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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왈: “돌아가자! 군자는 은퇴하나 명성은 드러나고, 자랑하지 않으나 장엄하며, 엄하지 않으나 위엄이 있고, 말하지 않으나 신뢰를 얻는다.”
공자왈: “군자는 사람을 접함에 실족함이 없고, 표정에 실색함이 없고, 말에 실언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군자의 외모는 능히 사람을 공경하게 하고, 표정은 능히 사람을 경계하게 하며, 말은 능히 사람을 믿게 하느니라. 『형(甫刑)』에 이르기를 ‘공경하고 삼가하여 자신에게 흠잡을 말이 없게 하라.’ 하였느니라.”
공자왈: “예절에 있어 때로는 속옷을 드러내고 때로는 바른 옷을 여미니, 둘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백성들이 서로 경솔히 여기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공자왈: “제사는 지극한 정성을 다해야 하니, 곧바로 즐거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 조회는 지극히 분명해야 하니, 곧바로 게으름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느니라.”
공자왈: “군자는 삼가서 화를 피하고, 돈독함으로 가려지지 않으며, 공경함으로 치욕을 멀리하느니라.”
공자왈: “군자가 장중하고 공경하면 날로 굳세어지고, 편안하고 방종하면 날로 구차해지느니라. 군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루라도 가볍고 불안하여 마치 하루를 견디지 못할 것처럼 여기지 않느니라.”
공자왈: “재계하여 귀신을 섬기고, 길일을 가려 임금을 알현하는 것은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을까 걱정함이니라.”
공자왈: “경솔히 업신여기면, 이로 인해 죽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공자왈: “말이 없으면 서로 사귀지 않고, 예절이 없으면 서로 만나지 않나니, 이는 백성들이 서로 더럽히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역경』에 이르기를 ‘처음 점괘를 물으면 알려주나, 두세 번 거듭 묻는 것은 더럽히는 것이니, 더럽히면 알려주지 않느니라.’ 하였느니라.”
자왈: “인(仁)은 천하의 모범이요, 의(義)는 천하의 법도요, 보(報)는 천하에 이로운 원칙이니라.”
공자왈: “은혜로 은혜에 갚으면 백성들이 권면을 받고, 원한으로 원한에 갚으면 백성들이 징계를 받느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말이 없이 응답이 없음이 없고, 은혜가 없이 보답이 없음이 없다.’ 하였느니라. 『태갑(太甲)』에 이르기를 ‘백성은 군주가 없으면 서로 편안할 수 없고, 군주는 백성이 없으면 사방을 다스릴 수 없느니라.’ 하였느니라.”
공자왈: “은혜로 원한에 갚는 것은 몸을 너그럽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인자(仁者)요, 원한으로 은혜에 갚는 것은 형벌과 죽음을 받아 마땅한 자니라.”
공자왈: “사욕이 없이 인(仁)을 좋아하고, 두려움이 없이 불인(不仁)을 미워하는 자는 천하에 오직 지극히 적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의(義)를 논할 때 자신에게서 출발하고, 법을 제정할 때는 백성의 형편에 근거하느니라.”
공자왈: “인(仁)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나니, 인과 같은 효용이 있으나 그 실제는 다르니라. 인과 같은 효용이 있으면 그 인덕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인과 함께 허물을 지은 연후에야 그 인덕을 참으로 알게 되느니라. 인자는 인에 편안하고, 지자는 인을 이용하며, 죄를 두려워하는 자는 억지로 인을 행하느니라. 인은 오른손과 같고, 도는 왼손과 같으니라. 인은 곧 사람을 사랑함이요, 도는 곧 의로움이니라. 인을 치우치게 중시하는 자는 의를 가볍게 여기니, 그러므로 친근하나 공경받지 못하고, 의를 치우치게 중시하는 자는 인을 가볍게 여기니, 그러므로 공경받으나 친근하지 못하니라. 도에는 지도(至道)가 있고, 의에는 고도(考道)가 있느니라. 지도를 행하면 왕 노릇 할 수 있고, 의도를 행하면 패자(霸者)가 될 수 있으며, 고도를 행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느니라.”
자왈: “인(仁)에는 등급이 있고, 의(義)에는 길고 짧음이 있으며 크고 작음이 있느니라. 마음이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이요, 법도를 따라 힘써 선을 행하는 것은 인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풍수(豐水)에 구기(枸杞)가 있도다. 무왕(武王)이 어찌 쓰지 않으셨으랴? 그의 좋은 모략을 남겨 후손을 편안히 지키게 하셨으니, 무왕이 참으로 위대하시도다!’ 하였으니, 이는 여러 대에 은혜를 끼치는 인(仁)이니라. 『국풍(國風)』에 이르기를 ‘나는 지금 내 몸조차 편안하지 못하니, 어찌 내 후손을 돌아볼 겨를이 있으랴?’ 하였으니, 이는 오직 자신에게만 미치는 인(仁)이니라.”
공자왈: “인(仁)이라는 그릇은 매우 무겁고, 그 길은 매우 멀어서, 들어 올리는 자는 감당할 자가 없고, 걸어가는 자는 끝에 도달할 자가 없으나, 인덕을 가장 많이 취한 자가 곧 인한 자니라. 힘써 인을 행하는 자는 또한 어렵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군자는 의(義)의 기준으로 사람을 재면 합격자를 찾기가 어렵고, 사람 자신의 기준으로 사람을 요구하면 현명한 자를 알 수 있느니라.”
공자왈: “마음에 인덕(仁德)을 편안히 여기는 자는 천하에 오직 지극히 적은 사람뿐이니라. 『대아(大雅)』에 이르기를 ‘덕은 터럭처럼 가벼우나, 백성 중에 그것을 들어 올릴 자가 드물도다. 내가 생각하고 헤아리건대, 오직 중산보(仲山甫)만이 그것을 들어 올렸으나, 애석하게도 그를 도울 자가 없었도다.’ 하였느니라.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높은 산은 우러러 보고, 큰 길은 걸어갈 수 있도다.’ 하였느니라.”
공자왈: “『시경』은 인(仁)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좋아하였도다. 의(義)의 길을 향해 나아가다 중도에 그쳐 버리고, 자신이 이미 늙었음을 잊고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지 못하면서도 부지런히 힘써 날마다 게을리하지 않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치느니라.”
공자왈: “인(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지 오래되었도다!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바른 도를 잃었나니, 그러므로 인자의 허물은 설명하기 쉬우니라.”
공자왈: “공경은 예(禮)에 가깝고, 검소는 인(仁)에 가깝고, 신실은 인정에 가까우니, 공경하고 겸양하여 일을 행하면 비록 허물이 있더라도 심각하지 않으니라. 공경은 허물을 줄이고, 인정은 믿을 수 있으며, 검소는 남에게 용납되기 쉬우니, 이러한 방식으로 허물을 범하는 자는 또한 적지 아니한가? 『시경』에 이르기를 ‘온화하고 공경하는 사람은 덕의 기초이로다.’ 하였느니라.”
공자왈: “인(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지 오래되었으나, 오직 군자만이 능히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가 능히 하는 것으로 남을 책하지 않고, 남이 능히 못하는 것으로 남을 욕되게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은 행동의 규범을 제정함에 자기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백성들로 하여금 권면하고 부끄러워하며 치욕을 느껴 그의 가르침을 행하게 하느니라. 예(禮)로 절제하고, 신(信)으로 결집하며, 용모로 꾸미고, 옷으로 변화시키며, 벗으로 독려하여 백성들이 하나의 덕을 가지게 하려 하였느니라. 『소아(小雅)』에 이르기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그 옷을 입으면 군자의 용모로 꾸미고, 군자의 용모를 가지면 군자의 말로 꾸미며, 군자의 말을 이루면 군자의 덕으로 채우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그 옷을 입고도 그 용모가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그 용모가 있고도 그 말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며, 그 말이 있고도 그 덕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그 덕이 있고도 그 행실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상복을 입으면 슬픈 표정이 있고, 예관을 쓰면 공경하는 표정이 있으며, 갑옷을 입으면 욕되지 않는 표정이 있느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사다새가 어량 위에 있으나 날개를 적시지 않고, 덕이 없는 자는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없도다!’ 하였느니라.”
자왈: “군자가 말하는 의(義)는 귀천(貴賤)의 사람들이 천하에서 할 일이 있음을 이르느니라. 천자가 친히 농사를 지어 제물과 향주로 상제(上帝)를 섬기니, 그러므로 제후들이 부지런히 보좌하여 천자를 섬기느니라.”
공자왈: “아래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를 섬김에, 비록 백성을 보호하는 큰 덕이 있더라도 감히 백성을 다스리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나니, 이는 인(仁)의 두터움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공경하고 검소하여 인을 행하고, 신실하고 겸양하여 예를 행하느니라. 자기 일을 스스로 높이지 않고, 자기 몸을 스스로 올리지 않으며, 직위에서 물러나 욕심을 줄이고, 어진 이를 양보하며, 자기를 낮추고 남을 존중하며, 조심하고 삼가서 의(義)를 두려워하여 이로써 임금을 섬기기를 구하느니라. 뜻을 얻었을 때 이와 같이 하고, 뜻을 얻지 못했을 때도 이와 같이 하여 이로써 천명을 따르느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무성한 칡넝쿨이 나뭇가지와 줄기를 감쌌도다. 온화하고 편안한 군자는 복을 구하되 바른 도를 어기지 않도다.’ 하였으니, 이는 순(舜), 우(禹), 문왕(文王), 주공(周公)을 말함이리라! 그들은 백성을 다스리는 큰 덕이 있고, 임금을 섬기는 조심성이 있느니라. 『시경』에 이르기를 ‘이 문왕이 조심하고 삼가며, 밝고 크게 상제를 섬겨 많은 복을 얻었고, 그 덕이 바른 도를 어기지 않아 사방의 제후들이 귀순하였도다.’ 하였느니라.”
공자왈: “선왕(先王)은 시호(諡號)로써 이름을 높였으니, 하나의 아름다운 글자로 요약하여 이름이 실제보다 지나침을 부끄러워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자기 일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 공을 높이지 않아 실제에 부합하게 하며, 잘못된 행동이 있으면 따르지 않아 후덕함에 처하며, 남의 선행을 드러내고 남의 공을 칭송하여 예로써 어진 이에게 양보하느니라. 그러므로 군자는 비록 스스로 낮추나 백성은 그를 존경하느니라.”
공자왈: “후직(后稷)은 천하의 창업자이니, 어찌 한 손과 한 발의 작용에 그치랴! 다만 자기의 행실이 명성보다 지나치기를 바랐으므로, 스스로를 농사에 능한 자라 일컬었느니라.”
자운이 말하였다: “군자가 말하는 인(仁)은 아마도 매우 어려운 것일 것입니다! 《시경》에 이르길, ‘온화하고 가까이하기 쉬운 군자는 백성의 부모이다. 화락함으로써 권면하고 교화하며, 평이함으로써 기쁘고 안정되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우면서도 폐함이 없고, 예절이 있으면서도 친근하며; 위엄 있고 엄숙하면서도 편안하고, 효성과 자애로우면서도 공경합니다. 백성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존엄함과 어머니의 친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한 뒤에야 비로소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지극한 덕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함은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무능한 이를 멀리하며;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함은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무능한 이를 불쌍히 여깁니다. 어머니는 친근하지만 존경받지 못하고, 아버지는 존경받지만 친근하지 못합니다. 물은 백성에게 친근하지만 존경받지 못하고, 불은 존경받지만 친근하지 못합니다. 흙은 백성에게 친근하지만 존경받지 못하고, 하늘은 존경받지만 친근하지 못합니다. 정령(政令)은 백성에게 친근하지만 존경받지 못하고, 귀신은 존경받지만 친근하지 못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하(夏)나라의 정치(治道)는 정령을 숭상하여 귀신을 섬기되 공경하면서도 멀리하고, 사람을 친근히 하면서 충성하며, 먼저 녹봉을 주고 나중에 위엄을 베풀며, 먼저 상을 주고 나중에 벌을 내렸으므로, 친근하지만 존경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백성의 폐단은 우둔하고 둔하며, 교만하고 거칠며, 질박하여 문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은(殷)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숭상하여 백성을 이끌어 귀신을 섬기게 하고, 먼저 귀신을 섬기고 나중에 예의를 강구하며, 먼저 벌을 내리고 나중에 상을 주었으므로, 존경받지만 친근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백성의 폐단은 방탕하여 안정되지 못하고, 남과 다투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주(周)나라 사람들은 예제를 숭상하고 베풂을 중히 여겨 귀신을 섬기되 공경하면서도 멀리하고, 사람을 친근히 하면서 충성하며, 그 상벌을 작위 등급에 따랐으므로, 친근하지만 존경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백성의 폐단은 이익을 탐하고 교활하며, 문식(文飾)하여 부끄러움을 모르고, 서로 해치며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하나라의 정치에는 경솔한 말이 없었고, 완벽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백성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그 친족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은 경솔한 예제가 없었으나, 백성에게 완벽을 요구하였습니다. 주나라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하였고, 귀신을 경솔히 하지 않았으나, 상, 작위, 형벌이 이미 다 쓰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우순(虞舜)과 하나라의 치도는 백성의 원망이 적었고, 은나라와 주나라의 치도는 폐단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우순과 하나라의 질박함, 은나라와 주나라의 문채는 모두 지극함에 이르렀습니다. 우순과 하나라는 문채가 그 질박함을 이기지 못하였고, 은나라와 주나라는 질박함이 그 문채를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자운이 말하였다: “후세에 비록 일어나는 자가 있더라도 우제(虞帝)는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천하를 다스림에, 살아서 사사로움이 없었고, 죽어서 그 아들을 후하게 대우하지 않았으며; 백성을 다스리기를 부모와 같이 하여, 애통하고 가엾이 여기는 인(仁)한 마음이 있었고, 충성으로 이롭게 하는 교화가 있었으며; 친근하면서도 존경받고, 안정되면서도 두려워하며,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애롭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지키며, 은혜를 베풀면서도 나누기를 잘하였습니다; 그의 군자는 인(仁)을 숭상하고 의(義)를 두려워하며, 허비함을 부끄러워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며, 충성하면서도 범하지 않고, 의에 맞으면서도 순종하며, 문채가 있으면서도 침착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분별이 있었습니다. 《보형(甫刑)》에 이르길, ‘도덕의 위엄이야말로 진정한 위엄이요, 도덕의 명찰(明察)이야말로 진정한 명찰이다.’라고 하였으니, 우제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자운이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먼저 자신의 의견을 올린 뒤에 절하고 몸을 바쳐서, 이로써 자신의 신실함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신하에게 책임을 요구하고, 신하는 자신의 말에 죽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녹봉을 받으면서도 허망함이 없으면, 그가 받는 죄책이 적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큰 의견이 채택되면 큰 이익을 기대하고, 작은 의견이 채택되면 작은 이익을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작은 의견으로 큰 녹봉을 받지 않고, 큰 의견으로 작은 녹봉을 받지 않습니다. 《역경》에 이르길, ‘집에 있으면서 녹봉을 먹지 않으면 길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낮은 경로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지 않고, 화려한 말을 숭상하지 않으며,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그를 통해 천거되지 않습니다. 《소아》에 이르길, ‘네 직위를 편안히 지키면, 올바른 사람이 가까이하고, 신명이 이 모든 것을 들어서, 너에게 복록을 내리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임금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간언하면 그것은 아첨이고, 가까이 있으면서 간언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익을 헛되이 누리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가까운 신하는 조화를 담당하고, 총재(冢宰)는 모든 관리를 정돈하며, 대신은 사방의 일을 생각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간언하고자 할 때는 사사로이 아뢰어야 하며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시경》에 이르길, ‘마음으로 사랑하건만, 어찌 그에게 말하지 않을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여, 어느 날에야 잊을 수 있으랴.’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나아가기는 어렵고 물러나기는 쉬우면, 관직의 질서가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기는 쉽고 물러나기는 어려우면,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 번 읍(揖)하고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고 물러나서, 이로써 혼란을 멀리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세 번 뜻이 맞지 않으면서도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그것은 이록(利祿)을 탐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탐함이 없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시작할 때는 신중하고, 끝날 때는 공경합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귀해질 수도 있고 천해질 수도 있으며, 부유해질 수도 있고 가난해질 수도 있으며,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지만, 패란(悖亂)한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임금을 섬김에, 군중에서는 위난을 피하지 않고, 조정에서는 천한 직분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 지위에 있으면서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신하를 부릴 때, 신하의 뜻에 부합하면 신중히 생각한 뒤에 따르고, 부합하지 않으면 깊이 생각한 뒤에 따르며, 일이 끝나면 물러나니, 이것이 신하의 후함입니다. 《역경》에 이르길, ‘왕후를 섬기지 않고, 고상함으로 일을 삼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오직 천자만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고, 선비는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명령이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면 신하는 명령을 따르고, 임금의 명령이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면 신하는 명령을 거역합니다. 《시경》에 이르길, ‘까치가 짝을 이루고, 메추라기도 짝을 이루네; 저 사람은 선량함이 없건만, 내가 그를 임금으로 삼았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오직 말로써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에 질서가 있을 때는 행실에 가지와 잎이 있고(충실하고 아름다움), 천하에 질서가 없을 때는 말에 가지와 잎이 있습니다(화려하고 허식). 그러므로 군자는 상복을 입은 사람 곁에서, 상사(喪事)를 도울 수 없거든 그 비용을 묻지 않고; 병든 사람 곁에서, 증여할 수 없거든 그 필요를 묻지 않으며; 손님이 왔을 때, 숙소를 마련해 줄 수 없거든 그 사는 곳을 묻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아서 담담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과 같아서 진합니다. 군자는 담담하지만 일을 이루고, 소인은 단맛 때문에 패망을 초래합니다. 《소아》에 이르길, ‘도둑의 말은 매우 달콤하나, 화란이 이로 인해 더욱 심해지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빈 말로 남을 칭찬하지 않으니, 그러면 백성이 충성하는 마음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이 춥냐고 묻거든 옷을 주고, 남이 배고프냐고 묻거든 음식을 주며, 남의 아름다운 덕을 칭찬하거든 관직을 줍니다. 《국풍》에 이르길, ‘마음에 근심이 있구나, 내게로 와서 쉬어라.’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입으로는 혜택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행하지 못하면, 원망과 재앙이 그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약속의 책임을 지느니, 차라리 원망을 받는 것을 감수합니다. 《국풍》에 이르길, ‘웃고 말하기 화락하고, 맹세하고 다짐하기 진실하였네. 그가 배반할 줄을 생각지 못했고, 배반한 일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니, 그만 두자꾸나!’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얼굴빛으로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정이 소원하면서도 외모로 가까이하는 것은, 소인에게 있어서 어찌 담을 뚫고 구멍을 파는 도둑과 같지 않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감정은 진실해야 하고, 말은 교묘해야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 삼대의 성명한 군주들은 모두 천지와 신명을 섬기면서 점치는 일을 사용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감히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으로 상제를 더럽게 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월과 시간을 범하지 않았고, 점괘의 결과를 어기지 않았다. 귀갑점과 시초점은 서로 중복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중대한 제사는 정해진 때가 있었고, 작은 제사는 정해진 때가 없어 오직 시초점으로 결정하였다. 외부 신을 제사할 때는 강일(剛日)을 쓰고, 내부 신을 제사할 때는 유일(柔日)을 썼다. 귀갑점과 시초점의 결과를 어기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사에 쓰이는 희생, 예악, 제물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따라서 귀신에게 허물을 얻지 않으며, 또한 백성들의 원망을 초래하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후직의 제사는 준비하기가 쉬웠다. 그 말씀은 공경스러웠고, 그 욕심은 검소하였으며, 그 복록은 자손에게까지 미쳤다. 《시경》에 이르기를 ‘후직이 제사를 시작하여 거의 허물과 후회가 없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자와 제후가 쓰는 기구는 위엄이 있어 사람을 외경하게 한다. 천자는 시초점을 쓰지 않고, 제후는 정해진 시초점법이 있다. 천자가 출행할 때는 시초점을 쓴다. 제후는 자기 나라 안에 있지 않을 때는 시초점을 쓰지 않지만, 침실의 방위는 점친다. 천자는 태묘의 터를 점치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공경하면 제기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일월과 시간을 폐하지 않고, 귀갑과 시초의 결과를 어기지 않으며, 이로써 군장을 공경스럽게 섬긴다. 따라서 위에 있는 자는 백성을 업신여기지 않고, 아래에 있는 자는 위에 있는 자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