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락 제18
천하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가? 몸을 온전히 보존할 방법이 있는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에 의거해야 하는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편안히 머물러야 하는가? 무엇을 가까이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는가?
천하 사람들이 숭상하는 것은 부유함, 귀함, 장수, 좋은 명성이다. 좋아하는 것은 몸의 편안함, 맛있는 음식, 화려한 옷, 즐거운 빛깔, 듣기 좋은 음악이다. 천시하는 것은 가난함, 천함, 단명, 나쁜 명성이다. 괴로워하는 것은 몸이 편안하지 못하고, 입이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며, 몸이 화려한 옷을 입지 못하고, 눈이 아름다운 빛깔을 보지 못하며, 귀가 듣기 좋은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얻지 못하면 크게 근심하고 두려워하니, 이렇게 몸을 대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부유한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하고 부지런히 일하여 큰 재물을 쌓아두지만 완전히 누리지 못하니, 이렇게 몸을 대하는 것은 너무 겉치레일 뿐이다! 귀한 사람은 밤낮으로 좋고 나쁨과 얻고 잃음을 생각하니, 이렇게 몸을 대하는 것은 너무 소홀한 것이다! 사람의 태어남은 근심과 함께 오는 것이다. 장수하는 사람은 흐릿하게 오래도록 근심하며 죽지 않으니, 얼마나 괴로운가! 이렇게 몸을 대하는 것은 너무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열사는 천하 사람들의 칭송을 받지만, 자기 몸을 온전히 보존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는 이 선함이 진정한 선인지, 진정한 선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것을 선하다고 여긴다면 몸을 온전히 보존하기에 부족하고, 만약 선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남을 온전히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충성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물러나서 다투지 말라"고 한다. 이 때문에 오자서는 간쟁하다가 몸을 해쳤지만, 만약 다투지 않았다면 명성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진정한 선이 있는 것인가?
지금 세속 사람들이 하는 일과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것을, 나는 이 즐거움이 진정한 즐거움인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세속 사람들이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리들이 한꺼번에 쫓아가서 죽을 힘을 다해 뒤쫓아 마치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듯이 하면서 모두 즐거움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즐겁다고 느끼지도 않고, 즐겁지 않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도대체 즐거움이 있는 것인가? 나는 무위가 참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속에서는 이것을 매우 큰 괴로움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지극한 즐거움은 즐거움이 없음이요, 지극한 명성은 명성이 없음이다"라고 한다.
천하의 시비는 참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무위는 시비를 판단할 수 있다. 지극한 즐거움은 몸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으니, 오직 무위만이 거의 보존할 수 있다. 청컨대 내가 시험 삼아 말해 보겠다. 하늘은 무위하기 때문에 맑고, 땅은 무위하기 때문에 편안하다. 그러므로 이 두 무위가 서로 결합하여 만물이 모두 변화하여 생겨난다. 아득하고 아득하여 어디서 생겨나는지 알 수 없구나! 아득하고 아득하여 구체적인 형상이 없구나! 만물은 많고 많아서 모두 무위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천지는 무위하지만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사람 중에 누가 무위를 할 수 있겠는가!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가 조문하러 갔다. 장자는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말했다. "아내와 함께 살며 그대를 위해 자식을 낳아 기르고 늙어 죽었는데, 울지 않는 것도 모자라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니, 너무 심한 것이 아닙니까!"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네. 그녀가 막 죽었을 때, 내가 어찌 감회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 시초를 살펴보니, 본래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운도 없었네. 아득하고 어렴풋한 사이에 변화하여 기운이 생기고, 기운이 변화하여 형체가 생기고, 형체가 변화하여 생명이 생겼네. 이제 또 변화하여 죽음으로 나아가니,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네. 그녀가 크고 넓은 천지 사이에 편안히 누워 있을 터인데, 내가 오열하며 따라 울었다면, 이것은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 울음을 그쳤네."
지리숙과 활개숙이 명백(冥伯)의 언덕과 곤륜(崑崙)의 터에서 노닐었는데, 그곳은 황제(黃帝)가 쉬던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활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종양이 하나 생겼다. 그는 놀라는 듯 매우 싫어하는 듯 보였다.
지리숙이 말했다. "당신은 그것을 싫어합니까?"
활개숙이 말했다. "아니요, 내가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삶이란, 빌려서 이루어진 것일 뿐입니다. 빌린 외물로 이루어진 삶은 티끌과 같을 뿐입니다. 죽음과 삶은 낮과 밤이 교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나는 당신과 함께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는데, 이제 변화가 내게 임했으니, 내가 또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장자가 초나라에 갔다가 빈 해골 하나를 보았는데, 마른 뼈가 드러나 있고 형태는 완전했다. 그는 말채찍으로 그것을 두드리며 물었다. "선생은 탐욕으로 이치를 잃어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나라가 망하는 일이나 도끼 형벌을 당해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선하지 못한 일을 저질러 부모와 처자에게 부끄러워 치욕을 당해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추위와 굶주림의 재앙을 당해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수명이 다해 자연히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말을 마친 후, 장자는 해골을 끌어당겨 베개로 삼고 누워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해골이 꿈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의 말투는 변사 같구려. 당신이 말한 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의 얼매임일 뿐, 죽은 뒤에는 이런 것들이 없소. 죽은 뒤의 상황을 듣고 싶소?"
장자가 말했다. "좋소."
해골이 말했다. "죽은 뒤에는 위로 군주가 없고 아래로 신하가 없으며, 사계절의 수고로움도 없이, 한가롭고 자유롭게 천지와 함께 봄과 가을을 보내니, 비록 남면하여 왕이 되는 즐거움이라도 이것을 능가할 수 없소."
장자가 믿지 않고 말했다. "내가 생명을 주관하는 신에게 명하여 당신의 형체를 회복시키고, 뼈와 살과 피부를 돌려주어, 당신을 부모, 처자, 이웃, 친구에게 돌려보낸다면, 당신은 그것을 원하겠소?"
해골은 깊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어찌 남면하여 왕이 되는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의 수고로움으로 돌아가겠소!"
안연이 동쪽으로 제나라에 가자, 공자가 근심하는 얼굴을 하였다. 자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학생이 감히 묻자오니, 안회가 동쪽으로 제나라에 갔는데, 선생님께서 근심하는 얼굴을 하시니, 이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 질문이 좋구나! 옛날 관중이 한 말이 있는데, 내가 그것을 매우 옳다고 여긴다. 그는 말하기를 '작은 자루는 큰 물건을 담을 수 없고, 짧은 밧줄은 깊은 우물물을 길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운명은 각각 정해진 바가 있고, 형체는 각각 알맞은 바가 있어 더하거나 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안회가 제후에게 요순과 황제의 도를 말하고, 거기에 수인씨와 신농씨의 말을 더할까 두렵다. 제후는 마음속으로 구하여 얻지 못할 것이고, 얻지 못하면 미혹될 것이며, 사람이 미혹되면 재앙을 만나 죽을 것이다.
게다가 너는 일찍이 듣지 못했느냐? 옛날에 바닷새 한 마리가 노나라 교외에 내려앉았는데, 노후가 그것을 태묘로 맞아들여 술로 대접하고, 《구소》를 연주하며 음악을 들려주고, 태뢰를 갖추어 음식을 대접하였다. 새는 눈이 어지럽고 마음이 근심하고 슬퍼하여, 고기 한 점 먹지 못하고, 술 한 잔 마시지 못하고, 사흘 만에 죽었다. 이것은 자신을 기르는 방식으로 새를 기른 것이요, 새를 기르는 방식으로 새를 기른 것이 아니다. 새를 기르는 방식으로 기르려면, 깊은 숲에 살게 하고, 모래섬에 노닐게 하며, 강과 호수에 떠다니게 하고, 미꾸라지와 작은 물고기를 먹이며, 무리 지어 줄을 지어 멈추게 하고, 자유롭고 한가롭게 살게 해야 한다. 새는 사람의 소리를 가장 두려워하는데, 어찌하여 저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는가! 《함지》와 《구소》와 같은 음악이 동정의 들판에서 연주되면, 새는 듣고 날아가고, 짐승은 듣고 도망가며, 물고기는 듣고 깊은 물속으로 잠긴다. 그러나 사람이 들으면 서로 둘러싸고 구경한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사람은 물속에 있으면 익사한다. 그들의 본성이 각각 다르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자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옛 성인은 재능을 반드시 같게 요구하지 않고, 일을 같게 하지 않았다. 이름은 실제에 부합하게 하고, 의리는 알맞게 설정해야 하니, 이것을 일러 조리가 통달하고 복이 길이 이른다고 한다."
열자가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밥을 먹는데, 백 년 된 해골 하나를 보았다. 그는 잡초를 헤치며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직 나와 너만이 네가 일찍이 죽지도 않았고 태어나지도 않았음을 안다. 너는 참으로 괴로운가? 나는 참으로 즐거운가?"
만물 가운데 지극히 미세한 씨앗이 있어, 물을 만나면 끊어졌다 이어진 실 같은 조류가 되고, 물과 땅이 만나는 경계에서는 이끼가 되며, 높은 땅에서 자라면 질경이가 된다. 질경이가 똥과 흙을 만나면 오족초가 되고, 오족초의 뿌리는 굼벵이가 되며, 잎은 나비가 된다. 나비는 곧 다시 변하여 벌레가 되는데, 부엌 아래에서 태어나며 그 모양이 허물을 벗은 듯하고, 이름은 구탁이라 한다. 구탁이 천 일을 지나면 새가 되는데, 이름은 간여골이라 한다. 간여골의 침은 사미충이 되고, 사미충은 식초벌레가 된다. 이록충은 식초벌레에서 생겨나고, 황굉충은 구유충에서 생겨나며, 무예충은 부곤충에서 생겨난다. 양해초는 죽순이 나지 않는 대나무와 결합하고, 늙은 대나무는 청녕충을 낳으며, 청녕충은 표범을 낳고, 표범은 말을 낳으며, 말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다시 조화 속으로 돌아간다. 만물은 모두 조화 속에서 생겨나고, 또 모두 조화 속으로 돌아간다.
