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세가 제십
楚나라의 조상은 제곡(帝嚳) 고신(高辛)의 화정(火正)이었던 중리(重黎)에서 비롯되었다. 고양(高陽)은 황제(黃帝)의 손자이자 창의(昌意)의 아들이다. 고양이 칭(稱)을 낳고, 칭이 권장(卷章)을 낳고, 권장이 중리(重黎)를 낳았다. 중리는 제곡 고신의 화정을 맡아 큰 공을 세워 천하를 밝게 빛냈으므로, 제곡이 그에게 축융(祝融)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공공씨(共工氏)가 반란을 일으키자, 제곡은 중리를 보내 토벌하게 했으나 완전히 평정하지 못했다. 이에 제곡은 경인일(庚寅日)에 중리를 죽이고, 그의 아우 오회(吳回)가 중리의 자리를 이어받아 다시 화정이 되었으며, 역시 축융이라 불렸다.
오회는 육종(陸終)을 낳았다. 육종은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갈비뼈를 갈라서 태어났다. 큰아들은 곤오(昆吾), 둘째는 삼호(參胡), 셋째는 팽조(彭祖), 넷째는 회인(會人), 다섯째는 조성(曹姓), 여섯째는 계련(季連)으로, 성은 미(芈)씨이며, 초나라가 바로 그의 후손이다. 곤오씨는 하나라 때 제후가 되었으나 하나라 걸왕 때 상나라 탕왕에게 멸망당했다. 팽조씨는 은나라 때 제후가 되었으나 은나라 말기에 멸망했다. 계련은 부저(附沮)를 낳고, 부저는 혈웅(穴熊)을 낳았다. 그의 후손은 중간에 쇠퇴하여, 어떤 이는 중원에, 어떤 이는 만이(蠻夷) 지역에 흩어져 있어 그 세계(世系)를 기록할 수 없게 되었다.
주나라 문왕 때, 계련의 후손인 욕웅(鬻熊)이 있었다. 욕웅은 아들처럼 문왕을 섬기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은 웅려(熊麗)이다. 웅려는 웅광(熊狂)을 낳고, 웅광은 웅역(熊繹)을 낳았다.
웅역은 주나라 성왕 때 살았다. 성왕은 문왕과 무왕 때 왕실을 위해 수고한 후손들을 등용하여, 웅역을 초만(楚蠻) 땅에 봉하고 자남(子男) 등급의 토지를 주었으며, 성은 미씨로 하고 단양(丹陽)에 살게 했다. 초자(楚子) 웅역은 노공(魯公) 백금(伯禽), 위강숙(衛康叔)의 아들 모(牟), 진후(晉侯) 섭(燮), 제태공(齊太公)의 아들 여급(呂伋)과 함께 주 성왕을 섬겼다.
웅역은 웅애(熊艾)를 낳고, 웅애는 웅단(熊䵣)을 낳고, 웅단은 웅승(熊勝)을 낳았다. 웅승은 아우 웅양(熊楊)을 후계자로 삼았다. 웅양은 웅거(熊渠)를 낳았다.
웅거는 세 아들을 두었다. 주나라 이왕 때, 주 왕실이 쇠약해져 제후들이 조공을 오지 않고 서로 공격했다. 웅거는 강한(江漢) 일대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용국(庸國)과 양월(楊粵)을 공격하고 악(鄂) 땅까지 이르렀다. 웅거가 말했다. “우리는 만이이므로 중원의 칭호와 시호를 따르지 않겠다.” 이에 큰아들 강(康)을 구단왕(句亶王), 둘째 아들 홍(紅)을 악왕(鄂王), 막내아들 집치(執疵)를 월장왕(越章王)으로 삼았으며, 모두 장강 변의 초만 지역에 있었다. 주나라 여왕 때에 이르러 여왕이 포학하자, 웅거는 그가 초나라를 칠까 두려워하여 왕호를 버렸다.
후에 웅무강(熊毋康)이 즉위했으나 일찍 죽었다. 웅거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웅지홍(熊摯紅)이 즉위했다. 지홍이 죽자, 그의 아우가 그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아 웅연(熊延)이라 불렸다. 웅연은 웅용(熊勇)을 낳았다.
웅용 6년, 주나라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왕을 공격하자, 여왕은 체(彘) 땅으로 도망갔다. 웅용 10년, 세상을 떠나고 아우 웅엄(熊嚴)이 즉위했다.
웅엄 10년, 세상을 떠났다. 네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백상(伯霜), 둘째는 중설(仲雪), 셋째는 숙감(叔堪), 막내는 계순(季徇)이다. 웅엄이 죽자 큰아들 백상이 즉위했으니, 이가 곧 웅상(熊霜)이다.
웅상 원년, 주 선왕이 막 즉위했다. 웅상 6년, 세상을 떠나고 세 아우가 왕위를 다투었다. 중설은 죽었고, 숙감은 도망쳐 박(濮) 땅으로 피난했다. 작은 아우 계순이 즉위했으니, 이가 곧 웅순(熊徇)이다. 웅순 16년, 정환공(鄭桓公)이 처음으로 정(鄭) 땅에 봉해졌다. 22년, 웅순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웅악(熊咢)이 즉위했다. 웅악 9년, 세상을 떠나고 아들 웅의(熊儀)가 즉위했으니, 이가 곧 약오(若敖)이다.
약오 20년, 주 유왕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되고 주 왕실이 동쪽으로 천도했으며, 진양공(秦襄公)이 비로소 제후가 되었다.
27년, 약오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웅감(熊坎)이 즉위했으니, 이가 곧 소오(霄敖)이다. 소오 6년, 세상을 떠나고 아들 웅순(熊眴)이 즉위했으니, 이가 곧 분모(蚡冒)이다. 분모 13년, 진(晉)나라가 곡옥(曲沃) 때문에 처음으로 동란을 겪었다. 분모 17년, 세상을 떠났다. 분모의 아우 웅통(熊通)이 분모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으니, 이가 곧 초 무왕(楚武王)이다.
무왕 17년, 진나라의 곡옥 장백(莊伯)이 종주국 군주 진 효후(晉孝侯)를 죽였다. 19년, 정백(鄭伯)의 아우 단(段)이 반란을 일으켰다. 21년, 정나라가 주 천자의 토지를 침범했다. 23년, 위(衛)나라가 자기 군주 위 환공(衛桓公)을 죽였다. 29년, 노(魯)나라가 자기 군주 노 은공(魯隱公)을 죽였다. 31년, 송(宋)나라의 태재(太宰) 화독(華督)이 자기 군주 송 상공(宋殤公)을 죽였다.
35년, 초나라가 수(隨)나라를 쳤다. 수후(隨侯)가 말했다. “나는 죄가 없소.” 초왕이 말했다. “우리는 만이오. 지금 제후들은 천자를 배반하고 서로 침범하며, 어떤 이는 서로 죽이기도 하오. 나에게는 낡은 갑옷이 있으니, 중원의 정사에 참여하고자 하오. 왕실에서 내 명호를 높여 주시오.” 수나라 사람이 초나라를 위해 주 왕실에 가서 초나라의 명호를 높여 줄 것을 청했으나, 주 왕실이 허락하지 않자, 수나라 사람이 돌아와 초나라에 보고했다. 37년, 초 웅통이 노하여 말했다. “내 선조 욕웅은 문왕의 스승이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소. 성왕이 내 선조를 등용하여 겨우 자남 등급의 토지를 주고 초 땅에 살게 했는데, 만이들이 모두 복종했으나 주왕은 작위를 더해 주지 않았소. 그러니 내가 스스로를 높이겠소.” 이에 스스로를 무왕이라 칭하고, 수나라 사람과 맹약한 후 떠났다. 이때부터 박 땅을 개척하여 차지하기 시작했다.
51년, 주 왕실이 수후를 불러 초나라가 왕을 칭한 일을 책망했다. 초왕이 노하여 수후가 자기를 배반했다고 여기고 수나라를 쳤다. 무왕이 행군 중에 세상을 떠나자 군대가 공격을 멈추었다. 아들 문왕(文王) 웅자(熊貲)가 즉위하여 처음으로 영(郢)에 도읍을 정했다.
문왕 2년, 신(申)나라를 치려고 등(鄧)나라를 지날 때, 등나라 사람들이 “초왕은 잡기 쉽다”고 말했으나, 등후(鄧侯)가 허락하지 않았다. 6년, 채(蔡)나라를 쳐서 채 애후(蔡哀侯)를 사로잡아 돌아왔으나, 얼마 뒤 풀어주었다. 초나라가 강성해져 강한 사이의 작은 나라들을 업신여기니, 작은 나라들이 모두 두려워했다. 11년, 제 환공(齊桓公)이 처음으로 패자가 되었고, 초나라도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12년, 등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13년, 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웅견(熊囏)이 즉위했으니, 이가 곧 장오(莊敖)이다. 장오 5년, 자기 아우 웅운(熊惲)을 죽이려 하자, 웅운이 수나라로 도망쳐, 수나라 사람과 함께 장오를 습격하여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으니, 이가 곧 성왕(成王)이다.
성왕 웅운 원년, 막 즉위하여 은덕을 널리 베풀고 제후들과 옛날의 우호 관계를 회복했다. 사람을 보내 주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자, 천자가 제육(祭肉)을 내리며 말했다. “네 남방의 이월(夷越) 지역 동란을 잘 진정시키고, 중원을 침범하지 말라.” 이에 초나라의 땅이 천 리까지 확장되었다.
16년, 제 환공이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침범하여 형산(陘山)에 이르렀다. 초 성왕이 장군 굴완(屈完)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막게 하여, 제 환공과 맹약했다. 제 환공이 초나라가 주 왕실에 공납을 바치지 않는다고 꾸짖자, 초나라가 이를 승낙했고, 제 환공이 떠났다.
18년, 성왕이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허(許)나라를 쳤다. 허군(許君)이 옷을 벗고 맨몸으로 사죄하자, 성왕이 그를 풀어주었다. 22년, 황(黃)나라를 쳤다. 26년, 영(英)나라를 멸망시켰다.
33년, 송 양공(宋襄公)이 회맹을 열려고 초왕을 불렀다. 초왕이 노하여 말했다. “나를 부르다니, 내가 가서 그를 습격하여 욕보이리라.” 이에 출발하여 우(盂) 땅에 이르러 송 양공을 붙잡아 욕보인 후, 얼마 뒤 풀어주었다. 34년, 정 문공(鄭文公)이 남쪽으로 내려와 초왕을 알현했다. 초 성왕이 북쪽으로 송나라를 쳐서 홍수(泓水)에서 패배시키고, 송 양공을 활로 쏘아 상처를 입혔으며, 송 양공이 이로 인해 상처가 악화되어 죽었다.
35년, 진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초나라를 지나가자, 성왕이 제후의 손님 예우로 대접하고 후한 선물을 주어 진(秦)나라로 보냈다.
39년, 노 희공(魯僖公)이 와서 군사를 빌려 제나라를 치기를 청하자, 초나라가 신후(申侯)를 보내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쳐서 곡(穀) 땅을 빼앗고, 제 환공의 아들 공자 옹(公子雍)을 그곳에 두었다. 제 환공의 일곱 아들이 모두 초나라로 도망쳐 오자, 초나라가 모두 상대부(上大夫)로 봉했다. 기(夔)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기나라가 축융과 욕웅을 제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에 송나라를 치자, 송나라가 진(晉)나라에 급히 알렸고, 진나라가 송나라를 구원하자, 성왕이 군사를 거두고 돌아왔다. 장군 자옥(子玉)이 진나라와 싸울 것을 청하자, 성왕이 말했다. “중이는 떠돌아다닌 지 오래되어 마침내 귀국했으니, 이는 하늘이 그를 열어 주는 것이므로 막을 수 없다.” 자옥이 간청하자, 성왕이 적은 군사만 주고 보냈다. 진나라 군대가 과연 성복(城濮)에서 자옥을 무찔렀다. 성왕이 노하여 자옥을 죽였다.
사십육년, 당초에 성왕은 상신을 태자로 세우려 하여 영윤 자상에게 알렸다. 자상이 말했다. "군주의 나이가 아직 많지 않으시고, 게다가 총애하는 후궁이 많으니, 태자를 폐립하면 난이 일어날 것입니다. 초나라의 계승은 항상 어린 아들에게 있습니다. 게다가 상신은 벌눈과 승냥이 목소리를 가졌으니, 잔혹한 사람이라 태자로 세울 수 없습니다." 성왕이 듣지 않고 상신을 세웠다. 후에 다시 공자 직을 세우려고 태자 상신을 폐하려 하였다. 상신이 소문을 들었으나 정보가 확실하지 않아, 그의 스승 반숭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진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반숭이 말했다. "성왕의 총희인 강미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되 공경하지 마시오." 상신이 그대로 따랐다. 강미가 노하여 말했다. "과연 왕이 너를 죽이고 직을 세우려 하는구나." 상신이 반숭에게 말했다. "확실합니다." 반숭이 말했다. "그대가 공자 직을 섬길 수 있겠소?" 상신이 말했다. "할 수 없습니다." "도망칠 수 있겠소?" 상신이 말했다. "할 수 없습니다."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겠소?" 상신이 말했다. "할 수 있습니다." 겨울 시월, 상신이 궁중의 위병으로 성왕을 포위했다. 성왕이 곰 발바닥을 먹고 죽기를 청했으나 상신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미일, 성왕이 목을 매 자살했다. 상신이 군위를 대신했으니, 이가 목왕이다.
목왕이 즉위한 후, 태자궁의 집을 반숭에게 주고 그를 태사로 삼아 국사를 관장하게 했다. 목왕 3년, 강나라를 멸망시켰다. 4년, 육나라와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육나라와 요나라는 고요의 후손이다. 8년, 진나라를 공격했다. 12년에 죽었다. 아들 장왕 여가 즉위했다.
장왕이 즉위한 지 3년 동안, 명령을 내리지 않고 밤낮으로 환락을 일삼으며 나라 안에 명령을 내렸다. "감히 간언하는 자는 죽이되 용서하지 않겠다!" 오거가 입궐하여 간언했다. 장왕이 왼손에는 정나라의 희녀를 안고, 오른손에는 월나라의 미녀를 안고, 종과 북 사이에 앉아 있었다. 오거가 말했다. "은어 하나를 올리고자 합니다." "새 한 마리가 흙산 위에 앉아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데, 이는 무슨 새입니까?" 장왕이 말했다. "삼 년 동안 날지 않으면, 한 번 날아 하늘을 찌를 것이요; 삼 년 동안 울지 않으면, 한 번 울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오거는 물러가시오, 내가 알았소." 몇 달이 지나자, 장왕은 더욱 방탕해졌다. 대부 소종이 이에 입궐하여 간언했다. 장왕이 말했다. "그대는 명령을 듣지 못했소?" 소종이 대답했다. "목숨을 바쳐 군주를 밝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이에 장왕이 방탕한 향락을 그치고 정사를 처리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수백 명을 등용했으며, 오거와 소종을 등용하여 정무를 처리하게 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했다. 이 해에 용나라를 멸망시켰다. 6년, 송나라를 공격하여 전차 오백 대를 노획했다.
8년, 초나라가 육혼융을 공격하여 마침내 낙수에 이르러 주나라 경계에서 군대를 사열했다. 주 정왕이 왕손만을 보내 초왕을 위로하게 했다. 초왕이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묻자, 왕손만이 대답했다. "덕에 달려 있을 뿐, 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왕이 말했다. "그대는 구정을 믿지 마시오! 초나라는 갈고리 창의 날만 꺾어도 구정을 만들기에 충분하오." 왕손만이 말했다. "아! 군주께서 잊으셨습니까? 옛날 우순과 하나라가 성할 때, 먼 곳의 사람들이 와서 귀부하고, 구주의 장관들이 구리를 진상하여 구정을 만들고 만물의 형상을 새겨 넣어, 온갖 사물을 갖추어 백성들로 하여금 귀신과 간사한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하나라의 걸이 혼란하고 덕을 잃자, 정은 은나라로 옮겨져 육백 년을 누렸습니다. 은나라의 주가 포악하자, 정은 다시 주나라로 옮겼습니다. 덕이 아름답고 밝으면, 정이 비록 작아도 반드시 무겁고; 간사하고 혼란하면, 정이 비록 커도 반드시 가볍습니다. 옛날 성왕이 가욕에 정을 정하고, 점을 쳐서 전세가 삼십 대, 칠백 년을 누릴 것을 얻었으니, 이는 하늘의 명령입니다. 주나라의 덕이 비록 쇠하였으나, 천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鼎)의 무게는 물을 수 없는 것입니다." 초왕이 이에 군대를 거두고 돌아갔다.
9년, 약오씨를 재상으로 삼았다. 어떤 사람이 초왕에게 참언을 하자, 약오씨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초왕을 공격했고, 초왕이 군대를 내어 약오씨 일족을 멸망시켰다. 13년, 서나라를 멸망시켰다.
16년, 진나라를 공격하여 하징서를 죽였다. 하징서가 그의 군주를 시해했으므로, 그를 주살한 것이다. 진나라를 함락시킨 후, 곧바로 현으로 삼았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와서 축하했으나, 신숙시가 제나라에 사신 갔다가 돌아와서 홀로 축하하지 않았다. 초왕이 그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속담에 이르길, 소를 끌고 남의 밭을 짓밟으면, 밭 주인이 소를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밭을 짓밟은 것은 잘못이지만, 소를 빼앗는 것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왕께서 진나라에 내란이 일어난 것을 보고 제후들을 이끌어 토벌하신 것은, 의로움으로 군대를 일으킨 것인데, 그 땅을 탐내어 현으로 삼으시니, 이로써 어떻게 다시 천하에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장왕이 이에 진나라를 회복시키고, 진나라의 후손을 세워 군주로 삼았다.
17년 봄, 초 장왕이 정나라를 포위하여 석 달 만에 함락시켰다. 황문으로 들어가자, 정백이 웃통을 벗고 양을 끌고 영접하며 말했다. "제가 하늘의 가호를 받지 못하여 군주를 섬기지 못했고, 군주께서 이에 노하셔서 화가 저희 작은 나라에 미쳤으니, 이는 저의 죄입니다. 어찌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만약 저를 남해로 유배 보내시거나, 혹은 신하나 노비로 삼아 제후들에게 상으로 주셔도,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만약 군주께서 여왕, 선왕, 환공, 무공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사직을 끊지 않으시며, 제가 잘못을 고쳐 군주를 섬기게 하신다면, 이는 저의 소원이지만 감히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삼가 마음속 말씀을 아뢰올 뿐입니다." 초나라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왕께서는 허락하지 마소서." 장왕이 말했다. "정나라 군주가 남에게 굴복할 줄 안다면, 반드시 그 백성을 믿고 부릴 수 있을 것이니, 어찌 그를 멸망시킬 수 있겠는가!" 장왕이 손수 깃발을 잡고 좌우로 군사를 지휘하여, 군대를 이끌고 삼십 리를 물러나 주둔한 후, 정나라와 강화하기를 허락했다. 반왕이 정나라에 들어가 맹약을 맺고, 자량이 초나라에 인질로 갔다. 여름 유월, 진나라가 정나라를 구원하여 초나라와 교전하였고, 초군이 황하에서 진군을 크게 무찌르고, 이에 형옹에 이르렀다가 돌아갔다.
20년, 송나라를 포위했는데, 송나라가 초나라 사자를 죽였기 때문이다. 송나라를 포위한 지 오 개월, 성 안의 식량이 바닥나서 아이를 바꾸어 먹고, 뼈를 쪼개어 땔감으로 삼았다. 송나라의 화원이 성 밖으로 나와 실정을 알렸다. 장왕이 말했다. "참으로 군자로다!" 이에 군대를 거두고 떠났다.
23년, 장왕이 죽고, 아들 공왕 심이 즉위했다.
공왕 16년,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했다. 정나라가 초나라에 급히 구원을 청하자, 공왕이 정나라를 구원했다. 진군과 언릉에서 교전하여 진군이 초군을 무찌르고, 공왕의 눈을 쏘았다. 공왕이 장군 자반을 불렀다. 자반이 술을 좋아하여, 시동 수양곡이 술을 올려 그를 취하게 했다. 공왕이 노하여 자반을 쏘아 죽이고, 이에 군대를 거두고 돌아갔다.
31년, 공왕이 죽고, 아들 강왕 소가 즉위했다. 강왕이 재위 15년 만에 죽고, 아들 원이 즉위했으니, 이가 격오이다.
강왕이 총애한 아우로는 공자 위, 자비, 자석, 기질이 있었다. 격오 3년, 그의 숙부인 강왕의 아우 공자 위를 영윤으로 삼아 군사를 관장하게 했다. 4년, 공자 위가 정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길에서 초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12월 기유일, 공자 위가 입궁하여 초왕의 병을 문안하고, 갓끈으로 초왕을 목 졸라 죽이고, 이어서 초왕의 아들 막과 평하를 죽였다. 정나라에 사자를 보내 부고를 알렸다. 오거가 물었다. "누가 계승자가 됩니까?" 사자가 대답했다. "과대부 위입니다." 오거가 말을 고쳤다. "공왕의 아들 위가 나이가 가장 많습니다." 자비가 진나라로 도망갔고, 공자 위가 즉위했으니, 이가 영왕이다.
영왕 3년 6월, 초나라가 사자를 진나라에 보내 제후들을 모으고자 한다고 알렸다. 제후들이 모두 신 땅에서 초나라와 회맹했다. 오거가 말했다. "옛날 하나라 계왕이 균대에서 연향을 베풀었고, 상나라 탕왕이 경박에서 천명을 받았으며, 주나라 무왕이 맹진에서 맹세했고, 성왕이 기양에서 열병했으며, 강왕이 풍궁에서 조회했고, 목왕이 도산에서 회맹했으며, 제나라 환공이 소릉에서 군대를 일으켰고, 진나라 문공이 천토에서 맹약을 했습니다. 군주께서는 어떤 예를 취하시겠습니까?" 영왕이 말했다. "제나라 환공의 예를 취하겠소." 그때 정나라의 자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에 진나라, 송나라, 노나라, 위나라는 가지 않았다. 영왕이 회맹을 마친 후, 교만한 기색을 드러냈다. 오거가 말했다. "하나라 걸이 유임에서 회맹을 하자, 유민이 그를 배반했습니다. 상나라 주가 여산에서 회맹을 하자, 동이가 그를 배반했습니다. 주나라 유왕이 태실에서 회맹을 하자, 융과 적이 그를 배반했습니다. 군주께서는 끝을 신중히 하여 시작과 같이 하소서!"
七月,초나라가 제후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하여 주방을 포위했다. 팔월에 주방을 함락시키고 경봉을 사로잡아 그의 일족을 멸망시켰다. 경봉을 내세워 무리를 보며 이르기를, “제나라의 경봉처럼 그 군주를 시해하고 어린 임금을 능멸하며, 여러 대부들에게 억지로 맹약을 맺게 하지 말라!” 하였다. 경봉이 되받아 말하기를, “초공왕의 서자 위처럼 그 군주 형의 아들 원을 시해하고 그 자리를 빼앗지 말라!” 하였다. 이에 영왕이 사람을 시켜 즉시 경봉을 죽였다.
7년, 장화대를 완성하고 명령을 내려 도망친 사람들을 받아들여 그곳을 채우게 하였다.
8년, 공자 기질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를 멸망시키게 하였다. 10년, 채후를 불러 술에 취하게 한 뒤 죽였다. 기질을 보내 채나라를 평정하고, 이에 기질을 진채공으로 임명하였다.
11년, 서나라를 쳐서 오나라를 위협하였다. 영왕이 간계에 머물며 전과를 기다렸다. 영왕이 말하기를, “제나라, 진나라, 노나라, 위나라는 그들이 봉해질 때 모두 보배로운 기물을 얻었지만, 나만 없다. 이제 내가 사자를 주나라에 보내 솥을 분봉의 물건으로 요구한다면, 주천자가 나에게 줄 것인가?” 하였다. 석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왕 웅역이 형산에 외지게 살며, 수레를 타고 헌 옷을 입고 초야에 거처하며, 산과 물을 넘어 천자를 섬기면서 오직 복숭아나무 활과 가시나무 화살로 왕실의 일을 받들었습니다. 제나라는 천자의 외숙부이고, 진나라와 노나라, 위나라는 천자의 동복 동생입니다. 그러므로 초나라는 분봉을 받지 못했고 그들은 모두 받았습니다. 주나라는 지금 네 나라와 함께 군왕을 섬기며, 명령만을 따를 것이니 어찌 구정을 아까워하겠습니까?” 영왕이 말하기를, “옛날 나의 황조 백고곤오가 일찍이 구허 땅에 살았는데, 지금 정나라 사람들이 그 땅을 탐내어 나에게 주지 않으니, 이제 내가 요구한다면 그들이 나에게 줄 것인가?” 하였다. 석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천자가 구정을 아끼지 않는데, 정나라가 어찌 감히 땅을 아끼겠습니까?” 영왕이 말하기를, “옛날 제후들이 나를 멀리하고 진나라를 두려워했는데, 이제 내가 진, 채, 불갱 등지에 성을 크게 수축하여 곳곳에 전차 천 승을 두었으니, 제후들이 나를 두려워하는가?” 하였다. 석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하였다. 영왕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석보는 옛일을 잘 논하는구나.”
12년 봄, 초 영왕이 간계에서 즐기며 떠나지 않았다. 나라 안의 백성들은 부역에 시달렸다. 처음에 영왕이 신 땅에서 군대를 모아 월나라 대부 상수과를 모욕하고, 채나라 대부 관기를 죽였다. 관기의 아들 관종이 오나라로 도망쳐 오왕에게 초나라를 치도록 권하며, 월나라 대부 상수과를 위해 내란을 일으키고 오나라의 첩자 노릇을 하였다. 그는 공자 기질의 명령을 사칭하여 진나라로 가서 공자 비를 불러오고, 채나라에 도착한 후 오나라와 월나라의 군대와 함께 채나라를 습격하려 하였다. 공자 비가 기질을 만나 등 땅에서 맹약을 맺었다. 이어 초나라 도성으로 들어가 영왕의 태자 녹을 죽이고, 공자 비를 초왕으로 세우고, 공자 자석을 영윤으로, 기질을 사마로 삼았다. 먼저 왕궁을 정리하고, 관종이 군대를 이끌고 간계에 이르러 초군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라에 이미 새 왕이 있다. 먼저 돌아가는 자는 작위와 봉읍과 전택을 회복한다. 늦게 돌아가는 자는 유배를 보낸다.” 하였다. 초군이 모두 무너져 영왕을 떠나 귀국하였다.
영왕이 태자 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수레 아래 떨어지며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자식을 사랑함도 나와 같을까?” 하였다. 시자가 말하기를, “이보다 더합니다.” 영왕이 말하기를, “내가 다른 사람의 자식을 많이 죽였으니,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우윤이 말하기를, “교외에서 기다리며 나라 사람들의 처분을 따르소서.” 하였다. 영왕이 말하기를, “무리의 분노는 감히 범할 수 없다.” 하였다. 우윤이 말하기를, “잠시 큰 고을로 들어가 제후들에게 구원병을 청하소서.” 하였다. 영왕이 말하기를, “모두 배반하였다.” 하였다. 우윤이 또 말하기를, “잠시 제후에게로 달려가 큰 나라의 처분을 따르소서.” 하였다. 영왕이 말하기를, “큰 복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치욕을 취할 뿐이다.” 하였다. 이에 영왕이 배를 타고 언 땅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우윤이 영왕이 자기 계책을 쓰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함께 죽을까 두려워하여 떠나 달아났다.
영왕이 마침내 산 속에서 혼자 배회하였으나, 촌민 중에 영왕을 받아들일 자가 없었다. 영왕이 길에서 예전 시자를 만나 그에게 말하기를, “나를 위해 먹을 것을 찾아다오. 내가 이미 사흘 동안 먹지 못했다.” 하였다. 시자가 말하기를, “새 왕이 법령을 내려 감히 영왕의 수행원에게 음식을 공급하는 자는 삼족을 연좌시키며, 또한 나도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영왕이 이내 시자의 넓적다리를 베고 누웠다. 시자가 또 흙덩이로 자기 넓적다리를 대신하고 도망갔다. 영왕이 깨어 시자가 없는 것을 보고, 이내 굶주려 일어나지 못하였다. 우윤 신무우의 아들 신해가 말하기를, “내 아버지가 두 번 왕명을 어겼으나 영왕이 죽이지 않았으니, 은덕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하였다. 이에 영왕을 찾아 이택에서 굶주려 쓰러진 영왕을 만나 공손히 집으로 모셨다. 여름 5월 계축일에 영왕이 신해의 집에서 죽었고, 신해가 두 딸을 순장시키며 함께 장사지냈다.
이때 초나라가 비록 공자 비를 초왕으로 세웠으나 영왕이 돌아올까 두려워하고, 또 영왕의 죽음을 듣지 못하였으므로, 관종이 새 왕 비에게 말하기를, “기질을 죽이지 않으면, 비록 나라를 얻더라도 여전히 화를 입을 것입니다.” 하였다. 새 왕이 말하기를, “내가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하였다. 관종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이 감히 당신에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였다. 새 왕이 듣지 않자, 관종이 이내 떠났다. 기질이 귀국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밤마다 놀라며 말하기를, “영왕이 돌아왔다!” 하였다. 을묘일 밤에 기질이 뱃사람을 시켜 강가에서 달리며 외치게 하기를, “영왕이 도착했다!”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더욱 놀랐다. 또 만성성을 시켜 새 왕 비와 영윤 자석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영왕이 도착했다! 나라 사람들이 너희를 죽이려 하고, 사마도 도착하려 한다! 너희는 미리 계획하여 스스로 치욕을 취하지 말라. 무리의 분노는 물과 불과 같아서 구제할 수 없다.” 하였다. 새 왕 비와 자석이 이내 자살하였다. 병진일, 기질이 즉위하여 왕이 되고 이름을 웅거로 고쳤으니, 이가 평왕이다.
평왕이 속임수로 두 왕을 죽이고 스스로 자리에 올라, 나라 사람들과 제후들이 그를 배반할까 두려워하여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진나라와 채나라의 영토를 회복시키고 그 후손들을 예전처럼 세우며, 빼앗은 정나라의 땅을 돌려주었다. 나라 안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정치와 교화를 밝혔다. 오나라는 초나라의 내란으로 인해 초나라의 장수 다섯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평왕이 관종에게 말하기를, “네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선택하라.” 하였다. 관종이 복윤이 되기를 원하자 평왕이 허락하였다.
처음에 초공왕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다섯 있었으나 적자가 없어, 이에 산천을 멀리 바라보며 여러 신에게 제사하여 신령이 후계자를 정하게 하고 그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공왕이 몰래 바희와 함께 조묘 안에 벽옥을 묻고, 다섯 공자를 불러 재계하게 한 뒤 들어가게 하였다. 강왕이 벽옥을 넘었고, 영왕이 팔꿈치로 그 위를 눌렀으며, 자비와 자석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다. 평왕이 어려서 안고 나아가 절을 하다가 마침 벽옥의 뉴를 눌렀다. 그러므로 강왕이 나이가 많아 세워졌고, 그의 아들 때에 이르러 왕위를 잃었다; 공자 위가 영왕이 되었으나 자신이 시해당했다; 자비가 십여 일 동안 초왕이 되었고, 자석은 세워지지 못했으며, 또 모두 죽임을 당했다. 네 아들이 모두 후사가 끊겨 계승자가 없었다. 오직 기질이 뒤에 세워져 평왕이 되었고, 마침내 초나라의 제사를 이었으니, 이는 신령의 징조에 부합한 것이다.
당초, 자비(子比)가 진(晉)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한선자(韓宣子)가 숙향(叔向)에게 물었다. “자비가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숙향이 대답했다. “할 수 없습니다.” 선자가 말했다. “같은 악을 미워하는 자들은 서로 필요로 하니, 마치 장사치들이 매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숙향이 대답했다. “자비와 함께 좋아하는 것을 같이하는 자가 없는데, 누가 그와 함께 싫어하는 것을 같이하겠습니까? 나라를 얻는 데에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총애를 받는 사람이 있으나 현인이 없는 것은 첫째요, 현인이 있으나 안으로 주선해 줄 내주(內主)가 없는 것은 둘째요, 내주가 있으나 모략이 없는 것은 셋째요, 모략이 있으나 백성이 없는 것은 넷째요, 백성이 있으나 덕행이 없는 것은 다섯째입니다. 자비는 진나라에 있은 지 십삼 년이 되었으나, 진나라와 초나라에서 그를 따르는 자 중에 통달한 자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현인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족이 배반하고 떠났으니, 이는 내주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히 틈탈 만한 기회가 없음에도 행동에 나섰으니, 이는 모략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밖에 기거하며 살았으니, 이는 백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망명하여 밖에 있으면서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덕행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왕은 포학하지만 꺼리는 바가 없습니다. 자비가 다섯 가지 어려움을 짊어지고 임금을 시해하려 하니, 누가 그를 도와 성공하게 하겠습니까! 초나라를 소유하게 될 자는 아마도 기질(棄疾)일 것입니다? 그는 진(陳)과 채(蔡) 두 곳을 다스려, 방성(方城) 밖이 모두 그에게 귀부하였습니다. 가혹하고 간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도적들이 숨고 나타나지 않으며, 사사로운 욕심이 도의를 어기지 않아 백성에게 원한이 없습니다. 선대의 신령이 그를 명하였고, 나라 백성이 그를 믿습니다. 미(芈) 성에서 난이 일어나면 반드시 작은아들이 세워지는 것이 초나라의 상례입니다. 자비의 관직은 우윤(右尹)에 불과하고, 그의 귀함과 총애로 말하면 서자(庶子)에 불과하며, 신령의 명으로 말하면 그는 또 머니, 백성이 그를 그리워하지 않는데, 그가 무엇을 의지하여 세워지겠습니까?” 선자가 말했다.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도 또한 이와 같지 않았습니까?” 숙향이 대답했다. “제환공은 위희(衛姬)의 아들로, 제희공(齊釐公)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포숙아(鮑叔牙), 빈수무(賓須無), 습붕(隰朋)을 보좌로 두었고, 거(莒)나라와 위(衛)나라를 외원(外援)으로 삼았으며, 고(高)씨와 국(國)씨를 내응(內應)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선한 말을 듣기를 물이 흐르는 듯이 하였고, 은혜를 베풀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라를 가진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우리 문공(文公)은 호계희(狐季姬)의 아들로, 진헌공(晉獻公)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는 학문을 좋아하여 싫증내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지 십칠 년에 다섯 명의 현사(賢士)가 있었고, 선대 대부 자여(子餘)와 자범(子犯)을 심복으로 삼았으며, 위주(魏犨)와 가타(賈佗)를 득력(得力)한 조력자로 삼았고, 제(齊)나라, 송(宋)나라, 진(秦)나라, 초(楚)나라를 외원으로 삼았으며, 난(欒)씨, 극(郤)씨, 호(狐)씨, 선(先)씨를 내응으로 삼았습니다. 망명한 지 십구 년 동안 뜻을 지킴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진혜공(晉惠公)과 진회공(晉懷公)이 백성을 버리자, 백성이 그를 따르며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문공이 나라를 가진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자비는 백성에게 베푼 은혜가 없고, 밖에는 원조가 없으며, 진나라를 떠날 때 진나라가 전송하지 않았고, 초나라로 돌아올 때 초나라가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의지하여 나라를 가지겠습니까!” 자비는 결국 과연 잘 마치지 못하였고, 마지막에 세워진 이는 기질이었으니, 숙향이 말한 바와 같았다.
초 평왕(平王) 2년, 왕이 비무기(費無忌)를 보내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 건(建)의 아내를 맞아들이게 하였다. 진나라 여자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초나라에 도착하였으나 아직 들어오지 않았을 때, 비무기가 먼저 돌아와 평왕에게 권하였다. “진나라 여자가 매우 아름다우니, 대왕께서 친히 그 여자를 취하시고, 태자를 위해서는 다른 여자를 구하소서.” 평왕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자신이 진나라 여자를 취하여 웅진(熊珍)을 낳았다. 따로 태자를 위하여 아내를 맞이하였다. 당시 오서(伍奢)는 태자태부(太子太傅)였고, 비무기는 소부(少傅)였다. 비무기는 태자의 총애를 받지 못하여, 항상 평왕 앞에서 태자 건을 참소하였다. 태자 건은 당시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채나라 여자였으나 평왕의 총애를 받지 못하여, 평왕은 점점 더 태자 건을 소원히 하였다.
평왕 6년, 태자 건을 성부(城父)에 살게 하여 국경을 지키게 하였다. 비무기가 또 밤낮으로 평왕 앞에서 태자 건을 참소하며 말하였다. “비무기가 진나라 여자를 궁중에 들인 이후로 태자가 원망하고 있으며, 또한 대왕께 불평이 없을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조금 스스로 방비하소서. 더구나 태자가 성부에 살면서 병권을 독차지하고, 밖으로는 제후들과 결탁하여, 도성으로 들어와 난을 일으키려 합니다.” 평왕이 태자 건의 태부 오서를 불러 꾸짖었다. 오서는 비무기가 참소한 것임을 알고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작은 신하 때문에 골육을 소원히 하십니까?” 비무기가 말하였다. “지금 막지 않으면, 후에 후회하실 것입니다.” 이에 평왕이 오서를 가두었다. 그리고 사마 분양(司馬奮揚)에게 명하여 태자 건을 부르게 하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태자가 이 소식을 듣고 송(宋)나라로 도망갔다.
비무기가 말하였다. “오서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어찌 그들의 아버지를 사면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부르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에 평왕이 사람을 보내 오서에게 말하였다. “네 두 아들을 불러오게 하면 너를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오서가 말하였다. “오상(伍尚)은 오겠지만, 오서(伍胥)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평왕이 말하였다. “어째서인가?” 오서가 말하였다. “오상의 됨됨이는 청렴하고, 절의를 위하여 죽을 수 있으며, 자애롭고 효성스럽고 어질어서, 불려가면 아버지의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올 것이며, 자기의 죽음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서의 됨됨이는 지혜롭고 헤아리기를 좋아하며, 용감하고 공명을 자랑하며, 죽음이 반드시 따를 것을 알기에 반드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나라의 근심이 될 자는 반드시 이 아들일 것입니다.” 이에 평왕이 사람을 보내 그들을 불렀다. “오너라. 내가 너희 아버지를 사면하리라.” 오상이 오서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가서 죽음을 당하게 하지 않는 것은 불효요,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도 복수하지 못하는 것은 무모함이며, 자기의 능력을 헤아려 일을 맡는 것이 지혜이다. 너는 가라. 나는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겠다.” 오상이 마침내 돌아갔다. 오서가 활을 당겨 화살을 먹이고 나와서 사자를 만나 말하였다. “아버지에게 죄가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아들을 부릅니까?” 장차 활을 쏘려 하자, 사자가 몸을 돌려 도망쳤다. 오서가 마침내 오(吳)나라로 도망갔다. 오서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오서가 도망갔으니, 초나라가 위태롭다.” 초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오서와 오상을 죽였다.
평왕 10년, 초나라 태자 건의 어머니가 거소(居巢)에 있었는데, 은밀히 오나라와 결탁하였다. 오나라가 공자 광(公子光)을 보내 초나라를 치게 하여, 마침내 진나라와 채나라를 격파하고 태자 건의 어머니를 빼앗아 갔다. 초나라가 두려워하여 영도(郢都)에 성을 쌓았다. 당초, 오나라의 국경 읍 비량(卑梁)과 초나라의 국경 읍 종리(鍾離)의 어린아이들이 뽕잎을 다투다가, 두 집이 성내어 서로 싸우게 되어 비량 사람이 죽임을 당하였다. 비량 대부가 성내어, 읍의 군사를 일으켜 종리를 쳤다. 초왕이 듣고 성내어, 나라의 군사를 일으켜 비량을 멸망시켰다. 오왕이 듣고 크게 노하여, 또한 군사를 일으켜 공자 광으로 하여금 태자 건의 어머니 집이 초나라에 있던 일을 빌미로 삼아 초나라를 치게 하여, 마침내 종리와 거소를 점령하였다. 초나라가 이에 두려워하여 영도의 성을 쌓았다.
평왕 13년, 평왕이 세상을 떠났다. 장군 자상(子常)이 말하였다. “태자 진(珍)이 어리고, 또한 그의 어머니는 전 태자 건이 마땅히 취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령윤(令尹) 자서(子西)를 세우려 하였다. 자서는 평왕의 서제(庶弟)로, 의로운 행실이 있었다. 자서가 말하였다. “나라에는 고정된 법도가 있어, 고쳐 세우면 어지러워지고, 이런 말을 하면 화를 불러들입니다.” 이에 태자 진을 세우니, 이가 초 소왕(楚昭王)이다.
초 소왕 원년, 초나라 사람들은 비무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그가 참소하여 태자 건을 쫓아내고 오서 부자와 극완(郤宛)을 죽였기 때문이다. 극완의 동종(同宗) 백씨(伯氏)의 아들 백비(伯嚭)와 오자서(伍子胥)가 모두 오나라로 도망가니, 오나라 군사가 여러 번 초나라를 침범하여, 초나라 사람들이 비무기를 매우 원망하였다. 초나라 령윤 자상이 비무기를 죽여 백성을 기쁘게 하니, 백성이 비로소 기뻐하였다.
소왕 4년, 오나라의 세 공자가 초나라로 도망오니, 초나라가 그들에게 땅을 주어 오나라를 막게 하였다. 소왕 5년, 오나라가 초나라의 육읍(六邑)과 잠읍(潛邑)을 점령하였다. 소왕 7년, 초나라가 자상을 보내 오나라를 치게 하였으나, 오나라가 예장(豫章)에서 초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였다.
소왕 10년 겨울, 오왕 합려(闔閭), 오자서, 백비가 당(唐)나라와 채(蔡)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치니, 초나라가 크게 패하였고, 오나라 군사가 마침내 영도에 들어와 평왕의 무덤을 모독하였으니, 이는 오자서 때문이었다. 오나라 군사가 올 때, 초나라가 자상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게 하였는데, 두 군사가 한수(漢水) 양쪽에 진을 쳤다. 오나라가 자상을 격파하니, 자상이 정(鄭)나라로 도망갔다. 초나라 군사가 도망치자, 오나라가 승세를 타서 추격하여 다섯 번 싸워 영도에 이르렀다. 기묘일(己卯日)에 소왕이 도망쳐 나갔다. 경진일(庚辰日)에 오나라 사람들이 영도에 들어왔다.
소왕이 도망칠 때 운몽에 이르렀다. 운몽 사람들은 그가 초왕인 줄 모르고 활을 쏘아 상처를 입혔다. 소왕은 운나라로 도망쳤다. 운공의 아들 회가 말했다: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지금 내가 그 아들을 죽이는 것도 옳지 않겠습니까?" 운공이 그를 말렸지만, 그가 소왕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소왕과 함께 수나라로 도망쳤다. 오왕은 소왕이 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수나라를 공격하며 수나라 사람들에게 말했다: "주나라 자손들 중 강수와 한수 사이에 봉해진 자들은 모두 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소왕을 죽이려 했다. 소왕의 신하 자기는 소왕을 깊이 숨기고 자신이 초왕인 척하며 수나라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를 오나라에 넘겨주시오." 수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오나라에 넘겨주는 것을 점쳐보니 불길하여, 오왕에게 사양하며 말했다: "소왕은 도망쳐서 수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오왕은 수나라에 들어가 직접 수색하기를 청했으나 수나라가 허락하지 않자, 오왕은 군사를 거두어 떠났다.
소왕이 영도를 떠날 때, 신포서를 진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진나라는 병거 오백 대로 초나라를 구원했고, 초나라도 흩어진 병사들을 모아 진군과 함께 오군을 공격했다. 소왕 11년 6월, 직 땅에서 오군을 격파했다. 마침 오왕의 동생 부개가 오왕의 군대가 패배한 것을 보고 오나라로 도망쳐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합려가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떠나 돌아와 부개를 공격했다. 부개는 패배하여 초나라로 도망쳤고, 초나라는 그를 당계에 봉하여 당계씨라 불렀다.
초 소왕이 당나라를 멸망시킨 후 9월에 영도로 돌아왔다. 소왕 12년, 오나라가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여 번 땅을 점령했다. 초나라는 두려워하여 영도를 떠나 북쪽으로 약 땅으로 천도했다.
소왕 16년, 공자가 노나라에서 재상을 대행했다. 소왕 20년, 초나라는 돈나라를 멸망시키고 호나라를 멸망시켰다. 소왕 21년, 오왕 합려가 월나라를 공격했다. 월왕 구천이 오왕을 활로 쏘아 상처를 입혔고, 합려는 이내 죽었다. 오나라는 이로부터 월나라를 원망하고 더 이상 서쪽으로 초나라를 공격하지 않았다.
소왕 27년 봄, 오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하자, 초 소왕이 진나라를 구원하며 성보에 주둔했다. 10월, 소왕이 군중에서 병이 들었는데, 붉은 기운이 새 모양처럼 해의 양쪽에서 날아다녔다. 소왕이 주나라 태사에게 물으니, 태사가 말했다: "이것은 초왕에게 해가 될 징조이나, 장수나 재상에게 재앙을 옮길 수 있습니다." 장수와 재상들이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신에게 기도하기를 청했다. 소왕이 말했다: "장수와 재상은 나의 팔과 다리와 같은 신하다. 지금 그들에게 재앙을 옮긴다면 어찌 내 병을 없앨 수 있겠는가?" 듣지 않았다. 점을 쳐보니 황하가 재앙을 일으킨다고 하여, 대부가 황하에 기도하기를 청했다. 소왕이 말했다: "우리 선왕이 봉함을 받은 이후로 제사 지내는 산천은 장수와 한수를 넘지 않았으며, 황하는 우리가 죄를 지은 대상이 아니다." 막고 기도하지 못하게 했다. 공자가 진나라에서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초 소왕은 큰 도리를 통달했도다. 그가 나라를 잃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왕의 병이 위독해지자 여러 공자와 대부들을 불러 모으고 말했다: "내가 재주가 없어 두 번이나 초나라의 군대를 욕되게 했으니, 지금 천수를 다하여 죽는 것이 나의 행운이다." 그는 동생 공자 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공자 신이 받지 않았다. 다시 둘째 동생 공자 결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역시 받지 않았다. 이어 셋째 동생 공자 려에게 물려주기를 다섯 번이나 하자, 비로소 왕이 되겠다고 허락했다. 장차 싸우려 할 때, 경인일, 소왕이 군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려가 말했다: "군주께서 병이 위중하실 때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여러 신하에게 왕위를 물려주셨기에, 내가 군주를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허락한 것일 뿐이다. 지금 군주께서 돌아가셨으니, 내가 어찌 감히 군주의 뜻을 잊겠는가!" 이에 자서, 자기와 의논하여 은밀히 군대를 보내 길을 막고, 월나라 여인이 낳은 아들 장을 맞이하여 왕으로 세우니, 이가 혜왕이다. 그런 후에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소왕을 장사 지냈다.
혜왕 2년, 자서가 오나라에서 원래 평왕의 태자 건의 아들 승을 불러들여 소 대부로 삼고, 백공이라 일컫게 했다. 백공은 군사를 좋아하고 현명한 선비를 예우하며 복수하려 했다. 6년, 백공이 영윤 자서에게 정나라를 공격할 병사를 내줄 것을 청했다. 당초, 백공의 아버지 건이 정나라로 도망쳐 있었는데, 정나라가 그를 죽였고, 백공은 오나라로 도망쳤다가 자서가 다시 그를 불러들였으므로, 백공이 정나라를 원망하여 공격하려 한 것이었다. 자서는 승낙했으나 병사를 내주지 않았다. 8년,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하자 정나라는 초나라에 급히 구원을 청했고, 초나라는 자서를 보내 정나라를 구원하게 했는데, 자서는 정나라의 뇌물을 받고 군사를 거두어 떠났다. 백공 승이 크게 노하여, 용맹하고 힘이 센 죽사 석기 등과 함께 조정에서 영윤 자서와 자기를 습격하여 죽이고, 이 기회에 혜왕을 협박하여 고부에 가두고 죽이려 했다. 혜왕의 신하 굴고가 혜왕을 업고 소왕 부인의 궁으로 도망쳤다. 백공이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한 달 남짓 후, 마침 섭공이 초나라를 구원하러 와서, 초 혜왕의 수하들과 섭공이 함께 백공을 공격하여 죽였다. 혜왕이 이에 복위했다. 이 해에 초나라는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현으로 삼았다.
13년, 오왕 부차가 강성해져 제나라와 진나라를 능멸하고, 와서 초나라를 공격했다. 16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42년, 초나라가 채나라를 멸망시켰다. 44년, 초나라가 기나라를 멸망시켰다. 진나라와 강화했다. 이때 월나라는 이미 오나라를 멸망시켰으나, 장수와 회수 이북 지역을 다스리지 못했다. 초나라는 동쪽으로 진격하여 영토를 사수 기슭까지 확장했다.
57년, 혜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간왕 중이 즉위했다.
간왕 원년, 북쪽으로 진격하여 거나라를 멸망시켰다. 8년, 위 문후, 한 무자, 조 환자가 비로소 제후가 되었다.
24년, 간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성왕 당이 즉위했다. 성왕 6년, 도적이 성왕을 죽였고, 아들 도왕 웅의가 즉위했다. 도왕 2년, 삼진이 와서 초나라를 공격하여 승구에 이르렀다가 돌아갔다. 4년, 초나라가 주나라를 공격했다. 정나라가 자양을 죽였다. 9년, 한나라를 공격하여 부서를 빼앗았다. 11년, 삼진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대량과 유관에서 초군을 격파했다. 초나라는 후한 예물로 진나라를 매수하여 진나라와 강화했다. 21년, 도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숙왕 장이 즉위했다.
숙왕 4년, 촉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자방을 빼앗았다. 이에 초나라는 한관을 쌓아 촉나라를 막았다. 10년, 위나라가 초나라의 노양을 빼앗았다. 11년, 숙왕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들이 없어, 그의 동생 웅량부를 왕으로 세우니, 이가 선왕이다.
선왕 6년, 주 천자가 진 헌공에게 축하를 보냈다. 진나라는 다시 강성해지기 시작했고, 삼진은 더욱 강성해져 위 혜왕, 제 위왕이 특히 강했다. 30년, 진나라는 상 땅을 위앙에게 봉하고, 남쪽으로 초나라를 침범했다. 이 해에 선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위왕 웅상이 즉위했다.
위왕 6년, 주 현왕이 문왕과 무왕에게 제사 지내던 희생 고기를 진 혜왕에게 하사했다.
7년, 제나라 맹상군의 아버지 전영이 초나라를 속이자, 초 위왕이 제나라를 공격하여 서주에서 제군을 격파하고, 제나라에게 전영을 축출하라고 명령했다. 전영이 매우 두려워하자, 장추가 거짓으로 초왕에게 말했다: "왕께서 서주에서 제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표자가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표자는 제나라에 공이 있고 백성들이 그를 위해 힘쓰기를 원합니다. 전영자가 그를 싫어하여 신기를 등용했습니다. 신기라는 사람은 대신들이 따르지 않고 백성들이 그를 위해 힘쓰지 않으므로, 왕께서 그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왕께서 전영자를 축출하시면, 전영자가 축출된 후에는 전표자가 반드시 등용될 것입니다. 그가 군사를 다시 정비하여 왕과 맞서면 반드시 왕에게 불리할 것입니다." 초왕이 이에 전영을 축출하지 않았다.
11년, 위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회왕 웅괴가 즉위했다. 위나라는 초나라에 상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의 형산을 빼앗았다.
회왕 원년, 장의가 비로소 진 혜왕의 재상이 되었다. 4년, 진 혜왕이 비로소 왕을 일컬었다.
六年, 초나라가 주국(柱國) 소양(昭陽)을 보내 위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양릉(襄陵)에서 위군을 격파하고 여덟 개의 성읍을 빼앗았다.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자, 제왕이 이를 크게 근심하였다. 진진(陳軫)이 마침 진나라를 대신하여 제나라에 사신으로 와 있었다. 제왕이 말하였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진진이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제가 그로 하여금 군대를 철수하게 하겠습니다." 이에 가서 소양을 만나 군영에서 말하였다. "초나라의 법령을 듣고자 합니다. 적군을 격파하고 적장을 죽인 사람에게는 무엇으로써 그를 귀하게 만들어 줍니까?" 소양이 말하였다. "그의 관직은 상주국(上柱國)이 되고, 상작(上爵)인 집규(執珪)를 봉해 줍니다." 진진이 말하였다.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까?" 소양이 말하였다. "영윤(令尹)입니다." 진진이 말하였다. "지금 그대는 이미 영윤이 되었으니, 이는 초나라에서 가장 높은 관직입니다.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빈객들에게 술 한 잔을 주었습니다. 빈객들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여럿이 이 술 한 잔을 마시려면 각자 한 잔씩 돌아가기에 부족하니, 땅에 뱀을 그리되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서 그것을 마십시다'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말하기를 '내 뱀이 먼저 그려졌다' 하고는 술잔을 들어 일어서며 말하기를 '내가 그것에 발을 그릴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가 발을 그리는 동안 뒤에 그리던 사람이 그의 술을 빼앗아 마시며 말하기를 '뱀은 본래 발이 없는데, 지금 그것에 발을 그렸으니 이것은 뱀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지금 그대는 초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어 위나라를 공격하여 적군을 격파하고 적장을 죽였으니, 공로가 이보다 더 클 수 없으며 관직은 이미 최고에 이르러 더할 수 없습니다. 지금 또 군대를 동원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니, 만약 제나라를 공격하여 이기더라도 관직과 작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공격하여 이기지 못하면 몸은 죽고 작위는 빼앗겨 초나라에도 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뱀에 발을 그려 넣는' 격입니다.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 제나라에 은혜를 베푸는 것이 완전함을 보전하는 방법입니다." 소양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에 군대를 이끌고 물러났다.
연나라와 한나라의 군주가 비로소 왕을 칭하기 시작하였다. 진나라는 장의(張儀)를 보내 초나라, 제나라, 위나라와 회합하여 섭상(啮桑)에서 맹약을 맺었다.
11년, 소진(蘇秦)이 산동(山東)의 여섯 나라를 연합하여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초나라 회왕(懷王)이 합종(合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군대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진나라가 군대를 내어 여섯 나라를 공격하자 여섯 나라 군대가 모두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였고, 오직 제나라만이 마지막에 철수하였다. 12년, 제민왕(齊湣王)이 조나라와 위나라의 군대를 물리쳤고, 진나라도 한나라를 물리쳐 제나라와 맹주 자리를 다투었다.
16년,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초나라가 제나라와 합종하여 친선하자, 진나라 혜왕(惠王)이 이를 근심하여 이에 장의가 재상 직위를 면직되었다고 선언하고 장의를 보내 남쪽으로 초왕을 만나게 하였다. 장의가 초왕에게 말하였다. "저희 국군이 가장 존경하는 분은 대왕보다 더한 분이 없으며, 저 장의가 가장 그 문하의 노복이 되기를 원하는 분도 대왕보다 더한 분이 없습니다. 저희 국군이 가장 미워하는 자는 제왕보다 더한 자가 없으며, 저 장의가 가장 미워하는 자도 제왕보다 더한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제왕과 화목하게 지내시니, 이 때문에 저희 국군이 대왕을 섬길 수 없고, 또한 저로 하여금 대왕의 문하 노복이 될 수 없게 합니다. 대왕께서 만약 저를 위하여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관계를 끊으신다면, 지금 사자를 보내 서쪽으로 가서 예전에 진나라가 초나라에 나누어 주었던 상우(商於)의 땅 육백 리를 되찾아 오게 하면, 이로써 제나라는 약화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북쪽으로 제나라를 약화시키고, 서쪽으로 진나라에 은혜를 베풀며, 스스로 상우의 땅을 차지하여 부유해지니, 하나의 계책으로 세 가지 이로움을 모두 얻는 것입니다." 회왕이 매우 기뻐하여 이에 상국(相國)의 인장을 장의에게 주고, 날마다 그와 함께 술자리를 베풀며 "나는 또다시 나의 상우 땅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축하하였으나, 오직 진진만이 홀로 애도하였다. 회왕이 말하였다. "어째서인가?" 진진이 대답하였다. "진나라가 대왕을 중히 여기는 까닭은 대왕이 제나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땅을 아직 얻지 못했는데 제나라와의 외교를 먼저 끊으면, 이로써 초나라는 고립됩니다. 저 진나라가 어찌 고립된 나라를 중히 여기겠습니까? 반드시 초나라를 업신여길 것입니다. 또 만약 먼저 땅을 내놓고 나서 제나라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진나라의 계책은 시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먼저 제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나서 땅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장의에게 속임을 당할 것입니다. 장의에게 속임을 당하면, 대왕께서는 반드시 그를 원망하실 것입니다. 그를 원망하시면, 이는 서쪽으로 진나라의 화를 불러들이고 북쪽으로 제나라와의 외교를 끊는 것입니다. 서쪽으로 진나라의 화를 불러들이고 북쪽으로 제나라와의 외교를 끊으면, 두 나라의 대군이 반드시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때문에 애도하는 것입니다." 초왕이 듣지 않고, 이에 한 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가서 땅을 받게 하였다.
장의가 진나라로 돌아와 거짓으로 취하여 수레에서 떨어져 병들었다고 칭하며 석 달 동안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 땅을 얻을 수 없었다. 초왕이 말하였다. "장의가 내가 제나라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충분히 철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인가?" 이에 용사 송유(宋遺)를 보내 북쪽으로 가서 제왕을 모욕하게 하였다. 제왕이 크게 노하여 초나라의 부절(符節)을 꺾고 진나라와 연합하였다. 진나라와 제나라의 외교가 연합된 후에야 장의가 비로소 일어나 조정에 나아가 초나라의 장군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땅을 받으러 가지 않는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길이와 너비가 육 리(六里)이다." 초나라의 장군이 말하였다. "내가 받은 명령은 육백 리(六百里)였지, 육 리(六里)라고는 듣지 못했다." 이에 돌아와 회왕에게 보고하였다. 회왕이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장차 진나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진진이 또 말하였다.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차라리 한 성읍의 명성으로 진나라에 뇌물을 주고 진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진나라에 잃은 것을 제나라로부터 보충받아 우리나라가 보전될 수 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이미 제나라와 외교를 끊고 진나라에 속은 책임을 추궁하시니, 이는 우리가 진나라와 제나라의 외교를 연합시켜 천하의 대군을 불러들이는 것이 되어 나라가 반드시 심한 손상을 입을 것입니다." 초왕이 듣지 않고, 이내 진나라와 화친을 끊고 군대를 내어 서쪽으로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진나라도 군대를 내어 맞서 싸웠다.
17년 봄, 진나라와 단양(丹陽)에서 싸웠는데, 진나라가 초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갑사(甲士) 8만 명을 참수하고, 대장군 굴개(屈匄), 비장군 봉후축(逢侯丑) 등 70여 명을 사로잡아, 이에 한중군(漢中郡)을 빼앗았다. 초나라 회왕이 크게 노하여 이에 온 나라의 군대를 출동시켜 다시 진나라를 습격하여 남전(藍田)에서 싸웠으나, 진군이 초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초나라의 곤경을 듣고 이에 남쪽으로 초나라를 습격하여 등(鄧) 땅에 이르렀다. 초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서야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였다.
18년, 진나라가 사자를 보내 다시 초나라와 친선을 맺기로 약속하고, 한중(漢中)의 절반을 나누어 초나라와 강화하려 하였다. 초왕이 말하였다. "장의를 얻고자 할 뿐,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장의가 이 소식을 듣고 초나라로 가기를 청하였다. 진왕이 말하였다. "초나라가 바로 그대의 목숨을 원하는데, 어찌해야 하는가?" 장의가 말하였다. "저는 초왕의 측근 근상(靳尚)과 사이가 좋고, 근상은 또 초왕의 총희 정수(鄭袖)의 신임을 얻고 있으며, 정수가 하는 말은 초왕이 듣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예전에 사신으로 갔을 때 상우(商於)의 약속을 저버렸고,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나 원한이 생겼으니, 제가 직접 대면하여 초왕에게 사죄하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대왕께서 계시니, 초나라가 감히 저를 죽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약 저를 죽이는 것이 나라에 이롭다면,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장의가 이에 초나라로 사신 갔다.
장의가 도착하자, 초나라 회왕이 만나 주지 않고 이에 장의를 가두어 죽이려 하였다. 장의가 은밀히 근상에게 뇌물을 주어, 근상이 그를 위하여 회왕에게 청하며 말하였다. "장의를 가두면 진왕이 반드시 노할 것입니다. 천하의 제후들이 초나라가 진나라의 지지를 잃은 것을 보고 반드시 대왕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또 부인 정수에게 말하였다. "진왕이 장의를 매우 총애하는데 대왕이 그를 죽이려 하니, 지금 진나라가 장차 상용(上庸)의 여섯 현(縣) 땅으로 초나라에 뇌물을 주고, 미녀를 초왕에게 시집보내며, 궁중에서 노래 잘하는 여자들을 시녀로 보낼 것입니다. 초왕이 땅을 중히 여기니, 진나라 여자가 반드시 총애를 받아 부인께서는 반드시 배척당할 것입니다. 부인께서는 차라리 말씀을 올려 장의를 놓아주게 하소서." 정수가 마침내 장의를 위하여 초왕에게 말하여 그를 놓아주게 하였다. 장의가 풀려난 후, 회왕이 이에 장의를 후하게 대우하였고, 장의는 이 기회에 초왕을 설득하여 합종 맹약을 저버리고 진나라와 연합하여 친선하며 혼인 관계를 맺게 하였다. 장의가 떠난 후, 굴원(屈原)이 제나라에 사신 갔다가 돌아와 회왕에게 간하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장의를 죽이지 않았습니까?" 회왕이 후회하여 사람을 보내 장의를 쫓았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이 해에 진나라 혜왕이 세상을 떠났다.
(초회왕)이십년,제민왕이 합종의 맹주가 되고자 하여 초나라가 진나라와 연합한 것을 싫어하여,사자를 보내 초왕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나는 초왕께서 명예와 존귀함을 중시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 진혜왕은 죽고 진무왕이 즉위하였으며,장의는 위나라로 도망갔고,추리질과 공손연이 중용되고 있는데,초나라는 진나라를 섬기고 있습니다. 추리질은 한나라를 달래고 공손연은 위나라를 달래니,초나라가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두려워하여 반드시 그 두 사람을 통해 진나라와 연합하기를 청할 것이고,그러면 연나라와 조나라도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네 나라가 다투어 진나라를 섬기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군현이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나와 함께 한나라·위나라·연나라·조나라를 거두어 그들과 합종하여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이로써 병사를 쉬게 하고 백성을 기르며 천하에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까? 감히 즐겨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대왕의 공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왕께서 제후들을 거느리고 함께 정벌하면 반드시 진나라를 이길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 무관과 촉 땅,한중의 땅을 빼앗고,오월의 부를 차지하며 강과 바다의 이익을 독점하고,한나라와 위나라가 상당을 할양하며 서쪽으로 함곡관에 다가서면,초나라의 강함은 백만 대중을 넘을 것입니다. 더구나 대왕께서 장의에게 속아 한중의 땅을 잃고 남전에서 패하여 좌절당했으니,천하에 대왕을 위해 분노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히려 먼저 진나라를 섬기려 하십니까! 바라건대 대왕께서 깊이 생각하소서.”
초왕이 이미 진나라와 강화하려고 하다가 제왕의 편지를 보고 망설이며 이 일을 여러 신하들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여러 신하들 중에는 진나라와 강화하자는 이도 있고 제나라를 따르자고 한 이도 있었다. 소유가 말하였다:“대왕께서 비록 동쪽으로 월나라로부터 땅을 빼앗더라도 치욕을 씻기에 부족합니다. 반드시 진나라로부터 땅을 빼앗은 연후에야 제후들 앞에서 치욕을 씻을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제나라와 한나라와 깊이 사귀어 추리질의 지위를 높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대왕께서 한나라와 제나라의 지지를 얻어 땅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는 한나라의 의양을 격파했으나 한나라가 여전히 진나라를 섬기는 것은 선왕의 무덤이 평양에 있고 진나라의 무수가 그곳에서 불과 칠십 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특히 진나라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나라가 삼천을 치고 조나라가 상당을 치며 초나라가 하외를 치면 한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초나라가 한나라를 구원해도 한나라가 망하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한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초나라뿐입니다. 한나라는 이미 진나라로부터 무수를 얻었고 황하와 산령을 요새로 삼았으니,갚아야 할 은덕은 초나라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나라는 대왕을 섬기기를 매우 급하게 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한나라를 믿는 것은 한나라 공자 미가 제나라의 상국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가 이미 진나라로부터 무수를 얻었으니,대왕께서 그들을 매우 잘 대우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나라와 한나라의 힘을 빌려 추리질을 중히 여기게 하면,추리질이 제나라와 한나라의 중히 여김을 얻으면 그의 군주가 감히 그를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더욱이 초나라의 중히 여김을 더하면 추리자는 반드시 진나라에 말하여 다시 초나라의 땅을 침범한 것을 돌려줄 것입니다.” 이에 회왕이 허락하고 마침내 진나라와 연합하지 않고 제나라와 연합하며 한나라를 잘 대우하였다.
(초회왕)이십사년,제나라를 배반하고 진나라와 연합하였다. 진소왕이 막 즉위하여 후한 예물로 초나라를 뇌물로 회유하였다. 초나라는 사람을 보내 진나라 여자를 맞이하였다. 이십오년,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 진소왕과 맹약하고 황극에서 동맹을 맺었다. 진나라는 다시 초나라에 상용의 땅을 돌려주었다. 이십육년,제나라·한나라·위나라가 초나라가 합종 친선 관계를 저버리고 진나라와 연합했기 때문에 삼국이 함께 초나라를 쳤다. 초나라는 태자를 진나라에 인질로 보내 구원을 청하였다. 진나라는 이에 객경 통이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구원하게 하여 삼국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초회왕)이십칠년,진나라 대부가 사사로이 초나라 태자와 다툰 자가 있어 초나라 태자가 그를 죽이고 초나라로 도망쳤다. 이십팔년,진나라는 이에 제나라·한나라·위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쳐서 초나라 장수 당말을 죽이고 초나라의 중구를 빼앗은 후 떠났다. 이십구년,진나라가 다시 초나라를 쳐서 초군을 크게 패배시켜 초나라 병사가 이만 명이 죽고 초나라 장군 경결이 죽임을 당하였다. 회왕이 두려워하여 이에 태자를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 화해를 구하였다. 삼십년,진나라가 다시 초나라를 쳐서 여덟 개의 성읍을 빼앗았다. 진소왕이 초왕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처음에 나는 대왕과 형제가 되어 황극에서 맹세하고 태자가 인질이 되어 매우 화목하였소. 태자가 나의 중신을 업신여기고 죽이고도 사과하지 않고 도망갔으니,내가 실로 분노를 참지 못하여 병사를 보내 대왕의 변경을 어지럽혔소. 지금 듣건대 대왕이 태자를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 화해를 구한다 하오. 나는 초나라와 땅이 이웃하고 접해 있어 혼인을 맺고 서로 친선한 지 이미 오래되었소.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가 화목하지 않으면 제후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소. 나는 대왕과 무관에서 만나 대면하여 약속하고 맹약한 후 떠나기를 바라오. 이것이 나의 소원이오. 삼가 좌우 집사에게 알리노라.” 초회왕이 진왕의 편지를 보고 매우 근심하였다. 가고 싶었으나 속을까 두려웠고,가지 않으려 했으나 진나라의 노여움이 두려웠다. 소유가 말하였다:“대왕께서는 가지 마시고 다만 병사를 내어 수비를 강화할 따름입니다. 진나라는 호랑이와 이리 같은 나라여서 믿을 수 없고 제후들을 삼키려는 야심이 있습니다.” 회왕의 아들 자란이 회왕에게 가기를 권하며 말하였다:“어찌 진나라의 환심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가서 진소왕을 만나러 갔다. 진소왕은 거짓으로 한 장군에게 명하여 무관에 군사를 매복시키고 가칭 진왕이라 하였다. 초왕이 도착하자 곧 무관을 닫고 드디어 그를 협박하여 서쪽으로 함양에 이르러 장대에서 조회하되,속국의 신하처럼 하고 평등한 예절로 대하지 않았다. 초회왕이 크게 노하여 소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진나라는 이에 초회왕을 억류하고 무군과 검중군을 할양하도록 강요하였다. 초왕이 맹약을 맺으려 하자 진나라는 먼저 땅을 얻고자 하였다. 초왕이 분노하여 말하였다:“진나라는 나를 속이고 또 강제로 땅을 할양하라고 강요하는구나!” 다시는 진나라를 승낙하지 않았다. 진나라는 이에 그를 억류하였다.
초나라 대신들이 매우 근심하여 서로 의논하며 말하였다:“우리 대왕께서 진나라에 계셔 돌아오지 못하시고 땅을 할양하도록 강요당하시며 태자는 제나라에 인질로 있는데,만약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심하면 초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이에 회왕의 초나라에 있는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소유가 말하였다:“대왕과 태자가 모두 제후에게 곤경에 처해 있는데,지금 또 대왕의 명령을 어기고 그의 서자를 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에 거짓으로 회왕이 죽었다고 제나라에 부고를 알리자,제민왕이 그의 상국에게 말하였다:“태자를 억류하여 초나라의 회북 땅을 요구하는 것이 어떻겠소?” 상국이 말하였다:“안 됩니다. 만약 영도에서 새 왕을 세우면 우리는 빈 인질을 안고 천하에 불의를 행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옳지 않습니다. 만약 영도에서 새 왕을 세우면 우리는 그때 그 새 왕과 거래하여 ‘내게 하동국을 주면 내가 대왕을 위해 태자를 죽이겠소,그렇지 않으면 내가 삼국과 함께 그를 세우겠소’라고 한다면 하동국을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왕이 마침내 상국의 계책을 채택하고 초 태자를 돌려보냈다. 태자 횡이 초나라에 돌아와 왕으로 세워졌으니,이가 경양왕이다. 이에 진나라에 통고하여 말하였다:“사직 신령의 도움으로 초나라에 이미 왕이 있습니다.”
경양왕 횡 원년,진나라가 회왕을 강요하여 땅을 얻지 못하고 초나라가 새 왕을 세워 진나라에 대응하자 진소왕이 크게 노하여 병사를 내어 무관을 통해 초나라를 쳐서 초군을 크게 패배시키고 오만 명의 목을 베고 석읍 등 열다섯 개의 성읍을 빼앗은 후 떠났다. 이년,초회왕이 도망쳐 초나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진나라가 이를 알아채고 초나라로 가는 길을 막자 회왕이 두려워하여 지름길로 조나라로 도망쳐 귀국하려 하였다. 조주부는 대에 있었고 그의 아들 조혜왕이 막 즉위하여 왕의 일을 대행하고 있었는데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감히 초왕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초왕이 위나라로 도망치려 하였으나 진나라 추격병이 이르러 마침내 진나라 사자와 함께 다시 진나라로 돌아갔다. 회왕이 이에 병이 들었다. 경양왕 삼년,회왕이 진나라에서 죽자 진나라는 그의 영구를 초나라로 돌려보냈다. 초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가엾게 여겨 마치 친척을 애도하는 듯 하였다. 제후들이 이로부터 진나라는 바르지 못하다고 여겼다. 진나라와 초나라의 관계가 끊어졌다.
(초경양왕) 6년, 진나라가 백기를 보내 이궐에서 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이기고 24만 명의 목을 베었다. 진나라는 이에 초왕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배반하였으니, 진나라는 장차 제후들을 이끌고 초나라를 쳐서 결사항전할 것이다. 바라건대 대왕께서 군사를 정비하여 통쾌하게 한판 싸우시기를 바란다." 초경양왕이 매우 근심하여 다시 진나라와 강화할 것을 꾀하였다. 7년, 초나라가 진나라로 가서 여인을 맞이하고, 진나라와 초나라가 다시 강화하였다.
(초경양왕) 11년, 제나라와 진나라가 각각 황제를 칭하였다; 한 달 남짓 지나 다시 제호를 취소하고 왕으로 복귀하였다.
14년, 초경양왕이 진소왕과 완 땅에서 우호적으로 만나 혼인 관계를 맺었다. 15년, 초왕이 진나라, 삼진,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쳐서 회북 땅을 빼앗았다. 16년, 진소왕과 언 땅에서 우호적으로 만났다. 그해 가을, 또 진왕과 양 땅에서 만났다.
18년, 초나라에 어떤 사람이 약한 활과 가는 줄로 기러기를 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경양왕이 듣고 불러서 물었다. 그가 대답하였다: "소신은 작은 기러기와 작은 새를 쏘는 것을 좋아하여 가는 화살을 쏘는데, 어찌 감히 대왕께 말씀드릴 가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초나라의 광대함과 대왕의 현명하심을 생각하면, 잡으실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옛날 삼왕은 덕으로 쏘고, 오패는 전쟁으로 쏘았습니다. 그러므로 진, 위, 연, 조는 작은 기러기와 같고; 제, 노, 한, 위는 청두새와 같으며; 추, 비, 담, 비는 작은 새와 같습니다. 그 나머지는 쏠 가치가 없습니다. 여섯 쌍의 새를 보고, 대왕께서는 어떻게 취하시렵니까? 대왕께서 어찌하여 성인을 활로 삼고 용사를 줄로 삼아 때에 맞춰 활을 당겨 쏘지 않으십니까? 이 여섯 쌍의 새는 얻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 즐거움은 단지 아침저녁의 즐거움이 아니며, 그 수확은 단지 오리와 기러기의 실익만이 아닙니다. 대왕께서 아침에 활을 당겨 위나라 대량의 남쪽을 쏘고, 그 오른팔에 더하여 곧바로 한나라에 이르면, 중원의 길이 끊기고 상채군도 파괴될 것입니다. 돌아서 어 땅의 동쪽을 쏘아 위나라의 왼팔을 풀고 밖으로 정도를 치면, 위나라의 동부 외곽선은 포기되고 대송과 방여 두 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위나라가 두 팔이 끊어지면 넘어질 것입니다; 정면으로 담나라를 치면 대량을 얻을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 난대에서 활을 거두고 서하에서 말을 먹이며 위나라 대량을 평정하시면, 이것이 한 번 쏘는 즐거움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사냥을 참으로 좋아하여 싫증내지 않으신다면, 보배로운 활을 꺼내고 새 줄로 갈아 동해에서 쫑새를 쏘고, 몸을 돌려 장성을 방패로 삼아 아침에는 동거를 쏘고 저녁에는 필구에 화살을 쏘며 밤에는 즉묵을 더 공격하고, 돌아서 오도를 차지하면, 장성의 동쪽은 거두어들이고 태산의 북쪽도 차지할 것입니다. 서쪽으로 조와 경계를 접하고 북쪽으로 연에 이르러, 세 나라가 진을 펴면 합종은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도 성공할 것입니다. 북쪽으로 연의 요동에서 눈을 즐기고, 남쪽으로 월의 회계에 올라 바라보는 것이 두 번째 쏘는 즐거움입니다. 사수 위의 열두 제후는 왼쪽을 제압하고 오른쪽을 쓸어 하루아침에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한나라를 쳐서 오랜 근심이 되었고, 열읍을 얻었으나 감히 지키지 못하며; 위나라를 쳐도 공이 없고, 조나라를 공격해도 손해를 보았으니, 진나라와 위나라의 용력은 다하였고, 초나라의 옛 땅 한중, 석, 여는 다시 차지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 보배로운 활을 꺼내고 새 줄로 갈아, 예새를 넘어 진나라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면, 효산 동쪽과 하내의 땅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을 수고롭게 한 후 쉬게 하면, 남면하여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건대 진나라는 큰 새로서, 바다를 등지고 내륙에 살며, 동쪽을 향해 서 있고, 왼팔은 조나라 서남을 차지하고, 오른팔은 초나라 언영에 가까이 있으며, 정면으로 한위를 치고, 머리를 숙여 중원을 향하니, 처한 곳이 편리하고 지세가 유리하여 힘껏 날개를 펴고 진을 떨치니, 사방 삼천 리라면, 진나라는 홀로 불러들여 밤중에 쏘아 맞출 수 없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양왕을 격노시키려 하여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양왕이 그를 불러 이야기하자, 그가 말했다: "선왕께서 진나라에 속아 객지에서 돌아가셨으니, 이보다 더 큰 원한은 없습니다. 지금 한 필부가 원한이 있으면, 오히려 만승의 군주에게 복수할 수 있으니, 백공, 자서가 그렇습니다. 지금 초나라는 땅이 오천 리이고, 갑옷 입은 백만 명이 있어, 충분히 들판에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건만, 앉아서 곤란을 당하시니, 저는 사사로이 대왕께서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경양왕이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다시 합종하여 진나라를 치려고 꾀하였다. 진나라가 듣고 군대를 보내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초나라는 제나라와 한나라와 연합하여 화친하고 진나라를 치려고 하면서, 또 기회를 타서 주나라 왕실을 도모하려고 하였다. 주난왕이 무공을 보내 초나라 재상 소자에게 말했다: "세 나라가 병력으로 주나라 교외의 땅을 베어내어 수송하고, 남방의 기물을 초나라에 바치려 한다고 하는데,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의 주인을 죽이고, 대대로 군주를 섬기게 하는 것은 대국이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무리로 적은 이를 업신여기면 소국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국이 친하지 않고 소국이 따르지 않으면 명예와 실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명예와 실리를 얻지 못하면,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손상시킬 가치가 없습니다. 주나라 왕실을 도모한다는 명성이 있으면, 이것은 명령을 내리고 위엄을 세우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소자가 말했다: "주나라 왕실을 도모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나라 왕실을 어찌 도모할 수 없습니까?" 무공이 대답했다: "군대가 다섯 배가 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고, 성이 열 배가 되지 않으면 포위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주나라는 스무 개의 진나라와 맞먹으니, 이것은 공이 아시는 바입니다. 한나라는 일찍이 이십만 군대로 진나라 성 아래서 치욕을 당하여 정예 병사는 죽고 중간 병사는 다쳤으나, 진나라는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공께서 한나라의 백 배가 되지 않고서 주나라 왕실을 도모하려 하니, 이것은 천하 사람들이 다 아는 바입니다. 만약 동주와 서주와 원한을 맺어 추로의 마음을 막고, 제나라와의 교류를 끊어 천하에 명성을 잃으면, 이 일은 위험합니다. 두 주나라를 위태롭게 하여 삼천을 강화하면, 방성 밖은 반드시 한나라에 의해 약화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알겠습니까? 서주의 땅은 길고 짧은 것을 덜고 보태야 백 리에 불과합니다. 명목상 천하의 공동 주인이지만, 그 땅을 나누어도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에 부족하고, 그 백성을 얻어도 군대를 강하게 하기에 부족합니다. 비록 공격하지 않더라도 명목상으로는 임금을 시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좋아하는 군주와 공격을 좋아하는 신하가 명령을 내리고 군대를 움직일 때, 일찍이 주나라 왕실을 시종으로 삼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어찌된 까닭입니까? 제기가 거기에 있음을 보고, 제기를 얻고자 하여 시해의 화란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나라는 제기가 초나라에 있기 때문에, 저는 천하가 제기 때문에 초나라를 원수로 삼을까 두렵습니다.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랑이 고기는 비리고 누리며, 그 가죽은 자신에게 이롭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공격합니다. 만약 늪의 사슴이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그것을 공격하는 것이 반드시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보다 만 배는 더 할 것입니다. 초나라의 땅을 나누면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에 충분하고; 초나라의 명성을 깎아내리면 군주를 존귀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지금 공께서 천하의 공동 주인을 죽이고 해치려 하며, 삼대(하은주)가 전한 제기를 차지하고, 삼혁육익(구정)을 삼켜서 세상의 군주 위에 군림하려 하니, 이것이 탐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주서》에 이르길 '일어나려 하면 먼저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제기가 남쪽으로 옮겨가면 군대가 올 것입니다." 이에 초나라의 계획은 중지되어 실행되지 않았다.
19년,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군이 패배하고, 상용과 한북의 땅을 진나라에 떼어 주었다. 21년, 진나라 장수 백기가 초나라의 도읍 영을 함락시키고, 선왕의 무덤 이릉을 불태웠다. 초양왕의 군대는 무너져 흩어져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동북쪽으로 퇴각하여 진성에 주둔하였다. 22년, 진나라가 또 초나라의 무군과 검중군을 함락시켰다.
23년, 양왕이 마침내 동부 지역의 군대를 수습하여 십여만 명을 얻고, 다시 서쪽으로 진나라가 점령한 초나라의 강변 열다섯 개 성읍을 되찾아 군으로 삼아 진나라를 막았다. 27년, 삼만 명을 보내 삼진이 연나라를 치는 것을 도왔다. 또 진나라와 강화하고 태자를 진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초나라는 좌도를 보내 진나라에서 태자를 모시게 하였다.
36년, 경양왕이 병이 들자 태자가 도망쳐 돌아왔다. 가을, 경양왕이 죽고 태자 웅원이 즉위하니, 이가 곧 고열왕이다. 고열왕이 좌도를 영윤으로 삼고, 오 땅에 봉하여 호를 춘신군이라 하였다.
고열왕 원년, 주 땅을 진나라에 바쳐 강화하였다. 이때 초나라는 더욱 쇠약해졌다.
6년,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초나라에 급히 구원을 요청했고, 초왕은 장군 경양을 보내 조나라를 구원하게 했다. 7년, 신중에 도착했다. 진군이 철수했다. 12년, 진소왕이 죽자 초왕은 춘신군을 진나라에 보내 조문하고 제사를 지냈다. 16년, 진장양왕이 죽고 진왕 조정이 즉위했다. 22년, 제후들과 함께 진나라를 토벌했으나 불리하여 돌아왔다. 초나라는 동쪽으로 도읍을 수춘으로 옮기고 영이라 이름 지었다.
25년, 고열왕이 죽고 아들 유왕 한이 즉위했다. 이원이 춘신군을 죽였다. 유왕 3년, 진나라와 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 재상 여불위가 죽었다. 9년, 진나라가 한나라를 멸망시켰다. 10년, 유왕이 죽고 동복동생 유가 즉위했으니, 이가 애왕이다. 애왕이 즉위한 지 두 달 만에, 애왕의 서형 부추 일당이 습격하여 애왕을 죽이고 부추를 왕으로 세웠다. 이 해에 진나라는 조왕 천을 사로잡았다.
왕 부추 원년, 연나라 태자 단이 형가를 보내 진왕을 암살하려 했다. 2년, 진나라가 장군을 보내 초나라를 공격하여 대패시키고 열 개 이상의 성을 빼앗았다. 3년, 진나라가 위나라를 멸망시켰다. 4년, 진나라 장군 왕전이 기 땅에서 초군을 격파하고 장군 항연을 죽였다.
5년, 진나라 장군 왕전과 맹무가 마침내 초나라를 함락시키고 초왕 부추를 사로잡아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군으로 고쳤다.
태사공이 말한다: 초령왕이 신 땅에서 제후들을 모아 제나라의 경봉을 죽이고 장화대를 세우며 주나라의 구정을 도모할 때, 그 뜻은 천하를 얕보는 데 있었으나, 신해의 집에서 굶어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행실이 선하지 않으니 슬프도다! 세력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질이 난을 틈타 왕위에 올랐고, 진나라 여자를 총애함이 지나쳐 거의 다시 나라를 망칠 뻔했다!
욱웅의 후손이 주나라로부터 초 땅에 봉해졌다. 땅이 치우친 형만에서 수레와 옷을 해쳐 가며 개척했다. 중원과 교류하여 패자가 되자, 참칭하여 무라 하였다. 문왕이 이미 신을 토벌했고, 성왕도 허를 사면했다. 자어가 적통을 찬탈하고, 상신이 아버지를 시해했다. 하늘이 재앙을 내렸으나 뉘우치지 않고 간사함에 의지하며 스스로 자랑했다. 소왕이 곤궁하여 도망쳤고, 회왕은 억지로 포로가 되었다. 경양왕과 고열왕은 복록이 남방에서 쇠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