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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편

상복사제

제 49 편

대체로 예(禮)의 근본은 천지(天地)를 본받고, 사시(四時)를 본받으며, 음양(陰陽)에 따르고, 인정(人情)에 합치하므로, 이를 예(禮)라 이른다. 예를 비방하는 자는 예가 생겨난 연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예에는 길례(吉禮)와 흉례(凶禮)가 각각 다른 규범이 있어 서로 혼동할 수 없으니, 이는 음양을 본받은 것이다. 상례(喪禮)에는 네 가지 제도가 있어 변화하며 때에 알맞게 하니, 이는 사시를 본받은 것이다. 은정(恩情)이 있고, 의리(義理)가 있으며, 절제(節制)가 있고, 권변(權變)이 있으니, 이는 인정을 본받은 것이다. 은정은 인(仁)이요, 의리는 의(義)요, 절제는 예(禮)요, 권변은 지(智)니, 인(仁)·의(義)·예(禮)·지(智)가 갖추어지면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완전해진다.

은정이 두터우면 상복(喪服)이 중(重)해지므로, 아버지를 위해 참최(斬衰) 삼년을 입는 것은 은정으로 제정한 것이다. 가문 내부의 다스림에는 은정이 의리를 가리지만, 가문 외부의 다스림에는 의리가 은정을 끊는다. 아버지를 섬기는 태도로 군주를 섬기되 공경함이 같으며, 지위 높은 이를 존중하고 어른을 공경함은 의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를 위해서도 참최 삼년을 입으니, 이는 의리로 제정한 것이다.

죽은 지 사흘이 지나서야 음식을 들고, 석 달이 지나서야 머리를 감으며, 일주년이 되어서야 상복을 갈아 입고 연관(練冠)을 쓰며, 슬퍼하되 천성을 해치지 않고, 죽은 이로 인해 산 이를 해치지 않는다. 상기(喪期)는 삼년을 넘기지 않으며, 거친 삼베 상복은 수선하지 않고, 무덤에 다시 흙을 더하지 않으며, 대상(大祥) 날에는 소금(素琴)을 탄다. 이는 백성들에게 상사(喪事)에 종말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니, 절제로 제정한 것이다. 아버지를 섬기는 태도로 어머니를 섬기되 사랑함은 같다.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땅에 두 명의 임금이 없으며, 나라에 두 군주가 없고, 가정에 두 존장(尊長)이 없으니, 이는 다스림을 통일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를 위해 재최(齊衰) 일년을 입는 것은, 두 존장이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상장(喪杖)은 무엇 때문인가? 작위(爵位)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죽은 지 사흘 만에 아들에게 상장을 주고, 닷새 만에 대부(大夫)에게 상장을 주며, 이레 만에 사(士)에게 상장을 준다. 혹자는 말하기를, 상장은 상사를 주관하는 자를 위한 것이라 하고, 혹자는 말하기를, 병약한 이를 돕기 위한 것이라 한다. 부인과 어린이는 상장을 쓰지 않으니, 이는 그들이 어른처럼 슬퍼하여 병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관료가 갖추어지고 모든 물건이 완비되어, 말하지 않아도 일이 잘 처리되는 경우에는 사람을 부축해 일어서게 하고, 말을 한 연후에 일이 잘 처리되는 경우에는 상장을 짚고 일어서며, 직접 일을 한 연후에 일이 잘 처리되는 경우에는 머리를 풀고 얼굴을 더럽힐 뿐이다. 대머리인 자는 마갈(麻髽)을 쓰지 않고, 곱사등이는 팔을 걷어 부치지 않으며, 절뚝발이는 뛰며 곡(哭)하지 않고, 늙고 병든 자는 술과 고기를 끊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여덟 가지 경우는 권변(權變)으로 제정한 것이다.

갓 죽었을 때는 사흘 동안 옷을 풀지 않고, 석 달 동안 슬픔을 풀지 않으며, 일주년이 되어서야 애통해하고, 삼년이 되어서야 근심한다. 이는 은정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이 줄어듦에 따라 절제를 제정하였으니, 이것이 상례를 삼년으로 정한 까닭이며, 현명한 자도 넘지 못하고, 불초한 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상례의 중용(中庸)이며, 군왕이 항상 행하는 바이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고종(高宗)이 거상(居喪)하여 효를 지키며 삼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는 그를 칭송한 것이다. 군왕이 이 예를 행하지 않는 자가 없다. 어찌하여 유독 그를 칭송하는가? 대답하건대, 고종은 곧 무정(武丁)이다. 무정은 은(殷)나라의 현명한 군왕이다. 그가 왕위를 이은 후, 자애롭고 선량하게 거상하였는데, 이때에 은나라는 쇠퇴했다가 다시 흥하고, 예제가 폐지되었다가 다시 일어났으므로, 그를 칭송한 것이다. 칭송하였으므로 《서경》에 기록하여 높였고, 그리하여 그를 고종이라 이른 것이다. 삼년의 상기(喪期)에 군주는 말하지 않는데, 《서경》에 이르기를 “고종이 거상하여 효를 지키며 삼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이는 이 뜻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말에 꾸밈이 없다”고 함은 신하에게 이른 것이다.

예제에 이르기를, 참최(斬衰)의 상(喪)을 입은 자는 ‘유(唯)’ 소리만 내고 남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며, 재최(齊衰)의 상을 입은 자는 대답할 수 있으나 먼저 말하지 않으며, 대공(大功)의 상을 입은 자는 말할 수 있으나 의논하지 않으며, 시마(緦麻)·소공(小功)의 상을 입은 자는 의논할 수 있으나 즐거운 일에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모의 상사(喪事)에는 상관(喪冠)을 쓸 때 끈으로 멜 것을 쓰고, 짚신을 신으며, 사흘 만에 죽을 먹고, 석 달 만에 머리를 감으며, 일주년이 되어 열세 달에 연관(練冠)으로 갈아 입고, 삼년에 대상(大祥) 제사를 지낸다. 이 세 단계를 마치면, 인(仁)한 자는 그에게서 사랑을 볼 수 있고, 지(智)한 자는 그에게서 이치를 볼 수 있으며, 강한 자는 그에게서 뜻을 볼 수 있다. 예로 다스리고 의로 바르게 하면, 효자(孝子), 제(弟, 공경하는 아우), 정결한 부녀를 모두 그에게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