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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이편

수신편

제 3 편

선행을 보면 자신을 바로잡아 반드시 그것을 자신에게 간직하려 하고,〈수연(修然)은 바로잡는 모양이다. 선행을 보면 반드시 스스로 바로잡아 자신에게 존재하게 함을 뜻한다.〉악행을 보면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반드시 그것으로 자신을 반성하며,〈초연(愀然)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허물을 반성함이다.〉선행이 자신에게 있으면 굳게 애호하며,〈개연(介然)은 굳센 모양이다. 《주역》에 "돌처럼 굳세다"라고 하였다. 자호(自好)는 자신의 선행을 스스로 사랑함이다.〉악행이 자신에게 있으면 재앙처럼 여겨 반드시 미워한다.〈치(菑)는 재(災)로 읽는다. 재연(災然)은 재앙이 몸에 있는 모양이다.〉그러므로 나를 지적하는 것이 옳은 이는 나의 스승이요, 나를 찬성하는 것이 옳은 이는 나의 벗이요, 아첨하고 아부하는 이는 나를 해치는 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승을 높이고 벗을 가까이하며, 자신을 해치는 자를 지극히 미워한다.〈치(致)는 지극함을 뜻하며, 이하 같다.〉선행을 좋아함에 만족함이 없고, 간언을 받아들이고 경계할 줄 알면, 이렇게 하여도 나아가지 않으려 해도 가능하겠는가? 소인은 이와 반대여서, 지극히 혼란하면서도 남이 자신을 지적함을 싫어하고, 지극히 불초하면서도 남이 자신을 칭찬하기를 바라며, 마음은 호랑이나 이리와 같고 행동은 금수와 같으면서도 남이 자신을 해침을 싫어한다. 자신에게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직언으로 간하는 자를 멀리하며, 단정하고 선량함을 웃음거리로 삼고, 지극한 충성을 해침으로 여기니, 이렇게 하여도 망하지 않으려 해도 가능하겠는가?〈지극한 충성이 도리어 해침으로 여겨진다.〉《시경》에 이르기를 "서로 헐뜯고 서로 공격하니, 참으로 가엾도다. 꾀가 좋으면 모두 그것을 어기고, 꾀가 좋지 않으면 모두 그것을 따르도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경우를 말한 것이다.〈《시경》은 《소아·소민》편이다. 모형(毛亨)이 말하기를 "흡흡(噏噏)은 그 위를 근심함이요, 자자(呰呰)는 위에서 직분에 힘쓰려 하지 않음이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신하가 군주를 섬기지 않음은 화란의 시작이므로 매우 가엾다."라고 하였다. 흡(噏)은 허급반(許急反)으로 읽고, 자(呰)는 자(紫)로 읽는다.〉

선을 분별하는 법칙으로 혈기(血氣)를 조리하고 생명을 기르면 수명은 팽조(彭祖)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것으로 몸을 닦고 명성을 이루면 요(堯)나 우(禹)와 짝할 수 있다.〈편(扁)은 변(辨)으로 읽는다. 《한시외전》에 "군자에게 변선지도(辨善之度)가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군자에게 선을 분별하는 법칙이 있음을 뜻하며, 곧 예(禮)를 가리킨다. 뜻은 예로 혈기를 조리하고 생명을 기르면 수명이 팽조에 미치지 못하지만, 예로 몸을 닦고 스스로 명성을 세우면 그 명성이 요나 우와 같아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예가 비록 혈기를 조리하고 생명을 길러 수명을 연장하지는 못하지만, 몸을 닦고 명성을 세우는 데 뛰어나니, 이 차이에서 예의 선함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팽조는 요의 신하로, 이름은 첨(鏘)이며, 팽성(彭城)에 봉해졌고, 우(虞)와 하(夏)를 거쳐 상(商)나라까지 살아 수명이 칠백 세였다.〉통달하고 순조로운 때에 적합하고, 곤궁한 처지에도 이로우니, 예가 참으로 그러하다.〈신(信)은 진실함이다. 몸을 닦고 통달과 곤궁에 대처하는 데 예가 참으로 이와 같다는 뜻이다. 《맹자》에 "군자는 곤궁하면 홀로 그 선함을 닦고, 현달하면 겸하여 천하를 선하게 한다."라고 하였다.〉무릇 혈기와 의지와 사려를 사용함에 예를 따르면 통달하여 질서가 있고, 예를 따르지 않으면 어그러지고 게을러지며,〈제(提)는 느슨함을 뜻한다. 《이아》에 "제제(媞媞)는 편안하고 느슨한 모양이다."라고 하였고, 《시경》에 "호인 제제(好人提提)"라고 하였으니, 모두 느슨한 뜻이다.〉음식과 의복과 거처와 행동거지에 예를 따르면 조화로워 절도가 있고, 예를 따르지 않으면 범하고 화에 빠져 병이 생기며, 용모와 태도와 나아가고 물러남과 걸음걸이에 예를 따르면 문아(文雅)하고, 예를 따르지 않으면 거만하고 고루하며 사특하고 바르지 않아, 평범하고 속되어 마치 촌사람과 같다.〈이(夷)는 거만함을 뜻한다. 《논어》에 "원양이 이사(夷俟)하였다."라고 하였다. 고(固)는 고루함이다. 용(庸)은 평범함이다. 중(衆)은 무리이다. 야(野)는 교외 사람이다.〉그러므로 사람이 예가 없으면 살 수 없고, 일이 예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나라가 예가 없으면 편안하지 않다. 《시경》에 "예의가 모두 법도에 맞고, 웃음과 말이 모두 알맞게 이루어졌도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경우를 말한 것이다.〈《시경》은 《소아·초자》편이다. 졸(卒)은 다함이고, 획(獲)은 얻음이다.〉

선으로 남을 이끄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고, 선으로 남에게 응하는 것을 순종이라 하며,〈선(先)은 먼저 창도함을 뜻한다. 화(和)는 호와반(胡臥反)으로 읽으며, 이하 같다.〉불선으로 남을 이끄는 것을 아첨이라 하고, 불선으로 남에게 응하는 것을 아첨(阿諛)이라 한다.〈첨(諂)은 함(陷)을 뜻하니, 꾸며서 남을 해치는 말을 씀이다. 유(諛)와 유(俞)는 뜻이 같으므로, 불선으로 남에게 응함이다.〉옳은 것을 긍정하고 그른 것을 부정하는 것을 지혜라 하며,〈능히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을 지혜라 한다.〉옳은 것을 부정하고 그른 것을 긍정하는 것을 어리석음이라 한다.〈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을 어리석음이라 한다.〉선량함을 해치는 것을 참소라 하고, 선량함을 상하게 하는 것을 도둑질이라 한다.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하는 것을 정직이라 한다. 재물을 훔치는 것을 도둑이라 하고, 행실을 숨기는 것을 속임이라 하며, 말을 가볍게 하는 것을 황당함이라 하고, 취하고 버림에 일정함이 없는 것을 무상(無常)이라 하며,〈항상(恒常)하지 않은 사람이다.〉이익을 지키고 도의를 버리는 것을 지극히 해로운 것이라 한다.〈보(保)는 편안히 지킴이다.〉들을 것이 넓음을 박학(博學)이라 하고, 들을 것이 적음을 천박(淺薄)이라 하며, 볼 것이 많음을 경험이 많다 하고,〈한(閑)은 익숙함이다. 익숙하게 일을 대하면 국한되지 않는다.〉볼 것이 적음을 고루하고 듣지 못함이라 한다. 나아가기 어려움을 느슨함이라 하고,〈제(偍)는 제(提)나 제(媞)와 같으니, 모두 느슨하고 느린 뜻이다.〉잊기 쉬움을 빠뜨림이라 한다. 정제되고 조리가 있음을 잘 다스려짐이라 하고, 많고 어지러움을 소모됨이라 한다.〈소(少)는 요령을 잡아 조리가 있음을 뜻하며, 이를 다스려짐이라 한다. 모(秏)는 비움이다. 무릇 일이 많아 쉽게 다하는 것을 모(秏)라 한다.〉

혈기(血氣)를 조리하고 심성(心性)을 닦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이는 예(禮)로써 몸을 닦는 것이 곧 혈기를 조리하고 심성을 닦는 방법임을 뜻하며, 팽조(彭祖)처럼 일부러 양생(養生)할 필요가 없음을 말한다. 혈기가 강하고 억세면 부드러움으로 조화시키고, 생각이 깊고 무거우면 평이하고 선량함으로 통일시킨다. [점(漸)은 스며들고 깊이 들어감을 뜻한다. 혹자는 점(漸)은 물들임이며, 자렴반(子廉反)으로 읽는다고 한다. 《시경(詩經)》에 "수레 휘장을 적시다"라고 하였다. 이는 생각이 깊으면 음험하고 교활함에 가까워지기 쉬우므로 평이하고 선량함으로 통일시킨다는 뜻이다.] 용맹하고 사나우면 인도하고 순응함으로 돕는다. [담(膽)은 담력을 말하고, 려(戾)는 흉악함을 말한다. 이러한 성정은 대개 순종하지 않으므로 인도하고 순응함으로 돕는다.] 민첩하고 빠르면 움직임을 절제한다. [《이아(爾雅)》에 "제(齊)는 빠르다"고 하였다. 제급편리(齊給便利)는 모두 민첩하고 빠름을 뜻한다. 너무 조급함을 걱정하여 절제함으로써 편안하고 느긋하게 한다.] 편협하고 좁으면 너그러움으로 넓혀주고, 비천하고 느리며 이익을 탐하면 고상한 뜻으로 끌어올린다. [비(卑)는 겸손하고 낮춤을 말한다. 습(濕)은 또한 자신을 낮추어 마치 땅이 낮고 축축한 것과 같음을 말한다. 《방언(方言)》에 "습(濕)은 근심이다. 관중(關中) 이서 지역에서는 뜻이 펴지지 못하고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며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얻었다가 그치는 것을 모두 습(濕)이라 한다"고 하였다. 비습(卑濕)은 지나치게 공손하여 예절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중지(重遲)는 느긋함이다. 지나치게 공손하면 위엄이 없고, 느긋하면 일의 때를 자주 놓치며, 이익을 탐하면 구차하게 취하므로 모두 고상한 뜻으로 끌어올린다. 혹자는 비습(卑濕) 또한 느림을 뜻한다고 한다. 느린 사람이 마치 축축한 병이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평범하고 산만하면 스승과 벗으로 바로잡고, 게으르고 경박하면 재앙과 근심으로 깨우친다. [표(僄)는 가벼움, 즉 자신을 가볍게 여김을 말하며, 음은 필묘반(匹妙反)이다. 《방언(方言)》에 "초(楚) 땅에서 서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표(僄)라 한다"고 하였다. 조지이화재(炤之以禍災)는 재앙과 근심으로 비추어 두려움을 알게 함이다. 조(炤)는 조(照)와 같다.] 어리석고 순박하며 정직하면 예악(禮樂)으로 조화시키고 생각으로 꿰뚫는다. [관(款)은 성실함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관(款)은 마음에 바라는 바가 있음이다"라고 하였다. 우관단각(愚款端慤)은 대개 문채와 꾸밈이 부족하므로 예악으로 조화시킨다. 이는 모두 수신(修身)의 방법이 자신의 단점을 고치는 데 있음을 말한다.] 무릇 혈기를 조리하고 심성을 닦는 방법은, 예를 따르는 것보다 더 빠르고 쉬운 것이 없으며, 스승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며, 선을 전일하게 좋아하는 것보다 더 신묘한 것이 없다. [경(徑)은 지름길, 빠름을 말한다. 신(神)은 신명(神明)이다. 일호(一好)는 선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을 일러 혈기를 조리하고 심성을 닦는 방법이라 한다.

뜻이 세워지면 부귀를 업신여기고, 도의(道義)가 마음에 있으면 왕공(王公)을 가벼이 여기며, 마음속으로 반성하면 외부의 사물이 하찮게 여겨진다. 옛 글에 이르기를 "군자는 사물을 부리고, 소인은 사물에 부림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이 이치를 말한 것이다. [군자는 사물을 부릴 수 있고 소인은 사물에 부림을 받는다. 무릇 '전왈(傳曰)'이라 함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을 가리킨다.] 몸은 고되지만 마음이 편안하면 그것을 하고, 이익은 적지만 도의가 많으면 그것을 한다. 혼란한 군주를 섬겨서 통달하는 것보다는 곤궁한 군주를 섬기면서 도리에 순종하는 것이 낫다. [궁군(窮君)은 작은 나라가 핍박과 위협을 받는 군주를 말한다. 이는 큰 나라의 포악한 군주를 섬겨 도리를 어기고 통달하는 것보다 작은 나라의 군주를 섬기면서 자신의 도리에 순종하며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좋은 농부는 홍수나 가뭄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지 않고, 좋은 장사는 손해를 보기 때문에 장사를 하지 않지 않으며, [절(折)은 손해이다. 열(閱)은 팖이다.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에 손해를 봄을 말한다. 가(賈)는 고(古)로 읽는다.] 선비와 군자는 가난 때문에 도리에 게을러지지 않는다.

몸가짐이 공손하고 마음이 충성스러우며, 예의를 따르고 감정으로 남을 사랑하며[술(術)은 본받음의 뜻이다.],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어 사방의 오랑캐 땅에서 곤궁하더라도 그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횡행(橫行)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고 행동함을 말한다. 곤(困)은 곤궁함을 말한다. 이르는 곳마다 존중받음을 뜻한다.] 힘든 일은 앞서서 하고, 즐거운 일은 사양하며, 단정하고 성실하며 믿음이 있고, 예법을 삼가 지키며 일을 상세히 살피고[구수(拘守)는 삼가 지키고 잃지 않음을 말한다. 상(詳)은 사리에 신중함을 말한다.],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어 사방의 오랑캐 땅에서 곤궁하더라도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몸가짐이 오만하고 고집스러우며 마음이 간사하고, 신도(慎到)와 묵자(墨子)의 학설을 따르며 성정이 뒤섞이고 더러우며[거(倨)는 오만함, 고(固)는 비루하고 고집스러움이다. '순묵(順墨)'은 응당 '신묵(慎墨)'이다. 신(慎)은 제(齊)나라 선왕(宣王) 때의 은사 신도(慎到)를 말한다. 그의 학설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에 근원을 두고 형명(刑名)의 학문에 돌아갔으며, 신불해(申不害)와 한비(韓非)보다 앞서 그 뜻이 서로 비슷하여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고 재능을 쓰지 않는 도리를 많이 밝혔으며, 저서 41편이 있다. 묵적(墨翟)은 송(宋)나라 사람으로 묵자(墨子)라 불렸다. 묵자는 저서 35편을 지었으며, 그 학설은 절약에 힘쓰는 것이 많다. '정(精)'은 응당 '정(情)'이다. 잡오(雜污)는 예의에 맞지 않는 언론을 말한다.],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어 사방에서 현달하더라도 그를 비난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힘든 일은 게으르고 나약하며 서로 도망가고[투(偸)는 구차하게 일을 피함을 말한다. 유(儒)는 또한 나약하여 일을 두려워함이다. 모두 게으름의 뜻이다. 혹자는 '투(偸)'는 응당 '투(輸)'라고 한다. 양웅(揚雄) 《방언(方言)》에 '유투(儒輸)는 어리석음'이라 하고, 곽박(郭璞)은 주석에서 나약하고 일을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또 전타(轉脫)는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이 구차하게 일을 면하려 함을 뜻한다고 한다.], 즐거운 일은 아첨하여 기쁘게 하고 곧바로 취하며[태(兌)는 기쁨이다. 남에게 아첨하여 기쁘게 함으로써 즐거운 일을 구함을 말한다. 불곡(不曲)은 곧바로 취함을 말한다.], 간사하고 어그러져 있으며 올바르고 성실하지 못하고[괴벽(乖僻)은 어그러짐이다. 올바르고 성실하며 믿음이 있지 못함이다. 벽(辟)은 벽(僻)으로 읽는다.], 공정(功程)과 노역(勞役)을 추구하면서 단속하지 않는다[정(程)은 공정(功程)이다. 역(役)은 노역(勞役)이다. 록(錄)은 단속함이다. 공정과 노역에 게을러 단속하지 않음은 삼가 지키고 상세히 살피지 못함을 말한다.],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어 사방에서 현달하더라도 그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걸을 때 공손하고 삼가는 것은 진창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며[공(供)은 공손함이다. '기(冀)'는 응당 '익(翼)'이다. 무릇 걸음걸이는 자연히 공손해야 하며, 진창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진창에 있으면 전전긍긍하게 된다. 혹자는 이주(李巡)가 《이아(爾雅)》에서 '기주(冀州)는 가깝다'고 주석한 것을 말한다고 한다. 공손하여 예에 가까움은 방탕함을 감히 하지 않음을 말한다.] 걸을 때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보는 것은 목이 굽었기 때문이 아니며[격려(擊戾)는 목이 굽어서 쳐들지 못하는 모양이다. 격려(擊戾)는 요려(了戾)와 같다.], 두 사람이 마주볼 때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은 두려워서가 아니다[우시(偶視)는 마주봄이다.]. 그러나 선비는 홀로 자신을 닦으려 하여 세속 사람들에게 죄를 얻지 않으려 한다.

양마는 하루에 천 리를 갈 수 있지만, 둔한 말도 열 번 쉬어 가면 따라잡을 수 있다. 끝없는 것을 다하려 하고, 끝없는 것을 쫓으려 하는가? 그렇다면 뼈가 부러지고 힘이 다하여 평생토록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만약 멈출 데가 있다면, 천 리가 아무리 멀다 해도 느리고 빠름이 있고, 먼저와 나중이 있을 터이니, 어찌 따라잡지 못하겠는가? 도를 행하는 자는 끝없는 것을 다하려 하고 끝없는 것을 쫓으려 하는가, 아니면 멈출 데가 있는 것인가? (보, 걷다.)

견백(堅白), 동이(同異), 유후무후(有厚無厚)와 같은 변론과 살핌은 정밀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이는 공손룡(公孫龍), 혜시(惠施)의 왜곡된 이론으로 본받을 수 없음을 이른다. 견백(堅白)은 견백을 분리함을 이른다. 《공손룡자·견백론》에 이르기를 "‘견(堅), 백(白), 석(石) 셋이 될 수 있는가?’라고 말하기를 ‘될 수 없다.’라고 했다. ‘둘이 될 수 있는가?’라고 말하기를 ‘될 수 있다.’라고 했다." 이는 눈으로 돌을 보면 흰색만 보이고 단단함을 알지 못하여 백석(白石)이라 부르고, 손으로 돌을 만지면 단단함을 알지만 흰색을 알지 못하여 견석(堅石)이라 부른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견과 백은 끝내 하나로 합쳐질 수 없다. 사마표(司馬彪)가 말하기를 "견백(堅白)은 견석이 돌이 아니고 백마가 말이 아님을 이른다. 동이(同異)는 서로 다른 것을 같게 하고, 같은 것을 다르게 함을 이른다."라고 했다. 혹자는 말하기를, 《장자》에서 이른바 "큰 같음과 작은 같음이 서로 다른 것을 소동이(小同異)라 이른다."는 것이다. 이는 함께 천지 사이에 있으므로 대동(大同)이라 하고, 만물이 각각 종류가 같으므로 소동(小同)이라 이른다. 이것이 대동과 소동의 차이이다. 여기서 간략히 동이(同異)를 들어 말하였으므로 "이것을 소동이라 이른다"고 했다. 《장자》에서 또 말하기를 "만물이 완전히 같기도 하고 완전히 다르기도 한 것을 대동이(大同異)라 이른다."고 했다. 이는 만물을 모두 합쳐 물(物)이라 부르면 같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만물이 완전히 같음이다. 만약 나누어 살피면 사람의耳目비구(耳目鼻口)와 백체(百體), 초목의 지엽화실(枝葉花實)이 같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만물이 완전히 다름이다. 여기서는 전체적으로 동이(同異)를 들어 말하였으므로 "이것을 대동이(大同異)라 이른다"고 했다. 《장자》에서 또 말하기를 "무후(無厚)는 쌓을 수 없으나 그 크기는 천 리에 이른다." 무후는 두께가 지극하여 두껍고 얇음을 더 이상 나눌 수 없음을 이른다. 불가적(不可積)은 쌓음이 지극히 많아 더 이상 쌓을 수 없음을 이른다. 무릇 무후하고 불가적한 것은 유후가적(有厚可積)함에 바탕을 두므로 천 리까지 클 수 있는 것이다. 천 리는 큰 것의 극한을 든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변론하지 않으니, 이는 멈출 데가 있어서 하지 않는 것이다. 기이하고 괴벽한 품행은 어렵지 않은 것이 아니나, 군자는 행하지 않으니, 이는 멈출 데가 있어서 하지 않는 것이다. (기(倚)는 기이함을 이른다. 기(奇)는 '기우(奇偶)'의 기(奇)로 읽는다. 《방언》에 이르기를 "진(秦)과 진(晉) 사이에서 무릇 물체가 온전하지 않은 것을 기(倚)라 이른다."고 했다. 괴(魁)는 큼을 이른다. 기(倚)와 괴(魁)는 모두 편벽되고 괴이한 행동을 이른다. 《장자》에 이르기를 "남쪽에 기인(倚人)이 있어 이름이 황료(黃繚)였다."고 했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 멈추어 나를 기다리면, 내가 나아가 그에게 다가가리라(학왈(學曰)은 학문하는 사람이 이 말을 전한 것을 이른다. 지(遲)는 기다림을 뜻하며, 음은 직리반(直吏反)이다.)"고 한다면, 또한 느리고 빠름이 있고 먼저와 나중이 있을 터이니, 어찌 함께 도달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반 걸음도 멈추지 않으면 절뚝거리는 자라도 천 리를 갈 수 있고, 흙을 쌓기를 그치지 않으면 산도 높아질 수 있으며, 그 원천을 막고 그 물길을 파면 강과 하천도 마를 수 있다. (압(厭)은 막음을 뜻하며, 음은 일섭반(一涉反)이다. 독(瀆)은 물길이다.) 한 번 나아가고 한 번 물러서며, 한 번 왼쪽으로 가고 한 번 오른쪽으로 가면, 여섯 필의 양마도 도달하지 못한다. (가지런하지 않아 길의 끝에 도달하지 못함을 이른다.) 사람의 재능과 성품의 차이가 어찌 절뚝거리는 자라와 여섯 필의 양마의 발힘과 같겠는가? 그러나 절뚝거리는 자라는 도달하고 여섯 필의 양마는 도달하지 못하니, 이는 다른 이유가 없고, 누군가는 하고 누군가는 하지 않을 뿐이다.

길이 비록 가깝더라도 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고, 일이 비록 작더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저 사람으로서 한가한 날이 많은 자는 그 출입하는 길이 멀지 않을 것이다. (다가일(多暇日)은 게으름을 이른다. 출입(出入)은 길이 닿는 곳을 이른다.) 법도를 좋아하여 능히 행하는 이를 사(士)라 하고, (법을 좋아하여 능히 행하는 이를 사(士)라 이른다. 사(士)는 일을 뜻하며, 사무를 잘 처리할 수 있음을 이른다.) 뜻을 독실히 하고 능히 몸소 행하는 이를 군자라 하고, (그 뜻을 두텁게 하고 큰 체(體)를 아는 것이다.) 가지런하고 밝으며 끊임없는 이를 성인이라 한다. (제(齊)는 치우침이 없음을 이른다. 불갈(不竭)은 다함이 없음을 이른다. 《서경》에 이르기를 "성탕(成湯)이 제성광연(齊聖廣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법도가 없으면 막막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거거(倨倨)는 갈 바를 모르는 모양이다.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름을 이른다. 《예기》에 이르기를 "거거호기하지(倨倨乎其何之)?"라고 했다.) 법도가 있어도 그 의리를 알지 못하면, 군색하고 불안해하며, (거(渠)는 급(遽)으로 읽는다. 옛 글자 '거(渠)'와 '거(遽)'는 서로 통한다. 거거(渠渠)는 너그럽고 편안하지 못한 모양이다. 지(志)는 식(識)을 뜻한다. 불식기의(不識其義)는 다만 문자에만 얽매임을 이른다.) 법도를 따르면서도 그 통류(統類)를 깊이 밝힌 다음에야 온화하고 여유로워진다. (그 유(類)를 깊게 함은 통류를 깊이 앎을 이른다. 온온(溫溫)은 윤택함이 있는 모양이다. 유(類)를 드는 것은 군자도 어려워하는 바이므로 자주 언급한 것이다.)

예(禮)는 자기를 바르게 하는 도구이고, 스승은 예를 바르게 하는 도구이다. 예가 없으면 무엇으로 자기를 바르게 하겠는가? 스승이 없으면 내가 어찌 예가 올바른 것을 알겠는가? 예가 이렇게 규정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성정이 예에 편안함이니, 스승이 이렇게 말하였으니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지혜가 스승과 같음이다. 성정이 예에 편안하고 지혜가 스승과 같으면 이것이 곧 성인이다. (정안례(情安禮)는 천성적으로 편안한 것과 같아 배움에 의지하지 않음을 이른다. 행동이 예에 어긋나지 않고 말이 스승에 어긋나지 않으면 성인과 다름이 없으니, 스승과 법의 효능이 이와 같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부정하는 것은 법도가 없음이요, 스승을 부정하는 것은 스승이 없음이다. (무사(無師)는 스승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음을 이른다.) 스승의 법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기를 좋아함은, 마치 소경에게 색깔을 분별하게 하고 귀머거리에게 소리를 분별하게 하는 것과 같아서, 혼란하고 방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할 일이 없다. (사(舍)는 버림을 이른다. 혼란하고 방탕한 사람을 제외하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배움은 예법을 배우는 것이다. 저 스승은 자신으로써 바르게 하는 법이 되고, 자연히 이 도에 편안함을 귀하게 여긴다. (스승의 예법을 본받아 바르게 하는 법으로 삼고, 성품이 편안한 것과 같이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예(禮)'는 혹 '체(體)'로 쓰기도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알지도 분별하지도 못하나, 위로 하늘의 법칙을 따른다."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시경》은 《대아·황의(大雅·皇矣)》 편이다. 이를 인용하여 스승의 법이 암암리에 하늘의 도에 합치함을 비유하였으니, 마치 문왕(文王)이 비록 알지 못하였으나 이미 하늘의 법도를 따른 것과 같다는 뜻이다.)

단정하고 공손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형을 사랑하면, 훌륭한 소년이라 이를 만하고, 여기에 배움을 좋아하고 겸손하며 민첩함을 더하면, 사람들과 평등하게 지내면서 남을 능가하는 마음이 없게 되어 군자가 될 수 있다. (이미 배움을 좋아하고 겸손하며 민첩하고, 또한 평등한 마음이 있어 남을 넘어서려는 뜻이 없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 혹자는 '유균무상(有鈞無上)' 네 글자는 더덕 글자라고 한다.) 나약하고 게으르며,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음식을 탐하면, 못된 소년이라 이를 만하고, (투유탄사(偷儒憚事)는 모두 나약하고 게으르며 괴로움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이른다.) 여기에 방탕하고 흉포하며 순종하지 않고, 음흉하고 간사하며 형을 공경하지 않으면, (한시랑(韓侍郎)이 말하기를 "탕(愓)은 탕(蕩)과 같은 글자로, 심방(心旁)에 창(昜)을 쓴 것으로, 방탕하고 흉포함을 뜻한다.") 불길한 소년이라 이를 만하여, 비록 이로 인해 형벌을 받아 죽더라도 마땅하다. ('상(詳)'은 '상(祥)'으로 써야 한다.)

노인을 공경하면 장년들이 귀순하고, (노노(老老)는 노인을 노인으로서 공경함을 이른다. 《맹자》에 이르기를 "백이(伯夷)와 태공(太公) 두 분은 천하에서 가장 명망 높은 노인으로, 천하의 아버지들이다. 그 아버지가 귀순하면 그 아들이 어디로 가겠는가!"라고 했다.) 곤궁한 사람을 핍박하지 않으면 통달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곤궁한 사람을 너그럽게 대우하고 가혹하게 핍박하지 않음은, 환과고독(鰥寡孤獨)과 궁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김을 이른다. 적(積)은 모임을 뜻한다. 이렇게 하면 통달한 사람들이 귀순하는 것도 많아진다. 새 둥지를 뒤집고 알을 깨면 봉황이 오지 않고, 연못을 말리고 물고기를 다 잡으면 교룡이 오지 않는 것과 이치가 같다.) 은밀한 곳에서 행하고 은혜를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으면, 어질고 어질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귀순한다. (행호명명(行乎冥冥)은 일을 하여 남이 알게 하지 않음을 이른다. 시호무보(施乎無報)는 은혜를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않음을 이른다. 이와 같이 하면 어질고 어질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우러러 귀순할 것이다.) 사람이 이 세 가지 품행이 있으면, 비록 큰 허물이 있더라도 하늘이 어찌 재앙을 내리겠는가? (만약 불행히 허물이 있더라도 하늘이 도와주실 것이니, 본래 큰 재앙이 있을 리 없다.)

군자가 이익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간략하게 하고, 재앙을 피함에 있어서는 일찍 하며, 치욕을 물리침에 있어서는 삼가고, 도리를 행함에 있어서는 용감하다. 군자는 가난할 때 뜻이 원대하고, 부귀할 때 태도가 공손하며, 한가할 때 혈기가 게으르지 않고, 고달플 때 용모가 초췌하지 않으며, 노여울 때 지나치게 빼앗지 않고, 기쁠 때 지나치게 베풀지 않는다. (베푼다는 것은 상을 주는 뜻이다. 《주례》의 '여덟 가지 권병' 중 셋째 조목에 '상을 베풀어 신하의 총애를 통제한다'고 하였다.) 군자가 가난할 때 뜻이 원대한 것은 인(仁)을 널리 펴기 때문이며, (인애하는 마음이 깊으므로 생각하는 바가 매우 넓고 멀다. 이는 세상을 이롭게 하고 사물을 구제하는 데 힘쓰는 것을 말한다.) 부귀할 때 태도가 공손한 것은 위세를 줄이기 때문이며, (권세의 위엄을 줄이므로 몸가짐이 공손하고 삼간다. '살'은 '소개반'으로 읽는다.) 한가할 때 혈기가 게으르지 않은 것은 이치에 맞음을 선택하기 때문이며, (간(柬)은 간(簡)과 같다. 일의 이치에 마땅한 바를 선택하여 교만하고 방탕함을 추구하지 않으므로 한가함에서 벗어나 게으름에 빠지지 않음을 이른다.) 고달플 때 용모가 초췌하지 않은 것은 사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화목하고 우호적인 태도로 사람과 사귀어, 마음과 뜻이 항상 편안하다.) 노여울 때 지나치게 빼앗지 않고 기쁠 때 지나치게 베풀지 않는 것은 법도가 사사로운 마음을 이겼기 때문이다. (공정한 마음으로 사욕을 없애므로 상벌이 적절하다.) 《서경》에 이르기를 '치우친 사사로움이 없어 선왕의 바른 길을 따르고, 치우친 미움이 없어 선왕의 바른 길을 따른다' 하였으니, 이는 군자가 공의로 사욕을 이길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서경》 〈홍범〉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