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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집해 서문

사기집해 서문

제 1 편

반고가 일찍이 말하기를, "사마천은 《좌전》과 《국어》에 근거하고, 《세본》과 《전국책》을 채집하였으며, 초한(楚漢)의 춘추(春秋) 시대를 기록하고 그 뒤의 사건들을 이어 받들어 천한(天漢) 연간에 이르렀다. 그는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역사를 서술함에 매우 상세하였다. 그가 경전(經典)을 채집하고 전기(傳記)를 선택하며, 여러 집(家)의 일들을 나누어 기록함에 있어서는 소략(疏略)하고 간략(簡略)한 점이 많아, 간혹 모순되는 곳이 있기도 하였다. 이는 또한 그가 섭렵(涉獵)한 범위가 넓고 널리 경전과 전기를 꿰뚫었으며, 고금(古今) 수천 년 사이를 종횡(縱橫)으로 달렸으니, 이는 이미 부지런하고 힘쓴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비(是非) 관념은 성인(聖人)과 크게 어긋나서, 큰 도(道)를 논할 때에 먼저 황로(黃老)를 숭상하고 뒤에 육경(六經)을 존중하였으며, 유협(遊俠)을 기록할 때에 은사(隱士)를 물리치고 간웅(奸雄)을 추천하였으며, 화식(貨殖)을 서술할 때에 권세와 이익을 숭상하고 빈천(貧賤)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이것이 그의 한계이다. 그러나 유향(劉向)과 양웅(揚雄) 이래로 그들이 여러 책을 널리 읽었으나, 모두 사마천이 훌륭한 사관(史官)의 재주를 지녔다고 칭찬하였으며, 그가 일을 잘 서술함에, 변론(辯論)은 화려하지 않고 질박(質朴)은 거칠지 않다고 복종하였다. 그의 문필은 직설적이고 그의 사적(事蹟) 기록은 상세하고도 확실하다. 장점을 허위로 드러내지 않고 악행을 숨기지 않았으므로, 이에 실록(實錄)이라고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반고의 이 말들은 세상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여기며, 비록 간혹 잘못된 점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한 집(家)의 언론(言論)을 편찬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 대략을 살펴보면, 확실히 세상에 이름난 큰 재주이다. 이 책을 고증해 보면, 문구(文句)가 같지 않아, 많거나 적은 것이 있어 그 실정(實情)을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의 미혹된 사람들은 저것을 이것으로 단정하여, 시비(是非)가 서로 혼탁(混淆)되고, 진실(眞實)과 허위(虛僞)가 뒤섞였다. 그리하여 중산대부(中散大夫) 동관(東莞) 사람 서광(徐廣)이 연구하고 여러 판본을 고증하여, 이를 위해 음의(音義)를 짓고, 같고 다른 점을 상세히 열거하였으며, 동시에 훈해(訓解)를 더하여, 처음으로 발휘함이 있었으나, 특히 그 간략함을 애석하게 여겼다. 구차하게나마 나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서씨(徐氏)의 학설을 증보(增補)하고, 경전(經典)과 전기(傳記) 및 백가(百家)의 학설, 그리고 선유(先儒)의 학설을 채집하여, 이로운 것이 있는 것은 모두 베껴서 수록하고, 그 뜬 글귀를 삭제하고, 그 정요(精要)한 사실을 취하였다. 만약 의리(義理)가 의심스러운 곳이 있으면, 곧 여러 집(家)의 학설을 나란히 열거하였다. 《한서음의(漢書音義)》에 신찬(臣瓚)이라고 일컬은 자는 그 성씨(姓氏)를 알 수 없으므로, 지금 직접 '瓚曰'이라고 말한다. 또 성명(姓名)이 전혀 없는 것은 다만 '한서음의(漢書音義)'라고 말한다. 때때로 미세한 대의(大義)가 드러나 보여, 보익(補益)하는 바가 있다. 마치 작은 별이 아침 해를 이어받고, 날리는 먼지가 큰 산(華嶽)에 모이는 것과 같다. 서광의 책을 근본으로 삼아, 이름하여 《집해(集解)》라고 한다. 상세하지 않은 곳은 결락(缺落)하고, 감히 억측으로 해설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각각 같지 않고, 견문(見聞)과 설명은 같지 않다. 반씨(班氏)가 말한 '소략(疏略)과 저오(抵捂)'는, 따르고 거스름을 완전히 분별하지 않은 것이다. 서신(胥臣)의 다문(多聞)과 자산(子産)의 박물(博物)에 부끄럽다. 망령됨으로써 얕은 학문으로 옛 역사를 뒤섞는다. 어찌 덕을 쌓은 사람에게 관계되겠는가. 다만 어진 이로 하여금 마음을 쓰지 않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