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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

제89회 송공명이 진영을 격파하여 공을 세우고, 숙태위(宿太尉)가 은혜를 내려 조서를 반포하다

제 89 편

제89장 송강 진을 깨뜨려 성공하고 숙태위 은혜를 내려 조서를 내리다

화제여 당시 송강이 꿈속에서 구천현녀가 전수한 법술을 얻어 한 구절도 잊지 않고, 군사 오용과 상의하여 정한 뒤 조추밀에게 보고하였다. 진영에서 합심하여 뇌차(雷車) 24부를 제작하였는데, 모두 그림을 그린 판자와 쇳조각을 못질하여 만들고, 아래에는 기름 섞인 섶을 싣고 위에는 화포를 설치하였으며, 밤낮으로 공사를 독려하여 기한 안에 완성시켰다. 진을 치는 일을 의논하여 장수들과 군마를 모은 뒤, 송강이 영을 내려 각자 나누어 배치하였다. 곧 "중앙 무기토(中央戊己土) 황포(黃袍)" 군마를 뽑아 요나라 "수성(水星)" 진을 치게 하고, 대장 한 명인 "쌍창장(雙槍將)" 동평을 보내 좌우에서 흑기군(皂旗軍) 일곱 문을 돌파하게 하며, 부장 일곱 명인 주동, 사진, 구붕, 등비, 연순, 마린, 목춘을 배속시켰다. 다시 "서방 경신금(西方庚辛金) 백포(白袍)" 군마를 뽑아 요나라 "목성(木星)" 진을 치게 하고, 대장 한 명인 "표자두(豹子頭)" 임충을 보내 좌우에서 청기군(青旗軍) 일곱 문을 돌파하게 하며, 부장 일곱 명인 서녕, 목홍, 황신, 손립, 양춘, 진달, 양림을 배속시켰다. 다시 "남방 병정화(南方丙丁火) 홍포(紅袍)" 군마를 뽑아 요나라 "금성(金星)" 진을 치게 하고, 대장 한 명인 "벽력화(霹靂火)" 진명을 보내 좌우에서 백기군(白旗軍) 일곱 문을 돌파하게 하며, 부장 일곱 명인 유당, 뇌횡, 단정규, 위정국, 주통, 공왕, 정득손을 배속시켰다. 다시 "북방 임계수(北方壬癸水) 흑포(黑袍)" 군마를 뽑아 요나라 "화성(火星)" 진을 치게 하고, 대장 한 명인 "쌍편(雙鞭)" 호연작을 보내 좌우에서 홍기군(紅旗軍) 일곱 문을 돌파하게 하며, 부장 일곱 명인 양지, 색초, 한도, 팽기, 공명, 추연, 추윤을 배속시켰다. 다시 "동방 갑을목(東方甲乙木) 청포(青袍)" 군마를 뽑아 요나라 "토성(土星)" 주장 진을 치게 하고, 대장 한 명인 "대도(大刀)" 관승을 보내 좌우에서 중군 황기(黃旗) 주진(主陣) 군마를 돌파하게 하며, 부장 여덟 명인 화영, 장청, 이응, 시진, 선찬, 학사문, 시은, 설영을 배속시켰다. 다시 한 부대의 수기(繡旗) 화포군(花袍軍)을 보내 요나라 "태양(太陽)" 좌군(左軍) 진을 치게 하고, 대장 일곱 명인 노지심, 무송, 양웅, 석수, 초정, 탕륭, 채복을 배속시켰다. 다시 한 부대의 소포(素袍) 은갑군(銀甲軍)을 보내 요나라 "태음(太陰)" 우군(右軍) 진을 치게 하고, 대장 일곱 명인 호삼랑, 고대수, 손이랑, 왕영, 손신, 장청, 채경을 배속시켰다. 다시 중군을 치는 한 부대의 용맹한 군마를 보내 요나라 군주를 직접 사로잡게 하고, 대장 여섯 명인 노준의, 연청, 여방, 곽성, 해진, 해보를 배속시켰다. 다시 뇌차를 중군으로 호송할 대장 다섯 명인 이규, 번서, 포욱, 항충, 이곤을 보냈다. 나머지 수군 두령들과 필요한 인원들은 모두 진 앞에 나가 진을 깨는 것을 도왔다. 진 앞에는 오방기(五方旗) 여덟 폭을 세우고 인원을 나누어 배치하였으며, 여전히 "구궁팔괘(九宮八卦)" 진세를 펼쳤다. 송강이 영을 내리기를 마치자, 모든 장수들이 각자 명령을 지켰고, 한편으로는 뇌차 제작을 서둘러 마쳐 법물(法物)을 싣고 진 앞으로 밀어냈다. 참으로 계책은 천지를 놀라게 하고, 모략은 귀신을 꺾을 만하였다.

이때 올안통군(兀顏統軍)은 여러 날 송강이 나와 교전하지 않자, 압진군마(壓陣軍馬)를 보내 송강의 진영 앞까지 정찰하게 하였다. 송강은 여러 날에 걸쳐 제작을 완비하고 날짜를 정하여, 그날 밤 몸을 일으켜 요병과 맞닥뜨렸다. 일자(一字)로 진세를 펼치고, 앞쪽에는 모두 강궁과 단단한 화살을 써서 진의 발을 고정시켰으며, 해질 무렵만 기다렸다. 황혼 무렵, 북풍이 매섭게 불고 짙은 구름이 뒤덮여 하늘과 땅을 감싸니, 날이 저물기도 전에 이미 어두워졌다. 송강은 모든 군사들에게 갈대를 꺾어 피리로 만들어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삼게 하였다. 그날 밤 먼저 네 갈래 길로 군사를 나누어 보내고, 황포군만을 진 앞에 배치해 두었다. 이렇게 나뉜 네 갈래 군마는 초계하던 번군(番軍)을 몰아내고 진의 둘레를 따라 북쪽으로 달려 나갔다.

초경(初更) 무렵, 송강 군중에서 연이어 포성이 울렸다. 호연작이 진문을 열고 후군으로 쳐들어가 곧바로 "화성"을 노렸다. 관승이 이어 중군으로 쳐들어가 곧바로 "토성" 주장을 노렸다. 임충이 군사를 이끌고 좌군 진 안으로 쳐들어가 곧바로 "목성"을 노렸다. 진명이 군사를 이끌고 우군 진 안으로 부딪쳐 들어가 곧바로 "금성"을 노렸다. 동평이 군사를 조율하여 첫 진을 공격해 곧바로 "수성"을 노렸다. 공손승이 군중에서 칼을 잡고 법을 행하며, 천강(天罡)을 밟고 두성(斗星)을 걸으며 오뢰(五雷)를 일으켰다. 그날 밤 남풍이 크게 불어 나무 끝이 땅에 닿을 정도였고, 돌이 굴러가고 모래가 날렸다. 일제히 24부의 뇌차에 불을 붙이자, 이규, 번서, 포욱, 항충, 이곤이 500명의 방패병과 용맹한 군사들을 이끌고 뇌차를 호송하여 요군 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일장청(一丈青)" 호삼랑이 군사를 이끌고 요병 "태음" 진으로 쳐들어갔고, "화화상(花和尚)" 노지심이 군사를 이끌고 요병 "태양" 진으로 쳐들어갔다. "옥기린(玉麒麟)" 노준의가 한 부대의 군마를 이끌고 뇌차를 따라 곧바로 중군으로 향했다. 각자 제 위치를 찾아 싸움을 벌였다. 그날 밤 뇌차에 불이 붙고 하늘에서는 벼락이 연이어 쳤으니, 참으로 싸움이 벌어지자 별과 달이 자리를 옮기고 해와 달이 빛을 잃었으며, 귀신이 울부짖고 신이 곡하며 사람과 병사가 혼란에 빠졌다.

이때 올안통군이 중군에서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는데,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 사방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말에 오르려 할 때, 뇌차가 이미 중군에 도착하여 불길이 하늘에 치솟고 포성이 땅을 진동시켰으며, 관승의 한 부대 군마가 이미 장막 앞에 이르렀다. 올안통군이 급히 방천화극(方天畫戟)을 들어 관승과 크게 싸웠으나, 어찌 "몰우전(沒羽箭)" 장청이 돌을 집어 허공에 마구 던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사방의 아장(牙將)들이 맞아 부상을 입은 자가 많아 목숨을 구하며 흩어져 달아났다. 이응, 시진, 선찬, 학사문이 말을 달리며 칼을 휘둘러 군사와 장수들을 마구 죽였다. 올안통군은 곁에 날개가 없음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북쪽으로 달아났고, 관승이 말을 달려 바짝 뒤쫓았다. 참으로 아무리 염마천(焰摩天)까지 올라간다 해도 발밑에 구름을 타고 반드시 따라잡으리라.

화영이 뒤에서 올안통군이 패하는 것을 보고 한 필의 말을 타고 역시 뒤쫓아와 급히 활을 당겨 화살을 먹이고 올안통군을 향해 쏘았다. 그 화살이 올안통군의 뒤통수를 맞추었으나, 쩡 소리와 함께 불꽃이 흩어지며 호심경(護心鏡)에 맞았다. 다시 쏘려 할 때 관승이 따라잡아 청룡도를 들어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올안통군은 세 겹의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안쪽에는 연환동철갑(連環銅鐵甲), 가운데에는 해수피갑(海獸皮甲), 바깥쪽에는 쇄자황금갑(鎖子黃金甲)이었다. 관승의 그 한 칼이 지나가며 겨우 두 겹만 뚫었다. 다시 한 칼을 내리치자, 올안통군이 칼 그림자 속에서 몸을 피하며 말을 멈추고 방천화극을 들어 맞섰다. 두 사람이 또 서너 합을 싸우자, 화영이 따라붙어 올안통군의 얼굴을 겨누고 또 한 대의 화살을 쏘았다. 올안통군이 급히 피하자, 그 화살이 귀밑을 스쳐 봉익금관(鳳翅金冠)을 꿰뚫었다. 올안통군이 급히 달아나자, 장청이 말을 달려 따라잡아 돌을 집어 얼굴을 향해 던졌다. 돌이 날아가 올안통군을 말 위에 엎드러지게 만들었고, 그는 화극을 끌며 달아났다. 관승이 따라잡아 다시 사정없이 한 칼을 내리쳤다. 청룡도가 떨어진 곳에 올안통군의 허리와 뼈, 머리까지 함께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화영이 달려와 먼저 그 좋은 말을 바꾸어 탔다. 장청이 달려와 다시 한 번 창을 찔렀다. 가엾도다, 올안통군은 한 시대의 호걸이었으나, 한 자루의 칼과 한 자루의 창에 목숨을 마쳤다. 시가 있어 증거하니:

이정(李靖)의 "육화진(六花陣)" 사람들 또한 알았고, 공명(孔明)의 "팔괘진(八卦陣)" 세상이 응당 알리라.

"혼천진(混天陣)" 오직 적이 없을 줄로만 생각했더니, 또한 신기한 계책이 있어 깨뜨릴 때가 있었도다.

이때 노지심이 무송 등 여섯 명의 두령을 이끌고, 여러 장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요병의 "태양" 진으로 쳐들어갔다. 그 야율득중(耶律得重)이 급히 도망치려 하자, 무송이 한 칼로 말머리를 베어 거꾸로 말 아래 떨어뜨리고,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한 칼에 목을 베어 "태양" 진세를 무찔렀다. 노지심이 말하였다. "우리들은 다시 중군으로 가서 요나라 군주를 잡으면, 그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다."

또한 요병 "태음" 진 중의 천수공주(天壽公主)는 사방에서 함성이 일고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급히 병기를 챙겨 말에 올라 여병들을 이끌고 대기하였다. 문득 "일장청"이 쌍도를 휘두르며 말을 달려 고대수 등 여섯 명의 두령을 이끌고 장막 안으로 쳐들어와 천수공주와 맞섰다. 두 사람이 수없이 여러 합을 싸우다가 "일장청"이 쌍도를 벌려 공주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가슴을 움켜잡았고, 두 사람은 말 위에서 한 덩어리로 엉키고 뒤엉켰다. 왕완호가 따라잡아 천수공주를 산 채로 사로잡았다. 고대수와 손이랑이 진 안에서 여병들을 흩어지게 죽였고, 손신, 장청, 채경은 밖에서 협공하였다. 가엾도다, 옥엽금지(玉葉金枝) 같은 공주가, 항복하여 결박당하는 사람이 되었도다.

이때 노준의가 군사를 이끌고 중군에 이르러, 해진과 해보가 먼저 사자기(帥字旗)를 베어 넘어뜨리고 번병과 번장들을 마구 죽였다. 당시 호가대신(護駕大臣)과 많은 아장들이 요나라 군주의 가마(鑾駕)를 에워싸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진 안에 있던 "라후(羅睺)"와 "월패(月孛)" 두 황질(皇侄)은 모두 말 아래 찔려 죽었고, "계도(計都)" 황질은 말 위에서 산 채로 사로잡혔으며, "자기(紫炁)" 황질은 종적을 알 수 없었다. 대병이 겹겹이 에워싸 사경(四更)이 되어서야 비로소 싸움이 그쳤으니, 요병 20여 만 명을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하였다.

날이 밝아올 무렵, 장수들이 모두 돌아왔다. 송강은 쇠북을 울려 군사를 거두고 진영을 세운 뒤, 명령을 내려 산 채로 포로를 잡은 장수들이 각자 공을 보고하게 했다. "일장청" 호삼랑이 "태음성" 천수공주를 바쳤고, 노준의가 "계도성" 황질 야율득화를 바쳤으며, 주동이 "수성" 곡리출청을 바쳤다. 구붕, 등비, 마린이 "두목사" 소대관을 바쳤고, 양림, 진달이 "심월호" 배직을 바쳤으며, 단정규, 위정국이 "위토치" 고표를 바쳤다. 한도, 팽기가 "유토장" 뇌춘과 "익화사" 적성을 바쳤다. 각 장수들이 바친 목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송강은 산 채로 잡은 여덟 명의 장수를 모두 조추밀의 중군 대영으로 압송하여 감금하게 했다. 노획한 말들은 그 자리에서 각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어 타게 했다.

이야기는 다시 요나라 국왕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급히 연경으로 퇴각하여, 황급히 명령을 내려 네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철저히 방어하며, 출성하여 싸우지 않게 했다. 송강이 요주가 연경으로 물러났다는 것을 알고 군마를 철수시켜 진영을 거두고 곧바로 성 아래까지 추격하여 성을 사면으로 포위했다. 또 사람을 보내 조추밀을 후영으로 청하여 성을 공격하는 일을 감독하고 지휘하게 했다. 송강은 명령을 내려 연경성 밖에 운제와 포석을 설치하고, 영채와 책을 세워 성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게 했다.

요나라 국왕은 마음이 급하여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의논하니, 모두 말하길, "일이 이미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대송에 항복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요주는 그들의 의견을 따랐다. 이에 성 위에 항복 깃발을 세우고, 사람을 송영에 보내어 청하기를, "우리는 해마다 소와 말을 바치고, 해마다 진주와 보배를 바칠 것을 원하며, 다시는 중원을 침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강은 사자를 데리고 후영으로 가서 조추밀을 뵙고 항복에 관한 일을 설명했다. 조추밀은 듣고 말하길, "이는 국가의 중대한 일이니, 반드시 황상께서 직접 결정하셔야 하며, 제가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대 요나라에 항복할 마음이 있다면, 믿을 만한 신하를 보내어 직접 동경으로 가서 천자를 알현하게 하십시오. 성지가 항복 표문을 허락하고 조서를 내려 죄를 사면한 후에야 우리가 군사를 물리고 전쟁을 멈출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사자는 이 말을 듣고 성으로 들어가 요주에게 알렸다. 이때 요주는 문무백관을 불러 이 일을 의논했다. 우승상 태사 저견이 조정에 나서서 아뢰길, "지금 우리나라는 병력이 적고 장수도 부족하며, 인마도 없는데 어떻게 적을 맞이하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신이 직접 송선봉의 영채에 가서 그들에게 풍부한 재물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들로 하여금 군사를 멈추고 휴전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물을 수습하여 직접 동경으로 보내어, 성원의 여러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천자 앞에서 좋은 말을 하게 하고, 다시 방법을 강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중원의 채경, 동관, 고구, 양함 네 간신이 권력을 잡고 있어, 그 어린 황제는 이 네 사람의 주장을 따릅니다. 우리는 금은 재물로 이 네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을 매수하여 화친하게 하면, 황상께서 반드시 조서를 내려 사면하고 군사를 거두어 전쟁을 멈출 것입니다." 요주는 그의 주청을 옳게 여겼다.

다음 날, 승상 저견이 성을 나와 곧바로 송선봉의 영채로 왔다. 송강은 그를 장중으로 맞아들여 온 뜻을 물었다. 저견이 먼저 요주가 항복할 뜻이 있음을 말하고, 이어 송선봉에게 금은보화와 진귀한 완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송강이 듣고 승상 저견에게 말하길, "내가 여러 날 성을 공격하여, 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고, 한 번에 초근목피를 베어 다시 싹이 나지 않게 하려 했다. 그대들이 성 위에 항복 깃발을 세운 것을 보고, 그래야 군사를 멈추고 휴전한 것이다. 두 나라가 교전함에 예로부터 국가에 항복하는 도리가 있으니, 그대들의 항복 귀순을 허락한 까닭에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조정에 가서 죄를 청하고 공물을 바치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뇌물로 약속하다니, 나 송강을 어떤 사람으로 보는 것이냐?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저견은 매우 두려워했다. 송강이 또 말하길, "네가 표문을 작성하여 경성으로 가는 것은 허락하되, 황상의 결정에 따르겠다. 우리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있을 터이니, 너는 빨리 가서 빨리 오도록 하라. 지체하지 마라!"

저견은 송선봉에게 절하고 감사 인사를 한 뒤, 영채를 나와 말을 타고 연경으로 돌아가 요주에게 상황을 아뢰었다. 여러 신하들이 의논을 마치고, 다음 날 요나라 군신은 진귀한 완구와 물품, 금은보화, 비단, 진주를 수습하여 수레에 싣고, 승상 저견과 열다섯 명의 번관을 경성으로 보냈다. 서른여 명의 안마가 따랐고, 한 통의 청죄 표문을 써서 연경을 떠나 송강의 영채에 이르러 송강을 알현했다. 송강은 저견을 데리고 조추밀을 만나러 가서 이 일을 말했다. "요나라가 지금 승상 저견을 보내어 직접 경성에 가서 알현하고, 죄를 인정하며 항복하려 합니다." 조추밀은 저견을 머물게 하여 예로 대접하고, 자신은 와서 송선봉과 의논하여 또한 문서를 작성하여 천자에게 신고했다. 곧 시진, 소양을 보내어 주장과 함께 행군 공문을 가지고 성원에 가서 수속을 밟고, 함께 승상 저견을 모시고 동경으로 가게 했다.

길에서 하루가 지나지 않아 곧바로 경성에 도착하여, 열 수레에 실은 진공하는 금은보화 예물을 수레와 말, 인마와 함께 관사에 안치했다. 시진과 소양은 행군 공문을 가지고 먼저 성원에 가서 제출하며 아뢰길, "지금 병마가 연경을 포위하여 곧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요나라 국왕이 성 위에 항복 깃발을 세우고, 지금 승상 저견을 보내어 표문을 올리며, 죄를 인정하고 항복하여 사면을 청하고 전쟁을 멈추려 합니다. 저희가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와서 지시를 청합니다."라고 했다. 성원의 관리는 말하길, "그대들은 우선 그를 관사에 잠시 머물게 하고, 여기서 우리가 신중히 의논하겠다."라고 했다.

이때 채경, 동관, 고구, 양함 및 성원의 크고 작은 관료들은 모두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야기는 다시 요나라 승상 저견과 무리들로 넘어간다. 그들은 먼저 문로를 찾아 태사 채경 등 네 대신을 알현하고, 이어 성원의 여러 관리들에게도 각각 뇌물을 보내어, 각자 먼저 통로를 열고 예물을 모두 보냈다. 다음 날 이른 조회, 백관이 하례하고 절하고 춤추기를 마치자, 추밀사 동관이 조정에 나서서 아뢰길, "선봉사 송강이 요병을 물리치고 연경까지 진격하여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여 곧 함락시킬 상황입니다. 지금 요주가 이미 항복 깃발을 세우고, 항복하기를 원하여 승상 저견을 보내어 표문을 받들고 와서 신하를 칭하며 항복하고 죄를 인정하여 사면을 청하고 화친을 구하며, 퇴병과 휴전을 요구하고, 해마다 공물을 바칠 것을 원하며 감히 어기지 않겠다고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께서 성찰하소서." 천자가 말하길, "이와 같이 화친하고 휴전하는 것에 대해, 그대 여러 신하들은 어떻게 의논하였는가?" 옆에 있던 태사 채경이 조정에 나서서 아뢰길, "신 등 여러 관료들이 이미 의논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방의 오랑캐는 완전히 소멸된 적이 없었습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요나라를 보존하여 북방의 울타리로 삼는 것이 가합니다. 그들이 해마다 세폐를 바치면 국가에 이익이 됩니다. 그들의 항복과 청죄를 허락하고 휴전하며, 조서를 내려 군마를 소환하여 경성을 보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 등이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어 폐하의 성재를 청합니다." 천자가 윤허하고, 성지를 내려 요나라 사신으로 하여금 임금을 알현하게 했다. 이때 전두관이 명령을 전하여 저견 등 일행 사신을 불러 모두 금전 아래로 나아가게 하여, 먼지를 날리며 절하고 춤추고, 머리를 조아리며 세 번 절했다. 시신이 표문을 받들어 어안 위에 펼치니, 선표학사가 소리 높여 읽었다:

"요나라 국주 신 야율휘가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백 번 절하여 아뢰옵니다: 신은 북방 사막에서 태어나고 번방에서 자라, 성현의 경전을 통달하지 못하고 강상과 예법을 연구하지 못하였나이다. 문재와 무략을 가장하나 곁에는 이리 같은 마음에 개 같은 행실을 하는 자가 많고, 뇌물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하여 앞뒤로는 쥐 눈에 노루 머리 같은 무리들뿐이었나이다. 소신이 혼미하고 어리석어 무리를 모아 방자하게 난을 일으켰나이다. 강역을 침범하여 천병이 와서 죄를 묻게 하였고, 멋대로 군마를 몰아 왕실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게 하였나이다. 하찮은 개미가 어찌 태산을 흔들 수 있겠으며, 생각건대 모든 물이 반드시 대해로 돌아가는 것과 같사옵니다. 지금 특별히 사신 저견을 보내어 천위를 범하고, 토지를 바치며 죄를 인정하고 벌을 청하나이다. 만약 성상께서 이 미약한 생명을 가엾게 여기시어 조종께서 남기신 기업을 폐하지 않으시고, 지난 허물을 사면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어, 저희로 하여금 오랑캐의 번방으로 물러나 지키며, 영원히 대조의 울타리가 되게 하신다면, 노소가 진실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며, 자자손손 영원히 은덕을 감사할 것이옵니다. 저희는 세폐를 바칠 것을 맹세하며 감히 어기지 않겠나이다! 신 등은 전율하고 두려워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삼가 표문을 올려 아룁나이다.

선화 4년 동월 일 요나라 국주 신 야율휘 상표"

徽宗 천자가 상소문을 다 읽자, 전하의 여러 신하들이 모두 와서 축하하였다. 천자는 명하여 어주를 가져오게 하여 사신에게 하사하였다. 승상 저견 등은 곧 금은 재물과 세폐를 꺼내어 조정 앞에 바쳤다. 천자는 명하여 보물 창고에 넣게 하고, 따로 매년 바쳐야 할 세폐의 소와 말 등의 물건을 추가로 받아들였다. 천자는 답례로 비단 필과 표리를 하사하고, 광록사에서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칙령을 내려 승상 저견 등은 먼저 돌아가고, 짐이 관원을 보내어 친히 조서를 내리게 하리라 하였다. 저견 등이 은혜에 감사하고, 절하고 하직하여 조정에서 나와 우선 역관으로 돌아갔다. 이날 조회가 끝난 후, 저견은 또 사람을 보내 여러 관원의 집을 찾아다니며 다시 청탁을 넣었다. 채경은 힘껏 승낙하며, 승상은 직접 먼저 돌아가고, 모든 일은 우리 네 사람이 책임지겠노라고 하였다. 저견은 태사에게 감사하고, 스스로 요나라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채태사에게로 돌아간다. 이튿날, 그는 백관을 거느리고 입조하여 강조(降詔)를 계청하고 요나라에 회답하였다. 천자가 윤허하여 급히 한림학사에게 명하여 조서 한 통을 짓게 하고, 곧 어전에서 태위 숙원경에게 단서(丹詔)를 받들어 직접 요나라에 가서 읽게 하였다. 또한 조추밀에게 칙령을 내려 송선봉에게 명하여 군대를 거두고 전쟁을 멈추며, 반사하여 경성으로 돌아오게 하고; 잡혀온 모든 사람들은 놓아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며; 원래 빼앗았던 성지는 여전히 요나라의 관할에 맡기고; 부고(府庫)의 기물들도 요나라에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천자가 퇴조하자, 백관들은 모두 흩어졌다. 이튿날, 성원(省院)의 여러 관원들이 모두 숙태위의 부중에 이르러 날을 잡고 전송을 약속하였다.

다시 숙태위가 이야기된다. 그는 조서를 받들고 감히 오래 머물지 못하고, 교자와 말, 수행원을 준비하여 천자께 하직하고, 성원 각 관청의 관원들과 작별한 뒤, 시진(柴進), 소양(蕭讓)과 함께 요나라로 향하여, 경성을 떠나 진교역(陳橋驛)을 지나 변방으로 향하였다. 길을 갈 때는 마침 엄동(嚴冬)이라,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큰 눈이 땅을 덮어, 흰 가루로 천 개의 산림을 빚어내고, 은빛이 만 리 대지를 감싼 듯하였다. 숙태위의一行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굽이굽이 나아갔다. 눈이 그친 뒤에도 녹지 않아, 점점 변방에 가까워졌다. 시진(柴進)과 소양(蕭讓)은 먼저 초마(哨馬)를 보내 조추밀(趙樞密)에게 보고하게 하고, 가서 송선봉(宋先鋒)에게 알리게 하였다. 송강(宋江)은 초마가 급히 알리는 것을 보고, 술과 예물을 가지고 여러 사람을 거느리고 오십 리 밖 길가에 나가 맞이하였다. 숙태위를 맞이하여 상견례를 마치고, 환영주를 마시며 각 관원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진중으로 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대접하며 함께 조정 일을 의논하였다. 숙태위는 성원 등의 관원, 채경(蔡京), 동관(童貫), 고구(高俅), 양검(楊戬)이 모두 요나라의 뇌물을 받고 황제 앞에서 힘껏 이 일을 주청하여 그들이 항복하는 것을 허락하고, 전쟁을 멈추고 군사를 쉬게 하며, 조서를 내려 군마를 불러들여 경성을 지키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송강이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나 송모가 조정을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또다시 허사가 되었습니다." 숙태위가 말하였다: "선봉은 근심하지 마십시오! 저 원경이 조정에 돌아가면 반드시 황제 앞에서 중히 천거하겠습니다." 조추밀도 말하였다: "저하관이 증인이 있으니, 어찌 장군의 큰 공로를 허사로 만들겠습니까!" 송강이 고하여 말하였다: "저희 일백팔 인은 힘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였을 뿐, 다른 마음은 없었으며, 은상이나 봉작을 바라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직 여러 형제들과 고락을 함께하기를 바랄 뿐이니, 참으로 큰 다행입니다. 만약 추상(樞相)께서 주장해 주신다면, 깊이 후덕을 감사하겠습니다." 그날 연회에서 여러 사람이 모두 기뻐하며, 저녁이 되어서야 흩어졌다. 곧 사람을 보내어 요나라에 알려 조서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였다.

이튿날, 송강은 십 대장을 뽑아 숙태위를 호송하여 요나라에 들어가 조서를 반포하게 하였는데, 모두 금수(錦繡) 두루마기와 금갑(金甲)을 입고, 무장(武裝)과 혁대(革帶)를 착용하였다. 그 십 대장은 관승(關勝), 임충(林沖), 진명(秦明), 호연작(呼延灼), 화영(花榮), 동평(董平), 이응(李應), 시진(柴進), 여방(呂方), 곽성(郭盛)이었으며, 마보군(馬步軍) 삼천을 거느려 태위를 호위하고, 앞뒤로 에워싸고 진을 펴고 성으로 들어갔다. 연경(燕京)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중국 군용(軍容)을 본 적이 없었는데, 태위가 온다는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집집마다 앞에 향화(香花)와 등촉(燈燭)을 진열하였다. 요나라 군주는 직접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예복을 입고 말을 타고 남문 밖으로 나가 조서를 맞이하여, 금란전(金鑾殿)까지 이르렀다. 십 대장은 좌우에 서고; 숙태위는 용정(龍亭) 왼쪽에 서고; 국왕은 백관과 함께 전하에 꿇어앉았다. 전두관(殿頭官)이 절을 외치자, 국왕과 문무백관이 절을 마쳤다. 요나라 시랑(侍郎) 승은(承恩)이 조서를 받들어 내어, 곧 전상에서 펼쳐 읽었다. 조서는 이러하였다:

당시 요나라 시랑이 조서를 다 읽자, 국왕과 백관이 다시 은전(恩典)에 절하며 사례하였다. 군신(君臣)의 예를 행하고 나서, 조서와 용안(龍案)을 옮기고, 국왕은 곧 숙태위와 상견하였다. 서례(敍禮)를 마치고, 후전(後殿)으로 청하여 들어가 크고 화려한 연석을 베풀고, 산해진미가 갖추어졌다. 번관(番官)이 술을 올리고, 융장(戎將)이 잔을 전하며, 가무가 연석에 가득하고, 호가(胡笳)가 귀를 찌르며, 연희(燕姬) 미녀(美女)들이 각자 융락(戎樂)을 연주하고, 갈고(羯鼓), 훈(塤), 지(篪)가 함께 울리고, 호선무(胡旋舞)가 천천히 추어졌다. 연석이 끝나자, 숙태위와 여러 장수들을 역관(驛館)으로 보내어 쉬게 하였다. 그날 따라간 인원들에게 모두 상과 위로가 있었다.

이튿날, 국왕은 승상 저견에게 명하여 성을 나와 진영에 이르러, 조추밀과 송선봉을 초청하여 함께 연경에 들어가 연회에 참석하게 하였다. 송강은 군사 오용(吳用)과 의논하여 가지 않기로 하고, 다만 조추밀을 청하여 성에 들어가 숙태위와 함께 연회를 즐기게 하였다. 그날 요나라 국왕은 크게 연석을 베풀어 조정 사자를 대접하였다. 포도주는 익어 은 항아리에 가득하고, 황양고기는 맛있어 금반(金盤)에 가득 찼으며; 기이한 과일은 연석에 수북이 쌓이고, 이상한 꽃은 광채를 뿜었다. 연석이 거의 끝날 무렵, 국왕이 금반(金盤)에 진귀한 완구(玩具)를 받들어 내어 숙태위와 조추밀에게 진헌하였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연회가 끝났다. 사흘째 되던 날, 요나라 주는 문무백관을 모으고, 번융(番戎)의 고악(鼓樂)을 함께 울리며, 태위와 추밀을 성 밖 진영까지 보내고; 다시 승상 저견에게 명하여 우양(牛馬)과 금은채단(金銀綵緞) 등의 예물을 송선봉의 군중 진내에 이르게 하여, 크게 성회(盛會)를 베풀어 삼군(三軍)을 위로하고, 여러 장수들에게 중상을 내렸다.

송강이 영을 내려, 천수공주(天壽公主) 일행을 잡아서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여전히 빼앗았던 단주(檀州), 계주(薊州), 패주(霸州), 유주(幽州)를 그대로 요나라 관할에 돌려주게 하였다. 한편 먼저 숙태위를 경성으로 돌려보내고, 이어 각 장수의 군병과 수레, 깃발, 말을 정리하고, 인원을 분배하여 먼저 중군(中軍) 군마를 보내 조추밀을 호송하여 출발하게 하였다. 송선봉 진영 안에서는 스스로 연회를 베풀어, 한편 수군(水軍) 두목들을 위로하는 것을 마치고, 그들에게 명하여 배를 타고 수로(水路)로 먼저 동경(東京)에 돌아가 주둔하며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송강은 다시 사람을 보내 성 안에 들어가 좌우 이승상(二丞相)을 청하여 군중에 와서 이야기하게 하였다. 이에 요나라 국왕은 좌승상 유서근근(幽西孛瑾)과 우승상 태사 저견(太師褚堅)을 송선봉의 행영(行營) 중군(中軍)에 이르게 하여 상견하게 하였다. 송강이 청하여 장막에 오르게 하고, 주객(主客)의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송강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내 장수(武將)가 군사를 성 아래에 이르게 하고, 장수(將帥)가 해자(壕) 가에 이르러, 기이한 공(奇功)이 눈앞에 있는데, 본래 너희들의 항복을 용납하지 않고 성을 깨뜨려 완전히 섬멸하는 것이 바로 정리(正理)였다. 주장(主將)이 따르며, 너희들이 조정에 주청(奏請)하는 것을 용납하였다. 황상(皇上)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측은(惻隱)한 마음을 두시고, 끝까지 추살(追殺)하려 하지 않으시고, 너희들이 항복하는 것을 허락하며, 표문(表文)을 올려 죄를 청하게 하셨다. 이제 왕사(王事)가 이미 끝났으니, 나는 장차 경성으로 돌아가겠다. 너희들은宋江 등이 너희를 이길 수 없어서 다시 변심(變心)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해마다 진공(進貢)하는 것을 빠뜨리지 말라. 나는 지금 반사(班師)하여 나라로 돌아가지만, 너희들은 마땅히 삼가 지켜야 하며, 일부러 침범하지 말라! 천병(天兵)이 다시 오면, 결코 가볍게 용서하지 않으리라!" 두 승상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빌고 사례하였다. 송강은 다시 좋은 말로 훈유(訓諭)하고, 두 승상은 간절히 사죄하며 물러갔다.

송강은 한 부대의 군병을 나누어 여장(女將) '일장청(一丈青)' 등으로 하여금 먼저 가게 하고; 이어 수군(隨軍) 석공(石工)을 불러 돌을 캐서 비석을 만들게 하고, 소양(蕭讓)에게 명하여 글을 짓게 하여 이 일을 기록하게 하고, 김대견(金大堅)이 글자를 새기는 것을 마치자, 영청현(永清縣) 동쪽 십오 리(十五里) 모산(茅山) 아래에 세웠는데, 지금도 고적(古跡)이 남아 있다. 시(詩)가 있어 증거한다:

호마(胡馬)가 음산(陰山)을 넘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원한은 전연(澶淵)에서 오랑캐를 놓아준 데 있도다.

누가 모산(茅山)에 공적을 새긴 비를 만들었는가?

구공(寇公)이 황천에서도 반드시 얼굴을 펴리라.

宋江은 군마를 다섯 부대로 나누어 출발할 날을 택했다. 그때 노지심이 갑자기 장막 앞에 이르러 합장하며 예를 올리고 송강에게 말했다. “소제는 일찍이 ‘진관서’를 때려죽인 후 대주 안문현으로 도망쳤습니다. 조원외가 저를 오대산으로 보내 지진장로를 찾아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게 하였습니다. 뜻밖에도 취한 후 두 번이나 선문에서 소란을 피워 스승께서 저를 동경 대상국사로 보내 지청선사를 의지하고 집사승 자리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상국사에서는 저에게 채마밭을 지키게 하였지요. 임충을 구하려다가 고태위에게 해를 입을 뻔하여 이에 초목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을 만나 오랫동안 따르며 여러 해가 지났으나 본사 스승을 그리워하며 일찍이 참배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스승께서 말씀하시길, 내 비록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성품이나 훗날 정과진신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태평하여 일이 없사오니, 동생이 잠시 며칠 휴가를 청하여 오대산으로 가 본사 스승을 참배하고자 합니다. 또 평소에 얻은 금은 재물을 모두 시주하고, 다시 스승께 앞길을 여쭙고자 하옵니다. 형님의 군마는 그냥 앞으로 나아가시고, 소제는 곧 뒤따라오겠나이다.” 송강이 듣고 놀라며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가 이렇게 살불 나한이 거기에 계신다면 어찌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와 함께 가서 참배하고 앞길을 묻자.” 그때 여러 사람과 의논하니 모두 가고자 하였으나, 공손승만이 도교의 규율 때문에 가지 않았다. 송강이 다시 군사와 의논하여 “김대견, 황보단, 소양, 악화 네 명을 남겨 부선봉 노준의에게 위임하여 군마를 관장하며 차례로 먼저 나아가게 하자. 우리는 천여 명만 데리고 여러 형제들을 따르며 노지심을 따라 함께 지진장로를 참배하러 가자.” 송강 등은 그때 군진을 떠났다. 명향, 채백, 표리, 금은을 챙겨 오대산으로 올라갔다. 진실로 잠시 금과 철마를 내려놓고, 방외의 승림으로 노닐었으니, 우화대 가에서 덕 높은 스님을 방문하고, 선법당 앞에서 연등고불을 뵈려 한 것이다. 마침내 한 마디 말이 명리길을 열고, 짧은 말이 사생관을 뚫게 하였으니, 과연 송강과 노지심이 어떻게 참선하는지는 다음 회에 풀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