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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편

예운

제 9 편

옛날에 공자가 납제(蜡祭)에 참여하여 빈객이 되었다. 제사가 끝난 뒤, 그는 나와 문루(門樓) 위에서 거닐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공자의 한숨은 아마도 노(魯)나라를 위함이었다. 언언(言偃)이 그 곁에 있다가 물었다. “군자께서는 어찌하여 한숨을 쉬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대도(大道)가 행해지던 시대와 하나라·은나라·주나라 삼대(三代)의 영명한 군주가 다스리던 시대, 나 구(丘)는 미처 그때에 이르지 못했으나 마음속으로는 동경하노라. 대도가 행해지던 시대에는 천하가 천하 사람들의 공유였다. 덕 있는 이를 뽑고 능력 있는 이를 천거하며, 신의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다만 제 부모만을 친애하지 않고, 다만 제 자식만을 사랑하지 않았다. 늙은이는 편안히 여생을 보내게 하고, 장년은 능력을 발휘하게 하며, 어린이는 순조롭게 자라게 하였다. 홀아비, 과부, 고아, 독로(獨老), 장애인, 병자는 모두 부양을 받았다. 남자는 각자 직분이 있고, 여자는 각자 돌아갈 곳이 있었다. 재물은 땅에 버려지는 것을 싫어했으나 반드시 자기 집에 간직할 필요는 없었다. 힘은 자기 몸에서 나오지 않음을 싫어했으나 반드시 자기 사사로움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간사한 계책이 끊겨 일어나지 않았고, 도둑질과 반란과 해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아 바깥문을 닫을 필요가 없었다. 이를 ‘대동(大同)’이라 부른다.

“지금은 대도가 이미 사라져, 천하가 한 집 한 성의 사유 재산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제 부모를 친애하고, 각자 제 자식을 사랑하며, 재물과 힘은 모두 자기를 위해 쓴다. 천자와 제후는 부자 상속과 형제 계승을 예제(禮制)로 삼는다. 성곽과 호성(護城)을 쌓아 방어를 굳게 하고, 예의(禮義)를 강기(綱紀)로 삼는다. 이로써 군신 관계를 규범하고, 부자 관계를 깊게 하며, 형제 관계를 화목하게 하고, 부부 관계를 조화롭게 한다. 이로써 제도를 세우고, 밭과 주택을 구획하며, 용자(勇者)와 지자(智者)를 존중하고, 공로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러므로 권모(權謀)가 이로 인해 생겨나고, 전쟁도 이로 인해 일어난다. 하나라의 우왕, 상나라의 탕왕, 주나라의 문왕, 무왕, 성왕, 주공이 이로 인해 걸출한 인물이 되었다. 이 여섯 군자는 예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들은 예로써 도의(道義)를 밝히고, 신의를 이루며, 허물을 밝게 살폈다. 인(仁)을 본보기로 삼고, 겸양을 강구하며, 백성에게 행실의 상규(常規)를 드러내 보였다. 만약 예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권세가 있더라도 축출되었고, 무리는 그를 재앙으로 여겼다. 이를 ‘소강(小康)’이라 부른다.”

언언이 다시 물었다. “예가 참으로 이렇게 긴급한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예는 선대 왕들이 하늘의 도리를 이어받고 사람의 정리를 다스리기 위해 쓴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잃으면 죽고, 예를 얻으면 살 수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저 쥐를 보아도 오히려 형체가 있는데, 사람이 어찌 예가 없느냐. 사람이 예가 없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는 반드시 하늘에 근원하고, 땅을 본받으며, 귀신에게 펼쳐지고, 상례·제례·사례·어례·관례·혼례·조례·빙례에 두루 통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예로써 천하에 밝히니, 이로 인해 천하 국가가 다스려질 수 있는 것이다.”

언언이 다시 물었다. “부자께서 이토록 예를 지극히 중히 여기시니, 그 이치를 들어볼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내가 하나라의 예제를 살펴보려 하여 기(杞)나라에 갔으나, 거기서는 이미 증명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역서(曆書)인 《하시(夏時)》를 얻었다. 내가 은나라의 예제를 살펴보려 하여 송(宋)나라에 갔으나, 거기서도 증명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역서인 《곤건(坤乾)》을 얻었다. 《곤건》에 담긴 이치와 《하시》에 나타난 등차(等次)에서 나는 예의 변화를 보았다.

“예는 처음에 음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기장을 불에 구워 먹고, 돼지고기를 찢어 구워 먹으며, 땅을 파서 술을 담고, 손으로 떠 마시고, 풀과 흙덩이로 북과 북채를 삼았으나, 이처럼 간소하더라도 귀신에게 공경을 표할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는 친족이 지붕에 올라가 부르짖으며 ‘아! 아무개여, 돌아오라!’고 말했다. 그런 뒤 생쌀을 죽은 자의 입에 넣고, 익힌 고기를 싸서 제물로 삼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하늘을 향해 혼을 부르고, 시체는 땅에 묻었다. 몸과 백혼(魄)은 땅으로 내려가고, 정기(精氣)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산 자는 남쪽을 향하니, 이는 모두 처음의 풍속을 이어받은 것이다.

“옛날에 선왕이 아직 궁실이 없었을 때는 겨울에는 동굴에 살고, 여름에는 나무 위에 집을 지어 살았다. 불을 이용해 음식을 가공하지 못하여, 풀과 나무의 열매, 새와 짐승의 고기를 먹고, 그 피를 마시며, 털째로 삼켰다. 삼과 실이 없어, 새 깃털과 짐승 가죽을 입었다.

“뒤에 성인이 나타나서, 불의 편리를 이용하여 금속을 녹이고, 흙을 반죽하여 대(臺)·사(榭)·궁실·문호(門戶)를 지었다. 불로 굽고, 삶고, 찌고, 볶아 음식을 만들었다. 단술과 식초를 만들고, 삼과 실을 다스려 베와 비단을 짰다. 이로써 산 사람을 기르고, 죽은 자를 장사지내며, 귀신과 상제(上帝)를 섬겼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처음의 기원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 때는 현주(玄酒, 맑은 물)를 실내에 두고, 예주(醴酒)와 전주(醆酒)를 문가에 두며, 제제(粢醍, 엷은 붉은 술)를 당 위에 두고, 징주(澄酒, 맑은 술)를 당 아래에 두었다. 희생을 진열하고 정(鼎)과 조(俎)를 갖추며, 금(琴)·슬(瑟)·관(管)·경(磬)·종(鐘)·고(鼓)를 배열하고, 축사(祝辭)와 가사(嘏辭)를 지어 상신(上神)과 선조(先祖)를 맞이했다. 이로써 군신 관계를 규범하고, 부자 관계를 깊게 하며, 형제 관계를 화목하게 하고, 상하 관계를 정돈하며, 부부가 각자 자리를 잡게 하였다. 이를 ‘하늘의 복을 받는다’고 이른다.

“제사의 칭호를 정하고, 현주로 제사하며, 희생의 피와 털을 올리고, 조 위에 생고기를 놓으며, 익힌 고기 요리를 돗자리와 함께 올리고, 거친 베로 제기를 덮으며, 빨아서 표백한 베옷을 입는다. 예주와 전주로 올리고, 구운 고기와 구운 생선을 올리며, 군주와 부인이 번갈아 올려 신령과 조상의 백혼을 즐겁게 한다. 이를 ‘합막(合莫)’이라 부른다.

“그런 뒤 물러나서, 반쯤 익힌 제물을 조화(調和)하여 익히고, 개·돼지·소·양의 지체(肢體)를 분해하여 보(簠)·궤(簋)·변(籩)·두(豆)·형(鉶) 등의 그릇에 담는다. 축사는 효도로써 신에게 고하고, 가사는 자애로써 사람에게 고한다. 이를 ‘대상(大祥)’이라 부른다. 이것이 예의 큰 완성이다.”

공자가 말했다. “아, 슬프도다! 내가 주나라의 예제를 살펴보니, 유왕과 여왕에게 무너졌다. 나는 노나라를 제외하고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노나라에서 교제(郊祭)와 체제(禘祭)를 행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는다. 주공의 도가 아마도 쇠퇴한 것이다! 기나라에서 교제를 행하는 것은 우(禹)를 제사하는 것이고, 송나라에서 교제를 행하는 것은 설(契)을 제사하는 것이다. 이는 천자가 마땅히 지켜야 할 직분이다. 그러므로 천자는 천지에 제사하고, 제후는 사직(社稷)에 제사한다.

“축사와 가사는 그 상규(常規)와 고제(古制)를 감히 바꾸지 못한다. 이를 ‘대가(大假)’라 부른다. 축사와 가사의 말을 종(宗)·축(祝)·무(巫)·사(史)에게 숨기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니, 이를 ‘유국(幽國, 어두운 나라)’이라 부른다. 전(醆)과 가(斝) 같은 천자의 그릇을 시군(尸君, 조상을 대신해 제사를 받는 자)에게 쓰게 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니, 이를 ‘천군(僭君, 참월한 군주)’이라 부른다. 면(冕)·변(弁)·병갑(兵甲)·피혁(皮革)을 사가(私家)에 간직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니, 이를 ‘협군(脅君, 군주를 위협함)’이라 부른다. 대부(大夫)의 집에 완비된 관직을 두고, 제기를 남에게 빌리지 않으며, 음악이 모두 갖추어지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니, 이를 ‘난국(亂國, 혼란한 나라)’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공가(公家)에 벼슬하는 자를 ‘신(臣)’이라 하고, 대부 집에 벼슬하는 자를 ‘복(僕)’이라 한다. 삼년상을 입은 자와 새로 혼인한 자는 일 년 동안 부역을 보내지 않는다. 상복을 입고 조정에 들어가거나, 가복(家僕)과 뒤섞여 평좌(平坐)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니, 이를 ‘군주와 신하가 나라를 같이함’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천자는 땅이 있어 그 자손을 안치하고, 제후는 봉국이 있어 그 자손을 안치하며, 대부는 채읍(采邑)이 있어 그 자손을 안치한다. 이를 ‘제도’라 부른다. 그러므로 천자가 제후의 나라에 갈 때는 반드시 제후의 조묘(祖廟)에 머물러야 하는데, 예제의 명분에 따라 들어가지 않으면 이를 ‘천자가 법과 기강을 무너뜨림’이라 부른다. 제후가 병문안이나 조상(弔喪)이 아닌데 신하의 집에 들어가면 이를 ‘군신이 서로 희롱함’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예(禮)는 군주가 쥐고 있는 큰 권병(權柄)이다. 그것으로 의혹을 분별하고 은미한 것을 밝히며, 귀신을 공경하고, 제도를 살피며, 인의(仁義)를 구별한다. 또 정사를 다스리고 군주의 자리를 안정시킨다. 그러므로 정사가 바르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가 위태롭고, 군주의 자리가 위태로우면 대신(大臣)은 배반하고 소신(小臣)은 권력을 훔친다. 형벌이 가혹하고 풍속이 문란하면 법령이 일정하지 않게 되고, 법령이 일정하지 않으면 예제(禮制)가 질서를 잃으며, 예제가 질서를 잃으면 선비들이 힘을 다하지 않고, 형벌이 가혹하고 풍속이 문란하면 백성들이 귀부(歸附)하지 않는다. 이것을 ‘치국(疵國, 병든 나라)’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정사는 군주가 몸을 편안히 하는 의지처이다. 따라서 정사는 반드시 하늘에 근원하여 그것을 본받아 정령(政令)을 내린다. 정령이 사직(社稷)에서 내려지면 땅을 본받는 것이라 하고, 조묘(祖廟)에서 내려지면 인의(仁義)라 하며, 산천(山川)에서 내려지면 흥작(興作)이라 하고, 오사(五祀)에서 내려지면 제도(制度)라 한다. 이것이 성인이 자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에 참배(參配)하고 귀신과 합하여 정사를 다스린다. 그가 보존하는 것을 두는 것이 예의 질서이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백성의 다스림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사시(四時)를 내고, 땅은 재물을 내며, 사람은 아버지가 낳고 스승이 가르친다. 이 네 가지(하늘, 땅, 아버지, 스승)를 군주가 올바르게 운용하므로 군주는 허물이 없는 지위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남이 본받는 존재이지 남을 본받는 자가 아니며, 남이 받드는 존재이지 남을 받드는 자가 아니며, 남이 섬기는 존재이지 남을 섬기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주가 남을 본받으면 허물이 있고, 남을 받들면 힘이 부족하며, 남을 섬기면 지위를 잃는다. 따라서 백성은 군주를 본받아 자신을 다스리고, 군주를 받들어 자신을 편안히 하며, 군주를 섬겨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예가 통하여 명분이 확정되니, 사람마다 군주를 위해 죽기를 즐기고 구차히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를 쓸 때에는 그 속의 기만을 제거하고, 사람의 용기를 쓸 때에는 그 속의 포노(暴怒)를 제거하며, 사람의 인애(仁愛)를 쓸 때에는 그 속의 탐욕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나라에 화患이 있을 때 군주가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을 ‘의(義)’라 하고, 대부가 종묘를 위해 죽는 것을 ‘변(變, 비상한 일)’이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하를 한 집안처럼 만들고 중국을 한 사람처럼 만들 수 있는데, 이는 주관적인 억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정(人情)을 알고 도의(道義)에 통달하며 이해(利害)를 밝히고 화환(禍患)을 꿰뚫어 본 뒤에야 가능하다.

“무엇이 인정인가?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 이 일곱 가지는 배우지 않아도 갖추어진 것이다. 무엇이 인의(人義)인가? 아버지의 자애(慈愛), 아들의 효도, 형의 선량함, 아우의 공경, 남편의 의리, 아내의 순종, 어른의 인자함, 어린이의 공손, 군주의 후함, 신하의 충성, 이 열 가지를 인의라 이른다. 신의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는 것을 인리(人利)라 이르고, 서로 다투고 서로 죽이는 것을 인환(人患)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을 다스리고 열 가지 의리를 닦으며, 신의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으며, 사양을 숭상하고 다툼을 제거하려 할 때, 예를 버리고 무엇으로 다스리겠는가? 음식과 남녀 관계는 사람의 큰 욕망이 있는 곳이고, 죽음과 가난과 고통은 사람의 큰 싫어함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욕망과 싫어함은 사람 마음의 주요 단서이다. 사람은 마음을 숨겨 헤아릴 수 없고, 선악을 마음에 감추어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완전히 탐구하려 할 때, 예를 버리고 무슨 방법으로 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은 천지의 덕(德), 음양의 교(交), 귀신의 회합(會合), 오행(五行)의 영기(靈氣)가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양기(陽氣)를 지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드리우고, 땅은 음기(陰氣)를 지녀 산천을 통해 구멍을 드러낸다. 오행을 사계절에 나누어 배열하고, 음양이 조화된 뒤에 달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보름 동안 달이 차고 보름 동안 달이 이지러진다. 오행의 운행은 서로 교대하고 서로 다한다. 오행, 사계절, 십이월(十二月)은 순환하며 서로 근본이 된다. 오성(五聲), 육률(六律), 십이율관(十二律管)은 순환하며 서로 궁(宮)이 된다. 오미(五味), 육화(六和), 십이종(十二種)의 음식은 순환하며 서로 근본이 된다. 오색(五色), 육장(六章), 십이종(十二種)의 옷은 순환하며 서로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요, 오행의 시작이며, 맛을 음미하고 소리를 분별하며 색채를 입고 살아가는 생물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일어나면 반드시 천지를 근본으로 삼고, 음양을 단서로 삼으며, 사시를 자루로 삼고, 일월성신을 기강으로 삼으며, 달을 도량으로 삼고, 귀신을 무리로 삼으며, 오행을 재질로 삼고, 예의를 도구로 삼으며, 인정을 밭으로 삼고, 사령(四靈)을 가축으로 삼는다. 천지를 근본으로 삼으므로 만물을 파악할 수 있다. 음양을 단서로 삼으므로 인정을 볼 수 있다. 사시를 자루로 삼으므로 일을 권면할 수 있다. 일월성신을 기강으로 삼으므로 사무를 배열할 수 있다. 달을 도량으로 삼으므로 공업에 한계가 있다. 귀신을 무리로 삼으므로 직사(職事)에 지킴이 있다. 오행을 재질로 삼으므로 일을 되풀이할 수 있다. 예의를 도구로 삼으므로 일을 시행하여 효과가 있다. 인정을 밭으로 삼으므로 사람이 이를 오묘하게 여긴다. 사령을 가축으로 삼으므로 음식에 근원이 있다. 무엇을 사령이라 하는가? 기린, 봉황, 거북, 용을 사령이라 한다. 그러므로 용이 가축이 되니 물고기가 놀라 도망가지 않는다. 봉황이 가축이 되니 새들이 놀라 날지 않는다. 기린이 가축이 되니 짐승들이 놀라 달아나지 않는다. 거북이 가축이 되니 인정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은 시초와 거북점을 지니고, 제사를 베풀며, 비단을 묻고, 축사(祝辭)와 고사(嘏辭)를 읽으며, 제도를 세우니, 따라서 나라에 예의가 있고, 관원에게 다스림이 있으며, 일에 직장(職掌)이 있고, 예에 질서가 있다.

“그러므로 선왕은 예가 하층 백성에게 통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교외에서 천제(天帝)를 제사함은 하늘의 자리를 정하는 것이고, 나라 안에서 사직을 제사함은 땅의 이로움을 펼치는 것이며, 조묘를 세움은 인(仁)의 근본을 삼는 것이고, 산천을 제사함은 귀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이며, 오사를 행함은 일의 근본을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축(宗祝)은 종묘에 있고, 삼공(三公)은 조정에 있으며, 삼로(三老)는 학교에 있다. 군주 앞에는 무(巫)가 있고 뒤에는 사(史)가 있으며, 복서(卜筮), 고몽(瞽矇), 우자(侑者)가 좌우에 있으니, 군주는 마음속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극한 도를 지킨다.

“그러므로 예가 교외에서 행해지면 백신(百神)이 각각 그 직분을 받고, 예가 사단에서 행해지면 백물(百物)을 다 얻을 수 있으며, 예가 조묘에서 행해지면 효자(孝慈)가 실현되고, 예가 오사에서 행해지면 법칙이 바르게 된다. 그러므로 교제, 사제, 조묘, 산천, 오사에서 보면, 이것이 의(義)의 닦음과 예(禮)의 감춤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예는 반드시 태일(太一)에 근원하여 나뉘어 천지가 되고, 운행하여 음양이 되며, 변화하여 사시가 되고, 배열하여 귀신이 된다. 그것이 내려옴을 명(命)이라 하니, 이는 하늘을 본받은 것이다.

“예는 반드시 하늘에 근원하여 움직여 땅에 이르고, 펼쳐져 일에 이르며, 변화하여 시절을 따르고, 분계와 한도에 조화되며, 사람에게 머물러 있음을 양(養)이라 하고, 그것의 시행은 재물과 힘과 사양에 의지한다: 음식, 관례, 혼례, 상례, 제례, 사례(射禮), 어례(御禮), 조례(朝禮), 빙례(聘禮)이다.

“그러므로 예의는 사람의 큰 근본이니, 신의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아 사람의 피부와 근육을 결합시키는 데 쓰인다. 또 생을 기르고 죽음을 보내며 귀신을 섬기는 큰 근본이며, 천도를 통달하고 인정에 순응하는 큰 통로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인만이 예가 폐지될 수 없음을 알기에,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잃고 목숨을 잃는 자는 반드시 먼저 예를 폐지하였다. 그러므로 예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치 술을 빚는 누룩과 같아서 군자는 그것으로 두텁고 소인은 그것으로 엷어진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은 의(義)의 강기(綱紀)와 예(禮)의 질서를 닦고 다스려서 인정(人情)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인정은 성왕의 밭이다. 예를 닦아서 그것을 갈고, 의를 베풀어서 그것에 씨를 뿌리고, 학문을 강습하여 그것을 김매고, 인(仁)을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거두어 모으며, 음악을 펼쳐서 그것을 편안하게 한다. 그러므로 예는 의의 실질이다. 의에 조화되어 부합하면, 예는 비록 선왕(先王)이 미처 제정하지 못한 것이라도 의에 따라 창제할 수 있다. 의는 사리(事理)의 경계이요, 인의 절도이다. 사리에 조화되고 인을 강구하여 그것을 얻는 자는 강성해진다. 인은 의의 근본이요, 순(順)의 드러남이니, 그것을 얻는 자는 존귀해진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되 예를 쓰지 않는 것은, 마치 쟁기와 따비 없이 밭을 가는 것과 같다. 예를 시행하되 의에 근원하지 않는 것은, 마치 밭을 갈고도 씨를 뿌리지 않는 것과 같다. 의를 시행하되 학문을 강구하지 않는 것은, 마치 씨를 뿌리고도 김매지 않는 것과 같다. 학문을 강구하되 인으로 결합하지 않는 것은, 마치 김매고도 거두지 않는 것과 같다. 인으로 결합하되 음악으로 편안하게 하지 않는 것은, 마치 거두고도 먹지 않는 것과 같다. 음악으로 편안하게 하되 순(順)에 통달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먹고도 살찌지 않는 것과 같다. 팔다리가 이미 바르고, 피부가 풍만한 것, 이것이 사람의 살찜이다. 부자 사이가 돈독하고, 형제 사이가 화목하며, 부부 사이가 조화로운 것, 이것이 집안의 살찜이다. 대신이 법을 지키고, 소신이 청렴하며, 관직이 서로 질서 있고, 군신이 서로 바로잡아 주는 것, 이것이 나라의 살찜이다. 천자가 덕행을 수레로 삼고, 음악을 마부로 삼는다. 제후는 예로 서로 사귀고, 대부는 법으로 서로 질서를 세우며, 선비는 신의로 서로 고찰하고, 백성은 화목으로 서로 지키는 것, 이것이 천하의 살찜이다. 이것을 일컬어 대순(大順)이라 한다. 대순은 삶을 기르고 죽음을 보내며 귀신을 섬기는 떳떳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일이 많이 쌓여도 막히지 않고, 함께 행해져도 어지럽지 않으며, 미세하게 시행되어도 잘못되지 않는다. 깊고 오묘해도 통달할 수 있고, 무성해도 틈이 있다. 서로 이어져도 얽매이지 않고, 움직여도 서로 해치지 않으니, 이것이 순의 지극함이다. 그러므로 순을 깨달은 연후에야 위태로운 국면을 잘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예의 차별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니, 이것은 인정을 지키고 위태로운 국면을 결합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성왕은 자연에 순응하여, 산에 사는 자를 물가로 옮기게 하지 않고, 모래섬에 사는 자를 평지로 옮기게 하지 않으며, 그들로 하여금 곤궁하지 않게 한다. 물, 불, 쇠, 나무와 음식을 반드시 시절에 맞춰 쓴다. 남녀를 결합시키고 작위를 내림에 반드시 나이와 덕행에 부합시킨다. 백성을 부림에 반드시 시절에 순응시킨다. 그러므로 물, 가뭄, 벌레, 메뚜기의 재해가 없고, 백성에게 흉년과 기근, 요사스러운 재앙의 질병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은 그 도를 아끼지 않고, 땅은 그 보물을 아끼지 않으며, 사람은 그 정을 아끼지 않는다. 이에 하늘은 감미로운 이슬을 내리고, 땅은 단 샘물을 솟아나게 하며, 산에서는 기물과 수레가 나오고, 황하에서는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타나며, 봉황과 기린이 들판의 못가에 있고, 거북과 용이 궁중의 연못에 있다. 그 나머지 새와 짐승의 알과 태(胎)는 모두 굽어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다른 까닭이 없으니, 선왕이 능히 예를 닦아 의를 통하게 하고, 믿음을 드러내어 순에 통하게 하였기 때문이니, 이것이 곧 순의 실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