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공세가 제삼
周公 단(旦)은 주 무왕의 아우였다. 문왕이 살아 계실 때부터 단은 아들로서 효성스럽고 인후하며 독실하여 다른 아들들과 달랐다. 무왕이 즉위하자 단은 항상 무왕을 보좌하며 많은 정무를 맡았다. 무왕 9년, 동쪽으로 정벌하여 맹진(盟津)에 이르렀을 때, 주공이 보좌하며 수행하였다. 11년, 주왕을 토벌하여 목야(牧野)에 이르렀을 때, 주공이 무왕을 보좌하며 《목서(牧誓)》를 지었다. 은나라를 격파하고 상나라 왕궁으로 들어갔다. 주왕을 죽인 후, 주공은 큰 도끼를, 소공은 작은 도끼를 들고 양쪽에서 무왕을 호위하며 토지신에게 제사 지내고, 하늘과 은나라 백성들에게 주왕의 죄를 고하였다. 갇혀 있던 기자(箕子)를 석방하였다. 주왕의 아들 무경록부(武庚祿父)를 봉하고,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보내 그를 보좌하게 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이어가게 하였다. 공신과 동성 친족에게 두루 봉토를 나누어 주었다. 주공 단을 소호(少昊)의 옛 터인 곡부(曲阜)에 봉하였으니, 이가 곧 노공(魯公)이다. 주공은 봉지로 가지 않고 남아서 무왕을 보좌하였다.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지 2년 후,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무왕이 병에 걸려 몸이 편치 않았다.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태공과 소공이 정성스럽게 점을 쳤다. 주공이 말했다. “이것으로 우리 선왕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주공은 스스로 인질이 되기로 하고, 세 개의 제단을 세웠다. 주공은 북쪽을 향해 서서 벽옥을 차고 홀을 손에 쥐고 태왕(太王), 왕계(王季), 문왕(文王)에게 고하였다. 사관이 죽간에 축문을 써서 말했다. “왕의 장손 무왕 발(發)이 수고하여 병이 들었습니다. 만약 세 분 선왕께서 하늘에서 자손을 보호할 책임이 있으시다면, 단의 몸으로 무왕 발을 대신하게 해주소서. 단은 영리하고 유능하며 재주가 많아 귀신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왕 발은 단처럼 재주가 많지 않아 귀신을 섬기지 못합니다. 그는 이미 상제에게서 명을 받아 천하 사방을 널리 소유하였으므로, 그대들의 자손을 인간 세상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며, 사방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하늘이 내린 귀한 명령을 잃지 않게 하소서. 우리 선왕들도 영원히 의지할 바가 있게 하소서. 지금 저는 큰 거북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만약 저를 허락하신다면, 저는 벽옥과 홀을 가지고 돌아가 그대들의 명령을 기다리겠습니다. 만약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벽옥과 홀을 거두겠습니다.” 주공은 이미 사관으로 하여금 죽간을 써서 태왕, 왕계, 문왕에게 고하여 무왕 발을 대신하려 하였고, 이에 세 분 선왕의 신위 앞에서 점을 쳤다. 점을 친 사람들이 모두 길조라고 하였고, 점괘를 펼쳐 보니 과연 길했다. 주공은 기뻐하며 책을 보관하는 궤를 열어 점괘를 보니 또한 길조였다. 주공이 입궁하여 무왕에게 축하하며 말했다. “대왕께는 재앙이 없습니다. 제가 방금 세 분 선왕의 명을 받들어 대왕을 위한 먼 앞날의 계획을 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이 저 한 사람을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주공은 죽간을 금실로 감싼 궤 속에 감추고, 지키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다음 날, 무왕의 병이 나았다.
후에 무왕이 세상을 떠나고, 성왕이 어려 아직 포대기에 싸여 있었다. 주공은 천하가 무왕의 죽음을 듣고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곧 왕위에 올라 성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대행하고 나라를 다스렸다. 관숙과 그의 아우들이 나라 안에 소문을 퍼뜨리며 말했다. “주공이 성왕에게 해를 끼치려 할 것입니다.” 주공이 이에 태공망(太公望)과 소공석(召公奭)에게 말했다. “제가 피하지 않고 정사를 대행하는 이유는, 천하가 주나라에 반역하여 선왕 태왕, 왕계, 문왕에게 보고할 면목이 없을까 두려워서입니다. 세 분 선왕께서 천하를 위해 근심하고 수고하신 지가 이미 오래되어, 이제서야 성공하셨습니다. 무왕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성왕이 어리니, 주나라의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제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마침내 성왕을 보좌하고, 자신의 아들 백금(伯禽)을 대신 보내 노나라에 가서 봉토를 받게 하였다. 주공이 백금에게 훈계하며 말했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요, 무왕의 아우이며, 성왕의 숙부로서 천하에서 그다지 지위가 낮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한 번 감을 때도 여러 번 머리칼을 쥐고, 밥을 한 번 먹을 때도 여러 번 입에 든 음식을 뱉고 일어나 선비들을 접대하며,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너는 노나라에 가서, 자신의 봉국이라고 교만하게 남을 대하지 말도록 하여라.”
관숙, 채숙, 무경 등이 과연 회이(淮夷)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이 이에 성왕의 명을 받들어 군대를 일으켜 동쪽으로 정벌하고, 《대고(大誥)》를 지었다. 이에 관숙을 주살하고, 무경을 죽이고, 채숙을 유배 보냈다. 은나라의 유민들을 수습하여, 강숙(康叔)을 위(衛)나라에 봉하고, 미자(微子)를 송(宋)나라에 봉하여 은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회이와 동부 지역을 안정시키는 데 2년 만에 모두 마쳤다. 제후들이 모두 주나라에 신복하였다.
하늘이 복을 내려 당숙(唐叔)이 한 포기의 벼를 얻었는데, 뿌리는 다르지만 이삭은 같았다. 이를 성왕에게 바치자, 성왕은 당숙에게 명하여 동쪽 땅에 있는 주공에게 그것을 보내게 하고, 《궤화(饋禾)》를 지었다. 주공이 천자가 내린 벼를 받은 후, 천자의 은명을 찬미하여 《가화(嘉禾)》를 지었다. 동부 지역이 안정된 후, 주공이 돌아와 성왕에게 보고하고, 이에 시 한 편을 지어 성왕에게 바쳤는데, 제목을 《치효(鴟鴞)》라 하였다. 성왕도 감히 주공을 꾸짖지 못했다.
성왕 7년 2월 을미일, 성왕이 아침에 호경(鎬京)에서 걸어서 출발하여 풍읍(豐邑)에 도착하고, 태보 소공을 먼저 낙읍(洛邑)으로 보내 지형을 살피게 하였다. 이 해 3월, 주공이 가서 성주 낙읍을 건설하고, 점쳐서 터를 정하니 길했으며, 이에 그곳에 도읍을 세웠다.
성왕이 장성하여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주공은 정권을 성왕에게 돌려주었고, 성왕이 조정에 나가 정사를 들었다. 주공이 성왕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릴 때는 남쪽을 향해 병풍에 기대어 제후들의 조하를 받았다. 7년 후 정권을 성왕에게 돌려주고 나서는 북쪽을 향하여 신하의 자리로 돌아가 공손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는 듯이 하였다.
처음에 성왕이 어렸을 때 병이 들자, 주공은 자신의 손톱을 잘라 강물에 던지며 신에게 축원하여 말했다. “왕은 어려서 알지 못합니다. 신명을 범한 것은 바로 저 단입니다.” 또한 죽간을 관청 창고에 감추었다. 성왕의 병이 나았다. 성왕이 친정하게 되자, 어떤 이가 주공을 모함하여 주공은 초나라로 도망갔다. 성왕이 창고를 열어 주공이 기도한 문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주공을 돌아오게 하였다. 주공이 돌아온 후, 성왕이 장성하여 나라를 다스리며 방탕하고 즐기는 데 빠질까 걱정하여 《다사(多士)》와 《무일(毋逸)》을 지었다. 《무일》에서 말하기를, “부모가 되어 창업하기에 매우 오래 걸렸는데, 자손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이를 잊어버리고 집안이 파탄에 이르니, 자식이 되어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날 은나라 왕 중종(中宗)은 엄숙하고 공경하며 하늘의 명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법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며 전전긍긍하여 게을리하거나 편안히 지내지 않았으므로, 중종은 재위 75년이었다. 고종(高宗)에 이르러서는 오랫동안 밖에서 수고하며 백성들과 함께 살았다. 그가 즉위하자 상(喪)을 당하여 3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고, 말을 하자 사람들이 기뻐하며 감히 게을리하거나 편안히 지내지 않아 은나라를 안정시켰으며, 크고 작은 신하와 백성들이 원망하는 이가 없었으므로, 고종은 재위 55년이었다. 조갑(祖甲)에 이르러서는 왕이 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 오랫동안 민간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지내며 백성들의 고통을 알고, 작은 백성들을 보호하고 은혜를 베풀며 홀아비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았으므로, 조갑은 재위 33년이었다.” 《다사》에서 말하기를, “상탕(商湯)으로부터 제을(帝乙)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따르지 않고 덕정을 밝히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제왕으로서 하늘의 명을 받들지 않은 이가 없었다. 후대의 주왕(紂王)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방탕하고 즐기기를 좋아하여 하늘의 뜻과 백성들의 순종을 돌보지 않았다. 그의 백성들은 모두 마땅히 주살되어야 했다.” “문왕은 해가 기울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바빴으며, 재위 50년이었다.” 주공이 이와 같이 지어 성왕을 경계하였다.
성왕이 풍읍에 있을 때, 천하가 이미 안정되었으나 주나라의 관제와 정령이 아직 체계화되지 않았다. 이에 주공이 《주관(周官)》을 지어 각 관청의 직책을 규정하고, 또 《입정(立政)》을 지어 백성을 편리하게 하였다. 백성들이 매우 기뻐하였다.
주공이 풍읍에 있을 때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말했다. “반드시 나를 성주(成周)에 장사 지내, 내가 감히 성왕을 떠나지 않음을 밝혀야 한다.” 주공이 죽은 후, 성왕도 겸양하는 뜻을 나타내어 주공을 필(畢) 땅에 장사 지내 문왕을 따르게 하고, 이로써 나 소자(小子)가 감히 주공을 신하로 여기지 않음을 밝혔다.
주공께서 돌아가신 후, 가을이 되었으나 수확을 하지 못했고, 폭풍우가 몰아쳐 곡식의 싹이 다 쓰러지고 큰 나무들이 뽑혀 나갔다. 주나라 조정 상하가 매우 두려워했다. 성왕과 대부들이 조복을 입고 금등궤를 열어 문서를 살펴보니, 성왕은 마침내 주공이 자신을 인질로 삼아 무왕의 병을 대신 앓겠다고 한 기록을 얻었다. 태공, 소공과 성왕이 사관과 집행 관리들에게 묻자, 사관과 집행 관리들이 말했다. “실로 이러한 일이 있습니다. 옛날 주공께서 명령하시어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성왕이 문서를 손에 쥐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다시는 경건하게 점을 치지 말라! 옛날 주공께서 왕실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셨으나, 나만 어려서 알지 못했다. 지금 하늘이 위엄을 드러내어 주공의 덕을 밝히시니, 나小子가 마땅히 맞이하러 가야 하며, 우리나라의 예제도 이렇게 해야 한다.” 성왕이 성 밖 교외로 나가자, 하늘이 비를 내리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곡식 싹이 모두 일어섰다. 태공과 소공이 나라 사람들에게 명하여, 큰 나무에 쓰러진 곡식 싹은 모두 일으켜 세워 다시 흙을 덮게 하였다. 그 해에 마침내 대풍이 들었다. 이때 성왕이 노나라에 명하여 교외 제사를 지내 문왕을 제사할 수 있게 하였다. 노나라가 천자의 예악을 소유하게 된 이유는 주공의 덕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주공께서 돌아가시고, 아들 백금이 본래 일찍이 봉지를 받았으니, 이가 곧 노공이다. 노공 백금이 처음 노나라에 봉해져 갔을 때, 삼 년이 지나서야 주공에게 정사를 보고했다. 주공이 말했다. “어찌 이렇게 늦었는가?” 백금이 말했다. “그 지방의 풍속을 바꾸고 그 지방의 예의를 개혁하며, 삼년상을 치른 후에야 상복을 벗었기 때문에 늦었습니다.” 태공도 제나라에 봉해져, 오 개월 만에 주공에게 정사를 보고했다. 주공이 말했다. “어찌 이렇게 빠른가?” 태공이 말했다. “신이君臣 사이의 예의를 간소화하고, 그 지방 풍속에 순응하여 일을 했습니다.” 이후 백금이 정사를 늦게 보고했다는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아, 노나라의 후손은 장차 북쪽을 향해 제나라를 섬기게 될 것이다! 정령이 간편하고 쉽게 행해지지 않으면 백성이 친근해하지 않을 것이요, 정령이 백성에게 평이하면 백성이 반드시 귀의할 것이다.”
백금이 즉위한 후, 관숙과 채숙 등의 반란이 있었고, 회이와 서융도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백금이 군사를 이끌고 필 땅에서 그들을 토벌하며, 《필서》를 지어 말했다. “너희 갑옷과 투구를 준비하되, 정밀하지 않음이 없게 하라. 우리 밭의 소를 해치지 말라. 말과 소가 흩어져 달아나거나, 남녀 노비가 도망치더라도, 함부로 대열을 이탈하여 쫓지 말고 공손히 돌려보내라. 약탈하거나 담을 넘지 말라. 노나라 삼교 삼수 백성들은 너희 꼴, 양식, 흙담 나무를 준비하되, 부족함이 없게 하라. 내가 갑술일에 성을 쌓고 서융을 정벌할 터이니, 이르지 않으면 큰 형벌을 받을 것이다.” 이 《필서》를 지어 마침내 서융을 평정하고 노나라를 안정시켰다.
노공 백금이 돌아가시고, 아들 고공 추가 즉위했다. 고공 4년에 돌아가시고, 아우 희를 세우니, 이가 양공이다. 양공이 모궐문을 세웠다. 6년에 돌아가시고, 아들 유공 재가 즉위했다. 유공 14년, 유공의 아우 희가 유공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니, 이가 위공이다. 위공 50년에 돌아가시고, 아들 여공 탁이 즉위했다. 여공 37년에 돌아가시고, 노나라 사람이 그의 아우 구를 세우니, 이가 헌공이다. 헌공 32년에 돌아가시고, 아들 진공 비가 즉위했다.
진공 14년, 주나라 여왕이 무도하여 체 땅으로 도망가 공화 정치가 시행되었다. 29년, 주나라 선왕이 즉위했다.
30년, 진공이 돌아가시고, 아우 오가 즉위하니, 이가 무공이다.
무공 9년 봄, 무공이 장자 괄과 작은 아들 희와 함께 서쪽으로 가서 주나라 선왕을 알현했다. 선왕이 희를 사랑하여, 희를 노나라의 태자로 세우고자 했다. 주나라 번중산보가 선왕에게 간언하며 말했다. “장자를 폐하고 작은 아들을 세우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습니다; 순리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임금의 명령을 어기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명령을 어기면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령을 내릴 때 순리에 맞지 않음이 없게 해야 합니다. 명령이 행해지지 않으면 정사가 세워질 수 없고, 시행하더라도 순리에 맞지 않으면 백성이 윗사람을 버릴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고,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순리입니다. 지금 천자가 제후를 분봉하면서 그중 어린 자를 세우니, 이는 백성에게 거역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약 노나라가 따르면 제후들이 모두 본받아 임금의 명령이 막힐 것이고, 따르지 않아 죽이면 이는 스스로 임금의 명령을 죽이는 것입니다. 죽여도 부당하고 죽이지 않아도 부당하니, 임금께서 이 일을 생각해 주소서.” 선왕이 듣지 않고, 마침내 희를 노나라 태자로 세웠다. 여름, 무공이 귀국하여 돌아가시고 희가 즉위하니, 이가 의공이다.
의공 9년, 의공의 형 괄의 아들 백어가 노나라 사람과 함께 의공을 공격하여 죽이고, 백어를 국군으로 세웠다. 백어가 즉위한 지 11년, 주나라 선왕이 노나라를 공격하여 그 국군 백어를 죽이고, 노나라 공자 중에서 누가 제후를 따라 순종하고 화합할 수 있는지 물어 노나라의 후계자로 세우려 했다. 번목중이 말했다. “노의공의 아우 칭은 장중하고 공경하며, 신명을 밝게 살피고, 노인을 공경히 섬깁니다; 일을 분배하고 형벌을 집행할 때 반드시 선왕의 유훈을 묻고 옛 전례를 참고합니다; 묻는 바를 어기지 않고, 아는 바를 범하지 않습니다.” 선왕이 말했다. “옳다, 능히 백성을 훈도하고 다스릴 것이다.” 이에 이궁에서 칭을 국군으로 세우니, 이가 효공이다. 이로부터 제후들이 대부분 임금의 명령을 배반했다.
효공 25년, 제후들이 주나라를 배반하고, 견융이 유왕을 죽였다. 진나라가 처음으로 제후로 책봉되었다.
27년, 효공이 돌아가시고, 아들 불황이 즉위하니, 이가 혜공이다.
혜공 30년, 진나라 사람들이 그 국군 소후를 죽였다. 45년, 진나라 사람들이 또 그 국군 효후를 죽였다.
46년, 혜공이 돌아가시고, 장서자 식이 대리하여 국정을 집행하며 국군의 권한을 행사하니, 이가 은공이다. 처음에 혜공의 정실 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혜공의 첩 성자가 아들 식을 낳았다. 식이 장성하여, 송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했다. 송나라 여자가 오니 매우 아름다워, 혜공이 빼앗아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아들 윤을 낳았다. 혜공이 송나라 여자를 올려 부인으로 삼고, 윤을 태자로 세웠다. 혜공이 돌아가시자, 윤이 어렸기 때문에 노나라 사람들이 함께 식으로 하여금 정사를 대리하게 하고, 즉위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은공 5년, 당 땅에서 고기 잡는 것을 구경했다. 8년, 정나라와 천자가 내린 태산 기슭의 병읍과 허전을 교환했으며, 군자가 이 일을 비난했다.
11년 겨울, 공자 휘가 아첨하며 은공에게 말했다. “백성들이 공에게 편리해하니, 공께서는 형세를 따라 정식으로 즉위하소서. 제가 청컨대 공을 위해 자윤을 죽이겠사오니, 공께서 저를 국상으로 삼아 주소서.” 은공이 말했다. “선군의 명령이 있다. 내가 윤이 어리기 때문에 대리하여 대신한 것이다. 지금 윤이 이미 장성하였으니, 나는 바로 도구 땅에 집을 지어 늙어 쉬며 정권을 자윤에게 넘길 생각이다.” 휘가 윤이 이 말을 듣고 반대로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도리어 윤 앞에서 은공을 모함하며 말했다. “은공이 정식으로 즉위하려 하여, 공을 제거하려 합니다. 공께서는 이 일을 잘 생각하소서. 제가 청컨대 공을 위해 은공을 죽이겠습니다.” 자윤이 승낙했다. 11월, 은공이 종무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포에서 재계하며 위씨 집에 머물렀다. 휘가 사람을 시켜 위씨 집에서 은공을 죽이고, 자윤을 국군으로 세우니, 이가 환공이다.
환공 원년, 정나라가 벽옥으로 천자가 내린 허전을 교환했다. 2년, 송나라가 뇌물로 준 정을 태묘에 넣었으며, 군자가 이 일을 비난했다.
3년, 휘를 보내 제나라에 가서 여자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6년, 부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환공과 생일이 같아 이름을 동이라 지었다. 동이 자라 태자로 세워졌다.
16년, 조나라에서 회맹하고, 정나라를 쳐서 여공을 귀국시켰다.
열여덟 해 봄, 환공이 장차 출행하려 하여 부인과 함께 제나라로 갔다. 신수가 간하며 말렸으나 환공이 듣지 않고 마침내 제나라로 갔다. 제양공이 환공의 부인과 사통하였다. 환공이 부인에게 노여워하자 부인이 이 일을 제후에게 알렸다. 여름 넷째 달 병자일, 제양공이 연회를 베풀어 환공을 대접하였는데, 환공이 취하자 제양공이 공자 팽생을 시켜 노환공을 업고 수레에 오르게 하고, 그 틈을 타 팽생에게 명하여 그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게 하여 환공이 수레 속에서 죽었다. 노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고하기를 "우리 임금님께서 폐하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편안히 머물지 못하고 와서 우호의 예를 다시 닦았습니다. 예를 마치고도 돌아가지 못하니, 죄를 물을 곳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팽생을 얻어 제후들 사이에서 추문을 없애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제나라 사람이 팽생을 죽여 노나라를 기쁘게 하였다. 노나라는 태자 동을 임금으로 세웠으니, 이가 장공이다. 장공의 어머니 부인은 이로 인해 제나라에 머물며 감히 노나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장공 오 년 겨울, 위나라를 쳐서 위혜공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팔 년, 제나라 공자 규가 도망쳐 왔다. 구 년, 노나라가 공자 규를 제나라로 돌려보내고자 하였으나 환공보다 뒤쳐져, 환공이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를 치니 노나라가 위급해져 공자 규를 죽였다. 소홀이 이로 인해 죽었다. 제나라 사람이 노나라에 관중을 산 채로 잡아 보내라고 알렸다. 노나라 사람 시백이 말하기를 "제나라가 관중을 얻고자 함은 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등용하려는 것이니, 등용하면 노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그를 죽여 시체를 넘기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하였으나 장공이 듣지 않고 마침내 관중을 가두어 제나라에 넘겼다. 제나라 사람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십삼 년, 노장공이 조말과 함께 가 땅에서 제환공을 만났는데, 조말이 제환공을 협박하여 노나라가 빼앗긴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고, 맹약을 맺은 뒤에야 환공을 풀어주었다. 환공이 맹약을 어기려 하였으나 관중이 간하여 마침내 노나라가 빼앗긴 땅을 돌려주었다. 십오 년, 제환공이 비로소 패자가 되었다. 이십삼 년, 장공이 제나라에 가서 사직 제사를 구경하였다.
삼십이 년, 당초에 장공이 높은 대를 쌓아 당씨 집에 가까이하자 맹녀를 보고 사랑하여 총애하며 그녀를 부인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팔을 베어 맹세하였다. 맹녀가 아들 반을 낳았다. 반이 자란 후 양씨의 딸을 사랑하여 보러 갔다. 어인 락이 담 밖에서 양씨 여자와 희롱하였다. 반이 노하여 락을 채찍질하였다. 장공이 이 일을 듣고 말하기를 "락은 힘이 세니 마땅히 죽여야 하며, 채찍질만 하고 그냥 보낼 수는 없다."라고 하였으나 반이 그를 죽이지 못하였다. 마침 장공이 병이 났다. 장공에게 세 동생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경부, 둘째는 숙아, 셋째는 계우였다. 장공이 제나라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하였으니 애강이다. 애강이 아들이 없었다. 애강의 여동생을 숙강이라 하였는데, 아들 개를 낳았다. 장공에게 적자가 없고 맹녀를 총애하여 그녀의 아들 반을 세우고자 하였다. 장공의 병이 위중해지자 동생 숙아에게 후계자를 물었다. 숙아가 말하기를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계승하고 형이 죽으면 아우가 이어받는 것이 노나라의 상례입니다. 경부가 있으니 그를 후계자로 세울 수 있습니다.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장공이 숙아가 경부를 세우려 함을 걱정하여 물러나서 계우에게 물었다. 계우가 말하기를 "제가 죽음으로써 반을 세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장공이 말하기를 "아까 숙아가 경부를 세우려 하였으니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하자 계우가 장공의 명령으로 숙아를 침무씨 집에서 기다리게 하고 침계를 시켜 숙아에게 독주를 억지로 마시게 하며 말하기를 "이것을 마시면 네게 후손이 있어 제사를 받들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죽고 후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숙아가 마침내 독주를 마시고 죽으니, 노나라는 그의 아들을 숙손씨로 세웠다. 팔월 계해일, 장공이 죽고 계우가 마침내 공자 반을 임금으로 세웠으니, 장공의 명령과 같았다. 장공의 상을 치르며 당씨 집에 머물렀다.
이보다 앞서 경부가 애강과 사통하여 애강의 여동생의 아들 개를 세우고자 하였다. 장공이 죽고 계우가 반을 세우자, 시월 기미일, 경부가 어인 락을 시켜 당씨 집에서 노나라 공자 반을 죽였다. 계우가 진나라로 도망쳤다. 경부가 마침내 장공의 아들 개를 세웠으니, 이가 민공이다.
민공 이 년, 경부와 애강의 사통이 더욱 심해졌다. 애강이 경부와 모의하여 민공을 죽이고 경부를 세우려 하였다. 경부가 복예를 시켜 무위에서 민공을 습격하여 죽였다. 계우가 이 소식을 듣고 진나라에서 민공의 아우 신과 함께 주나라로 가서 노나라 사람들에게 그들을 받아들이도록 청하였다. 노나라 사람들이 경부를 주살하려 하였다. 경부가 두려워하여 거나라로 도망쳤다. 이에 계우가 공자 신을 받들어 노나라에 들어가 그를 임금으로 세웠으니, 이가 희공이다. 희공 또한 장공의 작은아들이다. 애강이 두려워하여 주나라로 도망쳤다. 계우가 예물을 가지고 거나라에 가서 경부를 돌려보내 줄 것을 청하니, 경부가 돌려보내져 계우가 사람을 시켜 경부를 죽이려 하자 경부가 유배를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마침내 대부 해수를 보내어 울면서 가게 하였다. 경부가 해수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환공이 애강이 경부와 음란하여 노나라를 위태롭게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주나라에서 그녀를 불러 죽이고 그 시체를 돌려보내 노나라에 시신을 드러내었다. 노희공이 청한 후에 그녀를 안장하였다.
계우의 어머니는 진나라 여자이므로 진나라에 망명해 있었고, 진나라가 이로 인해 계우와 공자 신을 호송하는 것을 도왔다. 계우가 장차 태어나려 할 때 그의 아버지 노환공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하였는데, 말하기를 "사내아이일 것이며, 그의 이름을 '우'라 하라. 두 사직 사이에 있어 공실을 보좌할 것이다. 계우가 죽으면 노나라가 창성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어나니 손바닥에 '우'라는 글자가 있어 이로써 이름을 삼고 호를 성계라 하였다. 그의 후손이 계씨이고, 경부의 후손이 맹씨이다.
희공 원 년, 문양과 비 땅을 계우에게 봉하였다. 계우가 재상이 되었다.
구 년, 진나라의 이극이 그의 임금 해제와 탁자를 죽였다. 제환공이 희공을 이끌고 진나라의 난을 토벌하여 고량에 이른 후 돌아와 진혜공을 세웠다. 십칠 년, 제환공이 죽었다. 이십사 년, 진문공이 즉위하였다.
삼십삼 년, 희공이 죽고 아들 흥이 즉위하였으니, 이가 문공이다.
문공 원 년, 초나라 태자 상신이 그의 아버지 성왕을 죽이고 대신 즉위하였다. 삼 년, 문공이 진양공을 알현하였다.
십일 년 시월 갑오일, 노나라가 함 땅에서 적인을 물리치고 장적 교여를 사로잡았는데, 부부종생이 창으로 그의 목을 찔러 죽이고 그의 머리를 자구지문에 묻었으며, 이로써 선백을 이름 지었다.
당초 송무공 시대에 추만이 송나라를 공격하자 사도 황보가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아 장구에서 적인을 물리치고 장적 연사를 사로잡았다. 진나라가 로나라를 멸망시킬 때 교여의 아우 분여를 사로잡았다. 제혜공 이 년, 추만이 제나라를 공격하자 제나라 왕자 성보가 그들의 아우 영여를 사로잡아 그의 머리를 제나라의 북문에 묻었다. 위나라 사람이 그들의 막내아우 간여를 사로잡았다. 추만은 이로부터 마침내 멸망하였다.
십오 년, 계문자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십팔 년 이월, 문공이 죽었다. 문공에게 두 비자가 있었으니, 장비는 제나라 여자 애강으로 아들 악과 시를 낳았고, 차비는 경영으로 총애를 받아 아들 퇴를 낳았다. 퇴가 사사로이 양중을 섬기자 양중이 그를 세우려 하였으나 숙중이 불가하다고 하였다. 양중이 제혜공에게 청하니 혜공이 막 즉위하여 노나라와 가까워지고자 하여 허락하였다. 겨울 시월, 양중이 자 악과 시를 죽이고 퇴를 세웠으니, 이가 선공이다. 애강이 제나라로 돌아가며 저자 거리를 지나며 울며 말하기를 "하늘이여! 양중이 도의에 맞지 않는 일을 하여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도다!"라고 하였다. 저자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울었고, 노나라 사람들이 그녀를 '애강'이라 불렀다. 노나라가 이로부터 공실의 지위가 떨어지고 삼환의 세력이 강성해졌다.
선공 퇴 십이 년, 초장왕이 강성하여 정나라를 포위하였다. 정백이 항복하자 초장왕이 다시 정나라를 회복시켜 주었다.
십팔 년, 선공이 죽고 아들 성공 흑굉이 계위하였으니, 이가 성공이다. 계문자가 말하기를 "우리로 하여금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워 강력한 원조를 잃게 한 자는 양중이다."라고 하였다. 양중이 선공을 세우자 공손귀보가 총애를 받았다. 선공이 삼환을 제거하려 하여 진나라와 모의하여 삼환을 공격하려 하였다. 마침 선공이 죽자 계문자가 이 일을 원망하여 귀보가 제나라로 도망쳤다.
成공 2년 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융 땅을 점령했다. 여름에 성공은 진나라의 극극과 함께 안 땅에서 제경공을 물리쳤고, 제나라는 노나라를 침략했던 땅을 다시 반환했다. 4년, 성공이 진나라에 갔으나 진경공이 노나라를 존중하지 않았다. 노나라는 진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연합하려 했으나, 어떤 사람이 말려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10년, 성공이 진나라에 갔다. 진경공이 죽자, 성공을 붙잡아 장례를 치르게 했으며, 노나라는 이 일을 숨겼다. 15년, 비로소 오왕 수몽과 종리에서 회합했다.
16년, 선백이 진나라에 고하여 계문자를 죽이려 했다. 문자가 의로운 행실이 있었으므로 진나라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18년, 성공이 죽고 아들 오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양공이다. 이때 양공은 겨우 세 살이었다.
양공 원년, 진나라가 도공을 세웠다. 전년 겨울, 진나라의 난서가 그의 군주 여공을 죽였다. 4년, 양공이 진나라에 조회하러 갔다.
5년, 계문자가 죽었다. 집 안에는 비단옷을 입은 첩이 없었고, 마구간에는 곡식을 먹는 말이 없었으며, 관고에는 금은옥기가 없었으니, 그는 세 임금을 보좌했다. 군자가 말하기를 “계문자는 참으로 청렴하고 충성스러웠도다.”라고 했다.
9년, 진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쳤다. 진도공이 위나라에서 양공을 위해 관례를 거행했고, 계무자가 따르며 예를 보좌했다.
11년, 삼환씨가 군대를 삼군으로 나누었다.
12년, 진나라에 조회하러 갔다. 16년, 진평공이 즉위했다. 21년, 진평공에게 조회하러 갔다.
22년, 공자가 태어났다.
25년, 제나라의 최저가 그의 군주 장공을 죽이고, 장공의 아우 경공을 세웠다.
29년, 오나라의 연릉계자가 노나라에 사신으로 와서 주나라 음악을 묻고 그 뜻을 완전히 이해했으며, 노나라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다.
31년 6월, 양공이 죽었다. 이 해 9월에 태자가 죽었다. 노나라 사람들이 제귀의 아들 주를 세워 군주로 삼으니 이가 바로 소공이다.
소공은 열아홉 살이었으나 아직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다. 목숙이 그를 세우려 하지 않으며 말했다. “태자가 죽었으니,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아우가 있으면 세우고, 없으면 나이가 많은 이를 세웁니다. 나이가 같으면 어진 이를 택하고, 어짊이 같으면 점을 쳐서 결정합니다. 지금 주는 적자가 아니며, 또 상중에 마음이 슬픔에 있지 않고 얼굴에 기쁜 빛이 있습니다. 만약 정말 그를 세운다면, 반드시 계씨의 근심이 될 것입니다.” 계무자가 듣지 않고 끝내 그를 세웠다. 장례를 치를 때에 이르러서는 세 번 상복을 갈아입었다. 군자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좋은 죽음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소공 3년, 진나라에 조회하러 가다 황하 가에 이르렀는데, 진평공이 사양하며 돌려보내니 노나라가 부끄러워했다. 4년, 초령왕이 신 땅에서 제후들을 모았으나, 소공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7년, 계무자가 죽었다. 8년, 초령왕이 장화대를 짓고 소공을 불렀다. 소공이 가서 축하하자, 영왕이 소공에게 보배로운 그릇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고 다시 속여서 빼앗았다. 12년, 진나라에 조회하러 가다 황하 가에 이르렀는데, 진평공이 사양하며 돌려보냈다. 13년, 초나라의 공자 기직이 그의 군주 영왕을 죽이고 대신 즉위했다. 15년, 진나라에 조회하러 갔는데, 진나라가 그를 붙잡아 진소공의 장례를 치르게 하니 노나라가 부끄러워했다. 20년, 제경공과 안자가 국경에서 사냥하다가 이내 노나라에 들어가 예절을 물었다. 21년, 진나라에 조회하러 가다 황하 가에 이르렀는데, 진나라가 사양하며 돌려보냈다.
25년 봄, 구관조가 와서 둥지를 틀었다. 사기가 말했다. “문공과 성공 시대의 동요에 이르기를 ‘구관조가 와서 둥지를 틀면, 임금은 간후에 계시고, 구관조가 와서 살면, 임금은 들에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계씨와 후씨가 닭싸움을 했는데, 계씨는 닭에게 겨자가루로 만든 갑옷을 씌우고, 후씨는 닭에게 금속 발톱을 달아주었다. 계평자가 노하여 후씨를 침범했고, 후소백도 평자에게 화를 냈다. 장소백의 아우 회가 거짓으로 참언을 꾸며 장씨를 모함하고 계씨 집에 숨었으며, 장소백이 계씨의 사람을 가두었다. 계평자가 노하여 장씨의 가신을 가두었다. 장씨와 후씨가 화난을 소공에게 알렸다. 소공이 9월 무술일에 계씨를 공격하여 마침내 들어갔다. 평자가 누대에 올라가 청하기를 “임금께서 참언을 듣고 내 죄를 살피지 않으시고 나를 죽이려 하시니, 물러나 기수 가로 이사 가게 해주소서.”라고 했다. 소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 땅에 갇히기를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다섯 수레를 가지고 도망가기를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자기구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차라리 허락하소서. 정권이 계씨에게서 오래 장악되었고, 그를 따르는 자가 많으니, 무리가 함께 모여 임금을 해칠 것입니다.” 소공이 듣지 않았다. 후씨가 말했다.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합니다.” 숙손씨의 신하 려가 그의 무리에게 말했다. “계씨가 없는 것과 계씨가 있는 것, 어느 것이 이롭습니까?” 모두 말했다. “계씨가 없으면 숙손씨도 없습니다.” 려가 말했다. “옳다, 계씨를 구원하라!” 그러고는 소공의 군대를 물리쳤다. 맹의자가 숙손씨가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후소백을 죽였다. 후소백은 소공을 위해 사신으로 간 자였으므로, 맹씨가 그를 잡았다. 세 집안이 함께 소공을 공격했고, 소공은 마침내 도망갔다. 기해일에 소공이 제나라에 도착했다. 제경공이 말했다. “기꺼이 천 개의 사직 땅을 바쳐 임금을 맞이하겠습니다.” 자기 집이 말했다. “주공의 기업을 버리고 제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에 그만두었다. 자기 집이 말했다. “제경공은 신의가 없으니, 일찍 진나라로 가는 것이 낫습니다.” 소공이 듣지 않았다. 숙손씨가 소공을 만나 돌아왔고, 다시 평자를 만나니 평자가 머리를 조아렸다. 처음에는 소공을 맞이하려 했으나, 맹손씨와 계손씨가 나중에 후회하여 그만두었다.
26년 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운 땅을 빼앗아 소공이 그곳에 살게 했다. 여름에 제경공이 소공을 노나라로 돌려보내려 하며, 노나라의 뇌물을 받지 말라고 명령했다. 신풍과 여가가 제나라 대신 고혁과 자장에게 다섯만 유의 곡식을 바치기로 약속했다. 자장이 제후에게 말했다. “신하들이 노나라 임금을 섬기지 못하는 데는 괴이한 일이 있습니다. 송원공이 노나라를 위해 진나라에 가서 노나라 임금을 돌려보내 주기를 청하다가 길에서 죽었습니다. 숙손소자가 그의 임금을 맞아들이기를 청하다가 병도 없이 죽었습니다. 하늘이 노나라를 버린 것인지, 아니면 노나라 임금이 귀신에게 죄를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원컨대 임금께서는 잠시 기다리소서.” 제경공이 그를 따랐다.
28년, 소공이 진나라에 가서 돌려보내 주기를 청했다. 계평자가 은밀히 진나라의 여섯 경대부와 사귀었고, 여섯 경대부가 계씨의 뇌물을 받고 진나라 임금에게 간하여, 진나라 임금이 마침내 그만두게 하고 소공이 간후에 살게 했다. 29년, 소공이 운 땅으로 갔다. 제경공이 사람을 시켜 소공에게 편지를 주며 스스로를 ‘주군’이라 일컬었다. 소공이 부끄럽게 여겨 노하여 떠나 간후로 갔다. 31년, 진나라가 소공을 돌려보내려 하고 계평자를 불렀다. 평자가 베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가 여섯 경대부를 통해 사죄했다. 여섯 경대부가 그를 위해 진나라 임금에게 말했다. “진나라가 소공을 돌려보내려 하나 무리가 따르지 않습니다.” 진나라 사람들이 그만두었다. 32년, 소공이 간후에서 죽었다. 노나라 사람들이 함께 소공의 아우 송을 세워 임금으로 삼으니 이가 바로 정공이다.
정공이 즉위하자, 조간자가 사묵에게 묻기를 “계씨가 망할 것입니까?”라고 했다. 사묵이 대답했다.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우가 노나라에 큰 공이 있어 비 땅을 받고 상경이 되었으며, 문자와 무자에 이르러 대대로 그 기업을 더했습니다. 노문공이 죽자 동문수(양중)가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으며, 노나라 임금은 이로부터 나라의 정권을 잃었습니다. 정권이 계씨에게 있는 것이 지금까지 네 임금을 겪었습니다. 백성이 임금을 알지 못하는데, 무엇으로 나라를 얻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은 권병과 명위를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정공 5년, 계평자가 죽었다. 양호가 사사로운 원한으로 노하여 계환자를 가두고 그와 맹약을 맺은 후에야 놓아주었다. 7년,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운 땅을 빼앗아, 그것을 노나라 양호의 채읍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정사를 처리하게 했다. 8년, 양호가 삼환의 적자를 모두 죽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서자로 대신 세우려 하여, 수레에 계환자를 싣고 죽이려 했으나, 환자가 계책을 써서 도망칠 수 있었다. 삼환이 함께 양호를 공격하자, 양호가 양관을 점거했다. 9년, 노나라가 양호를 공격하자, 양호는 제나라로 도망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의 조씨에게로 도망갔다.
十年,定公이 제경공과 협곡에서 회합할 때, 공이 상례를 맡았다. 제나라가 노나라 군주를 습격하려 하자, 공이 예법에 따라 섬돌에 올라 제나라의 음란한 자들을 베었고, 제후가 두려워하여 그만두고 침범한 노나라의 땅을 돌려주고 사죄하였다.十二年, 중유를 보내 삼환의 성벽을 헐고 그들의 갑옷과 병기를 거두어들였다. 맹씨가 성벽을 허는 것을 거부하자 그를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계환자가 제나라의 여악을 받아들이자 공자가 떠났다.
十五年, 정공이 죽고 아들 장이 즉위하니, 이가 애공이다.
애공 五年, 제경공이 죽었다. 六年, 제나라 전걸이 그의 군주 유자를 죽였다.
七年, 오왕 부차가 강성해져서 제나라를 공격하여 증 땅에 이르렀고, 노나라에 백 노의 제수를 요구하였다. 계강자가 자공을 보내 오왕과 태재 백비를 설득하여 예법으로 그들을 꺾었다. 오왕이 말하기를 “나는 몸에 문신이 있으니 예법으로 요구할 가치가 없다.” 하고는 그만두었다.
八年, 오나라가 추나라를 위해 노나라를 공격하여 성 아래에 이르렀고, 맹약을 맺은 후 떠났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여 세 성읍을 빼앗았다. 十年, 노나라가 제나라 남쪽 변경을 공격하였다. 十一年,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였다. 계씨가 염유의 공을 중히 여기고 공자를 그리워하여, 공자가 위나라에서 노나라로 돌아왔다.
十四年, 제나라 전상이 치주에서 그의 군주 간공을 죽였다. 공자가 그를 토벌할 것을 청하였으나 애공이 따르지 않았다. 十五年, 자복경백과 자공을 부사로 삼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니, 제나라가 침범한 노나라의 땅을 돌려주었다. 전상이 처음으로 상국이 되어 제후들과 가까이하려 하였다.
十六年, 공자가 죽었다.
二十二年,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멸망시켰다.
二十七年 봄, 계강자가 죽었다. 여름, 애공이 삼환을 걱정하여 제후에게 의지해 그들을 위협하려 하였고, 삼환도 애공이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군신 사이에 틈이 많았다. 애공이 능판에서 놀다가 길에서 맹무백을 만나 말하기를 “묻노니, 내가 죽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애공이 월나라를 이용하여 삼환을 공격하려 하였다. 八月, 애공이 형씨에게 갔다. 삼환이 애공을 공격하자, 애공이 위나라로 도망쳐 갔다가 추나라로 떠나 마침내 월나라로 갔다. 나라 사람들이 애공을 맞아 돌아오게 하였으나, 결국 유산씨에게서 죽었다. 아들 영이 즉위하니, 이가 도공이다.
도공 때에 삼환이 세력을 잡아 노나라는 작은 제후처럼 되어 지위가 삼환의 집보다 낮았다.
十三年, 삼진이 지백을 멸망시키고 그의 땅을 나누어 가졌다.
三十七年, 도공이 죽고 아들 가가 즉위하니, 이가 원공이다. 원공 二十一年에 죽고 아들 현이 즉위하니, 이가 목공이다. 목공 三十三年에 죽고 아들 분이 즉위하니, 이가 공공이다. 공공 二十二年에 죽고 아들 둔이 즉위하니, 이가 강공이다. 강공 九年에 죽고 아들 언이 즉위하니, 이가 경공이다. 경공 二十九年에 죽고 아들 숙이 즉위하니, 이가 평공이다. 이때 여섯 나라가 모두 왕이라 일컬었다.
평공 十二年, 진혜왕이 죽었다. 二十年, 평공이 죽고 아들 가가 즉위하니, 이가 문공이다. 문공 원년, 초회왕이 진나라에서 죽었다. 二十三年, 문공이 죽고 아들 수가 즉위하니, 이가 경공이다.
경공 二年, 진나라가 초나라의 영도를 함락시키고, 초경왕이 동쪽 진 땅으로 도읍을 옮겼다. 十九年, 초나라가 우리(노나라)를 공격하여 서주를 점령하였다. 二十四年, 초고열왕이 노나라를 멸망시켰다. 경공이 도망쳐 하읍으로 쫓겨나 평민이 되니, 노나라의 제사가 끊어졌다. 경공이 가 땅에서 죽었다.
노나라는 주공부터 경공까지 모두 삼십사 대를 전하였다.
태사공이 말한다: 내가 듣기에 공자가 칭송하여 말하기를 “노나라의 도덕 풍속이 쇠퇴함이 심하도다! 수수와 사수 사이의 사람들은 다투고 시끄럽구나.” 하였다. 경보와 숙아가 민공 시절에 저지른 일을 보면, 어찌 그리 혼란스러운가! 은공과 환공이 군위를 다툰 일; 양중이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운 일; 맹손, 숙손, 계손 삼가가 신하로서 소공을 친히 공격하여 소공이 그로 인해 도망친 일. 그들이 강조한 읍양의 예절은 확실히 옛 제도를 따랐지만,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또 어찌 그리 괴이한가!
무왕이 죽은 뒤, 성왕이 어려 외로웠다. 주공이 대신하여 정사를 보며 병풍에 기대어 지도를 손에 쥐었다. 성왕에게 정사를 돌려주고 신하의 지위로 돌아왔을 때는 또 북쪽을 향해 공손히 탄식하였다. 장자가 노나라에 봉해졌으니, 그곳은 소호의 옛 터였다. 주 왕실을 보좌하며 직분을 굳게 지켜 변하지 않았다. 효왕에 이르러 목중이 일찍이 그를 칭송하였다. 은공이 능히 군위를 사양하였으니, 이는 춘추 시대의 초기였다. 좌구명이 죽간을 손에 쥐고 포폄의 일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