이 나빠져 배반, 침범, 능멸의 재앙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예의 교화 작용은 미묘하여, 그것은 사악함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을 때에 막는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날로 선한 쪽으로 나아가고 악한 데서 멀어지게 하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하니, 따라서 선왕(先王)께서 예를 숭상하셨다. 『역경』에 이르길 “군자는 시작을 중시하나니, 시작에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으면 그 결과는 천 리의 차이가 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이치를 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