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에서 더 편하게 《사기》 앱: 전문 검색, 책갈피, TTS, 오프라인
테마
글자 크기 18
세가

진섭 세가 제18

제 18 편

陈胜은 양성(陽城) 사람이며, 자는 섭(涉)이다. 오광(吳廣)은 양하(陽夏) 사람이며, 자는 숙(叔)이다. 진섭(陳涉)이 젊었을 때, 일찍이 남들과 함께 고용되어 밭을 갈았다. 하루는 그가 농사일을 멈추고 밭두둑에 올라가 한참 동안 분개하고 원망하다가 말했다. “장차 누군가 부귀하게 되면, 서로 잊지 말자.” 함께 고용된 사람들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는 고용되어 밭가는 신세인데, 무슨 부귀가 있겠느냐?” 진섭이 길게 한숨 쉬며 말했다. “아! 제비와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

진이세황제(秦二世皇帝) 원년 7월, 마을 왼쪽에 사는 가난한 백성들을 징발하여 어양(漁陽)으로 수자리를 보내게 하였는데, 9백 명이 대택향(大澤鄕)에 주둔하였다. 진승과 오광은 모두 차례에 따라 편입되어 둔장(屯長)이 되었다. 마침 큰 비가 내려 길이 통하지 않아, 기한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었다. 기한을 넘기면 법에 따라 모두 참수당해야 했다. 진승과 오광이 함께 의논하며 말했다. “지금 도망쳐도 죽고, 큰일을 도모해도 죽는다. 죽기는 마찬가지니,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어떻겠는가?” 진승이 말했다. “천하 사람들이 진(秦)나라의 압박에 시달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내 듣건대, 진이세황제는 진시황의 작은아들이니 마땅히 황제가 될 수 없으며, 마땅히 황제가 되어야 할 사람은 공자 부소(扶蘇)이다. 부소는 여러 번 간언한 까닭에 황상이 그로 하여금 밖에서 군대를 거느리게 하였다. 지금 어떤 이들은 그에게 죄가 없는데도 진이세황제가 죽였다고 들었다. 백성들은 대부분 그가 어질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아직 모른다. 항연(項燕)은 초(楚)나라의 장수로서 여러 번 공을 세웠고, 병사들을 사랑하여 초나라 사람들이 그를 매우 사랑한다. 혹자는 그가 죽었다고 하고, 혹자는 그가 도망쳤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만약 스스로를 공자 부소와 항연의 무리라고 내세워 천하에 호소한다면, 응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오광이 옳게 여겼다. 이에 점을 쳤다. 점쟁이가 그들의 뜻을 알고 말했다. “그대들의 일은 모두 성공하여 공업을 세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귀신에게 점을 쳤습니까?” 진승과 오광이 기뻐하며, 점쟁이가 말한 ‘귀신’의 뜻을 헤아리며 말했다. “이는 우리에게 먼저 무리 가운데서 위엄을 세우라는 가르침일 뿐이다.” 이에 주사(朱砂)로 비단에 ‘진승왕(陳勝王)’ 세 글자를 쓰고, 남이 그물로 잡은 물고기 뱃속에 넣었다. 병사들이 물고기를 사서 삶아 먹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비단 글자를 얻어, 본래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진승이 또 은밀히 오광으로 하여금 주둔지 옆의 숲속 사당에 가서 밤에 횃불을 켜게 하고, 여우 소리를 흉내내며 외치게 했다. “대초(大楚)가 흥하고, 진승이 왕이 된다.” 병사들이 밤새도록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이튿날, 병사들 사이에서 수군수군하며 모두 손가락질하며 진승을 쳐다보았다.

오광은 평소 남을 잘 돌보아, 병사들 가운데 그를 위해 힘을 쓰려는 이가 많았다. 수자리를 호송하는 장위(將尉)가 술에 취하자, 오광이 일부러 여러 번 도망가려는 뜻을 드러내어 장위를 화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자신을 욕보이게 하여, 부하들을 자극하려 하였다. 장위가 과연 오광을 채찍질하였다. 장위의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오자, 오광이 벌떡 일어나 칼을 빼앗아 장위를 죽였다. 진승이 그를 도와 함께 두 명의 장위를 죽였다. 그들이 부하들을 불러 모아 호령하며 말했다. “여러분이 큰비를 만나 이미 기한을 넘겼으니, 기한을 넘기면 마땅히 참수당해야 한다. 비록 참수당하지 않더라도, 수자리 가서 죽는 자도 본래 열에 서너 곱절은 된다. 또 대장부가 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죽으면 큰 명성을 남겨야 한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부하들이 모두 말했다. “공경히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스스로를 공자 부소와 항연의 무리라고 내세워 백성들의 뜻에 따랐다. 모두 오른팔을 드러내고, 국호를 대초(大楚)라고 하였다. 그들은 단을 쌓고 맹세하며, 장위들의 머리를 제물로 삼았다. 진승이 스스로 장군이 되고, 오광은 도위(都尉)가 되었다. 그들이 대택향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군대를 수합한 후 기현(蘄縣)을 공격하였다. 기현이 함락되자, 부리(符離) 사람 갈영(葛嬰)에게 명하여 기현 이동 지역으로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게 하였다. 치(銍), 찬(酂), 고(苦), 자(柘), 초(譙) 등을 공격하여 모두 함락시켰다. 그들은 행군하면서 병사를 모집하였다. 진현(陳縣)에 도착했을 때에는 전차 6, 7백 승(乘), 기병 1천여 명, 보병 수만 명에 이르렀다. 진현을 공격할 때, 진현의 군수와 현령은 모두 자리에 없고, 수승(守丞)만이 초문(譙門)에서 맞서 싸웠다. 수승이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자, 이에 의병들이 성에 들어가 점령하였다. 며칠 후, 진승이 호령하여 고을의 삼로(三老)와 유명한 호걸들을 불러 함께 큰일을 의논하였다. 삼로와 호걸들이 모두 말했다. “장군께서 친히 단단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무기를 잡아, 무도한 폭군을 토벌하고 포악한 진나라를 멸하며, 초나라의 사직을 다시 세우셨으니, 공로로 보아 마땅히 왕이 되셔야 합니다.” 진섭이 이에 왕으로 세워지니, 국호를 장초(張楚)라고 하였다.

이때, 각 군과 현에서 진나라 관리에게 고통받던 자들이, 그곳의 장관들을 응징하여 죽이고 진섭에게 호응하였다. 이에 진왕(陳王)이 오광을 가왕(假王)으로 임명하여, 여러 장수들을 감독하여 서쪽으로 형양(滎陽)을 공격하게 하였다. 진현 사람 무신(武臣), 장이(張耳), 진여(陳餘)에게 명하여 조(趙) 땅을 공략하게 하고, 여음(汝陰) 사람 등종(鄧宗)에게 명하여 구강군(九江郡)을 공략하게 하였다. 이때, 초 땅에서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일어난 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갈영이 동성(東城)에 도착하여 양강(襄彊)을 초왕(楚王)으로 세웠다. 갈영이 뒤에 진왕이 이미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양강을 죽이고 돌아와 진왕에게 보고하였다. 진현에 도착하자, 진왕이 갈영을 죽였다. 진왕이 위(魏)나라 사람 주시(周市)에게 명하여 북쪽으로 위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오광이 형양을 포위하였다. 이유(李由)가 삼천군수(三川郡守)로서 형양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오광이 함락시키지 못했다. 진왕이 국내의 호걸들을 불러 함께 계책을 세우고, 상채(上蔡) 사람 방군(房君) 채사(蔡賜)를 상주국(上柱國)으로 임명하였다.

주문(周文)은 진현의 현인으로, 일찍이 항연의 군중에서 점치는 일을 맡아 보았고, 춘신군(春申君)을 섬겼으며, 스스로 병법에 익숙하다고 일컬었기에, 진왕이 그에게 장군의 인(印)을 주어 서쪽으로 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는 행군하면서 병사를 모집하여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에는 전차 천 승, 병사 수십만 명에 이르렀고, 희수(戲水)에 도착하여 주둔하였다. 진나라가 소부(少府) 장함(章邯)에게 명하여 여산(驪山)의 형벌 받는 자와 노비의 아들들을 사면하고, 모두 징발하여 초군(楚軍)을 공격하게 하여, 초군을 크게 패배시켰다. 주문이 패하여 함곡관을 나와 조양(曹陽)에서 2, 3개월 동안 주둔하였다. 장함이 추격하여 그를 격파하자, 그는 또 면지(澠池)로 달아나 10여 일 동안 주둔하였다. 장함이 공격하여 초군을 크게 무찔렀다. 주문이 자살하니, 군대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무신이 한단(邯鄲)에 도착하여 스스로 조왕(趙王)이 되고, 진여를 대장군(大將軍)으로, 장이와 소소(召騷)를 좌우승상(左右丞相)으로 삼았다. 진왕이 노하여 무신 등의 가족을 체포하여 죽이려 하였다. 상주국 채사가 말했다. “진나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는데 조왕 장상의 가족을 죽이는 것은, 또 하나의 진나라와 같은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형세를 따라 그를 봉하는 것이 낫습니다.” 진왕이 이에 사신을 보내 조나라에 축하하고, 무신 등의 가족을 궁중으로 옮겨 가두었으며, 장이의 아들 장오(張敖)를 성도군(成都君)으로 봉하고, 조군(趙軍)이 속히 함곡관으로 진격하도록 재촉하였다. 조왕의 장상들이 함께 의논하며 말했다. “대왕께서 조 땅에서 왕이 되신 것은 초나라의 본의가 아닙니다. 초나라가 만약 진나라를 멸하면, 반드시 조나라에 군사를 쓸 것입니다. 가장 좋은 계책은 서쪽으로 진격하지 않고, 사신을 보내 북쪽으로 연(燕) 땅을 공략하여 자체의 영토를 넓히는 것입니다. 조나라는 남쪽으로 황하를 지키고, 북쪽으로 연과 대(代) 지역을 차지하면, 초나라가 비록 진나라를 이기더라도 조나라를 감히 제압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가 진나라를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조나라를 중시할 것입니다. 조나라는 진나라가 피폐해진 틈을 타서 천하에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조왕이 매우 옳게 여겨, 이에 서쪽으로 진격하지 않고, 원래 상곡군(上谷郡)의 졸사(卒史) 한광(韓廣)을 보내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연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연나라의 옛 귀족과 호걸들이 한광에게 말했다. “초나라가 이미 왕을 세웠고, 조나라도 이미 왕을 세웠습니다. 연나라는 비록 작지만, 만승(萬乘)의 나라입니다. 장군께서 스스로 연왕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광이 말했다. “나의 어머니가 조나라에 계시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연나라 사람들이 말했다. “조나라는 지금 서쪽으로 진나라를 걱정하고, 남쪽으로 초나라를 걱정하니, 그 힘이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초나라의 강함으로도 조왕 장상의 가족을 감히 해치지 못했는데, 조나라가 어찌 감히 장군의 가족을 해치겠습니까!” 한광이 옳게 여겨, 이에 스스로 연왕이 되었다. 몇 달 후, 조나라가 연왕의 어머니와 가족을 연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때, 각지의 장수들이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은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주시는 북쪽으로 적현까지 진격하여 땅을 빼앗았는데, 적현 사람 전담이 적현 현령을 죽이고 스스로 제왕이 되어 제나라의 힘으로 주시를 공격했다. 주시의 군대는 패하여 흩어져 위나라 땅으로 돌아갔고, 위나라 후손인 원래 영릉군 위구를 위왕으로 세우고자 했다. 당시 위구는 진왕(진승)에게 있었으므로 위나라 땅에 갈 수 없었다. 위나라 땅이 이미 평정되자, 사람들은 모두 함께 주시를 위왕으로 세우려 했으나 주시는 거절했다. 사자가 다섯 번 왕래한 끝에 진왕이 비로소 영릉군 위구를 위왕으로 세워 위나라로 보냈다. 주시는 마침내 승상이 되었다.

장군 전장 등이 함께 모의하여 말하기를 “주장의 군대가 이미 패배하였고, 진군이 조만간 도착할 터이니, 우리가 형양성을 포위해도 함락시키지 못하면 진군이 도착했을 때 반드시 크게 패할 것이다. 적은 병력만 남겨 형양을 충분히 지키게 하고, 정예 부대를 모두 이끌고 진군을 맞아 싸우는 것이 낫다. 지금 대리왕 오광은 교만하고 군사적 권모를 알지 못하니 그와 상의할 수 없고, 그를 죽이지 않으면 일이 실패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이에 함께 진왕의 명령을 거짓으로 꾸며 오광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진왕에게 바쳤다. 진왕은 사자를 보내 전장에게 초나라 영윤의 인장을 주고 상장군으로 임명했다. 전장은 장수 이귀 등에게 형양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정예 부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오창에서 진군을 맞이했다. 진군과 교전하여 전장은 전사하고 군대는 패배했다. 장함은 형양성 아래로 진격하여 이귀 등을 공격해 격파하였고, 이귀 등은 전사했다.

양성 사람 등열은 군대를 이끌고 담현에 주둔했는데, 장함의 편장이 그를 격파하여 등열의 군대는 흩어져 진현으로 도망쳤다. 치현 사람 오서는 군대를 이끌고 허현에 주둔했는데, 장함이 그를 격파하여 오서의 군대는 모두 흩어져 진현으로 도망쳤다. 진왕은 등열을 죽였다.

진왕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능현 사람 진가, 치현 사람 동설, 부리 사람 주계석, 취려 사람 정보, 서현 사람 정질 등이 각각 병사를 일으켜 군대를 이끌고 담현에서 동해군 태수 경을 포위했다. 진왕이 이 소식을 듣고 무평군 반을 장군으로 삼아 담현 지역의 여러 군대를 감독하게 했다. 진가는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대사마가 되어 무평군에게 예속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군중의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무평군은 나이가 어리고 군사를 알지 못하니 그의 말을 듣지 마라!”라고 하였다. 이어 진왕의 명령을 거짓으로 꾸며 무평군 반을 죽였다.

장함이 오서를 격파한 후 진현을 공격하자, 상주국 방군 채사가 전사했다. 장함은 다시 진격하여 진현 서쪽 장하의 군대를 공격했다. 진왕이 직접 나와 전투를 지휘했으나 군대가 패배하고 장하는 전사했다.

섣달에 진왕은 여음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성부에 이르렀는데, 그의 마부 장가가 그를 죽이고 진나라에 항복했다. 진승은 당현에 묻혔고, 시호를 은왕이라 하였다.

진왕의 옛 시종관 장군 여신은 창두군을 조직하여 신양에서 병사를 일으켜 진현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장가를 죽인 후, 다시 진현을 초나라의 도읍으로 삼았다.

처음에 진왕이 진현에 도착했을 때, 치현 사람 송류에게 군대를 이끌고 남양을 평정한 후 무관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송류가 남양을 이미 점령했으나 진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양이 다시 진나라에 귀속되었다. 송류는 무관으로 들어갈 수 없어 동쪽으로 신채에 이르렀다가 진군을 만나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에 항복했다. 진나라는 송류를 함양으로 압송하여 거열형에 처해 시신을 내보였다.

진가 등은 진왕의 군대가 패배하여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경구를 초왕으로 세우고 군대를 이끌고 방여로 가서 정탐성 아래에서 진군을 공격하려 했다. 그는 공손경을 제왕에게 사신으로 보내 병력을 합쳐 함께 공격하고자 했다. 제왕이 말하기를 “듣자하니 진왕이 패배했는데,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거늘, 초나라가 어찌 와서 청하지 않고 왕을 세울 수 있느냐!”라고 하였다. 공손경이 말하기를 “제나라는 초나라에 청하지 않고 왕을 세웠거늘, 초나라가 어찌 제나라에 청한 뒤에야 왕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게다가 초나라가 먼저 일을 일으켰으니 마땅히 천하에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전담이 공손경을 죽였다.

진나라의 좌교위와 우교위가 다시 진현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여장군은 도망쳐 다시 병사를 모집하고 모았다. 파양호의 도적인 당양군 경포의 군대가 그와 합세하여 다시 진나라의 좌교위와 우교위를 공격해 청파에서 격파하고, 다시 진현을 초나라의 도읍으로 삼았다. 이때 마침 항량이 초회왕의 손자 웅심을 초왕으로 세웠다.

진승이 왕이 된 지 모두 6개월이었다. 그가 왕이 된 후, 진현을 왕도로 삼았다. 그가 일찍이 함께 품팔이로 밭을 갈던 옛 친구가 이 소식을 듣고 진현에 이르러 궁문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내가 진섭을 보려 한다.”라고 하였다. 궁문령이 그를 묶으려 하자, 그 사람이 여러 번 변명한 끝에 풀려났으나 궁문령은 그를 위해 알리지 않았다. 진왕이 나갈 때, 그 사람이 길을 막고 진섭을 불렀다. 진왕이 듣고 그를 불러들여 수레에 함께 타고 궁으로 돌아갔다. 궁전에 들어가 당옥과 장막을 보고 손님이 말하기를 “와! 진섭이 왕이 되어 참으로 깊고 호화롭구나!”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은 ‘많다’를 ‘화’라고 하므로, 천하에 ‘화섭이 왕이 되었다’는 말이 퍼졌는데, 이는 진섭에서 비롯되었다. 손님이 궁에 출입하며 점점 방자해져 진왕의 옛일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이 진왕에게 권하기를 “손님이 어리석고 무식하여 함부로 말만 하니, 폐하의 위엄을 손상시킵니다.”라고 하였다. 진왕이 그 손님을 죽였다. 진왕의 옛 친구들은 모두 스스로 떠나가고, 그 뒤로 친근히 하는 자가 없었다. 진왕은 주방을 중정으로, 호무를 사과로 임명하여 여러 신하를 감찰하게 했다. 장수들이 땅을 공략하고 돌아와 그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잡아들여 죄를 다스렸으며, 가혹하게 감찰하는 것을 충성으로 여겼다.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자는 사법 관리에게 넘기지 않고 스스로 처단했다. 진왕은 그들을 신임하고 중용했다. 장수들이 이 때문에 진왕을 가까이하지 않고 따르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실패한 이유이다.

진승은 비록 이미 죽었으나, 그가 봉하고 파견한 왕후와 장상들이 결국 진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진섭이 먼저 일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한고조 때, 당현에 진섭을 위해 30호의 수묘하는 집을 두었고, 지금까지 제사를 받들고 있다.

저 선생이 말한다: 지형이 험한 것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데 쓰이고, 병기와 갑옷, 형벌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쓰인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의지할 수 없다. 선왕은 인의를 근본으로 삼고, 견고한 험새와 법령 제도를 지엽으로 삼았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가생의 논평을 들으니 말하기를:

“진효공은 효산과 함곡관의 험고함을 차지하고 옹주의 땅을 소유하여, 군신이 굳게 지키며 은밀히 주나라 왕실을 도모했다. 천하를 휩쓸고 우주를 감싸며 사해를 주머니에 넣고 팔방을 병탄하려는 뜻이 있었다. 이때 상앙이 그를 보좌하여, 안으로는 법령 제도를 세우고 농사와 길쌈에 힘쓰며 방어와 공격의 무기를 정비하고, 밖으로는 연횡책을 써서 제후들이 서로 다투게 했다. 이에 진나라 사람들은 힘들이지 않고 서하 밖의 땅을 얻었다.”

“진효공이 죽은 후, 혜문왕, 무왕, 소왕이 선대의 기업을 계승하고 유전된 전략을 따라, 남쪽으로 한중을 빼앗고 서쪽으로 파촉을 취하며 동쪽으로 비옥한 땅을 할취하고 중요한 군현을 점령했다. 제후들은 두려워하여 회합하고 동맹을 맺어 진나라를 약화시킬 계책을 꾀했다. 그들은 귀한 기물, 중보와 비옥한 땅을 아끼지 않고 천하의 현사를 초빙했다. 합종 전략을 실행하고, 맹약을 체결하여 서로 연합해 하나가 되었다. 이때, 제나라에는 맹상군, 조나라에는 평원군, 초나라에는 춘신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었다: 이 네 군주는 모두明智하고 충성스러우며 너그럽고 사람을 사랑하며, 현자를 공경하고 선비를 중히 여겼다. 그들은 합종을 약속하고 한, 위, 연, 조, 송, 위, 중산 등의 나라 힘을 결합했다. 이에 여섯 나라의 선비로는 영월, 서상, 소진, 두혁 같은 무리가 그들을 위해 계책을 세우고, 제명, 주최, 진진, 소활, 누완, 적경, 소려, 악의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뜻을 소통했으며, 오기, 손빈, 대타, 기량, 왕료, 전기, 염파, 조사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통솔했다. 일찍이 진나라의 열 배 땅과 백만 군대로 함곡관을 공격하여 진나라를 쳤다. 진나라 사람들이 관문을 열어 맞서 싸우자, 아홉 나라 군대는 흩어져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 진나라는 화살 하나, 촉 하나 잃지 않았는데 천하 제후는 이미 곤경에 빠졌다. 이에 합종은 흩어지고 맹약은 깨졌으며, 제후들은 다투어 땅을 떼어 진나라에 뇌물로 바쳤다. 진나라는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피폐함을 이용하여 도망치고 패한 군대를 추격해, 시체가 백만이 넘게 죽고 피가 방패를 띄울 정도였으며, 유리한 형세를 타서 천하를 도살하고 산하를 분할했다. 강국은 항복을 청하고 약국은 조공을 바쳤다.

“효문왕과 장양왕에 이르러, 그들의 재위 기간은 짧아 나라에 큰 일이 없었다.

“진시황에 이르러, 여섯 대에 걸쳐 남겨진 공업을 발양하고, 긴 채찍을 휘둘러 천하를 통제하며, 동주와 서주를 병탄하고 제후를 멸망시키고, 지고무상의 제위에 올라 온 천하를 장악하고, 형벌 도구를 쥐고 천하 백성을 채찍질하며 위세가 사해를 진동시켰다. 남쪽으로 백월의 땅을 빼앗아 계림군과 상군을 설치하니, 백월의 군주는 고개 숙여 목에 줄을 매고 목숨을 진나라의 하급 관리에게 맡겼다. 이에 몽념을 보내 북쪽으로 장성을 쌓아 변경을 지키게 하고 흉노를 칠백여 리 밖으로 물리치니, 호인들은 감히 남쪽으로 말을 먹이지 못했고 선비들도 활을 당겨 원수를 갚지 못했다. 이에 선왕의 다스리는 도를 폐기하고 제자백가의 저작을 불태워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었다. 명성을 가진 성을 파괴하고 호걸과 준재를 죽였으며,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에 집중시키고, 칼과 화살을 녹여 열두 개의 동인을 주조해 천하 백성의 힘을 약화시켰다. 그런 다음 화산을 성벽 삼고 황하를 해자 삼아, 높이 억길이나 되는 성벽에 의지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계곡을 굽어보며 이것을 견고한 방벽으로 삼았다. 훌륭한 장수와 강한 쇠뇌가 요지를 지키고, 충성스러운 신하와 정예 병사가 날카로운 병기를 진열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심문했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진시황의 마음속으로는 관중 지방의 견고함이 마치 천 리의 금성 같아 자손 만대가 제왕이 될 기업이라고 여겼다.

“진시황이 죽은 후, 남은 위세가 변경 지역까지 떨쳤다. 그러나 진섭은 겨우 깨진 항아리로 창문을 삼고 새끼줄로 문지도리를 삼은 가난한 집 자손이며, 밭을 가는 고용 농사꾼이자, 정발되어 변방을 지키는 역졸에 불과했다. 재능은 중간 사람에도 미치지 못하고, 공자나 묵적 같은 현덕도 없고, 도주공이나 의돈 같은 부유함도 없었다. 그는 졸병의 행렬 사이에 몸을 두고, 들판에서 고개 숙여 일하며, 지치고 흩어진 병사를 이끌고, 수백 명을 거느리고 돌이켜 진나라를 공격했다. 나무를 베어 병기를 삼고, 대나무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으니, 천하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 호응하며, 식량을 지니고 그림자처럼 그를 따랐으며, 효산 동쪽의 영웅 호걸들이 이에 동시에 일어나 진나라 왕실을 멸망시켰다.

“또한 천하는 줄어들거나 약해지지 않았다; 옹주의 땅, 효산과 함곡관의 험고함은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진섭의 지위는 제, 초, 연, 조, 한, 위, 송, 위, 중산의 군주보다 존귀하지 않았다; 쟁기와 몽둥이는 갈고리 창과 긴 창보다 날카롭지 않았다; 정발되어 변방을 지키는 졸병은 아홉 나라의 군대보다 강하지 않았다; 깊은 계책과 원대한 생각, 군대를 운용하는 방법도 예전의 모사들보다 못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는 크게 다르고, 공업도 정반대였다. 만약 효산 동쪽의 제후들과 진섭이 길고 짧음과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권세와 힘을 견준다면, 서로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나라는 작은 땅을凭借하여 만승 병거의 권세에 이르고, 다른 여덟 주의 제후들이 자신에게 조공을 바치게 한 지 이미 백여 년이었다. 그런 다음 천하를 집으로 삼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일어나니 종묘가 멸망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손에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무슨 이유인가? 인의를施行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하가 소란스럽고 바다 안에 군주가 없어, 모두가 정권을 다투며 누가 먼저 손을 쥐는지 보았다. 진승이 먼저 일어나니, 그의 나라 이름을 장초라 했다. 귀신에 의지하여 위엄을 세우고, 큰 뜻을 스스로 허락했다. 갈영은 동쪽으로 발전하고, 주문은 서쪽으로 적을 막았다. 처음에는 주방을 친애하고, 또 호무를 임용했다. “화혜”라는 손님이 죽임을 당하니, 심복이 친히 따르지 않았다. 장가는 어떤 사람인가, 성부에서 반역하여 진승을 죽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