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출 도역
【第十七출】도무(道覡)
【풍입송】(淨角이 늙은 도녀(道女) 역으로 등장) 인간 세상의 혼인과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은 바쁘고 분주하며, 이는 음과 양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라네. 하늘에 묻노니, 하늘은 본래 사람의 형체와 얼굴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도사(道士)의 남장을 하여 지내온 지, 계산해 보니 마흔 해가 넘었구나.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도다. 당시(唐詩)를 모아 읊노라: 「자부(紫府)는 텅 비고 벽락(碧落)은 차갑구나, 이군옥(李群玉).」 「죽석(竹石)이 산과 같아도 감히 편안할 수 없네, 두보(杜甫).」 「늘 한스러우니, 사람 마음이 돌보다 못함을, 유우석(劉禹錫).」 「아름다운 곳 만날 때마다 곧 열어 보았노라, 한유(韓愈).」 빈도(貧道)는 자양궁(紫陽宮)의 석도고(石道姑)라. 속세의 성(姓)은 본래 석(石)씨가 아니었으나, 날 때부터 석녀(石女)였기에 남에게 버림받아 ‘석고(石姑)’라 불리게 되었네. 생각건대, 환속(還俗)하려 한다면 《백가성(百家姓)》에 내 집안이 있지마는, 출신을 따져 보면 《천자문(千字文)》에 내 이야기 몇 구절이 있구나. 하늘이여, 내가 ‘고심구론(求古尋論)’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어병직(史魚秉直)’에 해당하네. 어찌하여 내가 이 ‘누관비경(樓觀飛驚)’에 살면서 ‘로겸근칙(勞謙謹敕)’을 꾸며 대는가? 수행을 보면 ‘복연선경(福緣善慶)’ 같고, 인과(因果)를 논하면 ‘화인악적(禍因惡積)’이로다. 무슨 ‘영업소기(榮業所基)’가 있겠는가? 여러 대 ‘림고행즉(林皋幸即)’하여 나를 낳았으니, ‘형단표정(形端表正)’하고 ‘성정정일(性靜情逸)’했지. 큰 구멍은 ‘원망추조(園莽抽條)’와 같고, 오줌 누는 곳도 ‘거하적력(渠荷滴瀝)’이로다. 오직 그곳만은 입을 벌린 듯 ‘거야동정(巨野洞庭)’이요, 너와는 틈을 막았으니 ‘곤지갈석(昆池碣石)’이라. 비록 석로(石路) 위에 ‘로협괴류(路俠槐柳)’를 할 수 있으나, 석전(石田)에서 어떻게 ‘아예서직(我藝黍稷)’을 하겠는가? 어찌 시집가서 ‘공곡전성(空谷傳聲)’이 되랴? 그저 친정을 지키며 ‘효당갈력(孝當竭力)’할 뿐이로다. 어쩔 수 없이 ‘제고백숙(諸姑伯叔)’에게 시달려 ‘입봉모의(入奉母儀)’를 듣게 되었네. 어머니가 이르시길, 네 안재(內才)는 비록 ‘수진지만(守真志滿)’하나, 겉모습은 ‘모시숙자(毛施淑姿)’와 같아, 다른 집은 ‘상화하목(上和下睦)’이 있는데, 너 석이(石二) 아가씨만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없느냐? 하여 입담 좋은 중매쟁이를 청해 ‘신사가복(信使可覆)’이라 하고, 코 큰 사위를 약속하여 ‘기욕난량(器欲難量)’이라 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서 납폐(納幣) 예물을 보내왔네. 말하길 일 년 중 ‘일월영측(日月盈昃)’을 골라, 팔자(八字)를 ‘진수열장(辰宿列張)’에 맞추었다 하네. 그가 보낸 예물은 ‘금생여수(金生麗水)’요, 내가 가마에 오르니 ‘옥출곤강(玉出昆岡)’이라. 얼굴 가린 ‘환선원결(紈扇圓潔)’이요, 길 인도한 ‘은촉휘황(銀燭輝煌)’이로다. 그 신랑은 머리에 ‘고관배련(高冠陪輦)’을 차림새 하였고, 우리 신부는 허리 아래 ‘속대긍장(束帶矜莊)’을 갖추었네. ‘친척고구(親戚故舊)’를 청하여 길 가운데 ‘접배거상(接杯舉觴)’하고, 신부에게 ‘승계납폐(升階納陛)’를 청하며, 여자 동무들에게 ‘시건유방(侍巾帷房)’을 명하네. 합근(合巹)할 때 ‘현가주연(弦歌酒宴)’이요, 살포(撒帳)할 때 ‘시찬고양(詩贊羔羊)’이라. 나 신부의 얼굴 표정을 촌촌이 ‘감모변색(鑑貌辨色)’하고, 내 보배 화장함을 낱낱이 ‘우목낭상(寓目囊箱)’에 담았네. 벌써 이경(二更) 무렵, 신랑이 다가왔네. 내게 말하길, 우리 두 내외는 꼭 ‘명봉재죽(鳴鳳在竹)’ 같아, 잠시 후면 ‘백구식장(白駒食場)’이 되리라 하네. 이불 속을 보니 ‘개차신발(蓋此身髮)’이요, 등잔불 그림자에 이 몇 벌 ‘내복의상(乃服衣裳)’을 벗었네. 하늘이여, 그의 ‘려나독특(驢騾犢特)’을 보니, 나 한참을 ‘송구외황(悚懼恐惶)’하였네. 신랑이 내 두려워함을 보고 말하길, 신부여, 네 나이 적지 않으니 ‘윤여성세(閏餘成歲)’라. 나도 심하게 굴지 않고, 너와 천천히 ‘율려조양(律呂調陽)’하리라 하네. 나는 입으로 대답 않고 마음속으로 웃었네. 신랑아, 신랑아, 네가 ‘교수돈족(矯手頓足)’해도, 너는 ‘미시기장(靡恃己長)’ 못 하리라. 삼사경(三四更)이 되니, 그는 양대(陽臺) 위에서 ‘운치치우(雲騰致雨)’하려 하는데, 어찌 무협(巫峽) 안에 ‘노결위상(露結爲霜)’이 생기랴? 그는 한참 동안 길을 찾지 못하고, 어찌 된 일인가 하며 빨리 불을 가져오라 하네. 머리를 기울여 ‘우통광내(右通廣內)’를 하려 하고, 눈을 부릅뜨고 ‘남순상상(籃筍象床)’을 살피네. 그때 나는 입 밖에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냉소하였네. 신랑아, 신랑아, 내 이 물건은 오직 너에게 ‘배회첨조(徘徊瞻眺)’만 허락할 뿐, 어찌 ‘적구충장(適口充腸)’을 허락하랴? 이와 같이 여러 번 하자, 그는 성이 나서 기운이 부글부글 끓어 ‘준예밀물(俊乂密勿)’을 지껄이고, 그를 곤란하게 하여 구멍도 뚫지 못하는 혼돈 상태로 ‘천지현황(天地玄黃)’에 이르게 했네. 그와 밤새도록 오직 ‘촌음시경(寸陰是競)’이었네. 말하려 하면, ‘속이원장(屬耳垣墻)’에 부끄럽도다. 여러 번 목매고, 투강(投江)하려 하여 ‘면기지척(免其指斥)’할까도 했네. 만약 칼과 송곳, 선약(線藥)을 쓴다면 ‘기감훼상(豈敢毀傷)’이랴? 그렇게 고생하여 교묘히 속이며 ‘색거한처(索居閑處)’를 하였으나, 무슨 방법으로 그의 뜻을 취해 ‘열예차강(悅豫且康)’하게 하랴? 되었다, 되었다. 그가 어쩔 도리 없어 후정화(後庭花)를 애걸하며 ‘배망면락(背邙面洛)’을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잠시 마른 연잎(干荷葉)을 따라 그와 ‘추수동장(秋收冬藏)’을 하였네. 아이고, 마주 보고는 ‘여모정결(女慕貞潔)’을 하나, 허리를 돌리니 도리어 ‘남효재량(男效才良)’이 되었네. 비록 잠시 ‘석분리속(釋紛利俗)’을 하나, 결국 정이란 ‘사대오상(四大五常)’이로다. 나를 두려 하면 ‘적후사속(嫡後嗣續)’을 그르칠까 두렵고, 나를 시집보내려 하면 ‘기염조강(飢厭糟糠)’을 남이 웃을까 두렵네. 이때 나는 그를 달랠 수밖에 없었네: 나으리, 나으리, 부디 한 방 ‘첩어적방(妾御績紡)’을 들이소서, 네가 ‘조관인황(鳥官人皇)’에 화내는 것을 덜게 하리이다. 나는 기꺼이 ‘퇴위양국(推位讓國)’할 터이니, 오직 너는 ‘득능막망(得能莫忘)’하라. 후에 과장(科場)에서 한 명을 얻었네. 얼마 안 되어 작은 집이 ‘총증항극(寵增抗極)’하여, 도리어 나 정실(正室)을 내쫓아 ‘솔빈귀왕(率賓歸王)’하게 하였네. 그를 원망하지 않고, 오직 ‘성궁기계(省躬譏誡)’할 뿐. 출가(出家)하기로 하여, 나는 ‘수공평장(垂拱平章)’하리라. 이 도원(道院)을 말하자면, 옛날에는 그리 ‘궁전반울(宮殿盤鬱)’하지 않았으나, 내 늙은 몸에 이르러 비로소 ‘우주홍황(宇宙洪荒)’을 열었네. 진무(眞武)를 그리고 ‘검호거궐(劍號巨闕)’이라 하고, 북두(北斗)를 밟으며 ‘주칭야광(珠稱夜光)’이라 하네. 향을 받들고 ‘과진이나(果珍李柰)’를 바치며, 재소(齋素)를 올리니 또한 ‘채중강강(菜重芥薑)’이라. 세상 맛은 ‘해함하담(海鹹河淡)’을 꿰뚫어 알고, 사람 그물은 ‘린잠우상(鱗潛羽翔)’을 벗어났네. 내가 출가한 뒤로는, 몇 해 전 신랑 시절의 그 냄새나는 끈적임을 ‘해구상욕(骸垢想浴)’이라 하고, 내 이승에서 아내 노릇 하던 마른 장작불을 ‘집열원량(執熱願涼)’이라 하네. 다만 아쉽게도 관주(觀主)로서 ‘유곤독운(游鵾獨運)’하니, 지관(知觀)도 ‘고답심상(顧答審詳)’을 해야 하네. 모임에 오는 이는 모두 ‘구선찬반(具膳餐飯)’을 해야 하고, 행각(行脚)하는 이도 ‘노소이량(老少異糧)’을 해야 하네. 어찌 관중(觀中)에 다시 사람이 없을까? 모두 ‘침묵적요(沉默寂寥)’할 뿐, 전혀 ‘전첩간요(箋牒簡要)’를 알지 못하네. 나 늙어가니 ‘연시매최(年矢每催)’하고, 거울 속에 ‘혜백환조(晦魄環照)’하네. 사녀도(仕女圖)에 ‘치예단청(馳譽丹青)’을 견주기 어려우나, 신선의 진전(眞傳)을 이어받아 ‘견지아조(堅持雅操)’를 해야 하네. 나른히 ‘동서이경(東西二京)’을 유람하기 싫어, 한결같이 ‘좌조문도(坐朝問道)’에 마음 두네. 여관자(女冠子) 중에 몇 명은 ‘동기연지(同氣連枝)’가 있으나, 간사한 도사(道士)는 그와 ‘공빈연소(工顰妍笑)’를 나누지 않네. 그의 ‘포사요환(布射遼丸)’을 두려워하여, 찬물 속 물고기 ‘균교임조(鈞巧任釣)’를 지키네. 부리는 것은 오직 ‘유자비아(猶子比兒)’, 이른바 문둥이 자라(癩頭黿) ‘우몽등초(愚蒙等誚)’라네. (무대 안) 아가씨가 저를 꾸짖네요. 저는 묘한 사람인데요. (淨) 부끄럽기도 하지. ‘태욕근치(殆辱近恥)’한데, 도리어 너를 칭찬하며 ‘병개가묘(並皆佳妙)’라 하느냐? (무대 안) 두태야(杜太爺)의 포리(皂隸)가 아가씨를 잡으러 왔어요. (淨) 어찌 된 일인가? (무대 안) 당신을 도둑 도사(賊道)라 하더이다. (淨) 아이고, 부패(府牌)가 ‘두고종예(杜稿鍾隸)’를 가지고 와서, 나를 여자 요괴로 여겨 ‘주참적도(誅斬賊盜)’하려 한다 해도, 나는 ‘산려소요(散慮逍遙)’할 터이니, 네 그런 ‘허휘랑요(虛輝朗耀)’는 필요 없다. (축(丑)이 부차(府差) 역으로 등장) 「승차 부당상(承差府堂上), 제명 선관중(提名仙觀中).」 (서로 만나다) (淨) 부패형(府牌兄)은 무슨 일로 오셨소?
【대고고】(丑) 부주(府主)께서 황당(黃堂)에 앉아 계시고, 부인(夫人)께서 전하시길, 아문(衙門) 안에서 경(更)을 친다 하네. 아가씨가 나이가 이미 찼는데, 병이 들어 반 년이나 되었다 하네. (淨) 나는 여의(女醫)가 아니오. (丑) 재(齋)를 베풀어 한 차례 기도하고 액을 막아 달라 하오.
【전강】(淨) 우리 선가(仙家)에는 금방(禁方)이 있네. 작은 영부(靈符) 하나를 몸에 지니게 하여, 그로 하여금 즉시 아무 탈 없게 하리라. (丑) 이런 영부가 있소! 어서 움직이시오. (걷는 동작) (淨) 동자(童兒)를 부르거라. (무대 안에서 대답하다) (淨) 잘 살펴서, 운방(雲房)에서 누워 있게 하라. 전각(殿閣) 위에 사람 없으니, 등불과 향을 조심하라. (무대 안) 알겠소.
(淨) 자미궁(紫微宮) 궁녀가 밤에 향을 사르네, 왕건(王建). (丑) 옛 관(觀) 구름 낀 길은 이미 거칠었네, 석교연(釋皎然). (淨) 오히려 진비(眞妃)의 장명루(長命縷)가 있으니, 사공도(司空圖). (丑) 구천(九天)에 일 없으니, 바쁘다 미루지 마소, 조당(曹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